지난 5월에 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반전이 약간은 충격적인 영화였다.
재미도 있었고, 가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좋았다.
영화를 연출한 부지영 감독도 만났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난 '부'씨 성을 지닌 사람.

나중에 알고 보니 부 감독은,
내가 좋아라하는 성미산마을극장의 영화프로그래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동네주민이었던 것이다~)
나도 언젠가 살고 있는 마을의 커피스토리텔러이자, 영화프로그래머를 하고 싶다.

6월까지 가족영화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시나리오를 탈고하고 새 영화 준비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커피집을 열면 연락달라고 했는데,
연락을 안 했다. ^^;;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골다방에서 한번 틀어도 좋을텐데,
에이, 미친 척하고 한번 부탁해봐? ^^;

아 참, 나도 신민아가 좋아효~ 헤헤. ^____^
특히나 타바코 뿜어내는 저 포스!
난, 있잖아. 담배 필 때 간지나는 녀자가 좋아라~
뭐? 철 없다고? 헤~ 난 막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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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빌려주는 연대 커뮤니티로서의 가족 본령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인터뷰]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부지영 감독


영화인 기타노 다케시의 워낙 유명한 이 말.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다.” 전경린의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는 이런 말이 나오죠. “아이란, 가정이란 그 아름다운 동화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유폐시키는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이 생에서 실종되는가.”

물론 이 말들을 통해, 가족 혹은 가정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이 엄혹한 시대, 국가나 정부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혹은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는 지금-여기의 사람들이 믿고 기댈 곳은, 그야말로 가족 밖에 없잖아요. 남들 다 등을 돌려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건, 그래요. 가족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 가족 혹은 가정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족쇄인지 알고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때문에 맥없이 손을 놓고 말기도 하지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악행까지도. 말하자면, 가족 이기주의.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혈연과 제도에 의해 규정된 가족의 개념에 익숙해져 있지요. 근래 그런 가족의 개념에 딴죽을 거는 영화 등이 선보이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가족은 너무 협소해요. 이성 간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엄마-아빠-아이로 이뤄져야 이른바 ‘정상’이라고 일컬어지곤 하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 혹은 질서.

여기 이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그런 개념에 묻습니다. “꼭 그래야 가족이 될 수 있는 거야?” “아빠는 꼭 있어야 돼?” 등등. 영화는 아빠가 다른 자매의 로드무비이기도 하면서 한 여성이 가족(이라는 개념)을 톺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다룬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모 기업이 광고를 통해 허접하게 주장하는 ‘또 하나의 가족’ 같은 건 말고요, 다른 가족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요, 라는 말을 넌지시 건네는. 따지고 보면, 전통적 개념에서도 엄마와 아빠는 아무 연관이 없던 이들이 만난 거잖아요. 이들이 만나 가족을 이루듯, 가족은 우리가 서로 어깨를 기댈 수 있고 연대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이름이 아닐까, 하는.

저는 이 영화에서 명주(공효진)가 하는 이 대사가 좋았어요. “부모 잘못 만난 죄? 그딴 것 없어. 그냥 사는 거야. 나도, 너도, 승아도.” 없으면 없는 대로, 연대가 이뤄지면 그것대로, 유연하고 개방된 사고. 지금, 이대로가 좋아효! 

11일 ‘입양의 날’(!)에 이 영화를 연출한 부지영 감독을 만났어요. 그 의미심장한 날에 가족 그리고 영화에 대해 나눈, 흥미로웠던 대화를 들려드릴게요. 기회를 찾아서 영화 관람도 권해 드려요. 두 배우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가족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참 얼마 전, 제 블로그의 한 포스팅에 이런 댓글이 붙었어요. “재능이 세상을 섬기게 될 때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 욕망에의 실현에 천착하지 않고. 모쪼록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디자인들을 기대하며.”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와 관련한 포스팅에 붙은 댓글인데, 저는 부지영 감독을 만난 소감으로 이 댓글을 빌리고 싶어요. 그 말에 딱 하나, ‘디자인’이라는 말 대신 ‘영화’로 바꿔서.^.^ 


언니와의 여행에서 이번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던데,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나요?

지난 2005년에 둘째를 임신한지 4~5개월 된 시점에서 두 살 터울의 언니와 4박5일 오사카 여행을 떠났어요. 갑갑하던 찰나에, 무조건 여행을 가자고 해서 함께 가게 된 거죠. 성인이 된 뒤 언니와의 첫 여행이었어요. 보통 성인이 되면, 형제자매들끼리 여행을 가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그렇게 가게 됐는데, 침대도 하나 뿐인 좁은 유스호스텔 같은 곳에서 묶으면서 여행을 했어요. 안락한 여행 환경이 아니었고, 많이 걷고 되게 고생했어요.

그런데 여행을 즐겨했던 언니는 언니 페이스대로 여행하면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 같은 것도 없는 거예요. (웃음) 사흘째 되던 날인가, 감정이 폭발했어요. 서로 불편이 쌓이다가, 제가 툴툴 대니까, 언니가 물건도 집어던질 정도로 화가 난 거예요. (지나고 나니까) 그런 경험들이, 성격이 다른 자매간의 여행이 재미있게 와 닿는 점이 있었어요. 평소 로드무비에도 관심이 있었고. 가족 얘기도 추가됐고. 

아, 그러면 여행을 다녀온 뒤 바로 시나리오 작업을 한 건가요?

시나리오를 거의 바로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전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아이템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런 아이템도 있었어요. 여행이 살을 붙여준 거죠.

1997년에 <불똥>이라는 단편영화를 가장 먼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영화일을 하게 됐나요? 

<불똥>은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한 포트폴리오 작품이었어요. 1995년에 영화 홍보일을 하게 됐어요. 사실 영화감독은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어요. 대통령처럼, 제겐 일상적인 직업이 아니었어요. 영화홍보를 하다 보니, 영화감독이 재밌는 일이구나 싶은 생각은 있었어요.

그전에 영상에 관심이 있어서 방송이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방송이 더 현실적이긴 했어요. 방송작가와 영화홍보를 하는 아는 언니들이 있었어요. 두 언니들에게 얘기를 했는데, 영화홍보하는 언니한테 먼저 연락이 와서, 영화홍보를 먼저 하게 된 거죠. 처음에 들어가서 복사나 커피 타 주는 일부터 하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았고, 글 쓰는 일이 뭔가 있어 보여서 방송작가도 하게 됐어요. (웃음) 한 6개월 정도. 그런데 일이 싫다기보다 일을 둘러싼 환경이 싫었어요. 어떤 부속품 같은 느낌도 들고 적응도 못하고 허탈한 느낌도 들고.

그래서 다시 영화홍보를 하게 됐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갑갑하지만 영화가 나에겐 더 맞는 일이라고. 심재명 씨(명필름) 같은 기획이나 프로듀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내 자신한테 설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아, 감독이 되기 위해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된 건가요?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려면 이력을 가져야겠다 싶었죠. 3년이 걸렸어요. 삼수한 거죠.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연출부로 일도 하고, 한국영화연구소의 간사 노릇을 하면서 수강생들과 한 푼 두 푼 모아서 공동 연출한 것이 <불똥>이에요. 참 고맙더라고요. 사실 프로듀서는 맞지 않는 게, 그러려면 오지랖도 넓어야 하는데, 제가 인간관계를 잘 못 풀어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도 있고. 영화아카데미에 2번 떨어지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뒤에서 두 번째로 붙었다는...(웃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잖아요, 준비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2006년 11월에 영화진흥위원회의 HD저예산영화 지원에 뽑혀서 5억원을 지원받고 ‘KTB 다양성 영화를 위한 투자조합’펀드 등에서 돈을 받아 7억원 예산으로 시작했어요. 2007년 10월 크랭크인을 해서 2008년 6월 후반작업을 마쳤어요. 촬영은 두 달이 걸렸는데, 상영날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천천히 후반작업을 한 거죠. 10월에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을 했고, 최근 극장에서 개봉한 거죠.

첫 번째 장편영화가 극장에 걸려서 감격했겠어요. ^.^

음, 제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라 감격까지는. 촬영 시작할 때도 여느 날과 같았고, 상영이나개봉 때도 무덤덤했어요. 다만 그런 건 좀 있었어요. (영화아카데미) 졸업단편을 부산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아마 2002년이었죠, 떨어졌어요. 그리고선 살림과 육아로 부산영화제를 가지 못했는데, 작년에 10년 만에 부산영화제에 영화를 들고 가니까, 뿌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한 가지 감동적이었던 건, 첫 상영 때 GV시간이 있었어요. 60~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맨 앞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질문은 아니고 일종의 소회를 말씀하셨어요. 영화 재미있게 잘 봐서 고맙다고, 꼭 손녀 대하듯이.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부산영화제에 오시는 열혈관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넙죽 큰 절이라도 드리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어요.

와, 정말 큰 힘이 됐겠는데요. 그 장면 생각만 해도 제가 다 뿌듯해질 정도에요.

(테이블의 넷북을 가리키며) 여기 인터넷에 있는 평 하나하나나 무대인사 때 관객 한사람 한사람이 무척 소중해요. 보통 머리수로 10만, 20만 얘기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쉽게 상상이 안 되는데, 무대인사를 가면 관객 한명한명이 뭐랄까, 실체감 있게 다가와요. 어제(10일)까지 1만7000명 가량이 왔다는데, 그분들에게도 무척 고마워요.

(영화)평을 봐도 내 의도를 알아주신 분도 있고, 그 이상으로 본 분들도 있더라고요. 전 한 번도 평을 올린 적 없거든요. 이분들은 (프랑수아) 트뤼포가 얘기한 ‘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실천하고 있는 거죠. 첫 번째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 세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것인데, 저는 세 번째를 했지만, 그 분들도 그만큼 영화를 사랑한다는 거죠. 여하튼 영화를 만들고 그것이 감상되고 퍼져나가는 과정을 지금 하나하나 느껴가는 게 신기해요. 특히 영화평은 제가 안 하는 것이라 더. (웃음) 사람들이 참 생기 있게 사는 것 같아요. 

무대인사 같은 곳에서 기억나는 분들이 있다면.

지난 8일 무대 인사를 하면서 관객분들께 OST를 드렸어요. 기억에 남는 분들은 어머니와 딸이 경남 진주에서 올라오셨더라고요. 언니와 동생도 아니고 어머니와 딸이. 이 영화가 그 분들께 어떤 의미가 될까 생각도 해 봤어요. 어쨌든 재미있었다고 하시던데. (웃음)

기존의 가족 구성원을 벗어난 영화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영화들 좋아하세요? 

<가족의 탄생>이나 <안토니아스 라인> 같은 영화들 좋아해요. 다큐인 <쇼킹 패밀리>도 좋고. (가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뭐랄까, 제게는 어린 시절에 기존의 견고한 ‘가족주의’라고 느낄 만한 것이 없었어요. 자식으로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제가 가족에 천착하는 것은 아닌데 애를 낳으면서 가족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게 됐어요. 부모와 아이로 가족 구성원이 이뤄지면 물론 좋지만, 다른 형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이 사회가 그렇잖아요. 만약 4인 가족이라고 치면, 그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해야 하는지. 장난이 아니에요. (웃음) 가족, 가정은 꼭 ‘소대’ 같아요. 이 사회를 위한 소대이자, 관습이나 시스템․인습을 재생산하는 소대. 그런 가족이 사회 전체를 떠받들고 있잖아요.


맞아요.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가족들에게 떠넘기고, 그러면서 가족 이기주의는 강화되고.

전 가족이 연대커뮤니티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들거나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해요. 그게 가족의 본령이라고 생각해요. 인습이나 기존 질서, 노동력을 위한 소대로 지탱되고 있다는 게 사실 짜증나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가족의 본령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엄마-아빠-아이의 전통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어깨를 빌려주는 연대 커뮤니티로서의 본령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물론 부족한 것도 있었겠지만요. (웃음)

혈연 중심으로만 묶인 가족 개념은 확실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보고 ‘결손’이라는 말로 규정해버리고. 뭔가 부족하거나 결핍된 것으로 치부하잖아요.

가족구성원에 대한 개념을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기존의 질서 속의 책임과 의무가 아닌 느슨한 커뮤니티 같은 것. 계운경 감독의 <나의 선택, 가족>이라는 다큐에 보면, 제도의 틀을 넘은 가족들이 나와요.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전통적인 개념이고, 그런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의 형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곱 집이 모여 사는데 아이를 함께 기르고 그래요. 종적인 대가족 말고 횡적인 대가족이 되는.

그러니까 가족 제도가 핵가족주의에 함몰돼 있지 않다면 구성원들도 스스로 경쟁을 내면화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가족 이기주의도 발휘되지 않을 테고. 예전엔 이런 것들이 내 고민으로 들어오진 않았는데, 이 사회에서 가족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돼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아버지가 다른 자매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함께 여행을 갔다가 이름을 새기는데, 성이 다른 것을 그때야 확인하고는 ‘아, 그랬지’하고 새삼 그 다른 성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아 나도, 사회에서 주입한 편견에 물들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가지게 되는.

부계 사회라면 그럴 수밖에 없죠. 이제까지는 형제, 자매, 남매가 성이 같지 않으면 문제가 됐으니까요. 재혼한 사람들의 고통이 그런 거였잖아요. 사소한 것 같지만 상징화된 편견이죠. 진짜 별 것도 아닌데 그런 게 문제되는 것, 편견이 굳어지고 누군가를 달리 보는 것은 잘못된 것 같아요.  

역시 영화 속 ‘반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좀 놀라긴 했어요. 반전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건가요?

가족이라는 것이 공익광고에 나오듯이, 부모와 아이로만 이뤄져야 행복하고 정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명은이도 알게 모르게 강요되는 그런 식의 (사회적) 흐름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거잖아요. 그래서 명은이에게 그런 의미를 넣고 싶었어요. 니가 찾는 그 가족이라는 것이, 같이 살지도 않는 아빠인데도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껍데기 뿐인 아빠를 찾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니 옆에 있는 이모를 찾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조금 또 다른 의미를 추가했다면, 아버지를 부정하는 거죠. 왜 굳이 아버지를 찾아야 하나. 어리석은 여행이었다는 걸, 명은이가 깨달아야 한다는 거죠. 아버지가 가족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가족 내에 생산과 연대감을 만들어주는 것은 대개 어머니나 할머니, 이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리하자면, 2가지 의미가 있죠. 여행이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것. 즉, 허상을 깨는 것이고요. 이른바 ‘정상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족 모양새를 깨는 것. 그게 부족했다면 다 제 탓이죠. (웃음)


명주가 튀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명은이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명주와 명은이가 여행을 함께 갔지만, 명주는 메신저 같은 역할이죠. 회상을 불러들인 것은 이것이 물리적 여행이 아닌 시간적 여행이기 때문이에요. 여행 속에서 회상이 들어오는 것은 중요했어요. 명주도 그런 역할 때문에 따라간 셈이죠.

밀도가 있었으면 반전에 놀라지 않았을 텐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형식적으로나 이야기의 흐름에서 수위조절을 하기 위해서. 그 수준을 만드는 게 어렵긴 했어요.

놀이동산에서 이뤄진 어떤 깨달음이 좀 느닷없긴 했어요.

밀도가 좀 약한데 놀이공원의 상징을 이용하고자 했어요. 놀이공원이라는 곳이 아이들이 노는 장소이고 자연스레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회전하는 놀이기구나 앞선 사람의 뒷모습이 과거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원래 더 들어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너무 설명적이지 않을까 해서 결국 찍지 않았어요.

하긴 너무 감독의 의도나 의중을 듣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관객 나름의 해석할 여지가 있고, 그걸 상상하고 유추하는 것도 영화의 한 부분인데. 그럼으로써 영화도 관객과 함께 최종적으로 완성되고.

영화는 여백 같은 게 있잖아요. GV라는 게 그런 면에선 좋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감독이 관객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것 같고. 원래 그 자리는 영화 못 만든 거 땜빵하는 자리잖아요. (웃음) 요즘 영화 관객들은 지적 호기심도 많고 영화를 보고 물음표도 남겨두더라고요. 영화를 만들 때 너무 변수도 많고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도 많으니까, 하나로 꿰뚫는 논리라는 건 있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신민아씨 연기가 이전과는 달랐어요. 뭐랄까, 남자 주인공들을 보좌하는 그런 역할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색달랐어요.

명주는 메신저고 주인공일 수 없어서 명은이 못하면 죽는 영화인데, 신민아씨가 잘 해줬어요. 공효진씨도 이 영화는 명은이 영화고, 자기는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민아씨도 힘을 받아서 성실하게 임하고 의욕도 무척 강했어요. 종전과는 다른 걸 해야 한다고. 민아씨가 19살 때인가 나온 <마들렌>을 봤었는데, 25세 연기를 곧잘 하더라고요. 일상적인 연기하려고 힘쓰고. 그동안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죠.


캐스팅은 그럼 처음부터 두 사람으로 정해진 상태였나요?

다른 분을 원래 염두에 있었는데, 홀딩 된 상태에서 캐스팅이 지지부진했어요. 그 때, 민아씨가 먼저 연락을 해 왔어요. 시나리오를 준 상태도 아니었고, 먼저 그렇게 연락이 와서 저도 놀랐어요. 그렇게 만났는데 이미지도 좋고 되게 성숙해 보이더라고요.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죠.

원래 효진씨는 나이 때문에 고민을 했어요. 두 주인공이 지금 나이보다 둘 다 다섯 살이 많았는데, 민아씨가 캐스팅 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지금의 극중 나이로 어려진거죠. 효진씨도 자기한테 붙으니까 연기를 아주 잘 하더라고요. 앞으로 더 많은 자신을 발견했으면 해요.

남편께서 김우형 촬영감독이시잖아요. 말하자면, 영화인 가족이신데, 어떠세요?

뭐, 특별할 것도 없는데. (웃음) 처음 애 낳기 전에 서로 영화 할 때는 재미있었어요. 당시 남편은 <바람난 가족>을, 저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을 하면서 서로 영화 이야기하고, 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애를 낳고 나니 그게 나쁘더라고요. 촬영 내내 못 들어가니까 애 키우는데 안 좋은 것 같았어요. 아이를 방목할 수밖에 없는. 그래도 꼭 나쁘진 않았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어린이집 엄마아빠들이 돌봐주시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부분들은 좋은 것 같아요.

또 예전에는 살림을 하다가 영화를 찍고 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어요. 이것저것 지속하면서 살림을 돌봐야 하니까. 서로 이해하기로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래요. 어쨌든 회사 다니듯 진행되는 게 아니고 특정시간에 노동집약적으로 일이 몰리는데 대해 이해해주는 점은 좋아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마지막으로 다음 준비하는 작품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가족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일단 6월까지 써야 해요. 괜찮게 나오면 (영화사와) 계약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영화사 대표께서 작년 가을에 영화를 보고 좋게 생각하시긴 했는데, 두 번째 작품을 해야 안정될 것 같아요. 지금은 전업주부나 다름없어요. 직업으로 안정됐다고 할 수 없고. 그저 영화 하나 찍은 주부죠. 이 생활을 지속하려면 직업으로서 말할 수 있어야죠. (웃음)
 

[예스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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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늙어간다는 느낌. 에단 호크가 그렇다.
<죽은 시인들의 사회>가 그랬고, (10대)
<비포 선라이즈>가 그러했으며, (20대)
<비포 선셋>이 또한 그랬다. (30대)

그리고, 얼마 전, 보았던 <뉴욕, 아이러브유>에서 그는,
제시(<비포...>의 남자 주인공)가 40대가 되면 저러할 것 같다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제시를 기억하는 이라면,
<뉴욕, 아이러브유>를 보면 참 반가울 거다.


무엇보다, 오늘(10월22일)은,
한국에서 비포 선셋이 개봉한 지 5주년 되는 날.

사랑할 때, 당신과 꼭 함께 보고 싶은 이 영화(들).
함께 보실래요? ^.^*
그리하여, 난 제시, 당신은 셀린느.

아울러,로맨스.
이 말만 들어도 나처럼 가슴 설렐 당신에게 권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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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나잇 스탠드 그리고 하루(들)


2004년, 한 영화가 개봉했소. 그 영화의 개봉이 특별했던 건, 기다림 때문이었다오. 그것도 무려 9년이라는 시간. 한 사람을 1년도 기다릴 자신조차 없던 녀석이 9년이라니! 글쎄, 나도 웃긴다오. 고작 2시간도 되지 않을 시간인데, 그들의 특별한 하룻밤에 푹 빠져 9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으니. 모기가 피를 빨아먹기 위해 한 사람만을 기다린 것과 같이, 정말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소. 더구나 그 기다림은 예정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오. 후속편? 언감생심!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소. 혹시나 했던 것은 사실이라 해도 말이오. 그런데 나는 어떤 주술에 빠져 그저 막연하기 그지 없는 그 기다림을 하고 말았다오. 오호, 통재라. 어찌 하오리까.


“9번 트랙, 6개월 후 6시”

이 말만 없었어도 나는 그들을 궁금해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소. 미쳤지. 이 말이 뭐라고.-.-;; 그러고 보니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눴던 1995년, 나 역시 그들처럼 20대였소. 군대라는 철창에 갇혀 있던 그때. 휴가를 나와 우연히 그들의 이야길 접했고 그 대단하지도 않은 이야기에 어쩌다 마주친 ‘매혹’. 한마디로 당한거지. ‘원나잇 스탠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아~ 나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 기차를 타야겠다. 한 커플이 싸우고 있는 기찻칸을 찾아 책을 읽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누군가와, 같이 내려야겠구나!


그리곤 혼자 두둥~ 상상의 나래를 폈소. 휴지도 없이 화장실에 들어간 그들의 뒷일을 봐준 것이오. -.-;; 내 생애 가장 후일담이 궁금했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그렇게 6개월 뒤를 기약했지만, 그 뒷일은 그 로맨스에 도취된 각자의 몫이었지요. 그러다 불쑥 9년이 지난 뒤 30대가 된 그들이 돌아오다니. 이번엔 <비포 선셋>! 해 뜰 때까지 체력을 자랑하며 빛나게 떠오르던 수다남녀는 이젠 해 질 때까지만 쌩쌩한, 지는 해가 된 거유?

그런데 나도 그들처럼 나이를 먹었더랬소. 나도 당신들처럼 30대라오. 하하하^^;; ‘6개월 후’란 약속은 증발하고 9년 만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래 어떻소? 그런데 당신들 참 많이 늙었구료. 그동안 참 궁금했는데, 그리하여 후속편이 나온단 얘기를 듣자마자, 정식 개봉 전 선보인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보고 말았다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거든. 후후. 

재미있는 건 말이오. 당신들의 행적을 따라 내 마음이 그대로 움직였다는 거요. 나이를 먹고 세월을 머금었는데도 나는 당신들이 여전히 좋은가보우.

그들의 후일담, <비포 선셋>을 만나자, 나는,
비엔나가 아닌 파리를 가고 싶어졌고,
기차가 아닌 유람선을 타고 싶어졌고,
음악 청취실이 아닌 사랑하는 누군가의 집에 가기 위한 계단을 오르고 싶어졌고.
그리고 왈츠풍의 노래가 너무도 듣고 싶어졌다오.

다음엔 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거요? 그땐 아마 우리 모두 40대? 푸하하. 끔찍하오. 세월이. ^^;; 그런데 그것도 재미있구료. 해 뜨기 전과는 또 다르지만 부채살처럼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한 채, 선셋의 풍경을 닫지 않았소. 다음에는 ‘애프터 선셋’? 혹은 ‘비포 문라이즈’? 대체 비포 비포만 읊어댄 당신들 다음엔 뭐 할거유? 애들은 재웠수? 이 담엔 (나도 40대가 될 땐) 40세 미만 관람불가로 어떻수, 콜?

수다남녀의 비엔나 여정에 빠진 이유

보고 또 보고 그들을 보는 재미란 쏠쏠하오. 특히나 가을이 짱이겠지만,  어느 계절이라도 상관은 없겠소. 가슴 저릿한 로맨스를 하거나 엿보는 것이 꼭 특정 계절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듯 말이오. 그들의 이야기는, 로맨스를 꿈꾸거나 로맨스를 하고 싶은 우리에게 정말 좋은 교재라오. 사랑에 목마르거나 통째로 사랑열매를 갈아 마시고픈 우리에겐, 그들은 하나의 축복이라오. 음하하. 

여기서, 그들이 처음 만난 얘기 잠깐.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채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 그건 마법에 빠지는 순간이라오. 사랑했던, 아니 사랑에 풍덩 빠진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호감, 사랑이 전개되는 과정을. 단언하지만 그건 ‘마법’이라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마법은 ‘사랑’이란 형태로 변신하지. ‘우연’의 이름으로 기워진 ‘운명’과 ‘필연’의 사진첩 같은 거.


아 그런데,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표정이 보통이 아닌 거라. 일체의 영화적 장치나 우연의 남발 따위는 없소. 쫄깃쫄깃하게 밀착한 듯한 현실감. 더불어 여느 사랑이 그러하듯, 계획되지 않은 생의 어느 한 순간에 깜짝 다가온 사랑의 마법. 그들은 어느덧 마법이 아닌, 사랑의 포로가 돼 있더라오. 나는 그런 그들의 로맨스에 빠진 포로. ^.^

‘이 순간 (함께 내리자고) 말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후회할지 몰라’라고 생각했을 제시(에단 호크)의 ‘타임머신론’이 비엔나에서의 동행을 촉발하고, ‘비엔나는 사랑을 싣고’ 익어간다오. 나는 이전엔 ‘하루’가 짧다고만 생각했지만, 아뿔싸 하루는 사실 충분한 시간이었소. 삶과 죽음, 인간, 남성과 여성, 가족, 미래, 사랑과 실연 등 그 수다는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더라오. 그것이 밍숭맹숭할 수도 있었던 수다남녀의 여정에 빠져든 이유요. 거기엔 또한 사랑이, 로맨스가 있었으니까. 사랑에 대한 방정식 풀이! 

서로를 알고 싶을 때 ‘진실게임’을 통해 솔직하게 자신의 첫 번째 성적 감정을 내뱉거나, ‘전화게임’으로 현재 자신의 심정을 전달하는 것도 괜찮다오. 무엇보다 ‘케이트 블룸’의 ‘Come here’를 들을 수 있는 음반가게 청취실의 풍경이 가장 짜릿하더이다. 몰래 상대를 훔쳐보다가 상대방 시선이 느껴지면 아닌 척 다른 곳을 쳐다보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 애를 쓰는 표정과 분위기에, 내 가슴은 그저 콩닥콩닥. 무지무지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아웅~. 결국 셀린느는 나중에 “내가 다른 곳을 볼 때 날 몰래 훔쳐보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라며 고백까지 하구. (여기서 Tip. 몰래 훔쳐 볼 때는 상대방이 알게 하라! ^.^)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원나잇스탠드’

고백하자면, 뭐니뭐니해도 그들의 ‘원나잇 스탠드’가 가장 짜릿했소이다. 큭큭. 애당초 ‘내일’이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그 ‘하룻밤’이 모든 것이었나보우. 근데 그 제약이 로맨스를 더욱 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소. 서로의 내면에 다가갈 시간이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그들에게 미국과 프랑스라는 물리적 거리감까지. 에구구 사랑이 어쩌면 이렇게 멀고도 험하오. 하지만 그들은 지금-여기,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한다오. 역시, 그들은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오.

“내일이 지나고 나면 우린 아마 다시는 못 만나게 되겠지?”라고 묻는 셀린느의 질문부터, 그들은 ‘내일’을 생각하오. 흔들리면서도 그들은 말을 잇지. “오늘밤뿐이라고 해도 그리 나쁘진 않잖아?” “왜 사람들은 관계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오늘밤뿐이라고 생각해. 망상도 추측도 없겠네” “그냥 오늘밤을 멋지게 만드는 거야”


서로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아오. 그렇듯 사랑은,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은’ 시간을 함께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소!

그래서 “키스 받고 싶어”라고 제시에게 속삭이던 셀린느의 표정! 나는 잊지 못하오. 그들이 그 순간 얼마나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는지, 그 감정이 찌리릿. 그리곤 깊은 밤을 함께 날았겠지? 직접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게 자연스럽잖소~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만 <비포 선셋>은 아주 쉽게 그 날의 순간을 풀어놓더오. “그날 밤 함께 잔 기억이 없어. 난 콘돔 없이 안 하거든”이라며 딱 잡아떼던 셀린느는 제시의 추궁(?)에 “우리 그날 밤 두 번이나 했어”라고 그 날의 짜릿한 원나잇스탠드에 대해 발설하기도 한다오. 흐흐. ^______^

그들은 인간관계의 한계를 아는 것 같소. 대개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영원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생각하지만, 어디 모든 경우가 그런가. 누군가를 만나고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그 뒤 한두번 만나고 전화하다가 흐지부지되거나, 아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잖오.

그렇다면 딱 그만큼의 관계이고 인연 또한 소중하지 않을까! 나는 제시와 셀린느를 보면서 깨달았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소. 어떤 관계든, 헤어진 연인이든,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기. “딱 그만큼의 인연이고 관계”인 셈이라오. 그리하여, 그 순간에 충실하고 좀더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해! 인연이 아니란 식으로 관계가 지속되지 못했음을 단정 짓는 건, 그저 자기 위안이 아닐까 하오. 그 인연을 맺었던 사람에겐 어쩌면, 예의가 아닌.   

단 하룻밤, ‘원나잇 스탠드’라고 규정짓더라도 그들은 그 시간, 자신들의 감정에 분명 충실했음이 분명하오. 누구에게나 휘발되고 말 ‘순간’이라도 추억과 낭만이 곁들여질 수 있겠지. 평생을 잊지 못하고 간직할 어느 감정을 품을 수도 있겠지. 그렇듯, 낭만에는 ‘순간성’이 존재하오. 낭만의 (끝나지 않은) 끝에 허무와 슬픔이 존재하더라도, 어쩌면 다시 만나 낭만을 다시 살릴지 모른다는 기대 혹은 희망이 있기에 사랑은 끝나지 않는 법. (어째, 그럴 듯한 궤변(!) 같소?ㅎ)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은 법이오. “오늘밤뿐이라고 생각하자”던 그들이 다시 만날 약속을 힘겹게 하는 걸 보아하니. “내 맘과 다를까봐 두려웠어”라며 다시 만나잔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하던 그들은 결국 5년에서 1년, 그리고 6개월. 어젯밤부터, 즉 6월16일부터 6개월 후 저녁 6시, 12월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오. 어땠소? 이게 또한 사람의 마음 아니겠소. 어젯밤과 또 다른 아침의 마음. 아침의 주림을 저녁의 다담상으로 잊는, 우리네 사람살이.


비엔나의 연인에서 파리의 연인으로

그들이 다시 만날까,하는 건 그저 관객의 마음에 맡긴 것으로 생각했다오. 그런데 감독(리처드 링클레이터)와 두 배우(에단 호크, 줄리 델피)도 궁금했나보우.

전화나 편지는 우울하다며 다른 어떤 안전장치도 하지 않은 그들은 9년 전 ‘later’이란 말로 서로를 보냈다고 하오. 사랑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주문. 낭만의 끝에 약속을 담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끝이 아닌) 헤어짐. “너와 있어서 행복해. 넌 모를 거야. 왜 지금이 내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지. 멋진 아침이야. 이런 아침이 또 올까”라며 사랑에 달뜬 사람들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면 그게 제대로 된 인간이우. 커흑~ ‘최악의 이별은 추억할 만한 게 전혀 없다는 것’인데 그들에겐 추억이 너무너무 많지 않던가 말이오.

사실, 6개월의 약속은 어긋났다오. 낭만의 깨어짐이지. <비포 선셋>에선 그렇게 설명된다오. 9년 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이리 기억했소. 기차역에서 헤어진 제시는 버스를 타고 피곤한 듯 머리를 뉘이고, 셀린느는 기차에서 창밖을 응시하며 미소를 짓다가 눈을 감는. 그들의 로맨스가 흩뿌려진 비엔나 곳곳의 풍경들이, 그들 없이 덩그러니 남은 풍경들이 하나둘 스쳐지나가면서 이야기는 접혔고.

근데 <비포 선셋>을 다시 만나니, “낭만은 죽지 않는다, 다만 부활할 뿐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이 났소. 다시 따따부따 수다를 풀기 시작하는 수다 로맨스의 재현이라. 근데 꽃미남에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한편으로 개구졌던 제시는 움푹 패인 얼굴에 주름이라는 훈장을 차고 훌쩍 커버린 남성의 향기를 품고 있었고, 아침햇살 같은 상큼한 매력의 셀린느도 역시나 같은 훈장에 농익을 대로 농익은 저녁노을 같은 여인이 돼 있었소. 그러나 그게 나쁜 건 아니었소. 나 역시 그들처럼 세월을 머금고 30대가 돼 있었거든. 좋잖아~ 제대로 나이를 머금는다는 것. 앞선 해와는 다른 나, 내가 겪은 세월의 흔적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이 낭만은 항상 시간의 한계에 봉착하는 속성을 지니오. 전과 달리 해 지기 전까지의 시간. 다시 헤어짐을 전제로 옛 사랑을 확인하는 작업.

그들은 그날처럼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더오. “나 좀 변했어?”라고 묻는 셀린느에게 제시는 “벗은 걸 봐야 알겠는데~”라고, 세월만큼 농 익은 그들의 수다를 풀어놓고. 물론 20대의 매혹적인 어록과는 다른 30대에 맞는 대화록을 재구성하오. 허투루 먹은 나이가 아닌, 현명하게 세월을 담금질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들의 수다에 매혹 당했다오. 같이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들의 수다가 귀에 쏙쏙 꽂히고 그 느낌과 감정을 알 것 같았소. 낯선 공간과 하룻밤이라는 제약이 준 강렬하고 절실한 감정과는 또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의 흐름. 나는 무엇보다 해 뜨기 전에 나타나지 않은 그들의 힘겨움이 가슴에 박히더군.

지리멸렬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제시는 “누가 만지기만 해도 내 가슴은 무너져”라며 공허감을 토로하고 셀린느는 “그날 밤 내 모든 걸 쏟아 부어서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밤을 보냈는데, 다른 로맨스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라는 로맨스의 후유증을 내뱉지. 에휴~ 사랑아, 사랑아, 길을 묻고 싶다.


그러나! 30대라고 낭만이 없을쏘냐. 서글프고 지리멸렬한 삶에 끼어든 로맨스의 마술. 낭만은 그때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수다는 계속 돼야 하는 법이오. 우하하. 


따져보자면, 두 사람, 로맨스에 대한 생각이 서로 바뀌긴 했소.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건지, 그렇게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던 셀린느는 사랑에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현실적인 여인이 됐다오.

반면 같이 오래 산 부부들의 권태감을 얘기하던 20대의 제시는 그래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며 로맨스를 옹호하는 30대가 됐다오. 허허. 재미있더군. 그들은 한결같은 순수와 로맨스로 살아가는 20대가 더 이상 아닌 로맨스에 대한 환상과 허상의 교차로에서 자신들의 현실과 위치를 인식하고 있는. 세상을 근거 없는 낙관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택하는 냉소까지.

로맨스, 당신 생의 로맨스에 축복을..

중요한 건, 로맨스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었소. 해 뜨기 전의 그 잊지 못할 낭만은, 해 지기 전이라고 변하지 않았고 다른 모습과 형태의 낭만으로 나타나는 마술. 나는 그 수다를 다시 만나면서 행복했다오. 당신들도 알잖소. 9년 전 그들이 나누었던 그 하룻밤 로맨스가 얼마나 짜릿했는지. 사랑했던 기억은 세월이 흐르고,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고, 옛 모습과 달라지더라도 잊혀 지지 않는 법인가보오. 그리고 다시 열린 결말을 던지는 그들의 잔인함(?).



로맨스. 이 말만 들어도 나처럼 가슴 설렐 당신에게 권하오. 내게 이 영화(들)은 사랑 혹은 로맨스, 관계와 인연, 감정의 교류, 사람살이를 알려준 영화였다오. 내 가슴에, 심장에 박힌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도 이들을 만나보시오. 다시 이들을 만나도 좋고, 이들과 비슷한 세월을 머금지 않아도 좋소. 혹시나 제시와 셀린느를 보면서 유럽 배낭여행의 낭만을 꿈꾸었거나 하다못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탈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기라도 했다면.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새로운 관계를 같은 비일상의 판타지도 빙고~


뭐 꼭 그런 게 아니라, 잊지 못할 옛사랑의 추억이 있어도 좋겠소. 당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있소? 아님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 없소?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선택을 달리했다면 달라졌을 법한 잃어버린 기회. 물론 그런 가정은 무쓸모이지만, 현재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를 나눴던 사랑을 우연히 만난다면, 추억과 그리움으로 쌓였던 그 날을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당신은 어떡하겠소? (질문이 좀 가혹하더라도 용서하시오! ㅎㅎ) 


아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건네고,
다소 길었던 내 인생의 어떤 영화(들)에 대한 허접한 감상을 접겠소.

<비포 선라이즈>를 꼭 봐야할 열사람!! (오래 전, PC통신 천리안에 나온 글)  
1. 유럽여행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싶은 사람.

2. 헌팅 또는 헌팅 당하려고 하는 족족 실패하는 사람.
3. 유럽여행 계획을 짜면서 비엔나의 갈만한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
4.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과의 가슴 찡한 데이트코스 일정을 고민하는 사람.
5. 친구인지 애인인지 헷갈리는 상대방에게 유치하지 않게 속마음을 터놓고자 하는 사람.
6. 오래된 연인과의 지루한 만남에 지겨움을 느끼며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에 오직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
7. 정확한 표준영어회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8. 인터넷이나 영어 채팅방에 들어가서 감히 영어로 이성친구를 꼬시려고 하는 사람.
9.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을 위해 미리 인터넷 사용법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줄 사람.
10. 비포 선라이즈를 아직 보지 않은 모든 사람.


이건 내 마음대로 정한, <비포 선셋>을 꼬옥 봐야 할 열 사람! 

1. 사랑했던 사람과의 지키지 못한 약속이나 바람 맞은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
2. 파리의 골목골목과 구석을 돌아다니며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픈 사람.
3. 유람선을 타고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픈 사람.
4. 잊지 못할 옛 사랑을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고픈 사람.
5. '이젠 더 이상 내게 사랑을 없어'라며 사랑에 회의적인 사람.
6. 사랑에 거듭 실패하면서도 '그래도 사랑은 있어'라며 언젠가 다가올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
7. 하룻밤이라도 평생을 잊지 못할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8. 언젠가 그 사랑을 책으로 엮어내고 싶은 사람.
9.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
10.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그 영화를 잊지 못하는 모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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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 시기에 왜 철 지난 <박쥐>를 꺼내는 거지?
어쨌거나, 난 <박쥐>가 참, 좋았다.
거꾸로 읽으면, 짜증 지대로지만 ㅋ

박찬욱 감독을 눈 앞에서 처음 본 것도 좋았고,
몇 해 전 필름2.0 기사를 위해 술 한 잔 나눴던 김영진 평론가도 반가웠고.

사실, 무엇보다 김옥빈.
아, 나는 김옥빈 앞에서 죽고 싶었다. 하악하악.
"우리 둘 다 지옥 가요"라는 말을 들어도 좋았다.

왜냐고?
저 여자가 시키기만 하면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차라리차라리, 그 전에 내가 죽어버리는 거지.ㅠ.ㅠ

아마도,
"나랑 같이 가요.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가 아닌,
"나 당신이랑 같이 갈래요. 당신이라는 지옥에 빠질게요..."였다지...

"난, 부끄럼 타는 사람 아니에요"


지난 5월의 이야기, 그러니까 두 계절 전의 오래된 이야기.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돌아왔다. 앞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이후 3년 만이다. 그의 이름에 걸맞게 관객도 북적거린다. 칸 영화제 초청도 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논쟁도 한창이다. 영화 내용을 둘러싼 모호성부터 불균질한 텍스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영화는 강렬하고 낯설다. 우선은 ‘뱀파이어’라는 소재 때문이다. 뱀파이어라니. 한국영화에서는 생소한 이름. 최근 아름다운 뱀파이어를 다룬 해외영화들, <렛미인>과 <트와일라잇>과 완전 딴판이다. 송강호가 분한 뱀파이어라서, 더구나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니, 더더욱 낯설다.


그럼에도, 주인공 (현)상현(송강호)은 우리가 알던 뱀파이어의 모습이 아니다. 창백한 얼굴에 송곳니를 드러내고 인간(의 피)을 먹이로 설정하는. 자신을 뱀파이어라고 규정하지만, 종종 드러나는 상현의 인간적 면모는 뱀파이어로서의 정체성도 의심케도 한다. 거의 죽은 피를 빨아먹는 그는 뱀파이어계의 이단아 내지는 비정규직 같다.


또 뱀파이어가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공포에 떠는 인물도 없다. 기껏 비밀을 공유하는 태주(김옥빈)도 “뱀파이어라는 거 생각보다 귀엽다”고 깔깔대거나, 자신도 뱀파이어가 된다. 눈 먼 노신부(박인환)는 외려 뱀파이어가 된 상현에게 자신의 피를 빨아달라고 애원한다.


물론 관습적인 뱀파이어의 이미지들이 깡그리 지워진 건 아니다. 햇빛을 봐선 안 되고, 사뿐히 날아다니거나 상처가 바로 치유되는 초능력도 생긴다. 뱀파이어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어떻게든 드러나는 낯섦은 취향에 따라 중요한 관람 포인트.

그런 한편으로 이 뱀파이어(를 자칭하는) 영화는 우리가 접한 박찬욱 세계의 일부임을 감지하도록 만든다. 죄의식이 있고, 구원의 문제가 다뤄지며, 욕망과 딜레마가 녹아있는 한편 블랙코미디가 포함돼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그는 종교적 구원의 허구성도 꼬집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대변되는 근본주의를 능멸한 달까. 흡혈하는 뱀파이어가 사제복을 계속 입고 있는 것부터, 상현은 친구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긴다. 나중에는 아예 “신부는 일상적인 직업일 뿐”이라고 고해성사(!)를 한다. 상현과 태주의 첫 섹스는 부활절의 종교 요양원에서 이뤄진다. 절제심과 도덕도 치명적인 욕망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무엇보다, 눈 먼 노신부에게도 그토록 갈구하던 구원은 없다. 눈이 멀어도 종교의 힘으로 극복했을 것이라는 어떤 편견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일침. 그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단다.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 바다를 볼 수 있다면, ‘뱀파이어지만 괜찮아’.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떻게 되든, 관성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들먹이는 어떤 종교인들의 맹목성도 떠오른다. 모든 고통, 아픔 그리고 슬픔은 대체 ‘인간’ 때문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없는 뱀파이어도 그렇지만, 공간이나 미장센이 주는 압도적인 강렬함도 상당하다. 욕망과 치정이 함께하는 ‘행복한복집’의 작명은, 그저 웃자고 하는 아이러니다. 일본식 적산가옥에서 한복이 팔리고, 사람들은 2층에서 마작(중국)을 하고 보드카(러시아)를 마신다. 이난영의 오래된 노래와 바흐의 칸타타가 어우러진다. 온통 흰색으로 도배질 된 공간에서 두 뱀파이어의 핏빛 향연은 또 어떤가.




영화는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서 영감(inspired by)을 받았다. 대부분 등장인물의 이름도 이 소설에게서 빌렸다. 다만 자기모순에 빠진 주인공을 상징하듯, 앞으로 부르나 뒤로 부르나 똑같은 현상현(송강호)의 작명을 빼고는. 영화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정서경, 최인 작가가 쓴 동명의 『박쥐』소설도 잉태했다.


여하튼 <박쥐>는 평도 갈리고 관객들도 갈렸다. 그만큼 각자의 품안에서 해석하고 읽을 여지가 많다는 것 아니겠나. 그 와중에 제목은 왜 ‘박쥐’인가, 하는 궁금증에 대해, 나는 내 식대로 해석했다. 거꾸로 읽는 것. 현실에 없는(것으로 믿는(!)) 뱀파이어지만, 우리는 지금-여기에 우리의 피를 빨아대는 뱀파이어가 있음을 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경제) 구원자 혹은 구도자 마케팅(?)을 했던 그 누군가. 그도 ‘집사’라는 종교적 타이틀도 갖고 있다. 상현이 택한 결말마냥, 그도 자신이 택한 운명이 아닐지라도 염치가 있다면 자신이 행한 악행에 대해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내 멋대로의 해석.



지난 10일 서울 압구정의 한 극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보는 <박쥐> 스페셜상영회가 열렸다. 영화 <박쥐>를 보고 관객들은 질문을 했고, 박찬욱 감독은 답했다. 박 감독은 연출 의도를 밝히기도 했고, 엔딩 장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도 알려줬다.


다음은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이뤄진 박찬욱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 영화에서 상현과 태주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런데 의아한 게 상현은 맹인 신부를 죽이고서는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런가.


“별다른 이유는 없다. 상현도 노신부의 죽음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겠지만, 묘사할 시간이 일단 없었다. 태주와 상현은 죄의식을 공유하는 사이라 많이 묘사될 필요도 있었다. 노신부의 경우는, (상현에게) 집요하게 피 요구를 했고 상현 입장에서는 그 살인에 대해 죄의식을 덜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인물을 만들 때, 상현의 성격을 그렇게 설정했다.”


- 상현이 태주의 피를 먹으면서 라 여사의 시선과 마주치면서 태주를 살린다. 죄의식 때문에 살린 것인가.



“(이유를) 딱 하나만 골라 말하긴 어렵다. 상현 입장에서는, 어떤 누구든 시선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영화관객이랄 수도 있고. 내가 뭐하고 있지, 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상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용도는 아니다. 몰두하는 행동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다. 그래서 흡혈행위를 정지하고 피를 주는 단계로 넘어간다.


사실 그 장면은 10년 전 제일 먼저 만들어놓은 장면이다. 태주를 살해하고 흡혈을 동물처럼 탐하다가 자신의 행동을 갑자기 깨달으면서 순환하는 것. 또 하나의 뱀파이어를 만들고 하나가 되는 이 시퀀스 하나를 갖고 (<박쥐>를) 시작했다.”


- 영화를 2번째 봤다. 『테레즈 라캥』도 읽었는데, 소설과 <박쥐>의 몇몇 등장인물 이름이 연결되는 것 같다. 강우는 카미유, 태주는 테레즈, 라 여사는 라캥과 연결되는 것 같다.


“맞다. 그들은 『테레즈 라캥』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태주만 연결해서 (이름을) 지었는데, 그럴 듯한 게 마음에 들어서 나머지 인물들도 그렇게 했다. 다만 상현만 그렇지 않다. 상현만 (소설과) 다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현상현’이라고 거꾸로 해도 똑같은 이름을 만들었다.”


- 상현이 마지막에 그런 결정을 할 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했나.


“그건 관객들 생각에 달려있는 건데, 나도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어떤 장면의 동기나 의도와 같은 것을 (감독이) 정해주면 영화가 협소해진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다양한 인상이나 견해가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가장 큰 재산이다. 영화를 만들고 돌아봤을 때 남는 건 그것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가급적 자제하고 오디오 코멘터리를 하고 싶지 않다.


다시 돌아가서,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 정체성이 바뀌고 어떤 존재로 규정되는 것도 삶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왜 주어졌는지 파악되지 않은 채로 남겨둔 거고. 상현의 경우처럼 그렇게 정해져버렸을 때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김영진 평론가 “방금 말한 그런 부분이 (영화에 대한) 불만이나 비난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모르면서 정의하기를 좋아한다. 현대 영화는 그런 부분에 대해 저항을 많이 하고 틈이나 여백을 많이 열어둔다. 그런 여백이나 틈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 그게 매력이 아닌가 싶다.”)


- 엔딩에서 피고래가 나오는 장면은 어떻게 구상했나.


“마지막 촬영을 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 변화였다. 원래 각본상에는 훨씬 복잡한 이미지로 가득 찬 장면이었다. 상현의 환상 속에서 바다에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많이 등장했다.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는. 날개 달린 거대한 지네들 수 만 마리가 하늘을 덮고 있고, 거대하고 다리가 긴 진드기들이 바다 위를 걸어 다니는 환상적이고 낯선 것이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런 생명체들이 오가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비극적 장면에서 꼭 이렇게 해야겠냐고. (웃음)


나도 늘 관객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만들어오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순진한 신부가 죽음 이후의 있을 곳에 대한 환영을 낯선 이미지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관객의 비극적 감정을 날려버릴 것 같아서 낭만적으로 암수고래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누듯이 유영하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유영하는 곳이 피바다고, 그것만으로도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도 괜찮고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장면으로 넣었다.”



- 이건 사실 하늘에 물어봐야할 질문이다. 자학기도를 하는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것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신도 선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만 선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상현의 선택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를 처벌하고자 하는 자학기도의 내용이 그런 해석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현은 사실 보기보다 강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시놉시스에서는 더 강했다. 순교할 기회만 찾고 있던 사람이었다.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상현을 통해 스스로 원하지 않는 운명이라도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스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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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키스...


그러니까, 스트리트 키스.
주변의 다른 자기장 따위는 개무시,
우리들이 전부였던, 즉 사랑이 모든 것이었던 그때.
 
백만 년이 흘렀다.
어렵게 얘기할 것도 없이,
그저 서로의 끌림만으로도 스트리트 키스가 가능했던 그때로부터.

문득, 저들의 키스를 보자니,
다시 스트리트 키스가 하고 싶어졌다.

아, 된장, 아직 가을이로군.
 노떼가 가을야구 초입서 증발해 가을이 삭제된 줄 알았더니
이게 다 오늘, 타루 팬미팅서 뜬금없이 '사랑의 찬가'를 들은 탓이다.

지난 11일 46주기를 맞았던 에디트 피아프의 그 노래.
나는 과거에 이렇게도 쓰고 있었다.

최정원이 에디트 피아프를 맡은 연극 <피아프>.
다음달 5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진단다.
아,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사랑은 노래를 하게 만드는 힘이다.
나에게 노래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사랑이 없는 노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에디트 피아프, 죽기 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런 키스,
다시 봐도, 므흣하다.
나 다시 짐승이 되어 스트리트 키스를 하는 날,
인증샷을 올려주마. 크하하핫.
내 짐승 키스를 받아라~~
(근데, 사진을 어떻게 찍겠다는 거지? 응? ^^;;;)


얼씨구~ 나는 왜!
본문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이 기사를 붙이게 되는 거지?
  "국가가 잘 되면 행복해진다? 더 이상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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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석. 누군가에겐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겠는데, 배우다.
영화배우이기도 하고, 연극배우이기도 한. TV에도 나온 바 있는.

뜬금없이 이 이름을 꺼낸 건, 그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가 개봉해서다.
영화의 제목하야, <부산>


이 쉐이,
그걸 빌미로 지 고향 얘길 꺼낼라카나,
아니면  못 가서 한이 맺힐라카는 PIFF를 꺼낼라카나,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이고. 고마 고창석.

<부산>에서 유승호, 김영호와 삼각 트라이앵글로 주연을 맡은 배우, 고창석 아저씨. 
사실, 나랑 나이 차는 별로 나진 않는다. ^^;;  

지난해 연말 무렵, 시네시티 부근의 커피집에서 만났다.
<영화는 영화다>로 막 대중과 근접조우하면서, 이른바 떴다.
봉 감독이란 애칭으로 사랑을 받던 시절, 
오랜 연극배우 생활 끝에 늦둥이 영화배우로 주목을 받았고,
보폭을 넓히기 시작할 찰나였다.
겁내 무섭게 생겼지 싶어도, 앞에서 얘기 나누이 꼭 정겨운 동네아저씨 같드마.


그를 만난 전후로,
그는 꽤 많은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인사동 스캔들> <이태원 살인사건>,  
그리고 TV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드림> 까지.

이번에는 그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이다.
인터뷰 할 때, 부산을 로케이션으로 하는 작품에도 출연할지 모른다더니,
과연 <친구, 우리들의 전설>와 <부산>에 출연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볼 때는 브라운관 속인데도 어찌나 반갑던지, 헐~

거의 9개월 이상 묵은 기사지만,
<부산> 개봉을 맞아, 그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고픈 생각에 꺼낸다.
뭐, <부산>의 영화평은 그닥 좋은기 아이다만,
고마, 부산이라니까 함 가줄라꼬.
내 이번에 PIFF때 몬가서 슬픈, 부산이 우째 나왔는가, 함 봐야게따 싶어가꼬.

아래, 인터뷰의 흔적은 그와의 만남을 토대로 재구성한 기다.

*********************************



내 이름은 봉 감독, 아니 고창석.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레디~액쑌!”

사실 지금까지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20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업으로 생각했던 것은, ‘국악’이었거든. 1989년 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안 하고 발 디디고 마음을 둔 곳이 탈춤 동아리였어. 국악이나 타악, 재미있더라. 남원에 가서 풍물도 배우고, 거리공연도 하고, 작품도 많이 만들었어. 그냥 그렇게 시작한 것이고, 그땐 그게 취미가 아니고 업이었어. 그러니까 특별히 연극을 시작하겠다고 한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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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 번꼴로 골다방을 찾아주는 고마운 커플이 있지.
물론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편애하는 쥔장의 취향에 딱 맞는 선남선녀야.^^;


이 커플, 정말이지, 무척 닮았어.
처음 봤을 땐, 남매가 아닐까, 생각했다규.
많은 사람들 역시 그런 오해 같은 착각을 할 정도라니까 뭐~
그 닮은 꼴만으로도 이 커플, 분명 '인연'이라는 생각, 절로 들었어.
살아가면서 닮아간다는데, 그 전부터 이리 닮았으니, 어찌 인연이 아니리오~호.

그런 커플이지만,
쉽게 이어진 그런 인연, 아니더라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궁,
그 이야길 듣고선, 음... 뭐랄까, 나는 응원군이 됐어. 으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인연이 신기루처럼 휘발되거나 고리가 끊어지지 않길, 강력히 바라는.

모든 걸 풀어놓을 순 없어 요약하자면, 
남자는 결혼을 했다가 이른바 돌아왔으며,
한때 탕아처럼 방황도 했으나 이 여자를 만나 훅~ 달라졌어.
그 자신도 사람이 이럴 수도 있나, 싶게 놀라고 있다니까, 역시나 사랑은, 흐흐...

여자는 그런 남자의 아픔과 방황을 알고, 삼자가 보기엔 충분히 포용하고 있구.  
그러니까, 세속의 기준으로 이혼을 경험한 남자와 결혼을 아직 않은 여자의 만남.

근데 알잖아! 세속은 그런 관계와 인연을 해맑은 시선으로 봐주지 않지.
아직 취향이 비좁은데다 오지라퍼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야.
비슷한 세대에서도 백태클을 거는 게 부지기수인데, 
부모 세대로 거슬러 오르면야 대놓고 후려치기지. 

맘 같아서야 태클 거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지.
아따, 뭐 그리 복잡하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났고 사랑하잖아! 

흠, 내는 부모가 아니래서 모른다꼬? 
니 형제자매 혹은 절친이 그랬다면 가만 있을거냐고?
된장, 그런 거 갖고 태클 걸어야 한다면 부모형제자매절친 안 하고 말란다. 
무가당두유 카페라떼를 좋아하건, 크림 팍팍 화이트 초콜릿모카를 좋아하건,
내가 사랑하는 걸 사랑하고 싶은데, 왜 그리 쑤근쑤근 거리면서 비좁게 구냐곳!

아, 적당한 비유는 아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핵심은, 그들이 주변으로부터 덜 고통받고 타자화되지 않았음 하는 바람.
사랑의 결대로 그 인연이 이어져 나가면서 그들의 바람을 하나씩 이루는 것.

그것이 제3자인 이 골다방 레지가, 
비록 그 사랑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이나 눈빛을 보면서 가진 바람.
사실 말로 이리 씨부려봤자, 별 소용 있는 게재는 아냐.
그 사랑 앞에서 그 기운과 아우라를 목격한다면, 아마 당신도 단번에 훅~ 
사랑한다면 또한 그들처럼.


사랑하게 되면 단순해지는 것.

보고 싶어서 보고, 보지 못해서 보고 싶고,

보면 안 된다고 하면 더욱 보고 싶은 것.(조규찬)




우리의 눈은 보고 싶은 것만 고집스럽게 보려 하고,

우리의 귀는 듣고 싶은 것만 땡깡지으며 들으려 하며,

우리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폭력적이 되곤 하지.

모든 사랑은 당사자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이치.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이의 사랑을 재단하지 않기.


부디, 그들이 계속 사랑하게 해주세요~ 네에~

골다방 레지가 언젠가 그들에게 주고픈 골다방 커퓌메뉴는, 부엔 까미노~

그게 뭐냐고?
직접 찾아보시라. 찾는 것이 힘! 

들려주고 싶은 노래는 이것.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노랠 만든 해철님의 당초 취지는,
지금은 철 지난 동성동본 연인을 위한 것이었지.
당시는 동성동본 결혼이 법으로 금지돼 있었는데,
이 노래가 그 케케묵은 법에 관심을 집중시켜 헌법소원으로까지 이어진 결과,
2005년 동성동본 결혼금지법이 8촌이내 친인척간의 결혼금지법으로 개정됐어.
한 노래를 계기로 법이 개정된 초유의 경우였다네~ 놀랍지?
뭐, 내 얘긴 꼭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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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다를까,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안 오냐?"

아 띠바. 그렇잖아도,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브루투스, 너마저...

그렇다. 눈치 챘나!

부산국제영화제(PIFF).

보고 싶었다... <바람의 소리>!


내 가을의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자 공간이건만,
나의 정기적인 가을 행차였건만,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일찌기 2년 내리 못 간 적은 없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ㅠ.ㅠ
이건 오명이다!

된장, 속이 뒤비지고 있다.
노떼도 사라진 마당에,
아아, 이럴 순 없는 게다.

정말정말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냥 지고 말겠다.
부럽다!!!! 조낸!

나 보고 싶다는 부산의 팬들에게도 미안하다!
이 행님도 우짤 수가 엄따...ㅠ.ㅠ

부산영화제 갈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도 좋다.
누가 내 싼티 영혼을 사달라~~~ 저렴하게 판다~~~ 흑.

좆도. 이 가을이 넘넘 가혹하다...
내  가을, 돌리도~

지금, 절대 내게 부산에서 전화하지 말 것.
염장지르지 말 것.
난 이미 졌으니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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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통해 맺어진 인연 중 최초로,
골다방을 찾아왔던 한 인연이 건네준 쿱아(쿠바) 커퓌.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깜딱 놀라기도 놀랐고,
미리 정해놓은 일정에 쫓겨 제대로 대접도 못했건만,
내가 마시고 싶다고 칭얼댔던 쿱아커퓌를 손수 갖다주시기까지.

크왕~ 감격에 감동했던 그 순간.
더구나 그 인연이 쿠바에 들러다 온 김에 사왔다는 오리지널.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정말 기분 좋았다는!

그런데, 부러 아끼고 아꼈다.
아끼다 똥 된다는 것 알았지만,
더구나 볶아서 갈아진 커피는 오래 놔두는 법 아닌데!
그럼에도 아끼고 싶었다. 체 게바라 기일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래, 오늘, 10월9일.
한글날보다 더 의미를 두는 체 게바라의 기일.
1967년 10월9일, 볼리비아의 정글에서 혁명의 여정을 마감한 체.

체의 42주기를 맞아 혼자만의 의식을 치렀다.
아꼈던 쿱아 커피를 꺼내,
체를 위해 아껴놓은 쿱아 커피.

의식을 치르기 위해 커퓌바를 깨끗이 닦고,

드립으로 마시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쪼르르르, 커피를 내린다.
오래된 커피라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겐, 어떤 혁명이 흘러내린다.

젤로 아끼는 머그잔에다 따르는 혁명!

그러니까, 이것은 검은 혁명.
체를 그리면서 커피를 흘러내리는 나만의 의식.

마일드는 필요없다, 오로지 스트롱으로.
검디검은 진한 블랙의 커피가 만드는 혁명적 평화!

볶고 갈은지 오래된 커피라 감히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커피가 목구멍을 통해 내 안으로 흘러들어갈 때, 그 순간만은 뜨겁고 진했다.

커피가 혁명을 만든다.

커피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지녔다.

역사적으로도 그건 사실(프랑스 혁명)이지만,
그 순간만큼, 나는 그것을 바라고 바라면서 검은 혁명과 마주한다.

내가 아는 혁명은, 그런 것.
누구의 배도 곪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골다방에서 '논 그라타'가 퍼포먼스를 하면서 쓴 이 말,
"MOST IMPORTANT THING IN THE UNIVERSE IS -> FULL STOMACH"

그리하여,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부디! 타자에 대해 둔감해지지 않기.
삶의 미각에 묻은 씁쓸함을 외면하지 않기.
내가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 되길.

내가 건넨 커피 한 잔이, 누군가에겐 그러하길.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정말 잘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것들을 한번쯤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그리고 언젠가, 내 마음속으로 흘러내리고 싶은,
체의 초상이 그려진 이 커피.

내 혼자만의 의식을 치른 뒤,
이 골다방을 찾아준 고맙고 좋은 사람들.
캄솨~

다시 꺼내본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이자, 문인·정치가·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에 큰 영향을 줬다는 호세 마르티의 일갈.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아, 그나저나 먹고사는 문제!
정말 어렵다~~~~~~
My Stomach을 Full하게 하는 일, Not Easy!
그러나, 죽지 않아~~~~~~~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그리고 1년 전 오늘, 돌아가셨던 친구 아버님.
"아버님, 그곳에서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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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난 오지은. 지난 7월의 작은 공연.

역시나 므흣함.



오지은, 친구의 친구에게 들려주는 사소한 이야기들

[인디신 팬미팅] ‘지은 : Hidden Track’ 오지은 팬미팅&팬사인회


올해 한국 문화예술계 열쇳말 중의 하나, ‘인디’. 물론 이전에 없던 것이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지만, 인디라는 레떼르를 단 작품 혹은 인사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영화계에서 <워낭소리> <똥파리> 등 인디영화의 약진이 눈부시고, 음악계라면 장기하, 오지은 등 인디뮤지션의 활약이 대단하다. 


사실 인디라는 이유가 간택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좋은 작품과 활동이기에 우리의 오감이 즐겁고 즐길 뿐. 그런 한편으로 거대자본이나 상업적인 천박함과 타협하지 않는 활약이 주는 청량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더불어,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 야망과 탐욕이 미덕인 시대, “야망 따윈 필요없어!”라며 자신의 페이스로 ‘더 많은 것’이 아닌, ‘더 즐겁거나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그들의 태도. 때로는 불온하기에 더 매력적인 인디의 존재. 또 인디는 문화예술의 다양성, 혹은 삶의 다양성을 증명하고 만끽할 수 있는 기제다.


그런 다양한 이유로 인디가 호명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인디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다. 중국의 인디영화감독 웨이아팅(<해바라기 씨> <햇살의 맛> <너와 나>)의 이 말. “독립(인디)영화의 독립이라는 단어는 제작이나 투자의 독립, 감독의 생각, 사상의 독립을 말하는 거지 관객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하여, 관객 혹은 청자들로부터 독립하거나 외떨어지지 않은 한 뮤지션과 마주했다. 지난 4월 새 앨범 ‘지은’을 낸 오지은. 그와 함께 지난 20일 홍대부근의 카페 ‘타’에서 ‘열린 음악회’ 아니 ‘열린 토크쇼’가 펼쳐졌다. ‘YES24와 함께 하는 인디씬 팬미팅 2탄’으로 열린 오지은 팬미팅 & 팬사인회. 작은 무대와 작은 객석이 어우러진 이날 행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동네 언니를 필두로 옹기종기 모여 얘길 나누는 인디 반상회랄까.

   

신고선수(인터뷰 <평범함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상냥한 사람의 음악, 들어보실래요?> 참조)에서 이젠 올스타로 뽑힌 ‘홍대여왕’(뮤지션 유희열의 표현) 오지은의 단독진행으로 전개된 수다의 기록. 궁금했던 당신에게만 살짝 들려주는 이날의 스케치. 우리 지은 언니가 반갑다면, 스크롤의 압박 따위는 잊으시라.


꾸밈없이 뻔뻔한 홍대여왕의 등장


“우와~” “예쁘다~” “오~”하는 함성이, 감탄이 발사된다. 그야말로 홍대여왕의 등장에 어울리는 감탄사? 그리고선, 여왕의 짧은 인사말. “이런 행사, 좋긴 한데 당혹스러워요. 사실 팬미팅 추첨을 통해 서로 안고, 생뚱맞게 ‘텔미’를 부르고, 자동차 키를 받는 그런 것은 우리에게 먼 얘기고, (웃음) 오지은을 아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그런 자리라고 생각해주세요. YES24에게 감사해요. 이번 자리 히든 트랙이라고 했는데, 왜. 그동안 이야기하지 않은, 말로 표현해보지 않은 거를 해볼까 해요. 인터뷰는 인터뷰적으로 하니까, 제 걸 꺼내려고 해도 잘 안 되기도 하고. 오늘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뭐랄까, 캐주얼하게, 뽀대 안 나게 진행해 볼게요. (웃음)”


꾸밈없는 자리로 하겠다는 말이렷다. 사실 오지은이 그렇다. 18시간을 자도 자학하지 않고 행복해 할 뿐인 그다. 새벽 3시에 라면을 먹어도 그저 맛있기만 하고, 어깨가 뻐근해질 때까지 게임을 해도 다만 뿌듯해할 뿐인 그가 아니던가. 웬만해선 길티를 안 느끼는 뻔뻔한 뇨자가 바로 오지은 아니던가. 그의 유일한 길티플레저라면, 공포의 7시간 웹서핑 정도? 그런 그이기에,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 아니겠어. 


그는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올라 간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하겠단다. 170여 개나 되는 질문에 답하겠다는 야심찬(!), 전무후무한 얘기를 꺼냈다만. 글쎄, 일단 지켜보자. 손발이 오그라드니까, 질문에 포함된 상찬은 일단 발설하지 않고, 그는 질문과 답을 잇는다. 참, 그는 세상에 살짝 삐진 상태라고 했다. 그것도 감안해서 봐 주시라. 참, 그리고 비슷한 맥락의 질문과 답변은 함께 묶었다. 


노래하는 지은



- 노래 부를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아무 생각 안 해요. 텅 빈 상태로. 텅 빈 그릇을 채우는 것처럼, 가사에만 집중해요.”


-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가장 감동받은 책은?

“매일 다른데, 지금은 피치카토 파이브(주. 코니시 야스하루와 마키 노미야로 구성된, 60~70년대 복고사운드를 중심으로 시부야 케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일본의 밴드. 2001년 해체됐음.)를 즐겨들어요. 아무래도 지금 세상에 살짝 삐져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또 일본의 여자 아이돌그룹인 퍼퓸의 ‘스위트 도너츠’도 좋아요. 평소에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안 듣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마구마구 들었는데, 작업할 때 내 얘기를 해야 할 때, 누구의 뭔가를 빌려오는 것은 맞지 않아서요. 그래도 요즘은 흡수의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음악을 들어야 하는.


책은 앨범 만들 때부터 잘 안보고 있는데, 이틀 뒤 2주 여행을 가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포켓본을 사서, 여행 중에 읽을까 생각 중이에요. ‘가장’이라는 말이 참 어려운데, 요즘 『쿠루네코』(주. 고양이 4마리와 동거 중인 30대의 여성 프리랜서 디자이너 쿠루네코 야마토가 키우던 고양이들을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기 위해 블로그에 만화 연재를 시작했고, 단행본으로도 나왔다.)라는 만화를 즐겨봐요. 참, 『토성맨션』(주. 오지은이 번역한 만화) 2권도 나왔어요. (웃음)”


-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다면.

“정말 많아서 이걸로 밤 샐 수도 있어요. (웃음) 어릴 때 클래식 영향도 있었고. 비틀즈. 카펜터스, 음악 하는 자세는 너바나. 마이클 잭슨이 죽었을 때, 커트 코베인(주. 너바나의 리더)이 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몇 억 명을 즐겁게 해주고 위로해 줬는데, 자신은 너무 괴로워하고. 그런데 난 그러고 싶진 않아요. (웃음) 어릴 땐, 비틀즈를 자주 들었는데, 폴 매카트니가 부른 ‘실리 러브 송(Silly Love Song)’을 좋아해요. 거대 담론이 아닌 작은 사랑을 다뤘는데. 그렇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지.”


- 어떻게 노래를 만들어요?

“나도 신기해요. 어떻게 노래를 만드는지. 다시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하거나 조금씩 생각하는 것을 쓰거나, 그것을 갖고 있다가 어느 날 멜로디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붙여요.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도 듣는데, 그런 얘기를 들어도 괜찮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에 일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우습고. 그냥 노래가 되는 신기한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아요.”


- 기타 잘 치죠? 기타를 배우고 싶은데 쉬워요?

“외국어랑 비슷해요. 앞에는 조금 어렵고 뒤는 조금씩 쉬워져요. 제가 사실 기타를 못 치는 사람인데, 3개월 정도는 지루해요. 그 시간을 견디면 오지은만큼 깔 수 있어요. (웃음)”


- 언제 공연을 처음 했어요?

“유치원에서 김완선 노래를 불렀어요. 500원을 준다고 해서. (웃음) 노래는 말할 수 있을 때부터 불렀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클래식을 좋아하셨는데, 그걸 듣고 다음날이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


- 일본에 공연한 적은? 길거리 공연을 한 적은 있나요?

“있어요. 삿뽀로에 22살(만 20살)에 음악을 더 이상 안 하겠다고 생각하고 간 적이 있어요.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했는데, 즐겁지도 않고 왜 하나 싶어서 갔었죠. 그렇게 삿뽀로에 갔는데, 음악을 더 달게 들었던 시절이에요. 돌아와 다시 음악을 하면서 삿뽀로는 못가겠더라고요. 그렇게 못 가다가 2집을 내기 직전에, 이제는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인정해 줬을 때, 삿뽀로에 다시 가서 포크음악 클럽에 갔어요. 무작정, 주인을 찾아가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공연을 하면서, 2집을 만들면서 이런저런 딜레마가 있을 때인데, 그곳의 사람들한테 위로를 받았어요. 그렇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맘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하는 때가.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어요. 길거리 공연은 안 해봤어요. 100%로 공연하고 싶어서요. 길거리 공연을 하면 음향도 열악하고, 잡생각도 많이 들 것 같아서요. 물론 길거리에서 하면 낭만도 있고, 어울리는 장르가 있지만, 길에선 아직 안 해봤어요.”



- 자신이 아닌 다른 소재로 가사를 쓴다면.

“최근에 만든 노래가 있어요. 아는 동생의 짝사랑을 다뤘는데, 제목은 ‘아저씨 미워요.’ (웃음) 동생이 나이 많은 아저씨와 연애를 하는데, 그 아저씨가 꼭 여우같아요. 노래는 발랄한데,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에요. 제 얘기가 아닌데, 일어날 법하고 일어날 것 같은 노래도 하고 싶어요. 전혀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노래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목 관리는 어떻게 해요?

“안 하는 것에 가깝긴 한데요. 안 좋다 싶으면 오미자차를 마시고, 공연을 해야 하면 창법을 바꿔요. 목이란 악기는 살아있어서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삑살이 나거나 음악이 떨어지면 안 되지만, 그걸 초월할 수도 있어요. 노래 연습은 중2~중3 때 하루 2시간씩 열심히 했는데, 그때 한 걸로 지금 벌어먹고 사는 거예요. (웃음)”


- 이 사람과 듀엣하고 싶다는 가수가 있어요?

“음, 무척 많은데... 한 명 꼽으라면 이 분은 모를 텐데, 이승열. 꼭 같이 해보고 싶어요. 혼자서 용 쓰는 걸 그만하고 싶기도 하고. (웃음)”


- 오지은에게 ‘노래’, ‘음악’이란.

“안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잖아요. 묘한 불편함이랄까. 첫 시련이 24살 때였는데, 나모 모르게 곡을 쓰고 있었어요. 극한 순간이나 어려움이 닥칠 때, 누군가는 소주나 수다, 잠 등 다양한 것이 있을 텐데, 저는 노래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또 나를 위해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것이 신기하고. 계속 그러고 싶어요. 음악은 곡 쓰고 다듬고 레코딩하고 노래하는 공정인데, 굳이 꿈이란 말을 부여하고 싶진 않아요.”


살아가는 지은


- 현재 삶의 낙은?

“이틀 뒤 가는 홋카이도 여행 스케줄을 분초단위로 짜는 것. 철도노선을 보면 정말 좋아요. 일본에는 철도덕후(철덕후)가 있다는 데, 세상에서 제일 가는 진상덕후라죠? (웃음) 저는 철덕후라는 생각은 없고, 그저 철도를 탈 뿐! 주변에서는 본격 철도덕후 인증여행이냐고 하기도 해요. (웃음)”



- 어떻게 하면 ‘대인배’가 될 수 있을까요?

“음, 대인배는 호방한 것 보다는 눈에 안 띄게 다른 사람들 입장을 읽어서 처신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1집 때 ‘사운드 니에바’(주. 오지은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인디레이블)할 때는 간단했는데, 2집(주. 2집은 음반기획사인 해피로봇과 계약을 맺고 발매했다)을 내고 날 둘러싼 세계가 너무 커져버리더라고요. 방송은 물론, 공연도 커지고. 생각해야 할 것이 100배나 커졌어요. 비유하자면, 졸업앨범을 찍을 때, 주변을 챙겨주기 그런 힘든 느낌이랄까.”


- 어디서 영감을 얻어요?

“각종 실연이죠. 요즘은 평화로워서 창작활동이 잠잠해요. (웃음) 3집에는 어떤 음악이 담길 지 모르겠는데, 경험이 음악을 만든다는 명제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그걸로 브랜드화하고 싶지도 않고요.”


- 음악이 너무 솔직해서 아프기도 했는데, 그런 아픈 사랑을 했나요? 일본어는 어떻게?

“일단은 경험이고요. 일본어는 무라카미 류의 『교코』를 일본어로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어요. 막상 일본어로 읽으니 꼰대 같았아요. (웃음) 일본에 간 건, 쓰리고를 맞아 제적돼서 갔어요. 그 김에 고생하면 정신 차리지 않을까 했는데, 고생하고 정신 차렸어요. (웃음)”


- 왜 세상에 삐졌어요?

“일기장(지은닷컴, www.ji-eun.com)에 과한 것도 쓰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는데, 누가 그걸 보고 좋지 않은 얘길 했어요. 마음을 봤으면 좋겠는데, 다른 걸 보고 멋 내기 위해 그런 말을 썼냐는 식도 있고. 저는 약간 실험하는 마음이었어요. 쇼 비즈니스와 뮤직 비즈니스 사이의 실험. 1집에서 용기와 확신을 얻고 노력은 했는데. 솔직한 사람보다는 솔직한 듯한, 털털한 듯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세상에 삐졌어요. 그래도 뭐, 이번 홋카이도 바람에 날리고 오려고요. (웃음)”


- 가족이나 친구들은 뭐라고 불러요?

“친오빠는 저를 금치산자라고 불러요. (웃음) 친구들은 내 귀여운 강아지라고도 부르고.”


- 음악 이외의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일상이 특별하지 않아요? 오래 봐서 지겨운 남친이나 업데이트 안 되는 쇼핑몰처럼. (웃음) 참, ‘요즘 애들 싸가지 없지 않다’는 말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같은 수업을 듣는 나이 어린 친구에게 시험 범위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알려주던데,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너, 진짜 착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마초 폭발이죠. (웃음) 제가 마초에 꼰대에요. 00학번인데, 캠퍼스는 09학번이 주인이잖아요. 그래서 ‘그림자처럼 다녀야한다’ ‘저들의 맑은 공기를 해치면 안 돼’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어요.”   


- 연애스타일은 어때요?

“음 지은양은 1기랑 2기로 나눌 수 있는데. 1기 때는 마지노선이 없었어요. 만나서 헤어지고 나면, 혼자 살림을 벌써 차렸어요. (웃음) 사귀면, 너와 나랑 결혼하면 어쩌고저쩌고. 지금은 2기인데, 있는 듯 없는 듯해요. 쓰나미 말고 바다에 발바닥이 닿을 듯 말 듯한 그런 연애를 하고 있어요. 이런 것에 생각이 많은 게 의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까지 나오고. (웃음)”


- 연애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

“연애를 한다는 건, 여자남자 공통된 건데, 못해본 사람들은 엉뚱한 사람을 좋아해요. 나한테 나쁜 남자, 나쁜 여자 같은. 회사 같은 부서의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가 진국일 수 있어요. 주변 자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웃음) 더 나은 내가 되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연애해야 돼요.”


- 청순, 애교, 섹시 중 자신 없는 것이 있다면?

“잡지촬영하면 부족장 포스가 나와요. 사진 나오면 ‘얘, 누구야?’ 싶기도 하고. (웃음) 애교는 자신 없고. 섹시는 앨범 자켓 속지에 누워서 있는. 청순은 1집에 있고. (웃음)”


     

- 무엇 때문에 인디에 빠져 있나요?

“인디에 빠져 있진 않아요. 한국의 ‘인디’는 신기한 것도 있는데 좀 복잡해요. ‘홍대신’이라는 것이 생긴 거 같아요. 제가 대형기획사를 싫어하는 게, 그들은 프린세스 메이킹을 하고 싶어해요. 옛날에 (대형기획사에) 몸 담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 몸무게가 45kg이었는데, 43kg까지 빼라는 거예요. 막 싸우고. 미친 거 아냐? 또 아는 언니 연예인이 스캔들이 터졌는데, 내쳐지는 걸 봤어요. 그래서 모든 걸 자기가 진행하지 않으면 토사구팽 당하지 않을까, 모든 걸 내가 공정하지 않으면 남 좋은 일 시킬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을 것 같은데...

“전 라디오스타가 정말 좋아요. 이상한 얘긴데, 진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유일하게 나가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이에요. 날 어떻게 깔지 궁금해요.”


- 부러운 사람 있어요?

“일본 배우인 아사노 타다노부의 부인인데 뮤지션인 ‘차라(Chara)’요. 정말 부러워요. 엄청 사랑 받으면서 애 셋을 키우고, 귀엽고 주름도 없어요. 신이에요. (웃음)”


- 20대 지나오면서,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 제가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인데, 물론 내년에 또 만으로 스물여덟이 되겠지만 (웃음), 모든 충고는 같잖지만, 지금 20대에게 조금은 할 수 있는 말이 생겼어요. ‘이것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그게 차단돼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아버지가 라인을 잘 못 타셔서 좌천당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굳이 출세가 아니더라도, 아파트 평수가 작아도 기운차고 행복한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그건 사치스러운 질문이 아니에요. 뭘 해야 내가 좋고, 내가 좀더 잘 할 수 있고, 덜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런 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빨리 요령 안 부렸으면 싶고, 쉴 때 쉬면서 좀더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고민을...”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역시나, 170여 개의 투구(질문)는 무리다. 그의 매니저들이 뒤에서 알게 모르게 사인을 보내면서 오지은의 투구 수를 측정하고 있던 터. 가끔 그들의 사인을 훔쳐보면서, 곧 9회말 경기가 끝나겠거니 했다. 오지은은 아직 150km를 넘나드는 광속구를 던지고, 더 던질 힘이 남아 있어 보였으나, 투수의 어깨를 염려한 감독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관중은 아쉬워도, 충분히 경기를 즐겼으므로, 오케이.


“친구의 친구를 만난 느낌”으로 “화장도 안 하고 멘트도 안 짜고” 이뤄진, 이날의 행사. 자주 팡 터지고, 때론 멍 때리면서, “만사를 연애로 해석하는” 오지은의 직구와 변화구에 맞춰 호흡한 경기였다. 대부분의 진지를 솔직함과 유쾌함으로 버무린 오지은의 투구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연말엔 아마 ‘골든 글러브’를 노려도 되지 않을까. 요즘 잘 부르지 않았지만 참 좋아하는 노래라는 ‘두려워’에 이어진 마지막 노래,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를 끝으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누구 하나가 아닌, 우리 모두가 승리투수가 됐던 이날의 기록도 이것으로 거의 끝이다. 그러나, 경기 끝난다고, 다시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야구팬은 집에 돌아가 다시보기를 돌려보면서, 그날의 경기를 복기하면서 짜릿해 하는 법.


그리하여,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뮤지션 레니 크라비츠가 그랬고,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인 요기베라가 그랬듯이. “It Ain't Over 'Till It's Over.” 말인 즉슨, 나머지 질문은 지은닷컴(www.ji-eun.com)의 ‘간혹에세이’에 올리겠다고 오지은이 공언했다. 물론 언제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반상회는 끝난 것이 아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산책을 해도 좋겠다. 폴 오스터나 알랭드 보통처럼 문장력과 재치가 앞서는 것보다 애니 프루처럼 뭔가 뭉근한 정서를 좋아하는 그의 음악을. 그나저나,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언제나 그랬듯, 별은 내 가슴에.^.^



P.S. ‘라디오스타’(MBC)와 ‘LG트윈스’ 야구단에 고하자면, 지금 세상에 삐져있는 오지은에게, 라디오스타 출연과 시구를 허하라. 그리하여, 그 삐짐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시라. 혹시 아나. 오지은이 야구장에서 시구한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LG트윈스가 가을야구를 할 수 있게 될 지. 물론, 난 장담 못한다. 난 그저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야구를 바라는 자이언츠 빠돌이일 뿐이니까.^^; 아울러, 오지은의 출연은 고품격 방송 라디오스타의 품격을 더 높여줄...까. 역시 나는 장담 못하지만, 김구라와 오지연의 구라빨 배틀을 한번쯤은 보고 싶다규! 아, 그리고 나도 정말 좋아하는 이승열. 부디 두 사람의 듀엣이 이뤄지는 그날이 오길.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앨범이든 콘서트든, 이 몸은 달려가리다. 필청!


[예스24 기고 원문]

평범함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상냥한 사람의 음악,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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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의 즐거웠던 인터뷰.


무엇보다 오지은이 내가 참 좋아하는 책, 《커피 한 잔 더》의 번역자여서,

그 번역 당사자를 직접 만난 기쁨도 무척이나 컸던 자리.


다만, 함께 왔던 기획사 매니저의 실수였는지,

차과 빵 값을 계산하지 않고 가서 가난한 프리랜서가 당황했던 기억. ㅜ.ㅜ

(장소는 홍대 부근의 VELOSO)




평범함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상냥한 사람의 음악, 들어보실래요?

[인터뷰]  2집 앨범 <지은> 낸 뮤지션 오지은



음악은, 클래식이건 뽕작이건 상관없이, 참으로 사적인 경험이다. 이건 내 음악이야, 내 노래야, 했던 경험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것.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노래를 통해, 숨을 쉬고, 공감하며,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음에 안도한다. 물론 아니라도 좋다. 음악은 그저 친구다. 함께 있으면 좋은 친구. 누구나 일상을 살기에, 사람 사는 것, 그닥 다르진 않다. 우리는 어쩌면, 버티고 견딜 뿐이다. 그 와중에 음악이 있다.


건강의 3대 필수 요소.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나머지 하나가 노래 부르기란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글쎄,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쉽지는 않다. 물론 돈 많은 이들이야 이런 것들도 화폐와의 거래를 통해 쉽게 얻을 터이지만. 그렇다면 가능한 것은 노래 부르기. 누군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흥얼거리기.


노래를 한다. 나는 그것이 참 개인적이면서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그래서 부럽다. 앨범을 내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교감하고. 자기 목소리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 많이 부럽다. 어디 글에선가, 노래는 예술가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란다. 물론 철저한 상업적 기획에 의해 공산품처럼 생산된 노래는 뭔가 영혼이 빠진 듯해서 왠지 시시하지만.


노래를 듣자면, 그 사람이 보이기도 한다. ‘에브리씽’이 아니라도, ‘어 리틀 빗’이라도 좋다. 특히나 나와 어떤 공감, 특정 교감이 이뤄질 때, 그 노래는 ‘베스트’다.


지은, 신고선수가 되다


여기 누군가에겐 ‘베스트’로 꼽히는 가수가 있다. 약간 과장하자면, 그런 가수 또 없다고 말해도 돌 날아올 확률이 높지 않은. 유희열의 표현을 빌자면, 홍대 인디신의 여왕, 오지은이다. 한 친구는, 그의 1집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띵해지면서 아득해지는 소리를 만난다. 정신과 육체가 잘 아울려 있다고나 할까.”


그래, 먼저 1집 <지은>부터 얘기하고 가야겠다. 이 음반은 음악(성)부터 유통방식까지 독특했다. 야구로 말하자면, 그는 ‘신고선수’랄까.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아 직접 구단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은 경우. 혹은 자력갱생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오지은은 음반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음반 제작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 누구 하나 그를 위해 음반을 제작해줄 사람도 없었다. 무턱대고 저질렀다. 인터넷을 통해 ‘선주문․선입금’을 받았다. 말하자면, ‘내 음악 살 사람, 손들고, 돈을 내.’ 그렇게 모인 돈이 186만원하고 6달러. 참, 6달러는 뭐였냐고.


“해외에 살고 있는 한 학생이 자필편지를 보냈다. 6달러를 동봉해서. 맨 처음 가격이 7000원이였다. EP(Extended Play, 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일종의 비정규음반)를 생각해서 책정했는데, 결국 정규음반이 됐다. 돈을 더 내라고 하기도 뭣하고, 미국에 돈을 더 들여서 음반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 돈보다 더 큰 마음을 받아서 정말 기뻤다.”


그런 음반이 나오자, 입소문을 탔다. 5000여장이 나갔다. 자립형 인디 DIY음반의 깜놀(깜짝 놀랄만한) 성과였다. 야구로 말하자면, 솔로 홈런. 영화로 말하자면, 인디영화관에 걸릴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와이드릴리즈된. 독특한 음색도 그렇지만, 그의 노랫말과 감수성은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내 얘기야’라면서 환호했다. 노래와 삶이 일치하는 듯한 느낌. 혹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신개념탑재 싱어송라이터’ 혹은 ‘자아충만보컬’.


스스로도 놀랐다. “듣는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한 일종의 실험이잖나. 100% 심하게 내 얘기를 했는데, 반응을 보고선 되게 놀랐다. 세상에 허락받은 느낌이랄까. 아싸,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아마 이런 선례도 없을 거다. 그래도 되게 힘들다. 그런 걸로 화제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필요에 의해 하면 모를까. 다시 돈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하는 것은...(웃음) 뮤지션은 돈이나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DIY가 좋은 점도 많았지만, 기적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것.  


지은, 적시타를 날리다


2집은 그래서 레이블과 계약을 통해 음반을 냈다. 물론 일체의 간섭 없이. 누가 감히 버럭. 계약하기 전에 작업한 음악들로 1집과 마찬가지로 멋대로 만들었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 준 리스너(listener)들에게 무한 감사를 표한다. “사람들이 CD를 사지 않아서 음반계가 안 된다는 말을 싫어한다. 그건 곧 리스너를 폄하하는 말이잖나. 리스너들 덕분에 음반을 내고 생계를 잇고, 가능성을 봤다. 2집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그들이다.” 정식으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을 인정한 관중들의 열띤 응원 덕분. 신고선수의 적시타, 그리고 신화(?)의 시작.


무엇보다 그 응원은 정곡을 찌름이 있기에 가능했다. 너와 내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우린 그렇게 서로 교감하고 있구나.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적는다. 심할 정도로 내 얘기가 많다. 생각나는 것들을 휴대폰 메모에도 적고, 수첩에 적기도 하고. 영수증 뒤에도 적는다. (웃음) 기록을 위한 기록이 되는 것은 싫다. 조금씩 그렇게 기록했다가 작업을 할 때,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덧붙이곤 한다. 1집 타이틀곡은 자려고 누웠다가 가사랑 곡을 바로 쓴 경우다.”


그의 앨범이 일기장 같은 노래들로 채워진 이유다. 2년이 흐른 뒤, 지난 2월에 발매된 2집 음반도 마찬가지다.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을 중심으로 한 1집에 비해, 사운드가 확연히 강화됐지만, ‘지은스러움’은 여전하다. 음반 타이틀도 <지은>으로 똑같다. 여지없이 자신의 이야기면서, 또래의 여성들 혹은 청춘이 품음직한 감정들로 충만하다. 


1집이 품은 날 것 그대로에 비해 못내 아쉬움을 품은 사람도 있겠지만, 2집의 진화에 더욱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타인과 세상과 교감하는 세계가 구축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곡들도 있다. 「 인생론」「 작은 자유」와 같은 곡을 듣다보면 그렇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론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을까.


“살다보니 알게 됐다. 인생은 어떻게든 꼬이기 마련이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친구끼리도 꼬이는데, 다른 사람과 오죽하겠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뚱하게 있지 않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즐겁고 싶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만큼 주고 싶고. 20대가 끝나가면서 다짐한 것이,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하자다.(웃음) 「 인생론」은 주변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에 ‘나는 왜 이럴까’하면서 쓰게 됐다.”


그러니까, “어차피 완벽히는 할 수 없으니 요만큼만 뻥튀기는 하지말자 그냥 나의 몸집대로 아는 만큼만 말하고 모르는 건 배우면 되지(2집 「 인생론」 중에서)”. 특히나 그가 궁핍한 시절을 거쳐 깨달은 그것. ‘헛된 욕구를 가지지 말자.’


20대 초반, 그는 사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하면 잠을 못 잘 정도였단다. 응? 그러니까 된장녀였다, 이거? 그랬던 그가, 경제적인 곤궁함에 시달리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기름기를 쫙 뺐다. “일본에 유학 갔다가, 빚을 지게 되면서 된통 뒤집어쓰는 통에 고생을 많이 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40분~1시간 걷는 것은 예사였고, 사치품 구입은 2~3년 동안 제로였다. 소비습관이나 인생관이 바뀌게 된 계기였다. 좋은 인생경험이었던 셈이다.”


지은, 용병술의 귀재


음악도 자신의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뛰쳐나왔다. 사실 일본에 간 것도 음악과 작별하기로 한 직후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음악이었다. 간절히 원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내 (음악)언어도 없는 상태에서 하고 있었는데, 답보상태인 거다. 7~8년이 돼도 답이 안 나왔다. 결국 ‘나는 음악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렇게 지내다보디 곡이 스르륵 나왔다. 1집에 있는 「 작은 방」이 일본에서 첫 번째 쓴 곡이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음악을 안 하고 사니까 어색하더라. 자연스럽게 음악이 나오기까지 얼쭈 10년이 걸린 셈이다. 10년은 곡을 쓰기까지의 고민이었던 셈이고.”


그러니까 야구 유망주가 갑작스레 회의를 품고,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가 자신의 길을 되찾은 경우라고 얘기하면 될까. 막상 떠나고 보니, 막 좀이 쑤셨던 거지. 그의 노래도 이같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기존의 다른 뮤지션들과는 다른 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 “노래도 끼워 맞춘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내가 해야 하는 음악이 그런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만들어야지 작정하고 하면 뒤틀린다. 내면의 흐름에 맡기는 음악을 당분간 하게 될 것 같다. 아마 음악학교를 다녔으면 정형화된 방식으로 나왔을 것이다.”


2집은 1집과 비슷한 맥락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변주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1집을 만들 때의 그와 2집을 만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켜켜이 쌓고 있다. 그는 소설, 미술, 음악, 영화 등 다른 장르의 창작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유심히 본다. 어떻게 하면 이런 작품들이 나왔나, 그 창작의 비밀이 궁금하단다. 그만한 분석 깜냥은 아니라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창작욕이 들끓는 뮤지션이다. 뭐든 재미가 있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고.


2집은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협업 작업이었다. “(음반이) 갈 방향으로 잘 간 것 같다. 스스로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많았는데, 사공이 많아도 산으로 가지 않아서 좋다. (웃음) 디어 클라우드의 기타 ‘용린’과 같이한 트랙은 1시간 만에 끝냈다. 나도 만족하고 저쪽도 만족하는 지점을 찾았다. 타이틀곡인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는 MOT의 이언과 한 달 동안 메신저 등을 통해서 음악파일을 주고받으면서 합일지점을 만들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정중엽도 그를 빛내주는 세션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이건, WBC에서의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 적절하게 어울릴 법한 선수들을 직감적으로 선택했고, 그것이 주효했다. “좋아하는 음악인들과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이고 정말 좋았다.” 더구나, 이런 재미있는 작업이 선배 음악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에 그는 꿈인가, 생시인가,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황홀해 한다. 유희열은 그를 ‘홍대 여왕’이라고 부르고,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은 올해 발매된 음반 중 오지은 2집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니까, 오지은이 음악을 계속 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휴~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려도 좋다.


지은, 평범함에서 길어 올리는 음악


오지은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평범한 일상의 사람들이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자신의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그에겐 평범함이, 가장 소중한 가치다. 그는 또한 그런 평범함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힘듦을 안다.


“미디어에서는 김연아의 삶이 여느 회사원의 삶보다 중요한 듯 다뤄지는데, 그건 아니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각자 머릿속의 엄청난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 괴로운데, 보통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안식이나 휴식,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효용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직장생활을 해 봤는데, 음악, 소설 등 예술작품이 주는 효용이 있었다. 그걸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느 보통의 존재는 그렇다. 이타적이기도 한 동시에 이기적인. 우리는 각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런 평범함이 한데 엮여 우리 사회 전체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창작자들은 이런 사회를 조망하거나 엮어서 서사를 만든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 감응하는 재능이다. 그 재능.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감정이입의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고도 갖춰야 한다. 중국이 억압한 티베트에 대해 노래한 「 작은 자유」를 듣자면, 그는 분명 그런 재능이 있다.


그의 노래가 사적이라지만 그것이 그의 안에서만 침잠하지 않는다. 1집과 비교해도 그렇다. “조금 더 철이 든 것 같다. 시선이 바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나도 어떤 방향인지는 몰라도 그 시점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에 맡겨서 음악 작업도 계속 할 거다. 3집은 그래서 나도 모른다.”


때로 그의 노래는 푸르름이다. 일관성이 떨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이 자연스럽다. “(이번 앨범의) 5번에서 7번 트랙이 뜬금 없거나 음악적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의 우울을 극대화하는 건, 어떤 종류의 거짓말 같다. 사람이 늘 우울한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히히덕 거릴 수도 있지 않나. 자기 우울에 파고들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의 나는 ‘(음악적) 설정’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다. 좀더 원숙한 음악가가 되면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말하자면, 카르페디엠(Carpe Diem).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큰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개의 톤을 지닌 자신을 상황에 맞게 드러내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그다. 그럼에도 그는 상승 욕구가 없다고 말한다. “상승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30평 아파트를 마련하면 40평이 욕심나고, 40평을 가지면 100평을 욕심하고 또 이것이 충족되면 여러 채를 가지려고 하잖나. 목이 마른 상태라고 그런 거다. 나는 지금 목이 마르지 않고, 계속 목이 마르지 않은 상태로 있고 싶다.”



어찌 보면 생경한, 욕망을 제어하려는 이 이십대 여성의 태도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아까 언급과 같이 경제적 궁핍이 안겨 준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는 한 권의 책을 든다.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설법)을 벽안의 현각스님이 엮은 『선의 나침반』. “극도로 우울할 때 읽은 책이다. 숭산 대선사의 큰 뜻을 얼마나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영향이 컸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설법이 크게 와 닿았다. 모르는 상태도 괜찮다는 것. 자신에 대한 긍정을 알려줬다. 상황을 지배하려는 건 오만임을 가르쳐줬고,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준 책이다.”


지은, 무정형의 사람


그는 정해지는 걸 두려워한다. ‘나는 이런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는 그런 것 말이다. 몇 년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고, 한계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곡을 만들 때는 이성이 개입하지도 않고, 음반을 만들 때는 책이나 영화, 음악을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단다. 음반이 나오고 나서야 그는 모든 것을 즐겁게 흡수한다.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경계하는 것.


음악에도 그래서 전면에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팩트만 얘기하면서 세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의견이 달라도 나쁜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생각이 익어가야지, 외부에서의 계몽은 좋지 않다고 본다. 노래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는 바보 같은 여행도 선호한다. 그날 나의 상태와 마음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그런 여행.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같은 명분은 위험하다. 못 찾으면 어쩔 것인가. 여행은 그저 여행. 뭔가를 꼭 얻겠다는 생각보다 그것 자체로의 즐김. 돌아오는 순간에 느끼는, ‘그래도 파이팅하면서 살아봐야지’하는 그런 느낌이 좋다.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단다. 일상의 정형을 벗어나는 순간을 만끽하게 되길.


그렇다면 3집을 벌써 꺼내 들어도 될까. 역시나 그는 아직 모른다. 그러면서도 정규 음반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잠깐 오지은이 아닌 무엇을, 자기 복제나 자기 소모를 안 하기 위해서 좀 더 즐겁게 하고 싶다. 1~2집은 슬픈 얘기가 많아서 무대 위에서 운 적도 있는데, 새로운 작업을 한다면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그런 것을 하고 싶다.”


참, 잊지 않고 얘기해야겠다. 그는 번역 일도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알려진 작품인 『커피 한 잔 더』. 현재 2권까지 나왔는데, 커피 한 잔에 담긴 우리네 사람살이를 맛깔나게 담은 작품이다. “무척 좋은 작품이라 번역에 아쉬움을 갖고 있다. 번역일은 명예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번역하게 돼서 명예롭기도 하고.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SF만화인 『토성맨션』도 그가 번역했다.


오지은은 여전히 실험 중이며 전진하고 있다. 완결형이 아니다. 홍대 인디신의 여왕이라는 수사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의 음악이 당신과 매칭된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음악을 찾으면 그만일 터. 그럼에도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자연 곱씹게 된다. 그는 상냥한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근사근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나 주변 사람한테 구원 받은 적이 많다. 밥도 사주고 자고 가라고도 그러고. 정말 무척 많은 위로를 받았다. 멋진 친구, 언니, 오빠들로부터. 그런 보살핌이 지금의 나를 세운 것이다.” 


그의 노래가 어쩌면 발레리나의 발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걸 내던지면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담긴 노래. 그는 기교 부리지 않고 노래를 참 자유롭게 부른다. 그것도 마음을 드러내면서. 재능이 세상을 섬기게 될 때 그 가치는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그의 사적인 마음은 세상과 연대하기에 마냥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자기 욕망에의 실현에 천착하지 않는 그의 마음 때문에라도, 나는 그의 노래가 세상을 덜 슬프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그는 큰 야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야심가라고 해야겠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의 말을 빌려. 어떤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탁월한 뮤지션이 되는 일이 점지된 운명이자 소명임을 의심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야심가다. 좋은 예술가는 찬사까지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 그가 찬사에 짓눌리지 않는 상냥한 사람이 되길 나는, 바랐다. 그리고 흥얼거렸다. “착한사람이 되고 싶어/ 매일 내가 되고 싶어/ 웃을 때 이빨이 8개가 보이도록/ 친구가 되어준 너에게/ 나를 좋아라해 준 너에게/ 연락은 자주 못하더라도 사랑해요 ♪” 응? 나도 그러고 싶어. 착한 사람. 상냥한 사람. 참, 이 상냥한 사람(의 노래)을 만나고 싶다면, 31일 마포에서 열리는 그의 단독공연을 찾으시라. 아마, 후회는 않을 거다.


[예스24 기고 거의 원문. 댓글 덕분에 싱글홈런이라고 잘못 썼던 것을 솔로홈런으로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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