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인간들, 살아있는 사람들…

<카우보이 비밥> 마지막 화. 이런 얘기가 흘러 나온다. "다들 줄이 끊어진 연처럼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렇다. 2071년의 인간들도 지금과 다를 바 없나 보다. 이런 것,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일까. 에이, 웃자고 한 소리다. 심각해지지 마시라.

그런데 한참 멀어보이는 그 미래를 그리 쉽게 단정지을 수 있냐고? 오호, 당신은 진짜 미래가 알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오래오래 살아라. 실은 나는 시간의 흐름을 미래니 현재니 하면서 토막내고 싶은 게 아니다. 그것이 미래든 현재든 과거든 상관없다. 단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언급처럼 <카우보이 비밥>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곳엔 현실에 뿌리를 박되 깨지 않을 꿈을 꾸면서 삶을 지탱하는 어떤 현실적인 인물들이 있다. 꿈, 사랑, 과거, 죽음과 삶도 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어떤 사람살이의 풍경. 여기에 '현상금 사냥꾼'도 있다. 재미있는 직업? 맞다. 액면상으론 범죄자를 좇는 직업인데, 실은 어떤 사람살이의 풍경을 좇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마다 나름의 것을 느낄 수 있는 묘한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은 현상금 사냥꾼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미래를 빙자했지만, 그건 맥거핀이다. 갈 곳 잃고 헤매긴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알랑방귀(!) 좀 끼자면, <카우보이 비밥>은 '사람살이의 일면을 엿보고 다양한 해석을 담을 수 있는 우주 서부극'이라고 얘기하겠다. 그곳에선, 무법자들이 있고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들도 있다. 이래저래 여기저기 휘둘리는 장삼이사도 있다. 인간군상은 어쩔 수 없이 가지각색이다. 미래니 현재니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람살이!

아, 이 짙은 허망함의 성(魔性) 하곤…

과거 따윈 상관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 남자, 스파이크 스피겔.


키 크고 미끈하게 잘생긴 꽃미남. 간지작렬이다. 27살의 더벅머리 총각. 과거 중국계 거대마피아 '레드 드래곤'의 간부, 현 직업 현상금 사냥꾼. 그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우주를 떠돈다. 그에게 정의니 선악이니 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액면상) 목적은 오로지 현상금,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남자, 현상금에 쌍심지를 켠, 돈만 밝히는 기생 오라비인줄 알면 완전 착오다. 허무가 덕지덕지 묻은 품새가 우선 눈에 띤다. 허무작렬! 염세주의자? 맞다. 그 눈빛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여있다. '뭐 이래? 주인공이 이렇게 우울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그렇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그의 재능 중에는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재능도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쿨(Cool)함을 저버리지 않는 매력. 그는 본질적으로 한 단어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이다.

스파이크는 뭣보다 경계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꿈을 꾸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배회한다. 이 남자에겐 결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잃어버린 과거,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에게 삶도, 죽음도 어느 것도 불분명하다. 그는 삶과 죽음이 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단지 스스로 어느 선상에 서 있는 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의 발길에 눈을 뗄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안에 똬리를 튼 스파이크. 삶과 죽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실존. 그의 짙은 허무가 온 몸을 휘감는다. 내 안에, 스파이크 있다.

기름과 섞이지 못하는 물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한다. 제길, 나는 그걸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런 건 휘발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더라. 당최 그처럼 섞이지 못하거나 겉돌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더라. 역시나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스파이크는 말하자면, 물이다. 끈적끈적한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세상과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한. 기름 같은 세상에 묻어갈 수 없는. 그는 대개의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과 동떨어져 있다. 둘러보라. 그런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과 같다. 그럴 때? 옷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다.



스파이크는 그렇다면 왜, 부유하냐고? 그 부유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지닌 연유는 마지막 화에서나 밝혀진다.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보고 다른 한 쪽으로 현재를 봐 왔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깨지 않는 꿈이라도 꿀 작정이었는데 어느 샌가 깨고 말았지…" 현실에만 정착할 수 없는 눈, 그 시큰둥한 눈빛이 기름처럼 세상에 붙어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궁금했다. 과연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어떤 빛깔로 나타날까 하고 말이다. 우리가 푸르다고 말하는 그 하늘에 대해 스파이크는 어떻게 말을 할까.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스파이크의 매력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굳이 말 혹은 글로 표현하려는 것이 불편부당해 뵌다. 그래서 이 글은 불완전함을 품고 있다. 그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내 안의 스파이크는 그래야 찾을 수 있다. 스파이크는 또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캐릭터다. 생각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스파이크는 꿈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도 알고 있다. 생이 유한하다는 사실. 불멸에의 꿈은 그에게 가당치 않다. 죽음도 영원한 꿈으로 인식한다. 그가 천적인 비셔스와의 마지막 대결을 위해 비밥호를 떠날 때 페이(현상금 사냥꾼 동료)가 말린다. 하지만 스파이크는 말한다. "죽으러 가는 게 아냐. 내가 정말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 " 그건 현실로 돌아가는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거닌다. 누가 뭐라하든, 과거나 현실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든. 그리고 우리에게도 살며시 귀띔한다. "꿈을 꾸든, 현실을 살아가든, 그건 당신의 몫이야!" 멋진 놈...

(* 권하건대, 스크린에서 선보였던 극장판보다, 26회로 구성된 작품을 꼭 보시라.)


(※ 오픈아이 기고문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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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인권영화제!
올해도 인권영화제가 피어난다. ^.^

올해 15주년, 거리 상영 3년째.

행여 열리지 못할까 불안감을 품어야하는 현실이,
참으로 비상식적이고 졸렬한 지금의 시대를 방증하는 것이지만,
그 모든 고난과 난관을 고스란히 품고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작은 축복이자 기적이 아닐까.

어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서도,
개인들의 푼돈이 모여 거리에서 우리들과 만난다.
뭣보다 무료라는 것!

굳이 인권에 방점을 찍지 않아도 좋다.
영화 한 편 본다고 생각하자.
우리 행여나 마주치면 반갑게 눈인사라도 나누자. ^.~

메일을 통해 인권영화제는 이렇게 말을 건넨다.

"표현의 자유를 향해 떠나는 거리 개막의 설렘을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모두,
오늘 마로니에 공원으로 와주세요!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


그래, 당신이, 내가 화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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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불현듯, 부지불식간, 뜬금없이, 순식간에, 갑자기, 훅~

그렇게, 어떤 기억이 무방비상태에서 엄습해 올 때가 있다.


어쩔 수가 없다. 의도한 바도 아니고.

좋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당신(들)에게 건넬 때도 됐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이 말.


'잘 지내?'의 다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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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의 과거 인기코너였던 '분장실의 강선생님'. 이 코너는 때론 지금-여기를 '독하게' 풍자했다. 액면에서 드러난 선후배 사이의 관계뿐 아니었다. 사실 '관습법'에 의해 지배당하는 선후배 관계는, 단순하다. 서열과 (위계)질서. 선배-동생인 안영미가 후배-언니(김경아, 정경미)들을 다그칠 수 있는 기제이다. 그리고 안영미는 강유미에게 절대 복종한다. 온갖 알랑방귀를 다 뀌면서. 대한민국에서 서식한, 제도권 교육(이라고 읽고, 사육이라 말한다)을 습득한 사람은, 특히 남자라면, 사무치게 느껴봤음직한 기시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기시감을 포획한다. 지금 이 엄혹한 시대를 뒤덮고 있는 공포와 좌절이다. 다시 말하자면,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실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메타포(은유)를 품고 있다(고 나는 봤다).


우선 그들의 분장은 하나같이 독하다. 웃기지 않으면, 즉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그들은 퇴출이다. 잘린다. 아웃이다. 많은 이들은 그 분장에서부터 '빵' 웃음부터 터뜨리지만, 그 분장에서 나는 절박함을 본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묻어난다. 성과를, 효율성을,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구조조정의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실직의 공포. 개그우먼인 그들의 분장이 독한 것은, 어쩌면 그런 시대의 엄혹함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안영미는 말한다. "똑바로 해, 이거뜨라(이것들아)." "우리 땐 안 그랬어, 이거뜨라." "미친 거 아냐?" 후배-언니들은 쩔쩔 맨다. 선배-동생의 일 제대로 하라는 다그침이 아니꼬우면서도 무섭다. 그것이 합리적이라면 상관없지만, 이 '어린 것'은 일단 다그치면서 자신의 권위를 강요할 뿐, 알맹이라곤 없다.

자, 그런 안영미를 보자. 경기 안 좋다고, 세상 어렵다고, 고통 분담하면서 일만 하라고 다그치는 회사와 그리 다른가? 조직의 권위와 유보금 쌓기가 우선인 그들(회사)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에, 우리는 쩔쩔 맬 수밖에 없다.
화폐의 시대, 일하지 말라는 곧, 죽음에 가깝다.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님에도. 화폐는 생존여탈권을 쥔 것으로 간주된다.

강유미도 말한다. "니들이 고생이 많다." 말은 좋다정작 그는 후배-언니들의 고충을 모른다. 알려고도 않고, 안영미가 중간에서 훼방을 놓기 때문이다. 그의 분장은 늘 무겁다. 최고 선배,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도 한 방송분에선 비정규직의 비애를 보여줬다. 안영미가 아닌 다른 누군가, 골룸 분장을 하자는 PD의 요청이 있었단다. 후배-언니들의 연기가 신통치 않자, 그대로 안영미로 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잘못 들었다. PD는 골룸 분장을 강유미가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던 거다. 당장 강유미는 골룸 흉내를 낸다. 비정규직은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PD(회사)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실직이 뇌관을 건드린 가족공포


아, 미안. 서론이 길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쿄 소나타>는 실직, 그것도 가장인 아버지의 실직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름 좋은 회사의 서무과장이었던 사사키(가가와 데루유키)는 허울 좋은 세계화의 희생양이다. 회사는 뻔한 말을 건넨다. "회사를 위해 충분히 해 준 것은 알지만, 사사키씨가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가요." 나가란 얘기다. 너, 아웃. 그렇지, 깜빡했다. 지금-여기의 자본주의는, 성실하게 일한 사람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지~ 화폐에 노예처럼 복무하는 곳에선 어딜가나 마찬가지~

물론 아버지는 가족에게는 비밀. 서무업무를 오래해서 인간관계 좋음이 유일한 내세울 거리지만, 집안에서 그는 허울뿐인 권위로만 유지되는 시체(?)다. 그는 아내는 물론, 자식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직업소개소를 전전하고 노숙자 배급소에서 끼니를 해결하지만, 아무 일자리에서나 일할 생각은 없다. 회사의 후광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개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실 이 '도쿄 가족'('서울 가족'이라고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의 누수는 그것만이 아니다. 어머니 메구미(고이즈미 교코)를 보자. 그녀는 늘 외롭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손, 그들이 메구미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손 내밀어 "날 좀 일으켜줘"라고 말해보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도 손길도 뻗치질 않는다.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세상이 시큰둥한 큰 아들 다카시(고야나기 유우). 그는 갑작스레 미군에 지원한다. 이유? 어쨌든 명분은 있다. "일본을 지켜주는 건, 오로지 미국이다." 진짜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정치적 진공상태의 젊은 세대. 아마도 그는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주입한 정치적 쾌거(!)의 산물이 아닐까.

역시나 기댈 곳 없고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과 어긋난다고만 느끼는 막내 켄지(이노와키 가이)가 있다. 이 아이, 피아노에 갑자기 홀리고 몰래 배운다. 어쩌면 아이가 유일하게 마음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가족은 과장하자면,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하나씩 거짓말을 품고 억지로 가족이라는 이름을 지탱하는 그들. 신경쇠약 혹은 침몰 일보 직전의 가족이다. 이 살풍경, 어쩐지 낯설지 않다. '외환위기'라는 이름의 IMF체제에 이어 맞닥뜨린 불황의 시대. 자본의 필요에 의해 형성되고 지탱된 가족은, 자본의 필요에 의해 다시 내쳐진 신세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실직 가장인 아버지는 외친다. "뭐든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왜 우릴 받아주지 않지?" 미군은 꿈도 꾸지 말고 일본에 있으라는 아버지의 호통에 아들은 되묻는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죠?" 어머니는 집에서 청소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복면 쓴 강도를 맞닥뜨린다.

이 가족에게 자존이나 실존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그들은 일상의 공포에 짓눌려 있다. 싫든 좋든, 현실이라는 복면을 쓰고 그들을 옥죄는 자본의 테두리에서, 그들은 단지 그것을 사회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거짓된 삶을 지탱하고 있다. 아마 누군가가 "나와 함께 가요. 내가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줄게요"라고 속삭인다면, 그들은 냉큼 따라 나설 것이다. 실제로 메구미는 그렇게 한다. 강도의 인질로 끌려 나왔다가 자발적으로 그를 따른다. 황망하지만, 이건 그들이 살고 있는 감옥을 보여주는 증명이자 바로미터다.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각자 큰 사건사고를 겪은 사사키와 메구미는 절규한다. "이게 아니야!" 그건 자신의 삶을 향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 시대를 향한 울부짖음이다. 어떤 혐오나 환멸을 거쳤다손, "시대나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은 온전하게 거짓이다. 개인이나 가족이 시대나 정치에 격리돼 존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요, 착각이다. 자신이 가족을 지킨다고 큰 소리 뻥뻥치는 사사키지만,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아들이 묻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세계와 세계는 직간접적으로 잇닿아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도쿄 가족은 일본 뿐 아니라, 현대, 그리고 우리사회와도 공명할 여지를 갖고 있다. 놀라운 것은 구로사와가 직조한 파국의 순간이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일어난다. 쇼핑몰 청소부로 일하면서 아내를 맞닥뜨린 사사키의 자동차 사고도,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며 바닷가로 향하는 메구미의 일탈도, 가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켄지의 철장행도. 모두가 한꺼번에 집을 비웠다. 어쩌면 현대 사회의 정신적 공백을 드러내는 은유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시 집안에 모여 밥을 함께 먹는다. 판타지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이 이어진다. 나는 아직 그것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던 켄지는 음악중학교 입학 오디션을 본다. 드뷔시의 <월광>(Clair De Lune)을 신들린 듯 연주하는데, 사사키는 아들의 연주에 눈물을 글썽인다. 꿈결 같은 연주가 끝나고 가족들은 함께 일어나 퇴장한다. 미군으로 중동에 파견됐던 다카시도 예전에 미국을 잘못 알았다며, 이제는 침공당한 그들(중동)의 아픔을 알고 싶다며 그곳에 남아있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사사키는 한껏 핀 얼굴로 쇼핑몰 청소를 한다.

켄지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그들의 불협화음은 과연 봉합이 된 것일까. 모르겠다. 그게 꿈이 아니라면, 세상과의 관계를 부정한 채 가족 안에서만 맴돌았던 그들의 세계가 넓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해결은 아닌 것도 분명하다. 물론 그 시도를 부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들은 분명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니까. 분명하게도, 삶은 어떻게든 지속될 것이니까. 

"왜 피아노를 배우면 안돼요?"라고 물었던 켄지의 질문을 무시했던 사사키였지만, 이제는 그도 왜 켄지가 피아노를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다. <도쿄 소나타>는 그렇게 가족이라는 창을 통해 세계의 변화를 갈구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바람이 담긴 영화다. 우리는, 세계는, 분명 변화해야 한다.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그건 군대나 자본, 그러니까 탐욕의 체제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직 그 답은 모르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고민하게끔 만든다. 그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미안하다. 한마디만 더 하자. 이 가족잔혹사 혹은 가족변천사를 가정의 달, 5월, 특히 21일, '부부의 날'에 긁적이는 건, 짓궂은 짓이겠다. 이 좋아야 할 날, 실직과 가족간 공허를 들먹이다니. 이해하시라. 시큼털털한 노총각이 설움(?)에 겨워 괜한 딴죽을 건다고 치부하시라. 그런데, 마지막으로 딴죽 더 걸자면, 이 부부의 날, 그 의미 한 번 시대착오적이다. 둘(2)이 하나(1)가 돼서 21일이라니. '부부 일심동체(一心同體)'를 말하고자 함인가 본데, 개뿔.

이 감언이설, 참 많은 사람을 부부라는 이름으로 유배시켰다. 결혼생활은 으레 그래야한다고 강요하면서. 봐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 가능하던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은가? 환상이요, 거짓이다.

그러니까, 이심이체(二心二體)가 맞다. 각자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이견을 허용하는 것, 그것이 가정에서 이뤄져야 할 가장 최소한의 것이다. 또한 사회로 확대되어야 한다. 일심동체랍시고,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에 맞추거나 내가 상대방에게 끼워맞춰야한다는 것, 건강하지 않다. 불건전한 타협보다 건강한 갈등이 나은 법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존재이다. 그러니, 차라리 (5월)22일로 바꿔라. 두 사람 각자가 스스로 개별성을 갖고 움직이면서 연대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도쿄 소나타>의 부부, 사사키와 메구미는 그것을 못했다.

혹여나, 부부가 되더라도, 나는 일심동체 않겠다. 내 이렇게 선언(?)했으니, 기억해주시게. 당신이 곧, 증인이다. 다만, 나는 '남(의)편'이 아닌, '네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장담하냐고? 에이, 결혼 생활은, 부부는, 장담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다. 당신에게 들려주고픈 오늘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또,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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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첨밀밀'의 등려군, 끝나지 않은 노래

=>추억의 멜로영화 ‘첨밀밀’ 드라마로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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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줄의 추천사를 써달란다. 어찌 거역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얼렁뚱땅 보냈다. 훨씬 길게 갈겨댔다.

러블리 라이프, 브라보 라이프!
     
나는 그녀가 부럽다. 723일의 여행? 아니. 내 로망이자 느린 희망의 고장 '쿠바'의 속살을 살짝 훔쳐보고, 진한 오리지널 쿠바 커피까지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쫌' 안다. 삶은 늘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그녀는 '자주' 찾는다. 낯선 땅에서 고투와 희비쌍곡선을 그리면서도, 어떨 때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과 감각이 살아있는지를. 그렇기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변화를 여행의 목적으로 두지 않았으니까. 그저, 즐김. 그저, 까르페디엠.

여행 곳곳에 뿌려진 그녀의 마음길에서 나는 여행의 '정보'나 빈틈없는 '일정'보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엿봤다. 세간에서 구획 지은 성공과 실패의 잣대보다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택한 그녀의 발걸음에 내 마음이 덩달아 따라 나선 이유다. 

어딘들 낯설지 않으랴. 어디서든 이방인이 아니랴.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녀가 온몸과 마음의 감각을 살려 지구인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시즌2를 맞은 그녀에게, 부엔 까미노(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or 좋은 여행하세요)!

그리고, 그녀가 그리 오래 붙잡고 있던,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느라 똥줄을 뺀,
책이 마침내 나왔다.

제목 때문에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더니,
짜잔~ 마침내 순풍 낳은 제목은,
《여행의 여왕》!


내 책도 아닌데, 뿌듯하다. 
책 뒤표지에는 저 추천사 원문의 1/4 정도가 나와 있다.

알맞게 줄여주셔서 고맙긴 한데,
맨 끝에 적은 '부엔 까미노'는 꼭 들어갔음 했는데,
간택을 받지 못해서, 추천글의 애비로서 쫌 아쉽다. 우짜겠노. ㅠ.ㅠ

뭐? 추천사 써주는 것도 돈 받냐고?
에잇! 그런 속물스런 질문을!!!!!!
이라고 타박 않겠다.

나란 인간, 속물작렬이라, 원래 돈 받아야 뭐든 써준다.
그러나 돈 안 받았다.
왜냐! 그녀가 예쁘니까. ^^;;;;
예쁘면 돈도 안 받는다, 나란 속물.
예쁘면 커피 한 잔, 공짜로 막막 준다, 나란 속물.

우리, 예쁘면 좋아한다.
예쁘고 아름다우면 편애한다.
차별과 뭐가 다르냐고? 사전 찾아봐라.;;

그러고 보니, 그렇군.
나는,
예쁜 것만 편애하는 더러운 수컷이다. ^^;
평생 못 고칠 것이다. 아마.

오냐, 그러는 넌 예쁘냐고?
바보냐, 이미 얘기했잖나. 나! 더러운 수컷이라고. 흐흐.

참, 그녀는 잘 있을까.
여행의 여왕은 지금 몽골에 있다.
내가 4년 전, 아주 잠시 몸을 위탁했던 그 곳에.
지구촌나눔운동 소속 NGO활동가로 몽골과 부대끼고 있는 그녀.
멋지다. 예쁜 것도 황공하온데, 멋지기까지.

더 멋지고 죽이는 것 알려줄까?
그녀는 이 책의 인세 50%를 쾌척한다.
전 세계의 빈곤, 전쟁, 학대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는데 말이다.
그녀의 시즌2는, 리스타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시즌1은 그랬다. 2007년, 여행의 여왕은 생각지도 못할 당시.
나이는 서른하고도 후반, 허리디스크에 툭하면 장 트러블로 고생하던 저질체력에,
전셋집 빼서 마련한 여행자금 3500만원이 가진 돈의 전부였던 여자.

남의 나라 정치, 문화 등등 기본 교양에 관심 조차 없던 그녀가,
723일의 여행을 통해 세상을 품고 세계를 담았다.
전쟁, 평화, 인간, 종교 등 그동안 친하지 않던 것에 대해 '생각'을 시작했다.
세상의 소수자에게 마음을 내주는 방법도 깨달았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과 마주침으로써 인격과 품격이 높아졌고,
장담하건대, 이 책을 접하는 순간, 당신의 인격과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결론은, 책 사서 보라는 얘기!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의 책은 사줘야 한다. 그것이 나의 지론이다. (응?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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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태풍이 지나갔어요. 에고고, 기지개 한 번 아쌀하게 펴고, 안도의 한 숨 쉽니다. 몸은 고되지만, 그 태풍을 견딜 수 있었던 하나의 풍경. 그 얘길 들려드리죠. 아, 커피와 연관이 돼 있냐고요? 물론, 당연한 말씀.

키스~!
말만 들어도 찌리릿하죠? 흠, 변태 찌질이 같은 저만 작렬한다고요? 어쩌겠어요. 그렇게 타고 난 걸. 키스, 참참참 좋아합니다. 하는 거, 보는 거, 듣는 거. 팜므 파탈과 나누는 죽음보다 강렬한 키스라면, 어쩌면 이 모진 생, 통째로 걸 수도 있습니다. 웃자고 한 소리고요.

저는 간혹
한강 다리 위의 한 매장에서 커피와 음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오늘도 그곳에서 커피 만드는 일을 해야 했지요. 커피 강의와 로스팅과 잡일로 심신이 피곤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불가피하게 매장일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지요. 어린이날 이브에 이게 뭬야! 하면서 커피를 졸졸졸 내리고 있었다지요.

참고로, 바리스타에 대한 환상은 일찌감치 깨는 것이 좋은데요. 막말로, 노가다입니다. 커피 노가다꾼. 우아할 것도 같지만, 천만에요. 커피를 마시는 것은 우아한 작은 사치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커피를 만들고 뽑는 것부터 이에 연계된 잡다한 일은 그저 고단한 커피 노동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오늘 일 한 이곳, 계단이 있어요. 한강시민공원과도 연결돼 있는데,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지요. 카페 안은 복층 구조고요. 태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러 복층으로 올라가는 도중, 마침 아래 계단을 내려가는 한 커플이 키스를 쪼옥~하는 것 아니겠슴까. @.@

순간, 므흣한 미소가 쫘아악~ 말했잖아요. 저, 키~스! 좋아한다고요. 아,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는 와중에 으잉? 키스 장면이 눈에 와다다다다다다. 띠요용~

사랑! 해보셔서 잘 아시죠?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자기장이 형성됩니다. 주변의 어떤 공기로부터도 격리된, 그들만의 공간.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다른 그들만의 주파수가 공기를 뚫고 지나가죠. 그 키스에는 그런 기운이 쫙쫙 퍼졌답니다. 이에 대해선 언제 다시 말씀 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여즉 제 생애 쵝오의 슬랩스틱 멜로로맨스 영화였던 <월·E>를 말하면서요.

그런데, 지가 하는 사랑도 아니요, 키스도 아니고, 남들 하는 키스 갖고 힘 얻었다는 둥, 미소를 지었다는 둥, 변태 작렬 아냐? 그러게요. 전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가도, 길을 거닐다가도, 키스하는 연인을 보면, 그냥 므흣해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키스를 했으면 좋겠고, 키스가 만연한 세상이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답니다. 으응? 왠 소박 맞을 소리? 구박에 타박에 협박에 이어 명박까지 당할 소리?

키스 하는 사람들이 불륜이면 어쩌냐고요? 아따, 그것까지 제가 무슨 상관.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제가 감히 어떤 잣대를 들이댈 생각, 없습니다. 키스 그 자체의 매력이 좋은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자기장 속의 파장.

아, 저도 알아요. 동방예의지국이 블라블라, 그래도 아직 한국에선..., 공공장소에선 그래도 좀..., 여기가 무슨 서양인줄 아나.... 등등. 닥치라고 하지요. 꼰대들이 뭐라건, 제가 좋은 걸요. 뭐.

무슨 생각했는 줄 알아요. 히히. 그런 것들 제가 저지른 연애질의 만행이지요. 후후. 길을 거닐다가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사랑이 부르면 저는 냅다 키스합니다. 당연히 일방통행 아니지요. 찌리릿, 당신과 내가 통할 때, 그렇게.

그들의 계단 키스를 보자니, 오래 전 어떤 회사를 다닐 때, 사내연애를 했던 기억이 모락모락. 계단에서 그녀와 전 자주 키스를 했다지요. 큭큭. 아마, 그들이 키스하고 싶었던 건, 제가 추출한 커피 덕분이 아니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종종 어떤 연인들을 위해선 커피를 추출하면서 주문을 외우지요. 주술이래도 좋고요. 그 커피, 키스를 부르고, 사랑을 두텁게 할 겁니다. 응? 증말?

이건, 비밀인데요. 진짜 키스를 부르는 커피 주문이 있습니다. 몰래 제 귀에 속삭여 주세요. "T.O.P." 그럼, 꿈꿔온 키스가 당신의 커피에 곁들여질지 모릅니다. 당신은 그 순간, 신민아가 되고요, 전.................... 민망하게도, 원빈이....^^;



곧 마감합니다. 5월4일의 키스를 부른 커피를 만든, 저의 커피 만행(?)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옵고, 잊지말고, T.O.P. 잘 자요, 어딘가 있을 내 (신)민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당신만의 커피를 만들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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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수 없는, 버려져선 안되는 생의 사랑 by 필감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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