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커피와 함께 하는 랩39, 11월 월례포럼

<혁명과 커피_ 커피를 통해 엿보는 세계>

커피는 인류 역사와 어떻게 함께 했고,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어떻게 우리 손에 왔을까.

사이토 다카시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는 그의 저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을 통해 커피가 인류 역사의 톱니바퀴를 움직인 힘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커피가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보이지 않는 하나의 요인이 됐을 수 있다고까지 분석한다. 프랑스혁명 등에서 볼 수 있듯, 커피하우스는 혁명을 불렀고, 시대를 움직이는 동력을 제공했다.

그런 영향에도 불구하고,
커피는 불공정한 세계교역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품이며,
커피를 통한 거대자본의 커피생산자 착취는 일상사가 됐다.

커피스토리텔러 김이준수가 전하는,
커피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커피 한 잔으로 연결되는 세계를 엿보는 시간.

" 한 잔의 커피는 경이롭고 놀라운, 관계의 집합체이다."
- 《커피의 역사》 저자 하인리히 E. 야콥 -


내용
● 일시 : 2009년 11월 28일(토) 오후 5시
● 장소 : project space LAB39/골다방(공정무역커피하우스)
● 강사 : 커피스토리텔러 김이준수
● 문의 : jslyd012@gmail.com
● 찾아오시는 법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 --> 직진 100M-->광명수산식당-->좌회전하여 우측에 철공소 끼고 직진 200M-->기업은행 지나 신흥상회 3거리 도착-->좌회전 50M -> 3거리 우회전 -> 철공소길 따라 50M 우측 1층 새한철강 -> 새한철강 건물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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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주의자', 김창완.
내가 아는 그 역시, 헤도니스트(hedonist). 즉, 심미적 쾌락주의자.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싶다, 는 생각을 이끄는 남자.
매  순간을 완성하고자 노니는 것이 보이는 남자.
우리에게 가끔 감동으로 주단을 까는 남자.
제대로 나이를 먹는다면, 김창완처럼.

단 하나.
조선일보와 인터뷰 하는 것만 빼고.


나는야, 그렇게 헤도니스트가 되고 싶다!
고종석이든, 김창완이든, 꼰대 되는 것이 최대한 늦춰지는 그런 사람들.

물론, 실천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래 나의 이 말, 진심이다.
그 사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향한, 프로포즈.
김창완의 '결혼하자'가 그댈 향할 것이니.
어때? 나에게 오랏! 푸하하.


부디, 남 배려 따윈 하지 않는 제멋대로의 여자가 나는, 조타!
배려보다는 매 지금 자신을 완성할 줄 아는,
자신을 약간 망가뜨리는 것이 될지라도,
그 여자, 어디 있니~ 보고 싶어~


"인생을 완결 짓는 순간은 지금이다."

그렇다. 황금보다 백금보다 더 좋은 '지금'.



지난 9월 김창완 아저씨를 만나고,
정말이지 좋았던 기억. 질질 쌌던 기억. ㅋㅋ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저씨 정말 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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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책과 음악으로 주단을 깔다

[북콘서트] 환상스토리, 노래를 만나다



김창완. ‘산울림’으로 우리 귀를 살살 간질이며 가슴에 방망이질 치고 방방 뛰게 만들더니, 어느 순간 배우로 우리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이야기의 주단을 깔았다. 뭔 소리냐고? 작가다. 그것도 환상스토리를 풀어놓는다. “슬픈 목숨을 이어가는 모든 동물들과 악의 없는 몽상가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작가의 말을 담은 책, 『사일런트 머신 길자』(김창완 지음 / 마음산책 펴냄).


“글쓰기만큼 재미있는 놀이도 없다./ 연필 끝에서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볼펜 끝에서 ‘길자’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죠죠’가 살고 있는/ 글 동산에 초대합니다.” 이런 그의 초대를 받았다면, 마땅히 발을 디뎌야 하는 법. 지난달 24일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 그가 마련한 주단이 깔렸다. ‘환상스토리, 노래를 만나다’. 책과 음악이 함께 하는 북콘서트다. 『사일런트 머신 길자』의 출간기념으로 ‘김창완밴드’와 함께 하는 자리.



김창완밴드의 등장


내 마음에 주단을 깔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로 김창완 밴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록스타의 등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성이 터진다. 한 마디로, 멋지다. 5인조 김창완 밴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로 등장을 알린다. 지난해 EP로 발매된 ‘The Happiest’의 수록곡.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살지♪/ 내가 스무살이었을 때 일천구백칠십년 무렵/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 일뿐야♬”



“막내가 세상을 뜨고 만들어진 노래다. 그 경험을 하기 전에 모든 것은 순간에 이뤄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 더 절실해졌다. 인생은 이 순간, 다 완성된다. 예순이 되기 위해 스물, 마흔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이 순간을 완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뭐랄까. 뭔가 뭉클했다. 동생을, 형제를 구름의 저편으로 보낸 슬픔에도 ‘해피스트’를 얘기하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허허.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행한 말들이 떠올랐다. “지금을 완성하며 살아야 한다.” “인생을 완결 짓는 순간은 지금이다.” 말하자면, 김창완은 ‘지금주의자’. 카르페 디엠. 


이어지는 노래는 김창완밴드의 첫 번째 정규앨범인 「버스」의 타이틀곡인 ‘Good Morning’. “지하철에 버려진 아침 신문을 주워 구직광고를 다 읽네/ 어디 갈 곳도 없이 정해진 일도 없이 차가운 도시를 걷네♪/ 내게도 희망은 있는 걸까 내일은 내게도 기회를 줄까 이 세상이/ 쓰디쓴 커피 한 잔 빈속에 마시면서 구인포스터를 보네♬” 아, 이 시대의 어떤 자화상.


김창완, 책을 이야기하다


- 산문집, 동화를 냈고, 이번에는 소설이다.


출판사 사장님께서 하도 꼬집고 그래서. (웃음) 어릴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세상을 넓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3 때 딴 짓을 하고 있으니, 소설가가 돼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말을 접어놨다가 수필집도 냈는데, 늘 한 켠에는 소설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동네에 고양이가 많은데, 어느 날 어이 없이 아기고양이가 죽었다. 불쌍했다. 그리고 ‘죠죠’라는 이야기를 생각했다.(「숲으로 간 죠죠」) 달래주고 싶어서 혹은 죄책감에. 사나흘을 썼다. 지독히 슬픈 풍경으로 끝난다. 그게 원통해서 걔네 아빠를 떠올렸고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고양이 아빠와 내가 그리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뒤를 이었다.(「죠죠 그 이후」) 그 뒤 접고 있었는데, 들들 볶아서. (웃음) 죠죠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숲은 이상향이다. 동네에서 불쌍하게 죽어간 고양이 때문에 (소설을) 쓴 셈이다.  


- 소재는 어디서 얻었나.


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 경험에서 나온 거겠지만, 경험을 뛰어넘고픈 욕망도 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 재미없잖나. 달아나고픈 생각을 했다. 그 틈새로부터 글이 나온 것 같다.


- 「사일런트 머신, 길자」는 소리가 없다. 소리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건데, 어떤 배경에서?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얼핏 도시소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실제는 이런 판타지를 통해 글 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가, 글쓰기의 자유로움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길자를 통해 나는 자유로워졌다. 글쓰기가 얼마나 자유로운지가 요체다. 참, 책 표지에 그려진 줄자가 무척 마음에 든다. 줄자는 사일런트 머신이 어디까지 작동하느냐하는 가능성의 잣대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법의 잣대, 보이지 않지 우리 내면에 잠재돼 있는 보이지 않는 잣대를 뜻하기도 한다. 나는 중국집 아이가 신호위반을 하고 달아나는 장면에서 쾌감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형상화해 준 표지를 그려준 분께 고맙다. 여러분도 길자의 모습을 보며 좀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이어, 「사일런드 머신, 길자」의 김창완스러운(!) 낭독(p.18~23)이 있었고, 김창완밴드의 1집 수록곡인 ‘아이쿠’와 ‘29-1’이 연주됐다. 신난다. 누구나 가질법한, 버스안의 그녀에 대한 기억도 난다. 29-1번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참 산울림스러운 음악이고, 참 좋다. 


- 죠죠 얘기를 더 해보자. 「죠죠 그 이후」의 성장하는 모습이 애틋했다. 어떻게 구상했나?


아주 오래 전 30~40년 전, 루미라는 이름의 외계인을 소재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숫자로 된 SF단편이 원형이다. 소설세계를 꿈꾼 건 아주 오래 전, 중학교 때부터고.


낭독이 다시 이어졌다. 「숲으로 간 죠죠」에서 50~53페이지까지. 「M.C. 에셔(1898~1971)」에서 89~94페이지까지. “궁금하다고? 반전이 굉장하니 책을 사보라”는 김창완은 음악이 맺어준 동생, 형제들로 모인 김창완 밴드를 소개했다. 역시 1집 곡인 ‘내가 갖고 싶은 건’과 ‘너를 업던 기억’이 연주됐다. 좋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멋진 일이다. 김창완처럼 나이를 짓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다음은, 객석의 관객들과 나눈 교감.


- 고양이를 좋아하나? 키워본 적은 있나?


전혀 없다. 어렸을 때, 동네에 집집마다 개가 있었고, 우리집도 있었다. 그런데 헤어질 때, 너무 가슴이 아파서 머리가 커서는 개를 못 키웠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겼는데, 제일 망나니로 알려진 코카스파니엘을 키웠다. 문제는, 진짜 돌대가리인 거라. (웃음) 뒷산에 풀어놓고 키웠는데, 동네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할아버지를 물어서 결국 퇴출시켰다. 고양이는, 그냥 동네에 있던 고양이를 보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죽어서 충격받았다. 키워보진 않았다.


- 살면서 읽은 책 가운데 좋아하거나 영향을 미친 책이 있다면.


권컨대, 책에게서 영향을 안 받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있기엔, 삶이 너무 거대하다. 그 위대한 발견을 한 아인슈타인이 고작 바닷가에서 조개 하나 주웠다고 했겠나. 기본적으로 책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지만, 자기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세상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한글을 깨우친 것은 참 자랑스럽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업을 포기했는데, 쓰고 읽을 줄 아는데 뭘 더 배워. (웃음) 그래도, 책을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교과서를 충실히 해라. 내가 소설가라서가 아니라 소설이 참 좋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웃음) 일단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백 권을 읽는 것보다 한 권 쓰는 게 낫다. 아무거나 읽어라. 흥미 있는 거라면.


- 앞으로의 계획은.


「버스」가 나온지 얼마 안돼서 홍보도 해야 하고. 곧 하늘공원과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 공연도 있고, 10월28일부터 11월1일까지 충무아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도 있다. 김창완밴드 잊지 말고 찾아주시라.



마지막 곡으로 ‘결혼하자’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진솔한 프로포즈라면, 누군들 홀딱 넘어가지 않으리오.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결혼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이 노래를 신부에게 바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 얼른 결혼 하자 성당 갈까 절에 갈까/ 누구라도 축복하면 우리끼리 결혼하자♪/ 꽃반지를 하나 끼고 면사포는 뭐로 할까/ 아무 거면 우린 어때 넌 내 행복 난 네 기쁨♬/… 우리 얼른 결혼하자 만났을 때 해버리자/ 친구들도 있으니까 우리 그냥 결혼하자♪/ 문방구에 색종이들 슈퍼에는 먹을 것들/ 아스팔트 거리에서 딴따라라 따라라라♬”


물론 당연히, 끝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도, 앵콜. 우리가,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너의 의미’가 진짜 피날레를 장식한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도 그랬다. 그는 도대체 못하는 게 뭘까. 그가 다음에는 어떤 주단을 깔까. 김창완, 여전히 그가 궁금한 이유다. 매 순간을 완성하고자 하는 남자. 나는 그 남자에게서 때론 감동을 받는다. 김창완이라는 감동, 당신도 함께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창완이 했던 어느 인터뷰에서, “행복이란 도달해야 할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이 출발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금 나를 있게 했고 심장을 뛰게 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감동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예스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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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었다. 타루.
그도, 그 흔해 빠진 '홍대 여신'의 한 축으로 호명되고 있었다.
그려려니 했다. 여신. 나쁘지 않다. 나는 여신을 경배해 마지않는, 돌쇠니까!

여신의 왕림이라기에, 그는 또 어떤 여신적 포스인가, 하고 찾아갔다.
아니 왠걸. 여신은 여신인데, 야생의 여신이다. 아주 펄떡펄떡 뛴다.
와우. 이 뮤지션, 노래는 쫄깃하고, 음색은 코브라다. 살살 휘감는다.

여신을 하나의 이미지로만 각색할 필요, 없다.
지난 10월, 야생의 현장에서 나는 즐거웠다네~
타루가, 타잔이라면, 나는 치타가 되고 싶었다.
제인 따윈 필요없어!

그는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별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루는, 예쁘진 않은데, 귀엽다.
노래는 예쁘다, 귀엽진 않다.
조화가 잘 되지 않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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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됨 없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야생타루 탐구생활’

[인디신 팬미팅] 타루와 함께하는 야간비행


(※ 모쪼록, 이 글은 T모 방송의 프로그램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의 내레이션을 연상하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임을 알려드려요.)


지난 19일, 서울 홍대부근의 한 클럽에서 「사랑의 찬가」가 울려 퍼졌어요. 맞아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맞아요. 잠시 이 노래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려줄 테니 들어보아요. 피아프에게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어요. 특히, 권투선수이자 미들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막셀 세르당과의 사랑은 애절하기로 유명해요. 문제는 세르당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다는 거예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끌림과 매혹을 저지할 순 없었어요. 두 사람은 미국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세르당이 프랑스로 돌아가면서 어쩔 수없이 잠시 떨어져 있게 됐어요. 떨어져 있는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책으로 나왔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사랑에도 비극이 닥쳐요. 1949년 미국에서 시합이 잡힌 세르당을 피아프가 재촉해요. 빨리 자신의 곁에 오라고 채근을 해요. 이게 화근이었어요. 피아프에게로 오던 도중 비행기가 추락하고 말아요. 세르당은 그렇게 피아프 곁을 떠나고야 말았던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잃은 피아프가 세르당을 위해 가사를 쓰고 부른 것이 「사랑의 찬가」에요. 참고로 이 사랑을 다룬 영화가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에디프 피아프의 사랑>(Edith Et Marcel, 1983)이었어요. 영화에서 세르당 역을 그의 친아들이자 복서인 막셀 세르당 주니어가 맡기도 했어요. 이런 사연을 알고 노래를 들으면, 참 슬퍼요. 술이라도 퍼마시고 싶어져요.


이 노래가 왜 울려 퍼졌는지 궁금할 거예요. 앞선 11일이 에디트 피아프의 46주기여서 울려 퍼진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틀렸어요. 타루가 이 노래를 불렀어요. 아 참, ‘타루’라는 말만 듣고, 핀란드에서 온 사람으로 오해해선 안돼요. 핀란드에서 온 사람은 ‘따루’에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타루는 ‘휘바’를 외치진 않아요. 확실하진 않지만, 자이리톨을 즐기는 것도 아닐 거예요.


야생타루당, 세렝게티 초원에서 놀아요



타루는 맞아요. 가수에요. 예스24의 인디씬 팬미팅 4탄으로 지난 19일 ‘타루와 함께하는 야간비행’이 열렸어요. 타루가 팬미팅 자리에서 자진자수 앵콜곡으로 이 노랠 불렀어요. 아는 분이 결혼식 축가로 부탁했대요. 그 기쁜 날, 왜 이 노래를 축가로 부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루는 노래가 참 좋아서 선곡해봤대요.


그런데 혹시 들어나 봤어요? 야생타루당. 28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당수(총재)는 바로 타루에요. 야생의 기운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나 봐요. 이들의 결집력은 상상을 초월하진 않지만 타루를 중심으로 당원들은 야생적으로 놀아요. 당원들은 그야말로 열혈이에요.


그 당은 대체 무얼하냐고 묻지 말아요. 당에 가입해서 열혈야생당원이 돼 보면 알아요.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초원에 따로 가지 않아도 돼요. 당원들이 모여 노니는 곳이 바로 세렝게티 초원이 돼요. 이날의 팬미팅이 바로 세렝게피였어요. 자, 함께 초원을 살짝 엿보도록 해 보아요.  


타루에게 묻고, 답해요


타루가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이 돼요. 이어 당원들의 사연도 소개가 돼요. 우주여행부터 신혼여행(니스), 독재여행(독일) 등이 거론이 돼요. 열혈야생당원답게, 야생인답게 재미난 사연들이 수북수북 쌓여 있어요.


지난 콘서트 이후에 사랑에 빠졌는데, 한동안 잊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사연도 들어있어요. 사랑에 빠진 거 맞는지 모르겠어요. 이민 가는 직장동료를 위해 야간비행에 동참한다는 애절한 사연도 있어요. 10년 지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돈독한 우정을 위해 이 자리에 오고 싶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타루는 우정의 상징인가 봐요. 그래도 타루는 야생인답게 상투적인 내용은 그냥 물어뜯어요. 당수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대목이에요. 물론 지금은 민주주의가 실종된 시대라서 그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타루가 말해요. “여성 팬을 우대하는데, 별로 없어서 속상해요.” 그래도 뻥을 곁들여서 한 100명은 모인 것 같아요. 타루의 야생이 하늘에 포효를 해요. “기뻐요. 그런데 팬 미팅은 팬이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인상착의가 궁금했다는 한 사연에는 지금 보라고 말을 해줘요. 다들 팡 터져요.


타루가 글을 올리는 시간이 늘 새벽녘이에요. 그래서 물어보아요. 대체 몇 시에 자는 거예요. 새벽 5~6시에 잔대요. 이 늦은 시각까지, 아니 이른 시각까지 곡도 만들고 인터넷쇼핑도 한 대요. 덧붙여, 요즘은 쇼핑을 끊고 게임을 한 대요. 그러다 아차 해요. 회사에서도 모르는데, 자기 입으로 그만 실토해서 타루가 진땀을 흘려요. 세렝게티 초원이 타루의 땀으로 흥건해져요.


좋아하는 아이돌을 묻는 질문에는 단박에 튀어나와요. ‘2NE1’이래요. 남자 아이돌은 딱히 없나 보아요. “2NE1에 반했어요. 노래를 잘 해서. 앞으로 크게 될 거에요.” 혹시, 타루가 2NE1의 다섯 번째 멤버가 되는 건 아닌지 몰라요. 아, 농담이에요. 세렝게티 초원에서 참혹하게 물려죽어 변사체가 될 순 없어요.


몇 가지 퀴즈를 내서 타루가 선물도 주어요. 타루의 생일은? 7월10일이에요. 타루 첫 앨범의 온라인 발매일은? 8월28일이에요. 10월19일 현재 클럽의 당원수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패스를 해버려요. 좋아하는 시인은? 『와락』을 지은 정끝별 시인이래요. 「내 처음 아이」란 시를 좋아한대요.


야생타루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대요


인생의 동반자, 오박사 얘기도 꺼내요. 목욕탕 가서 함께 때를 밀고 밀리는 사이래요. 그리고선 오박사에게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요. “언니가 제일 좋아”라고 공식적으로 확인까지 받아요. 역시나 야생의 날것 그대로에요.


아, 인터뷰를 거절한 언론사가 있는데, 조선일보래요.  뭐, 안티조선운동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이 신문사만은 안되겠다 싶어서 거절했어요. 팬 중에 어린 친구들도 많은데, 그 신문을 통해 (제 인터뷰기사를) 읽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장기적으로는 그게 낫다고 봤어요. 미천한 저에게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는 거죠. (웃음)” 이만하면 박수칠 만해요. 박수! 개념 있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막막 들어요.


그러다 원맨밴드 하기 지쳤나 봐요.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저를 위해 노래 준비하신 분?” 아, 안타깝게도 없어요. 당원들의 야생성이 아직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어요. “점점 타루 팬미팅은 안드로메다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네요.” 누군가 타루당수 앞에서 하품을 해요. 따끔한 일침이 날아와요. “왜 하품해요! 입술을 콱 깨물고 참으셔야죠!” 버럭. 역시나 야생타루다워요.


타루는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방송 나가면 ‘여신’이라고 부풀리기 방송을 해대는데, 그게 싫다고 말해요. 예전에 동갑내기의 공연을 보면서 부리부리한 눈에서 뿜어 나오는 카리스마에 혹한 적도 있지만, 지내고 보니 그런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진 않대요.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장 내일 만나자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스케줄이 있어서요. (웃음) 언제든 차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간이 되면 홍대동선을 그려서 올려놓고 싶어요.” 참, 타루는 홍대 메인거리에는 잘 없다고 말해요. 합정동이나 상수동 근처에서 야생성을 발현한다는 힌트를 줘요.



다시 질문이 쏟아져요. 몸매 관리는?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자랑쟁이 같은 말을 해요. 그러나 이것도 몸에 필터가 고장난 탓이라고, 지병이 있다고 실토해요. 아무리 먹어도 감흥이 없다고 해요. “극심한 다이어트는 하지 마세요.” 당부도 잊지 않아요. 동안이라고 생각하나요? “동안이라고 생각해요. 술․담배 하지 마세요.” (웃음) 혼자 산다는데 외롭지 않아요? “외로워 죽겠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어느 책에 보니 고독한 시간을 잘 견뎌야 오롯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대요.” 맞아요. 혼자서도 잘 놀고, 혼자 있는 시간을 다스릴 줄 알아야 다른 사람과도 잘 놀 수 있고, 삶이 풍성해져요.


스트레스 폭발할 때는? “소리를 질러요. ‘꺼져’라고 소리치기도 하고요. 혼자 있을 때 나쁜 생각을 길게 하면 안 좋아요. 빨리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대요.” 연애스타일은? “잔소리도 하고 엄마처럼 잘 챙겨줘요. 그런데 차여요. 남자는 이상한 동물이에요. (웃음) 저는 한 번 뒤돌아서면 뒤도 안 돌아봐요. 인간관계가 그래요. 그래도 잘해줄 땐 정말 잘해줘요.”


여행하고 싶은 곳은, 요즘 사막이래요. 신비로운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요.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 이집트라고 말해요. “목이 마른데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사막에 밤도 있고 별이 많다고 들었어요. 사막에서 하늘을 보며 잠이 들고 싶어요.” 아,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타루의 모습, 꽤나 멋질 것 같아요. 낭창낭창한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 별이 폭포처럼 흘러내려요. 열혈야생당원들이 사막에서 팬미팅을 추진하는 날이 와야 할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를 물어요. “추억이나 아픔, 상처 모두 역치가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모두 소중해요. 무대에서 공연하고 뒷풀이에서 맛있는 것 먹는 것도 좋아요. 이걸 해 보고 싶어요. 5천 당원들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매트릭스 분장을 하고 모이는 거예요.” 언젠가 광화문에서 매트릭스 분장을 한 열혈야생당원을 볼 지도 몰라요. 그땐 ‘깜놀’하지 말고, 야생타루의 사주라고 여기고 보아요.


보물1호는? 오박사, 목소리 얘기가 당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와요. 그래도 꿋꿋하게 말해요. “딱 한 가지만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하면 억울하죠. 보물들은 많아요. 나중에 자녀가 생긴다면 보물1호라고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야생타루의 아이가 문득 궁금해져요. ‘야생타루보호구역’이 만들어질지 두고 보아요.


학창시절도 역시나 물어보아요. 공부는 많이 하지 않았고 과목을 편식했다고 말해요. 특이사항으로 선도부장을 했나 봐요. “별명이 악바리였어요. 엄격하게 관리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융통성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야생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요. 경직된 건 싫다는 당수의 바람이 전달이 되어요. 당원들에게 미리 주지했던 바, 주섬주섬 가방에서 야생의 먹이들이 나오고 있어요. 육포, 김치전, 치킨, 막걸리… 이런 자유분방한 공연, 놀라워할 것 없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관객에게 육포를 받아먹어요.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어요. 참, 격의 없는 야생의 현장다워요. 타루의 노래와 흥겨움이 함께 하는 시간이에요. 노래는 「Don't Let Me Down」부터 시작을 해요. 이어 「내일이 오면」「Sad Melody」을 거쳐, 이날 모인 당원들을 위해 새롭게 편곡한 「연애의 방식」과 첫 사랑과 연관된 노래라는 루시드 폴의 「풍경은 언제나」까지, 타루의 시간이 관통하고 있어요. 



이날의 야생타루 탐구생활은, 첫머리에 얘기했던, 「사랑의 찬가」와 함께 막을 내리게 되어요. 타루의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46주기를 갓 지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는 경험은 왠지 신비로워요. ‘작은 참새’ 혹은 ‘아기 참새’라고 불렸던 피아프의 이미지가 타루에게도 약간은 겹쳐 보여요.


갑자기 어디에서 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궁금한 이 계절에, 타루의 탐구생활을 일단 끝내고 흥얼거려 보아요. “어디론가로 차를 타고 떠나고만 싶어/ 끝없이 펼쳐진 하이웨이로/ 끝없는 모험과 이야기들/ 자유롭게 휘날리는 머릿결 우후/ 내일이 오면 다시 내일이 오면/ 다시 내일이 오면 나는 떠날 거야 자유롭게♪ (「내일이 오면」 중에서)” 그리고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서 빛들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어떤 풍경을 떠올려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마다 어둠과 빛이 교차했던 어떤 순간의 추억이에요. 똑똑, 물어보아요. 잘 지내나요? 당신...

 

P.S. 참, 야생타루를 만나고 싶다면, 이곳을 가면 돼요. 당신도 당원이 될 수 있어요. 총재의 허락을 득하기만 한다면요. http://rockruler.tossi.com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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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만나기 전, 그들은 듣보잡이었다. 밴드 이름도, 노래 제목도 온통 듣보잡.
막상 음악이 흘러나오고, 귀가 익숙해지자 듣보잡은 슬슬 볼매가 됐다.
메이트(mate) 얘기다.

'인디돌'이라고 표현한 건,
인디신 팬미팅이기도 하고,
아이돌은 아니지만, 귀여운 맛이 있어서 붙여봤다.

노래는 다소 간지러운 감이 있어도, 내 귀에 캔디!
그리하야, 이건 볼매가 된 기록이라고 봐도 되겠다.

내가 꼽은 메이트의 베스트는,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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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 인디돌, 메이트와 함께 한 가을밤의 스케치북

[인디신 팬미팅] <Be Mate>의 메이트 


메이트(mate).

1 (노동자 등의) 동료, 친구;《영·구어》 여보게, 형씨 《노동자·뱃사람끼리의 친밀한 호칭》 2 배우자, 배필 《남편 또는 아내》;짝[한 쌍]의 한 쪽.


소울메이트, 룸메이트, 하우스메이트, 데이트메이트… 어쩌면 우리네 생은 그렇게 메이트를 찾는 여정이 아닐까. 홀로이지만, 때론 홀로이고 싶지 않은 생. 그러니까, 지금은 가을, 메이트가 필요한 시기. 당신은 어떤 메이트가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어떤 메이트인가요.


자, 여기, 음악을 들고 찾아온 뮤직메이트(Music Mate)가 있다. 스스로 ‘메이트’라고 자처하는, 임헌일(보컬, 기타), 정준일(보컬, 키보드), 이현재(드럼)로 구성된, 3인조 밴드. 지난 4월 1집앨범 <Be Mate>를 내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꽃미남 인디돌.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유희열이 그간의 출연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세 팀을 선정해 그들과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 중의 한 팀. 멤버 셋 모두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 카페에서 와플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스키니가 잘 어울리는 유기농밴드.


그들이 지난달 28일 홍대 클럽 ‘타’에서 팬들과 가을의 만남을 가졌다. 이것은 등장만으로도 숱한 여성들의 아우성을 자아낸 꽃미남 인디돌이 지근거리에서 팬들과 속삭였던, 메이트와 팬들이 공유한 노래와 이야기, 이름 하여, ‘메이트의 스케치북’. 이 가을, 당신과 당신의 메이트가 함께 듣고 마음을 나눌 노래를 찾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메이트.


메이트의 스케치북이 열리다


“…난 너만 있으면 난 너만 있으면/ It's alright/ I love you I need you I want you/ 우리 처음 만났던 그날들처럼/ I love you I need you I want you/… 지친 하루의 끝에/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게/ 내겐 얼마나 힘이든지/ 넌 몰랐겠지만 알 수 없겠지만/ It's alright”


시작은 그렇게, 「It's alright」였다. 사랑에게, 끊임없이 건넸던 그 말, I love you, I need you, I want you. 그래, 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았던, 네가 곁에 없어서 힘들었지만, 괜찮아야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It's alright’를 읊조리며 다가온 메이트. “팬들이랑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 건 처음이에요. )”실물이 훨씬 나아요“라는 소리가 나오자) 사실 걱정이 많이 됐어요. 몇 분이니 오실까 걱정도 되고. 그래도 경쟁률이 엄청났다고 들었어요. 무척 기분도 좋고요, 얘기도 많이 하고 싶어요. (큐시트를 들고선) 메이트의 스케치북을 그럼 시작해볼게요.”



이 자리가 열리기 전, 예스24에서는 ‘Best of mate’라는 이벤트가 열렸다. 메이트 1집 가운데 최고의 노래라고 생각하는 1곡을 고르는. 「It's alright」는 4%의 득표율로 10위였다. 1위는 20%의 득표율을 자랑한 「그리워」, 2위는 17%의 「너에게... 기대」.


「그리워」를 쓴 임헌일은 후일담을 들려준다. “가수 성시경과 일본 투어를 할 때였어요. 밤마다 음주가무로 힘든 밤을 보내고 있었는데. (웃음) 어느 날 일렉기타를 치다가, 곡이 훅~ 나오는 거예요.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가사도 슥~ 나왔어요. 당시 어려운 일도 있었고.”


정준일의 화답.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당시 메이트를 할 멤버를 찾고 있을 땐데, 헌일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선 팀을 하면 앞으로의 부귀영화가 상상됐어요. (웃음) 농담이고요, 재미있게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에게... 기대」는 정준일의 곡이다. “앨범 마지막에 들어간 노래에요. 친구가 연인과 헤어진 밤에 불러내서 신세한탄을 하는 거예요. 그때 친구의 얘기를 듣자니, 과거 나도 그랬었는데 라고 일깨워줘서 쓰게 됐어요. 처음 만나면 영원을 이야기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하루가, 그 순간이, 반나절이 그렇게 힘들잖아요. 「너에게... 기대」「안녕」「난 너를 사랑해」는 쓰는데 하루도 안 걸린 곡들이에요.”


그렇지 않나. 끝내놓고서도 갑작스레 덤비는 기억 때문에, 힘든 긴 하루에 생각나는 존재 때문에, 때론 힘들었던 순간, 당신도 있지 않은가. “우리 왜 이렇게 힘들기만 했는지/ 왜 그렇게 널 놓지 못했는지/ 참 바보 같아 참 바보 같아 너를 아직도 비워내지 못해/… 가끔은 길고 긴 내 하루에 네가 있어줬으면 곁에 있어준다면/ 아직도 네가 생각날 때면/ 난 이렇게 아픈데 너도 나처럼 힘들까 봐”


어쨌거나, ‘Best of mate’에 대한 이유도 역시나 가지가지. “그리워란 가사가 잊히지 않는다” “남친과 헤어지고 메이트가 떠올랐다” (「그리워」) “마음에 와 닿는다” (「너에게... 기대」) “경쾌하다” “지친 나에게 힘을 준다”(「하늘을 날아」) 등등.



「난 너를 사랑해」에 대한 정준일의 이야기. “처음에는 다른 것 때문에 끌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 때문에 싸우잖아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럼에도 떠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어요. 이 노래가 제일 외면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이 좋아해줘서 참 고마워요.”


그렇지. 다르지만, 사랑했던 우리. 달라서 좋다는 말이, 너무 달라서 헤어진다는 말로 전이되기까지의 과정들. 그럼에도 사랑했던 추억을 공유한 우리. 나를 안아준다면,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 “우린 너무 달라 잘 알고 있잖아/ 서로의 진심을 안을 수 없잖아/  이해하지 않아 기억하지 않아/ 늘 말뿐인 말들 - 기대하지 않아/… /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따스한 그대의 손길로 / 나를 안아줘 나를 잡아줘”


메이트에게 묻고 답하다


청중들과 호흡하는 시간. 메이트는 날아온 질문을 피하지 않고 척척 답한다.



- 메이트에게 음악이란.

(임헌일, 이하 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음악을 할 때, 그나마 사람 같아요.

 

(이현재, 이하 재) 음악이 전부인 게 아니라 같이 가는 친구 같아요. 비중이 적은 게 아니라, 음악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음악 말고 나머지 인생도 있는 거고, 음악은 일부분이랄까요.


(정준일, 이하 준) 아직은 음악이 재미있고 전부에요. 나이를 더 먹으면 바뀔 수도 있지만, 27년 동안 듣고 만들고 연주하는 게 가장 재밌고 전부라고 말할 수 있어요. 관객 없이 연주해도 힘들지 않아요. 여자친구를 사귈 때도 음악이 전부라고 얘기했어요. 이해해라. 어쩔 수 없다.


- 만약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재) 어렸을 때는 화가가 꿈이라고 말하고,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리곤 음악이 좋아서 방과 후엔 드럼 치러 가고. (웃음) 학교 다닐 때도 음악 말고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여자친구를 안 사귀었더니, 누가 진지하게 묻더라고요. 너 게이 아니냐고. (웃음)


(준) 음악인 아닌 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 어릴 때, 컬링(주. 빙상에서 평면으로 된 돌을 브룸(비 모양을 한 것)으로 미끄러지게 하여 표적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경기) 전국체전에 나가기도 했어요. 이것저것 경험해 봤는데, 태어날 때부터 음악을 해야지 한 것 같아요. 단 한번도, 다른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헌) 어렸을 때는 음악이 싫었어요. 제일 싫어하는 과목에 음악을 적고.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린 만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트렌드만 따라갔을 뿐이구나 싶어서 그만 뒀고. 주변 형들이 기타 치는 게 멋있어서 겉멋에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새롭고 재밌어서...


- 멤버 중, 이것 하나만은 내가 제일 잘한다는 것이나 다른 멤버의 습관이나 비밀 하나씩.


(준) 기타는 헌일이가 제일 잘 쳐요. 다른 건 뭐 없어. (웃음) 아, 머리 세팅을 잘 한다.


(재) 준일이형은 사람들 없을 때, 코를 잘 파요. 아무도 모르게. (웃음)


(헌) 준일이는요, 옷 잘 입고, 스타일에 관심 많고, 옷빨도 잘 받아요. 그런데 잘 보면 근육이 하나도 없어요. 뒷태를 보면 여성 같아요. (웃음)


이어, ‘Best of mate’에서 1, 2위를 차지한 「그리워」와 「너에게... 기대」가, 오리지널과 다른,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버전으로 특별연주됐다. 메이트가 오늘 스케치북을 함께 꾸며준 관객들에게 선사한 작은 선물. “특별한 자리”이기 때문에 “색다르게 편곡”하여 들려줬다는 메이트의 멘트. 그리고 메이트가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관객들의 신청곡에 대한 일부 화답도 따랐다. 정엽의 「Nothing better」과 이소라의 「트랙3」 등이 불려지면서, 깊어가는 가을밤.



메이트의 계획은 어떻게 될까.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텐데.


(헌)“계획이 많아요. 앨범도 준비하고 있어요. 녹음을 시작했고, 정규는 아니고 미니앨범을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일지는 모르나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랜트 민트 페스티벌에도 나가야하고. 연말에는 (단독)공연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열심히, 진지하게, 가볍지 않게, 실망하는 모습이 있어도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해요.”


(재)“계획이라면, 연말 공연 때는 드럼을 앞으로 빼도록 하겠습니다. (와~) 모두 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앞 두줄만 보이네요. 다 예뻐보이고. (웃음) 팬들 만나는 게 아직 어색하고 쑥스럽긴 해요. 적응도 안 되고.”


(준)“무척 좋았어요. 데뷔 5달, 많은 일이 있었고 경험하고, 많은 사랑도 받고. 공연을 알차게 준비하고 싶어요. 단독공연을 안 하냐 묻는 분도 계시는데, 정말 멋진 공연을 하려고 Keep하고 있어요. 한번을 해도 여러분 가슴 깊이 박히고 깊은 울림이 있는 공연을 준비할게요. 감사하단 말 밖엔 없고, 어느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메이트와 함께 호흡했던 가을밤은 그렇게 익어갔다. 사진과 사인 공세에 시달리는 꽃미남 인디돌이 누군가에겐 가을의 선물이 되리라. 당신에게 어떤 메이트든 있다면 좋겠지만, 행여 혼자여도 좋을 시간이라도, 뮤직메이트가 당신의 시간을 달래고 안아줄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메이트. 그리고 문득 내 그리운 메이트에게 들려주고픈 노래, 난 너를 사랑해.


[예스24 기고문]


최고의 노래에 투표하고, 메이트를 만나세요!
Best of Mate

투표기간 : 2009.09.10~09.24
순위 곡명 투표수
1위 그리워 109
2위 너에게... 기대 96
3위 하늘을 날아 81
4위 난 너를 사랑해 59
5위 우울한 너에게 53
6위 고백 40
7위 안녕 31
8위 Come Back To Me 28
9위 26
10위 It's Alright 23
총 투표수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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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이 말을 믿고 좋아해요. ^.^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물론, 1분, 3분, 2시간이라는 숫자에 연연할 필요는 없죠.
음식이나 음악, 영화가 주는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얘기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아휴~ 세계는 넓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도 아직 엄청 넓어요.
직접 발을 디뎌서 세계와 사유를 넓히는 방법도 있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어떻게 할까요.

맞아요. 해당 국가의 음식을 맛보는 방법이 있죠.
터키. 터키는 인류문명에서도 중요한 역사와 의미를 지닌 국가죠.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형제국이니 뭐니하면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것이 터키.
축구를 통해 그렇게 접하기도 했지만, 제가 터키를 처음 맛본 것은 커피를 통해서였죠.

터키(식) 커피, 잠깐 얘기할까요?
커피를 발견한 곳은 에티오피아지만, 커피콩을 볶아서 마신 곳은 아라비아 반도였어요.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아라비아 반도를 지배할 무렵에도 그렇게 커피를 음용했어요.
터키식 커피포트인 이브릭(
Ibriq).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마시는 방법이었죠.
15세기에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 커피하우스에 마구마구 몰려들었대요.
그 이전에 커피는 이슬람 사원의 철저한 통제 하에 경작되고 관리됐고,
밤 새워 명상을 하는 수도사에게 커피의 각성효과가 도움이 돼서 종교적인 의미가 컸죠.
당시 유럽은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며, 멀리한 탓도 있지만, 이슬람에서도 유출을 꺼렸어요.

어쨌든 커피하우스는 문전성시였나봐요.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자연스레 여론이 형성되겠죠?
정치와 예술을 논하고 사상과 철학을 주고 받는 그런 장소로서의 커피하우스.
커피는 곧 '이성을 각성시키는 음료'라고 각인이 됐고,
커피하우스는 시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발생되는 장소가 됐어요.
(프랑스에서는 커피하우스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집결지가 되기도 했어요!)

아, 이러다보니 지배층은 당연히 커피하우스를 싫어하겠죠?
오스만투르크의 카이르베그라는 통치자는,
커피하우스를 중심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커피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어요.



어쨌든 터키의 커피는 우리가 지금 흔하게 마시는 에스쁘레쏘 머신이나 드립방식이 아닌,
이브릭(Ibriq)이나 체즈베(Cezve)라는 긴 손잡이가 달린 커피기구가 있었어요.
에스쁘레쏘용 원두보다 더 곱게 갈아서 이것을 넣어서 물을 넣고 끓이는 방법이었죠.
커피는, 진~하고 걸죽~합니다. 커피 공부하면서 마셔봤어요.
당시 터키사람들은 커피를 마신 뒤 커피기구 바닥에 남은 커피찌꺼기로 점을 치기도 했다죠.

터키 커피에 대한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캬~ 얼마나 강렬한 맛이면 이렇게 표현을 했을까요.

한편으로 커피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통해 확산됐어요. 그 제국의 몰락과 함께 말이죠.
그렇게, 터키가 세계사에서 가지는 의의만큼이나 커피도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아, 본론이 늦어졌네요.
케밥. 얘기는 들어봤죠. 터키에서 즐겨먹는 요리라는.
터키는 아직 가보질 못했고, 케밥 파는 곳이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맛보지 못했던.

듣자하니, 터키요리가 세계3대 요리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프랑스, 중국 요리와 함께.
흠. 군침이 돌만하죠? 스읍~
케밥의 원래 뜻은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라는 뜻이래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햄버거와 함께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위키백과는 케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케밥(아랍어: کباب 카밥[*], 터키어: Kebap)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와 아라비아 사막을 누비던 유목민들이 쉽고 간단하게 육류를 요리해 먹던 것이 발전한 것이다. 지금은 터키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 주로 양고기를 사용하지만 쇠고기와 닭고기를 쓰기도 하며, 빵과 곁들여 한 끼 식사로 애용된다. 케밥의 종류는 지방마다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고기를 겹겹이 쌓아올려 빙빙 돌려 불에 굽는 되네르(Doener, 터키어: Döner) 케밥, 진흙 통구이인 쿠유(Kuyu) 케밥, 쇠꼬챙이에 끼워 구운 시시(Shish, 터키어: Şiş) 케밥, 도네르 케밥에 요구르트와 토마토 소스를 첨가한 이슈켄데르(Ishkender) 케밥 등이 있다.

마침, '더 케밥 스탠드(The Kebab Stand)'라는 케밥전문점이 생겼는데,
2인 식사권이 생겨서 더 케밥 스탠드 신촌점을 찾았어요.



작고 단촐하더군요. 심플해요.
케밥 메뉴도 3개. 치킨, 비프, 치즈.

태어나 처음으로 먹은 케밥.
함께 간 친구녀석은 그날 간식으로 회사 근처에서 생전 처음으로 케밥을 먹었다는데,
저 덕분에 하루에 두번이나 케밥을 먹는 영광(?)까지!

저는 비프, 친구는 치킨 케밥을 시켜서 먹었어요.



음, 뭐랄까.
맛은 깔끔하고 담백해요.
한끼 식사로는 제겐 부족한 수준이지만,
패스트푸드로 만들어진 햄버거보다는 나아요.
패스트푸드 햄버거랑 비교하기엔 정말 자존심 상할 법한.

아주 정통식 케밥은 아닐 법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나온 것이라,
언젠가 정통식 케밥을 먹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이런 패스트푸드 형식의 케밥은,
1971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한 터키 식당의 점원으로 일하던 16실 소년의 작품이라죠?
원래 케밥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터키 땅을 지배하던 당시,
커다란 접시에 케밥을 담아 야채와 빵을 곁들여 여럿이 함께 먹었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케밥을 처음 맛보며,
잠시 터키를 다녀왔어요. 터키의 어떤 역사와 잠시 마주한 느낌.
좀더 그 역사와 문화를 맛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모름지기, 음식을 맛보는 것은 세계를 넓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음식을 맛보고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마주대하는 것 역시, 좋은 경험이 된다는 것.
케밥, 터키 이주노동자의 힘

언젠가 기회가 만들어서,
터키를 찾아 그들이 만들어낸 케밥과 커피를 맛보고 싶어요.
어때요? 함께 가실래요? ^.^ 케밥과 커피는, 제가 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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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있지~
누군가 이런 소원? 소망? 을 말하는 거야. 
'이별 없이 사랑하는 것!'

흠, 그게 과연 가능할 것 같니, 라며 딴죽 걸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고!
걍, 난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이별 해도 사랑하는 것.

이별을 겪고, 내겐 더 이상 사랑따윈 없니 뭐니하며 자폭하는 것보다,
이별통증 감내하고, 다시 사랑을 틔우는 게, 그러니까 나의 바람~

가능하면,
만남의 기술보다 이별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언젠가 내가 얘기한 적 있잖아.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2008/04/25 - [메종드 쭌/무비일락] -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맞아.
만남이
우연에 의해 조작된다면, 이별은 얄짤 없어. 의지가 작동하지.
그렇다고, 이별이 꼭 배척받아야 할 무엇은 결코 아니라고!
살다보면, 이별이 꼭 필요한 순간도 있기 마련. 알지?

어준 딴지총수의 야그마냥,
진즉에 끝냈어야 할 것을 질질질 끄는 이별이 나쁘고,
사랑하는 동안, 다 쏟아붓지 못하고 어설프게 남기고 만 애정이 나쁜 고얌~
'가장 슬픈 이별도 나쁜 지속보다는 낫다'는 말, 그래서 왕공감.


때론, 사랑은
이별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랄 때, 더 튼튼해질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이별할 때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실연 당해도 세계가 넓어질 수 있길.
2007/09/05 - [메종드 쭌/사랑, 글쎄 뭐랄까‥] - 실연극복법

설마, 이 유머를 이해 못한다면?... 데이트 신청하겠음. 푸하.


그런데, 이런 남자, 어때?

아는 것도 많고, 본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많지만..
"그것도 몰라?"라며 척 하는 것 보다는 "그건 말이지..."로 얘기해주는 남자.

마치 제임스 딘이나 된 것처럼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차창문 내리고 한팔 걸쳐
담배 피워대고 꽁초는 달리는 차밖으로 아무렇지않게 휙~버리기보다는,
차에서 담배를 피다가도 먹다 남은 커피캔이 있나 살펴보는 남자.

입에서 나오는 말의 반 이상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욕이
남자다움과
터프함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지적이고 부드러운 말투가
때론
더 강한 임팩트가 있음을 알고 있는 남자.

.............
.........
.......
.....
...
.

그 남자, 혹시 당신이냐고?
흠. 노노노노노노~ 코멘트. 우하하. 

오늘, 어떤 한 소원에 대한 코멘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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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90년대의 추억.

그의 노래를 듣자면, 생각나는 어떤 추억도 있고.


지난 9월, 노래가 아닌 책 때문에 그를 만났다.

강남의 어느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도 약간 늦었지만, 내가 약속 장소를 착각하는 바람에, 나는 더 늦어버렸다. 헐~

그런 일은 처음이었는디. 어쨌든 이너뷰는 무사히 마쳤다. 


직접 만나 짧게나마 이야길 나눠보니, 뭐랄까.

경제적으로나 교양면에서도 좋은 집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잘 자란 강남 중산층의 느낌 있잖나.


만나기 전, 한 친구가 옛날 스캔들에 대해 한 번 물어봐 달랬는데,

에이~ 별 궁금하지도 않고, 그런 걸 어떻게 물어보겠어. 소심해서. ㅋㅋ 


그가 낸 책 , 『뮤직비타민』은,

아이를 키우는,

특히 아이에게 음악과 자연스레 만나게 하고픈, 부모에겐 나쁘지 않을 듯.

뭐, 난 애가 없으니까... 아, 물론 아내도 없고~

당장 와닿진 않았으나, 아이가 있다면 음악일기, 음악행복, 함께 연주하는 악기 등등 책에서 언급한 음악적 교감을 꼭 나누고 싶다는, 나눠야겠다는 생각은 들더라.   



“음악을 통해 아이들과 100% 교감이 가능하다”

[만나고 싶었어요] 『뮤직비타민』 지은 가수 김현철


따지고 보면, 그 노래 때문이었다. 내 살던 고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춘천을 그리고, 그곳에 갈라치면 꼭 기차를 타야 한다고 고집했다. 다른 교통수단은 왠지 마뜩찮았다. 낭만도 흥겨움도 훨씬 덜할 것 같은 기분.


어떤 연애에서 그녀와 나의 첫 여행지가 춘천으로 정해진 것도 순전히 그 노래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춘천 가는 기차>를 듣고, 우리는 느닷없이 춘천을 가기로 했고, 기차를 탔다. 물론 지금 그녀는 내 곁에 없고, 춘천은 내게도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이다. 나를 데리고 갔던 춘천 가는 기차는,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데리고 간다. 그때 그 기차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와 나의 이야기와 사랑, 우리의 체취를.

 

그저 사소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 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음악(노래)의 힘은 세다. 가보지도 못한 어떤 곳에 끌림을 느끼거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교감하기도 하고, 그건 음악이라는 매개체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3~4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보는 것이 가능한 것, 그것도 음악이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면서, 다른 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음악은, 그렇게 센 친구다.   


그런 면에서, 아이를 둔 부모가 아이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음악이다. 음악을 통해 함께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아이의 감(수)성도 자연스럽게 키워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행복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준다”는 사람이 있다. <춘천 가는 기차>의 가수 김현철이다. 벌써 데뷔 20년을 맞이한 그가, 이번에는 앨범이 아닌 책을 내놨다. 『뮤직비타민』(김현철 지음/와이쥬 크리에이티브 펴냄). ‘감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김현철만의 방식’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궁금했다. 어느덧 두 아이이의 아빠가 된, 데뷔 20년의 중견(!)가수가 던지는, ‘아이와 음악 친하게 만들기’ 프로젝트. 어떻게 하면 아이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고민하는 당신이라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겠다. 지난 8일 그를 만났다. 가수 김현철이 아닌, 책의 저자로 마주친 그. 여전하면서도 달라졌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마주한 그(의 노래)와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좋았다. 물론, 아빠가 된 뒤, 아이들을 위한 노래와 책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한 그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전하고, 언제쯤 새 노래를 들어볼 수 있느냐는 앙탈(?)도 덧붙였다.   



-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낸 것에 대해 ‘무리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첫 책을 냈는데, 소회나 느낌이 어떤가.

“어려웠다.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어렵지만, 처음 곡을 썼을 때처럼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책이 나오고 보니까, 대견하기도 하다. (웃음) 한편으로는 ‘더 잘 쓸 수도 있었는데...’하는 아쉬움도 있다. 창작자는 누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런 감정 가지잖나. 책은 2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썼다. 늘 해오던 생각이니까, 그것을 정리한 셈이었다.”


- 책에 보면, 아이에게 음악을 알려주는 것에 대해, ‘교육’이라는 말 대신 ‘행복’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다. 행복이라고 일컬은 것에 대해 얘기한다면.


“대개 교육이라고 하면, 수학이나 과학을 예로 들어보면, 커리큘럼이 오래 전부터 있었고, 가다듬어졌고, 교육화 시켜서 나름 굳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울 땐, 차례가 있다. 수학을 할 땐, 덧셈부터 하고 뺄셈으로 가고, 미분하고 적분으로 가잖나. 그러나 음악은 그렇지 않다. 음악은 말하자면, 교육이 아니다. 같이 듣고 즐기는 것이다. 그만큼 일상적인 것이다. 같이 듣는 데서 오는 행복감도 있잖나. 그런 일상의 행복을 강조하고 싶어서 행복이라는 말을 썼다. 다시 말하지만, 음악은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다음 단계로 꼭 가야 하는 무엇도 아니다.”


- ‘음악을 듣는 우리 가족’의 풍경을 묘사한다면 어떻게 말하고 싶나.


“그냥 자연스럽게 듣고 부른다. 각자가 듣고 싶은 포즈대로, 듣고 싶은 만큼 음악을 듣는다. ‘자, 음악 들어야 할 시간이다’, 이런 게 하면서 듣는 게 아니다. 그냥 틀어놓으면 좋은 거고, 같이 들어서 좋은 거고. 행복감을 느끼고. 많은 부모들이 대개 진도를 따지는데, 음악에는 진도를 따질 수 없다. 어떤 게 어렵고 쉽고, 이런 것도 없고. 음악에는 귀함과 천함도 없다. 취향이 있을 뿐이다. 수학은 1차 방정식을 모른다고 하면, 무식하다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음악은 ‘합창’은 알고 ‘비창’을 모른다고 무식하다고 할 수 없다. 진도 따지는 부모님들은 그래서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 그 얘기 책에서 인상 깊더라. 음악을 배울 때, ‘진도가 아닌 완성도’라는 말. 체르니 40번이나 바이엘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즐길 수 있도록 풀어두면서 음악을 만나는 것을 강조했다. 더불어 부모가 아이에게 아낌없이 선사해야 할 것은 재촉하는 기대가 아니라 기대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결국 부모의 과도한 기대나 조급증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 같은데... 


“그런 의미로도 해석될 수도 있겠다. 진도를 따지는 거나 과도한 기대를 갖는 것이 전체적으로 (아이에게) 나쁜 영향 미칠 수 있다. 주변에 봐라. 아이들 대부분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다. 그러나 지금 와서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 않냐. 진도주의 때문이다. 어머니들이 재촉하니까. 음악을 음악으로 배우지 못하고, 학문이나 기술로 배워서 그런 거다.”


- 어린 시절, 이런저런 음악을 듣고 연주․작곡하길 즐겼다고 했는데, 부모님이 참 좋은 분이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어떤 음악행복을 만나게 해 주셨나.


“음악이 좋다는 건, 부모님한테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 듣고 싶을 때 듣고, 듣고 싶지 않을 때는 안 듣는. 그래서 음악이 좋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음악을 할 때도, 실제로 ‘네가 음악을 하고 싶으면 하고, 음악 하기 싫으면 관둬도 돼’라고 하셨다. 그러다 또 하고 싶으면 또 해도 된다고 하셨고. 내 아이도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겉멋에 들리지 않도록 하려면 어릴 때부터 훈련이 돼야 한다고 본다.”


- 부모님은 어떤 음악을 주로 들려주셨는가.


“꽤 많은데... 팝송이 많았던 것 같다. 어머니가 팝송을 자연스럽게 들려주시고, 가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음악 그 자체로 들었다. 폴 앵카, 마이클 잭슨, 올리비아 뉴튼 존 등등 굳이 누구를 들지 않더라도 음악이 늘 있었다.”


- 지금 가족 사운드트랙을 만든다면, 어떤 음악들로 채워질 런지.


“부모가 가져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위주가 돼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주장해서,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것은 곤란하다. 아이들이 주장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부모는 놀 자리를 펴주거나 멍석을 깔아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신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의 음악이 중요하다.”


- ‘음악일기’라는 아이디어가 참 좋더라. 음악일기의 효용이 있다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아이가 음악을 듣는 것은 단순하고 곡도 많지 않다. 한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쓸 수도 있는데, 그 느낌이 다르다. 같은 노래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하루에 아이의 발달상황 같은 걸 지켜보기에도 좋고. 어제는 싫다가 오늘은 좋다고 그러기도 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변덕이 심한 것이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감성은 시시각각 다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 사랑받는 어른, 매력적인 어른이 되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이 학원에서 벗어났다고 음악까지 등지게 하지는 말자고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음악교육은 음악을 등지게 하는 측면이 강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생각하나?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싫어하고 등지게 되는 게, 다 그런 거다. 특히 영어. 되지도 않는 영어를 강요해서 그런 것다. 음악도 마찬가지고. 음악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데, 학교에서 음악교육은 강요하고, 주입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대개 음악시험을 본다. 음악사 시험을 보는 건 이해하지만, 음악은 정말 시험과 관계가 없다. 그저 느끼는 거다. 음악을 들으면 느낌이 풍부해지고 생각의 각이 넓어지고 사람이 유연해진다.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는 게 아니고, 우연하고 오픈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 지속적인 음악교육, 아니 음악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나라에서는 구체적인 방식을 너무 원하는데, 그런 마인드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음악일기가 좋으니까, 앞으로 이거 써’ 그러면, 어느 아이가 좋아서 음악일기를 쓰겠나. 이건 음악을 등지라고 하는 거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인 방법도 없다. 우선은 마인드가 제일 중요하다.”


- 집안에서 DJ로 산다는 것에 대해. 방송국 DJ보다 훨씬 어렵다고 했는데.


“조그만 아이들도 취향이 있고, 금방 또 바뀌기도 하더라. 그리고 아이들은 공감각적이라 만화영화 주제가 그런 걸 좋아한다. 왜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만화영화 주제가를 아이들과 함께 부르지 않는지 모르겠다. 30분만 시간 내면 배울 수 있는데, 안 부른다. 싫어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아빠도 같이 부르는 노래가, 진짜 노래다. 부모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라. 애들이 좋아하면,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는 그런 게 좋다.”


-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주는데 있어 주의할 점이 있다면.


“대중음악도 상당히 좋다. 대중음악에서도 좋은 음악이 꽤 많긴 하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거나 저속한 그런 것들에 노출되는 것은 부모가 막아야 한다. 그 밖에 음악이라면 다 좋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차르트 이펙트’처럼 너무 클래식 일변도인 것도 잇다. 이 책도 그래서 평범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아빠들이 봤으면 한다. 세계 제일의 바이올리니스트나 음악천재로 키우는 그런 걸 다루지 않는다. 그냥 아이들 잘 자라는 데 조금 더 감성적이었으면 하는 것을 담았다. 진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애들은 교육방식도 다르다. 이 책은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아이들의 부모를 위한 거다.”


- 악기도 어릴 때부터 다루면 좋잖나. 2만원짜리 바이올린으로 교감하는 것도 정겹더라.


“악기도 마찬가지다. 결코 진도로 놓고 시키면 안 된다. 뭐든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을 하는 건 다르지 않나. 일이든 뭐든. 사람은 그렇게 끝없이 재미를 추구하면 사는데, 일단 악기도 재미있어야 한다. 일단 흥미롭게 해야 하고.”


- 애니메이션 <카>의 OST를 들으며 아이들과 흥겨운 시간을 보낸 에피소드도 좋았는데, 음악으로 아이들과 교감하는 즐거움에 대해.


“교감은 100% 가능하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어른과 아이와의 소통에는 반드시 음악이 있어야 한다. 대개 부모라는 게 서른 살쯤 많지 않나. 나도 둘째를 서른여섯에 봤는데,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겠나. 그게 음악이다. 책에도 있지만, 친구 한 명이 마이클 잭슨을 아는 중학생 아들이 있는데, 그 둘에게는 마이클 잭슨이 또 다른 매개체다. 부모와 아이의 그런 매개체로 음악이 가장 힘에 세다. 아버지와 아들이 싸울 수도 있다. 그럴 때,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들었던 노래를 틀어 놓는다던가하는 식이다. 그러면, 아빠가 화해하자는 뜻이구나 하고 아들이 여길 수도 있다. 반대로 아들이 그럴 수도 있고. 그게 음악이 가진 힘이다.”


- 자신의 노래 중, 아이들에게 권해주고픈 노래가 있다면.


“책에도 그런 걸 쓰면 그 곡만 전부 다인 줄 알까봐 쓰지 못했는데... 뭔가를 추천해달라는 것보다 뭐를 추천해주지 않겠느냐가 더 좋겠냐. 아까도 말했지만, 일부의 저속하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노래는 아이들이 접속하지 않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다.”



- 음반이든 책이든, 아이들을 위한 음악선물도 좋지만, 나처럼 가수 김현철을 기다리는 성인 팬들도 많다. 지난 2006년 12월에 발매된 9집 앨범이 마지막이었는데, 언제쯤 함께 늙어가는 성인들을 위한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인가.


“올해 데뷔 20주년이라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다. (웃음) 어쨌든 지금 (새 앨범을) 준비하있다. 발매는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모르겠다. 앨범은 완성도니까 언제까지 내겠다고 말은 못하겠다. 어쨌든 준비하고 있고,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 팬들에게 인사 한 말씀, 해 달라.


“음,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음악이라는 것은 나랑 떼래야 뗄 수 없는 거니까, 계속 음악을 하고 있고, 결코 음악을 그만두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앨범을 내는 것도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늘 음악과 함께 하고 있으니 좀더 기다려 주시면 충분히 행복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다.”


[YES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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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니까 클래식, 어릴 땐 버겁다고만 생각했는데,

차츰 세월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면서 클래식이 귀에 조금씩 들어온다.

클래식이, 곧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음악이기 때문일걸까.


지난 5월 찾았던 고향에서 만난 고향 사람.

드라마 <베트벤 바이러스>의 음악감독 서희태.

그때, 지휘자도, 아니 지휘를 한번이라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라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아,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가 말이다! 

지휘도 그렇지만, 악기!

재즈피아노, 꼭꼭꼭.


무엇보다, 내 오랜 좋은 친구, 기 녀석과 함께 했던 강연의 시간.
그때 녀석의 연애, 가슴 뛴다는 그 사랑 얘기를 듣고, 내 일처럼 좋아했었지. ^.^
그러니까 오페라의 노래 '오랜만에 우린'이 떠올랐던 그때 그 시간.

사랑에 빠져있다는 너의 그 얘기에

나도 맘이 설레.. ♪       


이번엔 놓치면 안돼.. 그동안 너무

넌 외로웠잖아. ♬


그 어느해 너의 생일에 

여자친구 하나 없던 우리..♩


어깨동무를 하고 거릴 헤맸지..
그날을 기억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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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클래식을 말하다

[아름다운 만남] 『베토벤 바이러스』의 저자 지휘자 서희태


클래식. 그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잠 잘 때 듣기 좋은 음악? 듣기만 해도 잠이 오는 음악? 아니면 영혼을 파고드는 음악?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고개를 절래절래? 단정 지을 순 없지만, 클래식은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거리감이 있어요.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왠지 어려워 보여요. 같은 음악인데, 왜 유독 클래식에 대한 편견만 강할까요.


하지만 그것 아세요? 클래식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 여느 다른 장르의 음악보다 더 가까이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 그것이 클래식이라고 인식도 못할 정도로. 여기 이 말을 볼까요.


“클래식은 조회시간에도 들리고, 지하철 환승할 때, 전화 수신대기 시간에, TV 화면 조정 시간에, 심지어 청소차가 후진할 때도 들려오는 게 클래식이다. 곡의 제목만 몰랐을 뿐 우리는 늘 클래식과 함께 살고 있다. 현관의 벨 소리,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 등등 늘 듣고 꾸준히 접하고 있는 게 클래식이다.” (pp.62~63)


정말 그렇죠?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오고, 클래식은 그림자처럼 우릴 따라 다니고 있었던 거예요. 이 말, 서희태 지휘자가 한 말입니다. 누구냐고요? 토벤이. 강 마에. 두루미. 빙고. 맞아요. <베토벤 바이러스>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난해 높은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김명민이 연기한 강 마에, 최강이었죠. 그런 강 마에를 빚고, 드라마 전반의 음악을 담당한 사람. 오케스트라 지휘자 서희태입니다. 아마 강 마에의 헤어스타일이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죠.


그가 책을 냈어요. 드라마 제목과 같은 『베토벤 바이러스』. 드라마 뒷얘기에 더불어 좀 더 클래식과 친숙해질 수 있게끔 친절하게 풀어낸 책이에요. 그리고 책도 낸 김에 모처럼 고향(부산)을 찾아 어떻게 하면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을까를 강연했어요. YES24와 롯데시네마가 마련한 5월의 ‘아름다운 人터뷰’에 초대된 그를 쫓아 22일 부산의 센텀시티 롯데시네마를 방문했어요. 그날 그가 들려준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당신에게도 말해줄게요.


클래식, 시간의 무게를 이겨낸 음악


그는 대뜸 송대관의 ‘네 박자’를 얘기하네요. 알죠? “쿵짝쿵짝 쿵짜라쿵짝 네 박자 속에~♬” 즐겨서 부르는 노래랍니다. 클래식 지휘자가 부르는 트로트라. 왠지 재밌는 그림 같죠? 하하. 그가 묻습니다. 이런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차이가 무엇인지. 클래식 좀 안다고 하면 뭔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같고, 교양이 넘칠 것 같은 그런 편견들. 있지 않나요? 그러나 대중음악은 그렇지 않고. 그러나 그는 얘기합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클래식 전공자의 확언.


그것으로 끝나면 재미가 없겠죠? 역시나 ‘다만’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클래식은 시간의 무게를 견뎌냈다는 것이 다릅니다. 300~400년의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것이 클래식 음악이에요. 지금도 작곡되고 있고, 당장은 빛을 못 봐도 300~400년 연주되면 클래식이 되는 거죠.” 아하. 그러니까 방점은 시간의 무게. 그러니까, 고전.


책에도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클래식 Classic’은 고전적이라고 표현돼 있다. ‘최고의 클래스 Class’의 뜻에서 파생한 것으로 ‘최고 수준의, 고상한, 역사적, 문화적 연상이 풍부한, 유서 깊은, 권위 있는, 정평 있는, 유행에 매이지 않는 전통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달려 있다.”(p.60)



한때, 그래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쥬얼리의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이나 원더걸스의 ‘텔미’, 손담비의 ‘미쳤어’, 소녀시대의 ‘GG’... 우리를 열광시켰던 이 노래들.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따라부르게 만들었던 이 노래들. 그러나, 지금 부르세요? 유행도 썰물처럼 지나갔죠. 노래방 가서 한 번씩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를까. 이들의 생명력은 이미 다했죠. 그야말로 대박도 터뜨렸고. “지금 H20, (관객들 웃음) 아 HOT라고요? 여하튼 지금 HOT 노래를 부르면 한물 간 노래하냐고 타박을 받아요. 지금은 ‘쏘리쏘리’죠. (웃음)”


듣고 보니 그렇죠? 당신의 더듬이도 더 이상 철 지난 유행가에 있질 않잖아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더듬이를 세우고 있지. 그러나 역시 클래식은 다른 법. “대중음악의 문제점은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거에요. 클래식은 그렇지 않죠. 클래식은 우리나라의 장과 같아요. 잘 발효되면 된장, 고추장이 되는. 더구나 1700년대 이전에는 녹음되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음악들이 있죠. 그게 클래식입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 “클래식 음악은 발효된 장醬맛 같다. 한국의 장 문화는 오랫동안 반지하 항아리에서 묵어서 발효가 된다. 클래식 음악도 장맛처럼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음악들을 말한다.… 시간의 무게를 잘 견뎌서 지금도 생명력을 지닌 음악, 그것이 클래식이다. 세월의 검증을 거친 음악이면 그게 클래식이다.”(pp.60~61) 


이렇게 좋은, 시간을 뚫고 우리와 교감하고 있는 음악들이 그럼 왜 외면을 받을까, 궁금하죠. 서희태 지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TV에서 재밌는 것을 많이 보여주다보니 사람들이 찾아서 하는 문화 활동을 주저해요. 단편적으로 유럽에서는 왜 이렇게 오페라에 열광하느냐. TV가 재미없어서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TV에서 안 보여주는 게 없으니, 오페라나 클래식 같은 것을 향한 열망이 없지 않나 싶어요.” 일리가 있죠? 끄덕끄덕.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클래식


클래식이 이렇게 세월의 무게를 견뎠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왜 들어야하지, 하는 의문이 생겨요? 그는 하이든이 완성한 소나타 형식에서 그 이유를 찾네요.


“대중음악은 재현없이 한번 쭉 발전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소나타 형식은 재현돼서 다시 돌아와 안정을 찾아요. 이성과 감성이 불균형을 이루는 아이들이 많은데, 클래식을 들으면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찾는데 도움을 줘요. 연구결과도 있어요.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놓고 실험을 했더니,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아이들의 평균점수가 9점이 높았어요. 물론 단편적인 정보지만, 논문이름도 ‘모차르트 효과’로 네이처지에 실리기도 했죠.”


아, 저 말 들어봤죠? 그래서 한때 모처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모차르트를 들려주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물론 이 같은 효과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죠. “클래식이 정서적인 안정을 줘서 감성이 안정을 찾음으로 인해 학업에 도움이 됐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2008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어릴 때 음악활동이 활발한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어요,”

 

실제 1975년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 경제학자이자 오르가니스트가 아이들에게 악기를 사주고 음악을 가르쳤대요. 그렇게 음악과 마주하며 살았던 한 아이가 커서 LA 차기상임지휘자로 발탁이 됐는데, 이런 말을 했대요. “음악은 우리에게 삶의 충만을 줬고, 지금 음악은 나의 삶이다.”


열악한 경제상황이었던 베네수엘라에서도 음악은 그렇게 꽃을 피웠고, 덕분에 현재 차베스 대통령도 자국의 50만명 어린이들에게 음악교육을 시키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도 다문화․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음악교육을 무상으로 시켜주는 제도가 지난해부터 시작했대요. 현재 7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좀 더 넓혀질 예정이랍니다.  


서희태를 사로잡은 베토벤


그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하나의 계기. 그는 어릴 때, 오케스트라를 들으면 우주의 소리라고 생각했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워크맨이 우연히 그의 손에 들어왔는데, 바로 레코드 가게에 달려갔습니다. 그때 처음 샀던 테이프가 요한 스트라우스의 황제왈츠. 무척 좋아서 수업시간에도 들을 정도였고, 그래서 선생님께 많이 맞았지만. 그 테이프, 지금도 갖고 있지만, 닳고 닳도록 들어서 소리는 더 이상 나오질 않는다네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을 사랑하게 됐고, 우주의 소리를 듣게 됐어요.”


그만큼 그는 음악에 매혹됐습니다. 특히나 베토벤의 음악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답니다. 베토벤의 9번교향곡 제1악장을 들으면서도 우주의 소리를 듣게 된 그는, 당시 부산시내 도서관이라는 도서관은 다 돌아다니면서 베토벤에 대한 모든 책을 섭렵할 정도였다니, 그의 베토벤 사랑은 유별난 면이 있었죠.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간 것도 별 다른 이유 없답니다. 오로지 베토벤.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 제목이 나온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죠?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곡을 썼다는 것을 지금도 믿지 못해요. 유학을 빈으로 간 것도 베토벤이 거닌 산책로를 거닐고 싶다. 베토벤의 언어였던 독일어로 말해보고 싶다. 베토벤의 후손들과 나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냥 베토벤의 흔적을 따라 숨 쉬고 싶었어요. 그래서 10년을 있었고.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하고, 여러분과 만나게 되고.


최근에는 베토벤을 사랑한 제가, 사람을 제대로 골라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왜 ‘베토벤 바이러스’냐고요. 베토벤은 악성이고, 거룩한 음악이죠. 그래서 위대한 음악, 거룩한 음악에 감염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바이러스’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써야 하느냐 고민도 했지만, 지금은 행복 바이러스니 사랑 바이러스니 하는 말도 많이 쓰잖아요.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바꾼 계기도 되지 않았나 봐요.” 


클래식 음악전도사의 꿈


그는 스스로를 ‘클래식음악전도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클래식을 좀 더 대중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지난 2002년 개그맨 전유성과 함께 한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음악회는 7세 이상 입장이 일반적인데, 5세 이상 입장하게 했지요. 1시간30분 공연을 했는데, 희한하게도 아이들이 떠들지 않았대요. 시작하기 전에도 떠들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음악회가 아이들에게도 재밌었나 봐요. 그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클래식은 늘 우리 곁에서 의식하지 않아도 울려 퍼집니다. 결혼식장에서 늘 듣곤 하는 결혼행진곡은 어때요. 피아노 솔로로 많이 듣곤 하는데, 그는 사실 이것이 3관 편성의 곡임을 알려줍니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축하행진곡입니다. 오케스트라 80~90명 정도가 연주하는 곡이죠. 신부 입장할 때 울려 퍼지는 곡은 바그너의 ‘엘자의 결혼행진곡’이죠. 4관 편성의 관현악과 4부 합창곡이에요. 우리는 이것들을 피아노 솔로로 듣고 있는데, 제대로 들으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 그는 대중과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6월에 콘서트를 가지는 것을 비롯, 11월에는 홈페이지에서 신청곡을 받아 콘서트를 들려주는 것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 가곡쇼 또한. “클래식을 성악가가 아닌 락밴드나 아케펠라, 대중가수들이 하면 어떨까요. 그것을 해보고 싶어요. 10월에 열리는 한국가곡음악회에서 지휘를 맡기로 했는데, 아케펠라, 성악가, 시 낭송 및 오케스트라가 한데 모입니다. 그런 진일보한 한국가곡 음악회도 기획하고 있고, 내년에는 한국가곡쇼를 할 겁니다.”


그렇다면, 클래식과 친해지려면 어떡하면 될까. “문화(Culture)는 어원이 경작하다(cultivate)에서 왔어요. 우리 삶을 경작하는 것이 곧 문화라는 얘기죠. 클래식과 친해지려면, 클래식을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감상하는 법을 알아야 해요. 제 또래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어릴 때, 자주 보던 <장학퀴즈>의 음악은 하이든의 트럼펫 연주이고 죠스바 CF에 나오는 음악은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 4악장이죠.


또 원래 저한테 출연 제의가 들어왔던 쿠쿠밥솥 CF에는 신세계교향곡 4악장의 다른 부분이 쓰였죠. 학교수업 종소리는 소녀의 기도이고, 쓰레기차의 음악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입니다. 이런 곡들 여러분들도 잘 아시잖아요. 그렇게 클래식과 친해지려면 간단하고 이름 외우기 쉬운 클래식부터 들으세요.”


무엇보다 느낌 그대로 흡수하는 것. 그러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 마에가 새로 온 무미건조한 최 시장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며 그 느낌을 설명하는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요. “누구와 함께 듣는지, 어느 장소에서 듣는지, 어떤 상황에서 듣는지에 따라 음악은 항상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별 것 없어요. 느끼는 그대로 들어 주시면 돼요. 영화 <미션>을 보면 가브리엘 신부가 오보에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어요. 원주민들이 그 음악을 듣고 무기를 내리고 가브리엘 신부를 마을로 모셔가죠. 칼이나 창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음악이에요. 음악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음악, 그 아름다운 희열을 위해



클래식. 서희태 지휘자의 얘기를 듣자니,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네요. 음악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고요. 음악이 늘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하나라도 악기를 한번 다뤄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특히나 아이들이 있다면 콘서트장에도 데리고 가고, 음악적 환경에 노출시켜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함양과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실천적인 방법 중의 하나.


 “악기 하나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자기만의 방을 하나 갖는 것이라고 본다. 힘들고 외로울 때 혼자 연주할 악기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며 행복의 요소다. 지금부터라도 한 가지 악기를 선택해서 그 악기와 친해지는 건 어떨까. 만약 악기를 배우는 것이 힘들다면 악기 하나를 선택해서 그 악기를 사랑해보라. 그러면 클래식 음악이 더욱 친근하게 드릴 것이고 가요를 듣더라도 그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에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p.144)


[YES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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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박사의 표현에 따르자면, 나는, "인생 더러운 놈"이다. ^.~
'혁명'이라는 말에, 가슴이 훅 뜨거워지고, 심박이 불끈불끈 빨라지며,
피는 좌심실을 지나 대동맥으로 빨간불을 켜면서 흘러간다.

그러니까,
지난 11월7일이 그랬다.
역사를 들춰보자면, 볼셰비키 혁명(10월 혁명)의 92주년.
더불어, 뜨거웠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탄신일. 탄생 130년.

그 혁명질을 떠올리며,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에쓰쁘레쏘 룽고를 따랐다.
공식적으로 돈을 받고 처음으로 행하는 커피 수업이 있던 날.
골다방으로 찾아온 8명의 커피스트들을 위해 나는,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과 커피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모인 8명을 위해 가진 나의 첫 커피수업.
내가 이날 에쏘 룽고를 마시는 이유를 말했지만, 그들은 쉬이 알아차리진 못했을 터.

어쨌거나 그것이 나의 역사에선 하나의 선을 긋는 일이 아닐쏘냐.
내가 첫 수업을 한 날이 10월 혁명이 있었고 트로츠키가 태어난 날이라는,
괜히 혼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잔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사람의 많고 적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역사적인 순간은 늘 그렇게 소수에서 시작한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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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월10일).

나는 어쩔 수 없이, 랭보를 떠올렸고,

아무래도 그에 걸맞는 커피레시피는 '내 심장의 임무', 에스프레쏘 리쓰뜨레또.

그 검은 액체를 내 심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삶이든, 커피든, 두 번이 없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베를렌이 랭보와의 사랑을 회상하며, 아마도 나지막히 읊조렸을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검은 액체는 내 심장에 묻고 있었다.

네 생애 가장 빛나는 죄악이 있니? 너는 살아가는 동안, 그걸 만날 수 있겠니?

글쎄... 동성애까지는 내 취향이 아니니까, 그럴 것까진 없겠지만,

나는 심장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길 건넸다.

삶이야말로, 어쩌면 꾸역꾸역 삼켜야하는 비루한 생과 일상이야말로,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지 않을까.


.... 물론, 내 심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액체를 꿀꺽~ 삼켰을 뿐...



젠장, 바람 참 많이도 분다. 너도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를 그리는 것이냐.

아니면, 랭보의 시마냥,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퇴출시키며, 강제출국이나 시킬 줄 아는, 

이 기똥차게 엄한 시대, 찬바람을 막아주는 존재가 없음을 한탄하는 것이냐. 

<토탈 이클립스>라도 보고 싶은 날이다... 하~~~


자고로, 시인이 위대한 이유는,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랭보가 그랬듯, 우리에게 지금 이 시대의 진짜 시인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랭보의 이말도.

"시인은 길고, 거대한 타락에 바탕을 둔 모든 감각을 통해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1871년 5월 폴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나는 차츰 그가 세상과 절연했던 나이에 도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시인도 아니요, 꽃미남도 아니기에,

어느 순간, 그가 살았던 시간을 훌쩍 건너뛸 것이다.

다행스런 일이지. 하~~~


에라잇, 술 모임이나 가야지~ 랭보를 위하여~

오늘 누가 랭보를 떠올리기나 하겠냐만.

뭐, 어때. 내가, 내 심장이, 바람구두를 얘기하잖냐.

당신의 랭보는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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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랭보

11월에 생각하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침상 주위에 헝클어진 것들은 흡사 상복 같은데,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에서 탄식하고,

방안에 음산한 바람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가를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사랑 가득한 미소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 어린이들 몸 위에 모피나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문을 꼭꼭 닫아주어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 아르튀르 랭보, 「고아들의 새해 선물」 중에서 -


열다섯 살, 아직은 청소년이었던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0.20 ~ 1891.11.10)의 데뷔작은, 어쩐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연상 시킨다. 어머니가 없는 시대.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을 하는 존재의 부재에 시달리는 우리들. 열다섯의 천재시인의 눈에 비친, 어머니 없는 고아들의 시절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우리들. 찬바람이 불어줄 이즈음, 랭보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천재시인은,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 방랑이 질퍽댈 것 같은 11월, 세상과 절연했다. 아무 말 없이 훌쩍 떠난 연인처럼, ‘바람구두’를 신고 떠났다. 그것은 아마 외로움과 불화 때문이었으리라.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폴 베를렌과의 격정적인 연애를 끝내고 세상에 삼투압하지 못한 천재가 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카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았기에, 시큰둥해져버린 생. 더디 가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의 예술적 탐험은 조금이라도 더 가능했을까.


반항과 불화가 만든 시 세계


우리가 아는 랭보의 모든 것은 불과 5년, 열다섯부터 스무 살 무렵에 이뤄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조숙한 천재를 만든 것일까. 그의 생을 잠깐 훑어보자. 보병 대위였던 아버지는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과도한 엄격함과 아버지 없는 결핍감 사이에서 랭보는 반항을 꾀하고 자유를 갈구했다. 중학시절 은사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열여섯 살, 학업을 포기했다. 이듬해 스승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모든 감각의 타락을 통해서 절대자에게 도달”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탕아적이고 반항적인 천재의 기질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열일곱,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천재의 행보는 ‘견자(見者, voyant)’라는 말로 압축된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프랑스 철학자 엘베시우스, 루소와 보들레르 등으로부터 문학적․사상적 자양분을 흡수한 그는, 가출을 하고 방랑을 일삼았다. 시도 함께 익어갔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듯, 그의 시는 세상을 꼬집고 흔들었다. 동시대 유럽문명에 대한 회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한 혐오, 제 구실을 못하는 종교적 교리에 대한 경멸, 우월주의에 빠진 식민통치자들의 거만함과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부패와 타락을 향한 개탄 등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론자이기도 했다. 즉, 시인은 우주의 무한한 시공간을 꿰뚫고 개인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제약과 통제를 무너트리는, 예언자적인 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 세계를 펼쳤다.


십대의 천재시인은 그렇게 기존의 문학을 초월하려는 일대 모험에 나섰다. 그가 처음 견자라고 믿었던 시인이 바로, 폴 베를렌이었다. 대중들에게 세기의 스캔들로 더욱 많이 회자되는 랭보와 베를렌의 사랑. 대작이었던 「취한 배」를 들고, 그는 베를렌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1871년, 랭보는 열일곱의 나이였다. 문학적으로 서로에게 매료된 두 사람에게 닥칠 운명은 바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당시 베를렌은 결혼한 상태였지만, 끌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관계도 영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방랑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베를렌은 때론 갈팡질팡했고, 랭보는 지나치게 집착했다.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취한 베를렌이 랭보와 논쟁을 벌이다, 권총을 쐈다. 랭보는 왼손에 상처를 입었고, 베를렌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두 사람의 이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랭보는 이 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썼다. 베를렌은 이때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라고 회상했다. 형용모순이 빚어내는 이 아찔한 생의 기억, 예술가들의 특권일까. 베를렌이 랭보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다. 하지만 천재에게도 힘겨운 시기는 상흔을 남기는 법인가보다. 문학적 열의가 식기 시작했는지 랭보는 살 길을 모색한다. 그 시기를 관통하는 산문시집 《일루미나 시옹》(1886)은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랭보에게 더 이상 시는 모든 것이 아니었다.




바람구두를 신고 떠난 모험가


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서 -


부르주아와 물질만능의 부조리를 십대에 깨닫고 이를 조롱하고 저주하며 시대를 거스르던 랭보는 그래서 모험가였다. 예술적 방랑도 너무도 많은 체험이 압축된 탓일까. 새롭고 물질적 세계를 향한 마음의 쏠림 역시 강했다.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스무 살이 넘자 문학을 단념했고, 예술적 자아를 배신했다. 시를 황금과 상품으로 바꿨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무대로 상인이자 무기밀매상으로 남은 생을 보냈다. “오만이 잃어버린 자비보다 낫다”며 예술적 자유인으로서의 오만은 풀이 꺾인 것이다. 그것이 견자로서의 또 다른 방랑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돌아온 탕아’와 같은 레떼르를 거부했다. 시인과 무기밀매상의 간극이 메워지진 않지만, 한편으로 시 역시 세상에 저항하는 랭보만의 무기였음을 감안하면, 그것은 그만의 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혐오하던 물질세계에 빠져 지내다 한쪽 다리를 절단(매독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있다)하고, 홀연히 서른일곱의 나이로 쓸쓸히 맞이한 죽음. 삶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마냥 보내다 요절한 바람구두. 그 바람구두의 생이 끝난 지점은 11월이 맞다. 인생이 단 한번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그를 떠올리기에도 11월은 어울린다. 다만 이것은 거의 확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격정의 시절을 관통하면서 랭보에 매혹당할 순 있겠지만, 두 번은 없다. 랭보 역시 그러했으므로.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 - 뷰즈 2009 11·12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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