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마 알 것 같아요. :)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궁금한 계절에,
추위,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증이 겹쳐질 법한 이 시기.

다른 이유, 수 없이 댈 수도 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맞아요.
리버 피닉스, 주간이잖아요.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시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잊혀진 계절'을 흥얼거리는 즈음이 되면,
꼼짝마라, 생각나고야 마는 그 사람, 리버 피닉스.

당신의 우울을 담은 어제의 음악을 내가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유.
리버 피닉스, 니까요. ㅠ.ㅠ

그리고, 함께 은임이 누나.

두 사람이 함께 묻은 영화,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올해, 그리고 지금,
내 시린 가슴이 둑흔둑흔 뛰고 있는 이유는,
허공을 질주할 그 영화가 스크린에 투사되기 때문이에요.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는 리버 피닉스의 사망 기일인 10월 31일,
‘마스터피스’ 상영작 중 한 편인<허공에의 질주>를 특별 추모상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불멸의 청춘 아이콘 리버 피닉스는 할로윈의 흥취로 들썩이던 1993년 10월 31일 배우 조니 뎁이 운영하는 ‘바이퍼 룸’ 인근 도로에서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이번 상영은 <허공에의 질주>에서 잊기 힘든 명연기를 보여준 리버 피닉스를 추모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입니다. 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상영작 중 가장 뜨거운 관객 호응을 받고 있는 <허공에의 질주>의 특별 추모 상영은 10월 31일 일요일 밤 10시 송파CGV 4관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된장. 어쩔 수 없어요.ㅠ.ㅠ
울컥, 나는 울어버릴 걸 알면서도,
좀비처럼 그를 향해 질주해야 합니다.

쉬파, 이 허섭한 글을 꾹꾹 누르면서도 왜 작후만, 방울이 맺힐까요.

그래,

내 청춘의 한 얼굴, 리버 피닉스, 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자기연민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은 리버 피닉스, 이기 때문입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
올해는 어떤 '리버 피닉스' 커피를 제조해서 마실까, 목하 고민 중.

그렇게,
내 소박한, 불사조를 향한 의식은 쭈욱~ 계속됩니다.

알겠죠?
시월의 마지막 날, 준수의 커퓌 메뉴는 늘 '리버 피닉스'입니다.
현재 예약자는 몇 년 전부터 찜하고 있는 한 명.
당신의 자리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 

자, 함께 허공을 향해 달려볼까요? 붕붕붕~

물론,
은임 누나에게도 인사, 함께 할게요. 누나, 안녕.
누나 목소리, 리버 피닉스를 향한 누나 목소리, 함께 듣고 싶어요.

이만하면, 이 정신줄 놓은 듯한 격한 추위가,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알만 하죠?

근데 쒸베리아,
내가 리버 형의 핸섬함 반만이라도 됐으면, 이리 안 살텐데, 조낸 조을텐뎅!

웨라이, 그냥 보고싶은 형아를 향한 백골이 진토되어 넋두리 하공 말공,
우리, 리버 형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그러니까, '비창', 함께 들어요. 뒤쪽에 있어용~


* 오늘, 인도네시아 '토라자' 커피를 생애 처음으로 마셨는데,
지금도 그 생각하면 침이 자가발전하면서 꼴깍 목을 적시고 마는데,

뒤늦게 알았다. 인도네시아에 쓰나미와 화산 폭발까지 덮쳐 일어난 대참사!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나는 그 커피를 통해 인도네시아(인)와 연결됐었는데,
그들에게 닥친 대참사와 고통이 마냥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나는 지구촌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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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로망.

지금 한국을 뒤덮은 투기 따위가 아닌 주거의 공간이자, 삶의 공간으로서의 부암동 말이다. 그곳에 집을 소유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활동하고 안식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커피 내음 물씬 풍기는 커피하우스라면 더욱 좋겠고.

꼬불꼬불 뒷골목이,아기자기한 골목이 정겨움을 더해주는 동네가 부암동이다. 낮고 소담해서, 사람을 짓누르고 압도하는 건축이 아닌 생을 감싸주는 듯한 뉘앙스의 집이 숨을 쉬는 동네. 골목 끝에는 미술관이 있고, 재미나고 희한한 말풍선처럼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작은 가게들이 자리한 곳.

아, 그런 동네에서 커피를 굽고 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암동에 들릴 때마다 작은 소망이 꿈틀댄다. 서울에 살고 있는 동안이라도, 나는 최소한의 소품과 수용 가능한 식물로 부암동에 작은 공간을 꾸미고 싶구나! 소셜 스페이스의 전초 기지. 스멜스 귯~ 하는 커피가 움텄으면 하는 그 동네, 부암동.

부암동, 사는(Buy) 게 아닌 사는(Live) 동네였으면 참 좋겠다.
내 '부암동 로망'이다. 당신도 부암동 골목을 돌다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이 가을, 부암동 골목을 돌아보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게다. 아래는, 지난 봄, 부암동 골목을 누빈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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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이십여 년 전, 멋도 모르는 촌놈. 부암동 외삼촌댁에서 잠깐 서식했다. 삼촌을 졸라 마련한 노가다(막노동) 현장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삼촌댁은 하숙집이나 다름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 지쳐 쓰러지면 그 뿐. 동네를 들여다볼 틈, 돌아다닐 엄두, 당최 없었다. 더구나 당시 촌놈에게 서울은 명동, 종로, 신촌과 같은 유흥과 환락이 휩쓴 뻑적지근한 풍경이 지배했다. 부암동? 처음 발 들여놓은 동네의 고즈넉한 풍경은, 촌놈의 레이더를 자극하지 못했다. 내 첫 번째 부암동의 기억. 하림각만 오로지 오롯이(?) 서 있는 가난한 기억. 

다시 부암동.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내게, 부암동은, 일종의 성지다. 전통의 커피 명가, ‘클럽 에스프레소’가 있다. 부암동에 향긋한 커피향을 날리며, 사람들을 행복한 커피의 세계로 인도한 곳. 더불어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성(이선균)의 집으로 나왔던 ‘산모퉁이’도 있다. 풍경 하나만큼은 작살이다. 이후 부암동, 커피 향이 조금씩 더해졌다. 커피하우스들이 하나둘 둥지를 튼 까닭이다. 자본의 증식을 위한 커피가 아닌, 여유와 사유를 위한 커피가 있는 곳, 부암동이다. 

또 다시 부암동.

부암동을 찾았다. 이유가 있었다. 아주 특별한 산책. 『오!!! 멋진 서울 : 서울산책자와 떠나는 매력만점 120곳 탐방』(박상준 글․사진|웅진리빙하우스 펴냄) 출간기념 저자와 함께하는 부암동 탐방의 시간. 타이틀 하여, “그대, 아직 서울을 안다고 하지 말아요.” 그래, 서울의 속살이 어깨 너머 흘러내린 어느 봄날의 오후. 부암동을 다시 찾아 나선 이유. 아는 사람은 안다는 부암동의 매력과 속살을 살짝 엿보고 싶었다. 내 가난한 부암동의 기억에 영양분을 보충해 주고픈 것도 한 가지 이유. 


저자 박상준.

역시 촌놈 출신으로, 이대역 사거리 근처에 사는, 그래서 ‘이대 사는 남자’. 12년째 살고 있는 서울은, 그에겐 ‘밥’이란다. 서울은 이젠 그의 밥줄이 됐으니까. 이 책에 앞서 지난 2008년,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니까, 저자는 서울내기들이 몰랐던 서울의 속살을 알려주는, 혹은 서울을 알고 싶은 이들의 호기심을 풀어주는, 민간 ‘서울 해설사’ 혹은 ‘서울 산책자’ 되시겠다.

사실 그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 길을 나서니 서울이 자꾸만 민낯을 내밀고 새로운 말을 걸어왔단다. 서울과 사랑에 빠진 남자, 박상준. 서울을 걷고 서울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다. 그는 이리도 말한다. “길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p.9)


길.
그렇게 길과 만난다. 오해마시라. 박정아의 연인 길, 아니다. 박상준과 함께하는 길이다. 아마도 부암동은 내게 이전과 또 다른 표정을 지으리라. 서울 산책자가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서 모인 길동무들을 이끈다. 파스타가 맛있다고 한 ‘오월’을 끼고 오롯한 옛 정서를 탐하기에 좋은, 외려 샛강처럼 열린 보은마트 옆 음산해(?) 뵈는 골목으로 향한다. 그의 심상의 길과 통한다는 그 골목. 더도 말고 덜도 마는, 그저 골목. 그는 2년 전부터, 부암동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가 됐단다.

“부암동을 좋아한다. 그 빛바랜 색감이 만드는 낡은 정서가 좋다. 걸음을 뗄 때마다 들고나는 길바닥의 두툼한 시간이 사랑스럽다. 서울에는 많은 동네가 있고 저마다의 색깔을 갖지만 내게는 어느 곳보다 부암동의 은빛이 명징하다. 마음에 갈무리한 ‘우리 동네’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겠지.”(P.21)



70~80년대가 훅~
다가온다. 꽃과 잎, 혹은 나무들이 담장 밖으로 빼꼼 나와 눈인사를 건네고, 골목에 살포시 내려앉은 꽃잎이 내 발걸음을 환영한다. 박상준은 이 골목이, “4월에 가장 좋다”고 알려줬지만, 5월이면 어떻게 또 다른 달이면 어떠랴 싶다. 분명,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를, 내일 또 다를 길이니, 매일매일 달라지는 길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속도로 살아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지막한 콧노래를 흥얼흥얼.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부암동 길동무 가운데 부부가 있었다.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골목길을 거니는 풍경. 꽃만 아름다우랴. 사람도 꽃만큼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골목길은 늘 사랑을 품고 있다. 떠올려보라. 골목길에서 나눈 키스. 안 해봤다고? 그렇담, 연애 좀 더 해보셔야겠고.

‘골목길’이라는 노래도 떠오른다. 이 골목길도 얼마나 많은 사랑의 풍경을 품고 있을까. 골목길에게, 곳곳에 보이지 않게 자리하고 있을 사랑의 흔적, 사랑의 기억을 물어보고 싶어졌다. 더불어 문득 골목길이 되고 싶어졌다. <사랑니>에서 인영(정유미)이 했던 말을 약간 바꿔서. ‘다시 태어난다면 골목길이 되고 싶어.’


 

골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골목 옆길, 사유지 길로 살짝 접어든다. 뭐, 괜찮단다. 사람 살기 좋은 동네, 부암동이니까. 한때 잠시 서식했던 강남의 어느 사유지 길엔 아주 무시무시한 경고가 붙어 있었다. ‘절대’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타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했던 강남의 그 경고문구. 참 많이 다른 풍경.



광장.
무계정사길을 품은 골목이 확 넓어지더니 펼쳐진다. 안평대군, 몽유도원도, 현진건 집터까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이런 데가 있었다니...” 박상준이 화답한다. “어렵게 오시라고, 쉽게 찾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아무렴, 길을 쉽게 열어주면 흥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안평대군 이용 집터(무계정사 터)로 가는 무계정사길은 호젓하다. 무계정사는 안평대군이 꿈에 본 무릉도원과 닮았다 해 정자를 지은 장소다. 그 꿈속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 안견의 「몽유도원도」였다. 「운수 좋은 날」「무영탑」등을 쓴 소설가 현진건의 집도 그 곁에 있었다.”(p.21)



“부암동 지키기 500평 주차장 반대”

빈터만 덩그러니 남았다지만, 골목길 곳곳에 나붙은 주차장 반대 플랜카드가 선뜻 이해가 간다. 그 터에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겠다는 종로구청의 뜻에 반대하는 주민들. 주민이 아닌 나라도 한 표 던지겠다. 사람의 발이 아닌 자동차의 바퀴가 장악하게 될 부암동은 왠지 빈정 상한다. 반대마저도 시적이다. 동네 주민들은 다들 시인이련가.

키낮은 집 어깨맞댄 좁다란 골목길
둥그런 담 굽어드는 달큰한 속삭임
복사꽃 향 빚어가는 부암동 사람들



산책의 기술.

다시 뚜벅뚜벅 발걸음. 산이 우뚝,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이 다른 대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산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대도시가 많지 않다. 그렇게 서울은 고개를 들면 산이 보이는 게 지형적인 장점인데, 최근 건물이 높아지면서 서울의 장점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 부암동이 좋은 이유는 사방에 산이 둘러싸여 있다는 거다.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등이 부암동을 둘러싸고 있다. 산책의 기술이 별게 아니다. 먼 산을 보고 걸으면 좋다. 특히 오감을 열어야 한다.”


느껴라.
도시는 회색빛이란다. 회색빛 앞에선 나의 오감을 열고 싶지 않다. 미적 감수성을 해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부암동에선 다르다. 내 모든 세포를 열고 싶다.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는다. 새소리․바람소리, 귀가 즐겁다. 발자국 소리, 숨소리까지도. 나를 간질이는 모든 것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구나. 아, 좋다. 나는 살아 있구나. 산책은 오감을 여는, 오감을 열어야만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오감이 즐거우면 감탄할 것이고, 감탄할 일이 많아지면 행복하다.



예스럽다.

‘車길 없슴’ ‘감사합니다 차고 앞’. 나무에 새겨진 이 문구들이 부암동의 분위기를 대변한다고나 할까. 예스럽다. 이렇게 동네를 장식하고 있는 것들도 그렇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개발제한구역이나 군사보호구역인 것이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 토건국가의 막장개발 욕망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축복이었던 거다. 개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개발하고, 사람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거다.



자연을 존중한다.

이것 역시 부암동을 대변한다 하겠다. 자연을 무턱대고 자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차라리 인공을 양보한다. “벽에 나무가 살아 있으니 벽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모습이 동네 풍경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요소라고 본다.” 그렇다, 부암동은 조화를 찾는다. 혼자 잘난 척 않는다. 4대강? 거기엔 자연이 없다. 아니, 자연의 소리를 묵살한다. 인간 혼자 삽질한다. 물, 바람, 흙, 물고기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부암동 주민들을 청와대로! 

 

자하미술관.
지금까지 따라온 길, 자하미술관 가는 길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서울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결국 자하미술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계속 오르막이다 보니 지친다는 게다. 지금까지 이미 10명 중 5명은 내려갔고, 이 이정표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기 건물이 미술관이겠거니 하다가, 실망하고 남은 5명 가운데 3명도 다른 길을 찾아 나설 거란다.

 

마지막 오르막.

약간 과장해서 곰에 버금가는 크기의 개 -이름이 ‘누루’란다-가 컹컹 짖어준다. “좀 섭섭하다. 날 수차례 봤는데도 아직도 저렇게 짖어댄다. (웃음) 여기서 남은 2명 중 1명이 또 내려간다. 같은 골목이라도 언제 오느냐에 따라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게 참 매력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르막은 이어진다. “하이원 스키장의 상급에 버금가는 경사진 오르막 같다”는 속삭임도 바람에 나부낀다.




“서울에서 제일 전망 좋은 미술관”

아마 그랬다지. “전망 좋은 미술관은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쉽사리 열어주지 않는다.”(p.24) 그리 높은 곳도 아니건만, 모르면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멀게 느껴질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하미술관은 그 길의 꼭대기에서 사람을 밀어내고 끌어당긴다.”(p.24)

어쨌든 이 하얀 미술관, 반갑다. 1층 주전시실. 좋다. 천장은 높고, 특히 유리로 창을 내 채광도, 시쳇말로 죽인다. “이곳을 종종 찾는 이유는 꼭 미술품 때문만은 아니다. 올라가 보면 알 거다. 부암동 정경이 다 보이고,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공간이다.”


“인왕산의 턱밑에 뿌리내린 자하미술관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라는 수식이 마음을 끌었다.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지라 했다. 극중 안지선(유선 분)의 집이었다. 2008년 6월에 개관했지만 그해 겨울 드라마 촬영으로 휴관했다.”(P.21)




진짜는 2층이다.

1층 옆으로 나가면, 2층으로 향하는 바깥의 벽돌계단이 있다. 2층 2전시실 바깥의 남은 부지에는 좁은 길을 품고 잔디가 자란다. 아, 탐스럽다 싶은데, 약간 고개를 돌리니 풍경작렬이다. 이건 직접 가보지 않고 얘기가 안 된다.

“잔디 위의 망중한이다. 북악산의 가파른 산세가, 너울대는 북한산의 비봉능선이 마주한다. 묵언의 수행처럼 무언의 대화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p.27)

미술애호가 강종권 관장님이 직접 설계하고 설계한 구조란다. 이윤보다 문화의 공유가 주된 목적이라고 했다. 작품 전시도 상업성보다 장래성과 실험성에 비중을 둔다는 자하미술관. 2층 전시장 통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풍경도, 그것 자체로 작품이다. 

그리고 자하미술관에서 보았던, 가장 인상적인 어떤 산책.














골목길 풍경의 의외성.

골목길은 의외성이 지배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자기만의 습관이나 버릇이 생기는데, 나는 동네를 가면 무조건 올라간다. 부암동의 경우, 혼자 골목길을 따라 가면 정말 괜찮은 풍경 볼 수 있다. 골목길 다니면 그렇다. 저 모퉁이를 돌면 굉장한 게 나타날 것만 같다. (웃음) 그러면서 또 모퉁이가 나오고, 그렇게 돌고, 또 나오고... 2년 동안 여기도 참 자주 왔었는데, 지난달 왔을 때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것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같은 길을 걸어도 어느 계절에, 어떤 시간대에 오느냐에 따라 다르다. 궁상맞게 저녁에 혼자 온 적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어떤 설명보다 직접 데려오는 것이 낫다.”

갑자기 떠오르는 이승환의 노래, <너를 향한 마음>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일까♪/ 저 골목을 돌면 만나지려나~♬” 행여 모퉁이를 돌다가 우연히 만나는 첫 사랑. 너무 진부한 클리셰지만, 두 사람이 어디서든 살아있다면, 7784만분의 1이라도 만날 수 있을 확률. 한때는 그것이 부러웠다.

“이 동네만 좋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책을 다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내가 사는 곳은 이대 부근의 연미동 골목인데, 3~4년 살았다. 어느 날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재미난 골목이 있었구나, 싶더라. 내가 사는 동네인데 정말 몰랐구나.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돌아다녀라. 직장 출퇴근하느라 지금까지 몰랐겠지만, 한 번 돌아다니면 새로운 풍경이 보일 거다.”

 
누군가는,
집에서 음식을 시켜먹고, 어떤 연인은 부암동을 찾아 사진을 찍고 그들만의 데이트를 즐긴다. 여기는 부암동이다. 천천히 무계정사길을 내려왔다.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다른 길을 오른다.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란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인의 시가 곳곳에서 흩날리는 공원이다. 「자화상」이 있고, 「코스모스」가 펼쳐지며, 「서시」를 읊으며, 「별 헤는 밤」과 「눈」 등을 만날 수 있다. “공원이 화려하진 않지만 사방으로 서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녁에는 특히 야경이 죽인다. (웃음)


이승환.
약간 엇박자이긴 해도, 한편으로 재미난 풍경이다. 정확한 이유야 모르겠지만, 이승환 씨 팬들이 꽃을 조성하고 포토 존을 만들었단다. 콘서트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윤동주의 흔적.
왜 윤동주일까. 윤동주가 이곳에서 시상을 받았다. 그의 하숙집이 이 근방에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별을 헸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시」는 누상동 하숙 시절에 쓴 시다. 그는 1941년 5월 연희전문학교 기숙사를 나와 옥인동 아래 누상동에 하숙집을 얻었다.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청운공원의 제일 높은 자락에 자리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언덕에서는 청운동과 옥인동, 누상동을 잇는 풍경이 차례로 이어진다.”(p.627)



윤동주 시비.

정면에는 「서시」가, 뒤편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첫 해에 쓴 시, 「슬픈 족속」이 새겨져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서정을 배제한 의기로 충만하며,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가슴 아린 현실이 서렸다는 그 시가 말이다. 그렇게 윤동주의 성찰과 결기를 품고 있는 시비. 아마도 뿌듯하고 충만한 자존감으로 우뚝 서 있겠지. 영원히 윤동주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

부암동 쪽으로 서울성곽을 따라 걷는다. 친구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성곽 위에 올라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고 있다. 그림 같은 풍경. 햇살 받은 모습이 그랬다. 그 아래서 함께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채 놓여있던 구두가 약간 안쓰럽긴 했지만.



초록지붕의 집.

계속 길을 따르는데, 눈에 띤다. 아, 예쁘다. 감탄이 튀어나온다. 주근깨 빼빼 마른 우리 ‘빨간머리 앤’이 살았다는 초록지붕도 살짝 떠오른다.(주. 지난 4월로 출간 102주년이 된 『빨간머리 앤』의 원제는 『초록지붕의 앤』이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찍었단다. “북악산을 내 집 앞마당처럼 볼 수 있는 집이라 참 좋아했다. 그런데 <찬란한 유산> 때문에 만천하에 알려져서 매력이 뚝 떨어졌다. (웃음)”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저런 곳에 사는 주인공이었다면, 딴 건 몰라도 마음씨 하나만은 끝내줬으리라. 물론, 아니면 말고.

 

이젠 막바지다.
윤동주의 시가 아로새겨진 시멘트 계단을 지나 골목길을 타고 내려왔다. 분홍색 꽃잎이 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영화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고,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가 마지막으로 만난(아마, 그 이후 둘은 다시 만나지 아니했을 것이다)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백설희의 노래, ‘봄날은 간다’도. 연분홍 치마를 떠올리게 한 꽃잎들 때문이었을지도. 공식행사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비공식.

박상준이 커피를 한 잔씩 주겠단다. 유후~ 아지트가 있었다. 깜짝 놀랐다. 아주 자그마한 카페. 이름하야, 유쾌한 황당. 부제는 부암동 산책안내소. 5월 초, 이 커피하우스를 인수했단다. 단골에서 주인장으로. 황당한 쥔장의 유쾌한 변덕에 따라 메뉴는 변화무쌍할 것이란다. 부암동을 담고 싶다면, 이곳에 잠시 들러 부암동 산책의 기술을 전수 받아도 좋겠다. 부암동은 쉬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암동이 삼청동처럼 카페와 레스토랑의 거리로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 이들은 산으로 숨어드는 그 지세에 기대를 건다.”(p.24)


그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산책하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함께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고 싶다면, 부암동에 마련한 아지트 ‘유쾌한 황당’(☏ 070-8658-3448)과 인터넷 카페(http://cafe.naver.com/tourhwangdang)를 통하면 된다.

“가끔씩 독자들과 함께 걷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처음 만나서 낯선 얼굴들, 그러나 ‘서울’이라는 공통점으로 곧 친해질 이들과 함께 편안한 마음, 간편한 복장으로 서울을 산책하고 싶다. 그 길 위에서 서로의 서울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우리라. 그날이 또 서울의 멋진 날이 된다면 어찌 아니 좋을까. 그날까지 나는 또 나만의 서울을 만나기 위해 이 도시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 것이다.” (‘시작하며’ 중에서)

 

『오!!! 멋진 서울』이 인상적인 것은, 박상준의 발걸음 속에 드러나는 서울의 진짜 얼굴이다. 감히 ‘진짜’라고 붙이는 게 조심스러운 일면도 있지만, 서울에 몸과 마음을 의탁해 있으면서도 서울을 모르는 서울 촌사람들에게 이 책이 유용하리란 것, 확신한다. 그의 발걸음에 녹아 있는 서울의 문화, 사람, 역사, 풍경 등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간이 갈수록 변해가는 서울의 모습들도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뭣보다 이 책의 장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완전 좋을 길이 꽤 들어있다는 것. 단, 이 책을 들키지 말 것. 애인을 위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전답사 했다고 호방하게 말할 것. 아마도, “오!!! 멋진 내 애인”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골목길에서 키스 세례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나도 얼른 섭렵해야겠다. 그리고 말하련다.
자, 가자. 내 연인아. 당신을 위해 서울을 준비했다. 너에게 서울을 선물해줄게.
글을 읽는 당신에겐 좀 미안하다. 손발 좀 오그라들어도 참아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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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기억한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의 하나는,
너와 함께 나무와 잎이 우거진 길을 거닐 때라는 걸.

그래, 우리들이 있었던 시간.
그때, 우리들이 있었다.

우리 함께, 너의 학교 숲을 거닐자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것이,
내겐 여전히 아프지만, 나는 아주 간혹 혼자 숲을 거닐 때, 내 옆에 있는 너에게 말을 건다.
아, 숲이다. 니가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이젠, 당신에게도 손을 내민다. 함께 숲을 거닐래요?
숲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숲을 좋아하게 될 거다.
당신이 있어 행복한 숲길이다. 숲길도 맥락과 관계에 따라 그렇게 모습을 달리하는 법.
특히 가을. 가을을 가을답게 즐기는 가장 눈부신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하지 않나.

내 마음이 허락한다면 가끔 나는, 당신에게 숲이 되어주고 싶다...
 
지난해 10월, 홍릉수목원을 찾았던 기록. 다시 거닐고 싶은 그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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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세상에서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 계절의 흐름. 그래서 지금, 누구에게나 완연한 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자면, 마음자리 보전이 필요한 계절. 깊은 숨을 쉬면 한 뼘씩 가을이 내 안으로 훅~ 들어올 것 같은 날씨가 잦은 시즌. 그런 가을에는 숲이 딱이다. 봄과 또 다른 숲의 속삭임이 내 귀에 캔디처럼 속살거린다. 향도 짙고, 빛깔도 안구를 정화시킨다.

왜 가을에는 숲이냐고? 여기 이 말, 인용하자. “가을을 가을답게 즐기는 가장 눈부신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숲 안에 다 들어 있다. 빛도 어둠도, 청춘도 사랑도 가득하다. 가을 숲에 드는 순간 다 반짝인다. 우수수 흩날리는 나그네도, 바스락거리는 연인도, 푹신하게 둘러앉은 가족도 깨끗한 빛을 발한다. 숲이 가을에 더 아름다운 건 이렇게 눈부신 여러 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창문 맑은 날 하루 찍어, 마음 둔 이 손 잡아끌어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 보라. 여름내 얽히고설켰던 나무들, 비워내고 털어내는 인연들, 쌓이고 젖어 함께 내디딜 때마다 향기로워질 터다.”(한겨레 10월8일자)

숲에 들어간 본 사람은 알 거다. 아니, 숲과 교감해 본 사람은. 숲의 일원이 되어 본 사람은. 숲은 평화다. 도시와 일상의 폭압에 지친 이들에게 숲은 한줄기 바람이다. 누군가에게 숲은 스승이기도 하다. “숲에 기대어 사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숲은 나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다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술과 기교를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김용규 지음 『숲에게 길을 묻다』 중에서)

숲에 발을 디뎠다. 10월18일, ‘산의 날’을 앞둔 17일, 홍릉수목원을 찾았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속 걷기여행』(이천용 지음/터치아트 펴냄)의 저자와 함께 하는 숲속 걷기. 전날 밤 진짜 폭우가 내렸냐는 듯, 가을은 변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를 머금고 말간 표정으로 반겨주는 숲. 그렇게 가을 숲을 찾았다. 아니 가을 숲이 내게로, 우리에게로 왔다. 자, 그렇게 숲과 교감한 기억, 함께 거닐어 볼까?


“숲속으로 햇살이 밀려올 때, 자연의 평화가 당신에게 밀려올 것이다. 숲의 바람은 당신에게 신선감과 생동감을 주며, 그때 당신이 가진 걱정은 마치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사라질 것이다.”  -존 뮤어(John Muir)- 

이천용 숲박사와 함께 한 숲길 거닐기


국립산림과학원에 들어선다. 곧, 홍릉수목원이 있는 곳이다. 오늘의 숲 해설가, 이천용 박사가 근무하는 곳. 심호흡 깊게 한번, 가을이 코를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아, 그래 가을이구나.


이천용, 그러니까 숲박사가 함께 숲을 거닐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연구직 공무원으로 숲과 문화를 연구하는 ‘숲과문화연구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책도 전국의 좋은 숲을 찾아 15년을 다닌 결과물이다. 일단 100년 이상 된 오래된 52개 숲을 담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작업을 계속 할 것이란다. 최근 숲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걷기 열풍을 따라 책이 예상 밖으로 잘 나가, 2쇄를 찍게 돼서 홍보차 나왔단다. 왁자한 웃음. 숲도 함께 웃는다.

“숨은 숲이 전국에 굉장히 많다. 지방의 마을 숲에는 역사가 없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제일 많은데, 한 20%씩 된다. 가장 많은 나무는 물론 소나무다. 느티나무 숲도 꽤 있는데, 은행나무는 집단성이 없어서 관리를 해 주지 않으면 숲에서 살 수가 없다.”

그렇다. 나무가 자라서, 우리가 아는 숲이 된다. 옛날에는 나무에 관심이 많았으나 지금은 숲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것이 숲이 주는 어떤 효용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사람은 절대적으로 숲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숲은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은 숲에서 살면 아토피가 없다는데, 살아보라. 아토피가 생기면 내가 변상해 주겠다. (웃음) 생물 뿐 아니라, 무생물도 숲의 일원이다. 공기, 물, 땅 등 과거보다 생각이 유연해지고 포괄적이 되면서, 무생물까지 함께 생각한다. 인간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한다. 과거에는 나무, 풀 등만 숲으로 생각했다.”



아무렴, 저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저 햇살도 숲이다. 이 모든 것이 숲의 일원이다. 목재 생산을 위한 곳만이 숲이 아니다. 인간의 산업적 필요에 의해 숲을 좁게만 봤다면, 이젠 인간도 숲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문화는 숲에서 태동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떡하면 숲에 문화를 접목시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동료들과 숲과문화연구회를 시작하게 됐고, <숲과 문화>라는 격월간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숲에 가면, 뭐가 있나 하고 땅도 쳐다보고, 하늘도 바라보고, 잎도 만져보고, 나무를 비롯해 무생물, 생물과 교감하면서 봐야 한다.”


그래, 그는 책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숲을 문화와 연관시켜 글을 쓰려면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산림문화의 매력이 여기 있다. 그리고 숲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숨 쉬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이 보장된다.”(p.8)


본격적으로 숲 탐방을 나섰다. 숲과 교감하기 위한 발걸음. 내 발걸음이 숲에게 어떤 해도 되지 않길. 숲과 내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숲은 누구든 반긴다. 다만 숲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어긋나게 된다면, 숲은 대화를 멈출 뿐. 걷기에만 치중하지 말고 눈과 귀를 열면서 내 안의 신경세포를 깨울 것. 


위로 오르면서 휘어진 도토리나무(상수리나무) 앞. 이런 나무는 목재로 쓰지 못하고, 숯 등으로 소비된단다. 목재로 쓰려면 쭉 뻗어서 6m 이상 되는 나무여야 한단다. 그러니까, 이 정도 자라려면 40~50년이 돼야하는데, 눈앞의 돈에 늘 허물어지곤 하는 인간의 습속은 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함으로 인간은 결국 위험을 맞이한다.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기 위해 거칠게 자연을 다룸으로써 우리가 맞이하는 위기. 멈춤 없이 성장해야 간신히 유지될 수 있는 미친 지금의 주류 경제체계. 언젠가 우리는 나무로부터 호된 불호령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최대한 눈과 귀를 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면 숲의 화음이 나를 감싼다. 사~ 서~ 솨~~ 짹짹… 바람과 나무가 서로를 애무한다. 바람이 나무를 건드리는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 나무가 서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무와 바람이 몸을 부대끼는 소리가 도시 한 복판에서 억세진 마음을 위로한다. 새의 지저귐까지 화음을 맞춰서. 그 소리를 함께 들려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홍릉수목원에는 야생화 개량종도 키우고, 요즘 관심이 많아 조경도 하는 구절초 등을 별도의 장소에서 재배도 한다. 숲을 가꾸기 위한 노력이면서 다양한 생태가 조화를 이루면서 살도록 하는 배려이리라. 아마도 인간 세상도 그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세상에 잡초는 없다. 무명(
無名)은 없다. 이름을 모르고 있을 뿐. 인간 숲에도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면서 생태계가 제대로 유지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남기고 왔다. 



이곳은 홍릉터다. 명성왕후가 묻혔던 곳. 그러다 1919년 고종과 함께 합장되면서 터만 남았다고 한다. 숲을 가꾸면서 명성왕후의 분노가, 한국인들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됐을까. 물론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 숲은 그렇게 테라피스트(therapist)다.


잣나무란다. 열매를 맺으면 이듬해에나 딸 수 있는. 이 숲 박사가 묻는다. 이 잣나무, 몇 년이나 된 것 같냐고. 얇고 작은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나무, 20년이 넘었단다. 가지가 있는 마디 하나가 1년인데, 나무가 별로 자라지 못했다. 잣나무는 그늘에서 자라는 음수인데, 옆에 다른 나무가 없고 햇빛을 받으면 쑥쑥 자랄 수 있는데, 그런 환경이 되지 못한 탓이다. 각 나무의 특성을 살려서 숲을 가꿔야 한다는 것이 이 숲 박사의 설명.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이 땅은 그런 개개인의 특성을 갖고 살게 하기보다, 획일적으로 사람을 다루고 네모난 상자에 넣어 키운다. 몰개성의 시대, 틀린 말 아니다.
 
 

다래나무다. 다른 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 나무를 파이게 만든단다. 이렇게 다래나무가 파고 들어간 나무는 목재로 쓰일 수 없다. 물론 이곳은 수목원이니까, 목재로 사용할 이유가 없으니 그들의 애무 혹은 싸움을 그냥 놔두는 게다. 숲에서도 경쟁을 한다.

그러나 숲의 경쟁은 인간의 것과는 또 다르다. 숲의 생물이 벌이는 경쟁은, 수많은 이웃의 욕망이 충돌하는 수직의 공간에서 자기의 하늘을 확보할 힘을 갖기 위한 것이다. 인간들마냥 타자의 공간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에 내 존재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경쟁, 즉 자신과의 다툼이다. 물론 이것은, 김용규 숲생태전문가의 얘기다. 



작은 계곡에 물이 졸졸졸 흐른다. 수량은 많지 않다. 어제 비가 온 까닭이리라. 이 숲 박사는 비가 그친 뒤 왜 계곡에 물이 흐르는지를 질문한다. 그러고 보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의 원천은 흙이다. 흙 속에 고체알맹이가 있고 그 공간에 물이나 공기가 차 있다. 토양 속 공간이 제대로 형성돼 있으면, 비가 오면 물을 담았다가 서서히 빠져 나온다. 그래서 계곡에 물이 흐른다. 물이 흐르고 그렇지 않고는, 흙이 물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된다. 숲이 우거졌다고 물이 많은 건 아니다. 토양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숲이 적당해야 증발산 작용이 제대로 이뤄진다. 숲은 돈이 들더라도 제대로 가꿔져야 인간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산성비가 내리는 것도 토양의 중화작용이 약해져서 그런 거다.” 아하, 그렇구나.




삼나무, 편백나무 등 우리나라의 남쪽 혹은 일본에서 자랄 수 있는 나무들이 모여 있다. 시범적으로 심은 것이란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 30년 이상 됐으나, 역시나 잘 자라진 못한다. 가늘고 허약해 뵌다. 그래,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일 텐데... 각자 있어야 할 땅과 하늘이 있는 법이다. 각자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탐욕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데다, 그릇이 되지 않는 자가 높은 곳에 있다 보니,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람, 왜 서울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니? 응?




이천용 숲박사를 따르면서 우리 가슴속에는 숲이 조금씩 들어왔다. 숲친화 탐방이었다고나 할까. 자주 쉬면서 이 숲박사에게는 물론 숲에도 귀를 기울였다. 눈을 자주 돌렸다. 그렇게 마음은 평화를 찾아갔다. 이것이 숲의 힘인가.



숲과 하늘은 이보다 멋질 수 없는 앙상블을 보여줬고, 내 마음은 이미 구름을 타고 숲길 구석구석을 훑고 다닌 기분이었다.


숲에서 평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을까. 그녀의 자전거가 내게 들어온 것 마냥, 숲이 내게로 들어온 그런 경험? 자연과 교류․교감하는 통로로서의 숲길을 거닐었기에. 


홍릉수목원에서의 숲속 걷기여행을 그렇게 끝났다. 비록 숲의 바람과 소리까지 건네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그건 당신이 직접 숲으로 향해서 경험해야 할 몫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지 않겠나. 영원히 소멸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만큼은 당신이 가진 걱정,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풀고 싶은 어떤 고민의 답을 얻어갈 수도 있겠지.

이 숲박사는 이렇게도 말했다. “사람도 세상도 점점 악해진다. 그 가운데 숲이 있다. 심신을 정화하고,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영감과 건강을 주는 것이 숲이다.” 세상의 악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악의 점점 평범해진다. 악의 평범함. 악을 악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세상과 사람은 서로를 직조한다. 발효가 아닌 부패되는 것이 또한 세상이자 사람이다. 영혼을 세척하고 세상을 덜 슬프게, 세상이 당장 썩지 않도록 만드는 방부제로서의 숲.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에 비례해 숲도 점차 망가질 것이다. 그것은 자명하다. 문명의 역사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은 곳치고 타락하고 부패하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숲이 더욱 망가지기 전에, 숲에 대한 애정을 품고 대화하고 머물러보는 것, 어떻겠나. 숲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악한 사람이 없다는, 그런 입에 발린 흰소리는 않겠다. 다만, 우리의 악함이 좀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그래서 세상과 지구의 부패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숲을 빌려준 뒷 세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숲을 거닐고 싶다면,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속 걷기여행』을 권한다. 아울러, 숲에 대한 좀 더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고 싶다면, 『숲에게 길을 묻다』(김용규 지음/비아북 펴냄)를.


참, 정상을 향해 치닫는, 산을 정복 대상으로 삼아 정상 점령을 목표로 하는 ‘등산’보다, 산을 관조하면서 거니는 입산, 숲과 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숲 탐방을 권한다. 부디 숲에 가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마시고.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나을 터이니.

이천용 숲박사가 책에 적어준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생명의 숲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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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폰 오사카.

커피회사에 다니는 덕이랄까, 우리 기획팀장의 수고에 힘 입은 덕이랄까, 
생애 처음으로 발 디딘 오사카. 시장조사차 온 오사카에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베이커리 및 디저트, 스트리트 음식을 비롯, 
맛 있고 없고를 떠나 입을 열고 오감을 활짝 펴서 먹고 있다. 야미야미!

말(글)로 들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일본의 커피를,
거대 체인부터 개인 커피하우스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마시고 있다. 스멜스 귯~   

비록 짧은 나날 머물 곳이지만, 내 생의 사소한 흔적을 이곳에도 남긴다.  
우린 언어가 다르고, 여러모로 다르지만 나는 그들과, 그들은 나와 다르지 않다.
세계는 우리라는 작은 점이 행하는 생의 거룩한 몸짓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그렇게 나의 생을,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이 작은 몸짓,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것은,  
소셜 커피 Social Coffee, 소셜 카페 Social Cafe 연대기의 일환임을. 
커피가 세계를 어떻게 만나 세계와 함께 공존하는 것인지 알고 싶은 나의 몸짓이다.
 

그리고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당신과 함께 그 압도적인 커피를 함께 마시리라.

당신을 위해 나는 그 커피를 꼬불쳐 놓는다. 그때도 우리 먹고 마시고 사랑하리니.

아트라베시아모(함께 건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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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카(Lenka). 가수다. '캔디 팝' 혹은 '슈거 팝'에 강점을 지닌 호주 출신의 싱어.

아마, 그 이름을 몰라도
지난해 고현정씨가 나온 모석유화학 회사의 CF.
삽입곡으로 쓰였던 상큼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삽입곡 제목은 'The Show'


뭣보다 렌카,
나의 완소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입곡 또한 불러줬다.

지난해 연말경 렌카가 내한공연을 펼쳤으나, 못가서 아쉽다.
가을보다는 봄에 들으면 좋을 그녀다.

아래, 이터뷰는 그래서 직접 만나서 하지 못하고,
원격으로 한 이너뷰가 되겠다.

그 어느해 봄날,
요정 같은 그녀를 만나 봄날의 아기곰 같은 그녀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아, 그 봄날이 하염없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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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미국에 있는 뮤지션 렌카와 이메일로 진행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아, 봄이다, 봄.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자기 살을 찢으며 꿈틀꿈틀 소생하느라 잔인함을 동반한다는 계절이지만, 싱그러움 또한 온전하게 봄의 캐릭터다. 온몸으로 봄 햇살을 흡수하면서 상큼한 노래로 귀를 간질인다면, 아, 꿈결 같은 세상. 그렇게, 지금 봄이 내린다.

좋아, 그렇다면 어떤 노래가 좋을까, 고민하는 당신에게 여기, 렌카(Lenka)! 누구냐고? 좋아. 이름은 처음 들어본 것 같아도 어쩌면 혹시나 들어보고 어깨를 들썩들썩해 봤을 법한 이 노래들. 미국드라마 <어글리 베티>에 삽입된 ‘The Show’. 이 노랜, 배우 고현정이 나온 고이 잠든 아기의 모습이 귀여운 모석유화학 CF에도 삽입돼 있다. 아니라면, 나의 완소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를 풍성하게 만든 ‘Trouble Is A Friend’ 혹은 ‘Live Like You’re Dying’. 후욱, 입안에 절로 달콤한 침이 고이지 않아?


그래도 모르겠어? 좋아. 그렇다면 블로고스피어에 차고 넘치는 이런 상찬들. 찬란햇렌카, 솜사탕 같은 목소리라는 제목의 포스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연히 딱 한번 들었을 뿐인데, 입가에서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짙은 리듬과 그녀 특유의 발랄한 보이스!··· 멍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뭔가 상큼한 자극이 절실하다면, 피곤에 지친 저녁 혹은 퇴근길, 유쾌한 기분전환을 원한다면! 렌카의 ‘Show’를 들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하늘여시봄을 부르는 렌카의 음악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에서 ‘The Show’정말 봄을 부르는 노래 같지 않나요?”라고 그 상큼함을 전달한다.

미국 미디어들의 다소 호들갑스런 상찬도 곁들이자면, “렌카의 음악은 밝고, 청명하고 흥이 난다. 친한 여자친구들끼리 모여 놀러 가는 밤에 들으면 딱 좋은 음악이다.”(저스틴) “렌카는 리스너들을 어떻게 하면 지겹지 않고 단번에 중독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다.”(오레거니언) “캐시미어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정교한 편곡을 감싸 안는다. 직접 연주한 피아노, 퍼커션, 비브라폰, 철금종에서는 관현악 느낌이 가미됐던 60년대 초반의 팝 음악이 연상된다.”(스핀)

그리고 렌카(의 음악)를 만난다면, 저 상찬들에 당장,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찬성표를 던지고 말 것이다. 내기 걸어도 좋다. 머리는 끄덕끄덕, 어깨는 들썩들썩, 입은 흥얼흥얼. 다소 오버하자면, 나는 렌카의 노래가 봄날의 아기곰같다. 봄날의 아기곰? 뭥미? 이런 거다.

봄날의 들판을 내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내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 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


,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봄날의 아기곰과 함께 뒹굴고 싶다면, 렌카의 음악을 지금 이 봄에 들어보는 것, 꽤 괜찮지. 말하자면, 슈거 팝(Sugar Pop). 그렇다고 이가 썩을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고. ‘과일향 츄잉팝 라즈베리 소녀의 해피 바이러스가 당신과 나의 일상에도 잔잔히 묻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히피처럼 자유분방한 아우라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그건 아마도 히피였던 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때문이리라), 어렸을 때 제일 친한 친구가 한국에서 호주로 입양된 아이여서 한국을 아주 조금 알고 있는, 비빔밥을 아주 좋아한다는 렌카와 나눈 이야기 속으로, 고고씽.

그냥 를 즐기는 렌카

그는 지금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첫 싱글 ‘The Show’로 단숨에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은 그. 그 노래에 나오는 이 구절, “Just enjoy the show(그냥 쇼를 즐기기만 하면 돼)”.  자신에게 혹은 우리에게 건네는 듯한 그 말, 딱이다.

물론 바로 앞에 나오는 가사인, “I want my money back”과 결합하면 이건 좀 요즘의 상황을 은유한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렌카 왈. “인생은 쇼라는 은유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관객인 우리는 쇼를 조절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때론 정말 형편없는 공연을 보면 내 돈 환불해줘라고 소리 지르고 싶지 않은가. 인생도 살다 보면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데, 라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때 크게 소리 한번 지르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꼬마전구라는 블로거는 이런 말로 이 노래의 흥겨움을 표현한다. “극장에서 정말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나서, 망설이다 도전한 신메뉴의 참담한 맛을 보고 나서, 그리고 돈 떼먹고 도망간 사람에게 가서 귀에 바짝 달라붙어 불러대고 싶다. I want my money back.”

하나의 사례지만, 이런 반응들은 그가 이미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는 뜻이렷다. 라디오 에어플레이 3위권에 꾸준히 머무는 등 한국에서도 그는 이미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직비디오도 참 예쁘고, 재미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싱글은 뭘까. 역시나 흥미로운 뮤직비디오도 나올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Trouble Is A Friend’ (<그레이 아나토미> 삽입)가 될 확률이 높다. 아마 온 세상이 원하는 곳이 그 노래라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웃음) 뮤직비디오도 계획하고 있다. 아마 곧 만들 것 같다. 작은 줄 인형을 이용한 내용으로 수정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아니다. 1년 전쯤에 ‘viral video’ (인터넷상에서 공유를 통해 광범위한 인기를 얻은 단편 동영상)가 있긴 한데, 이번에 더 많은 사진을 찍어서 제대로 된 비디오를 만들 예정이다.”

음악은 렌카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도
, 그러니까, 능력이다. 그는 어린 시절, 피어싱을 위해, 즉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접했다. 아버지가 재즈뮤지션이었지만, 그는 음악에 마음에 열지 않았다. 귀를 뚫기 위해 피아노와 트럼펫을 배우고 음악시험에서 B학점 이상을 받아야 했던 소녀.

그의 예능 기질은 되레
연기에서 발현됐다. 우연이었지만, 8살에 연기자로 데뷔했고, 명배우 케이트 블란쳇’(<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아임 낫 데어> )을 선생님으로 연기지도를 받았다. “케이트 선생님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영감이 넘치며 또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제가 연기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고 처음으로 전문적인 직업을 갖게 해줬죠.”


그러니까
, 당시 렌카는 음악보다는 연기였다. 물론 예능분야에 그만큼 재질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지만, 음악과 사랑에 빠진 것도 따지고 보면 운명이라고 이름 붙여도 된다. 연기를 통해 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2002 <Somesault>라는 영화에 가수 역할과 함께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렌카. 영화음악에 참여한 호주의 유명 익스레피멘탈 록그룹인 디코더 링의 드러머 토마스 슛징거는 그에게 밴드 보컬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당시 호주의 거의 모든 영화음악상을 싹쓸이했다.


이 과정에서 렌카는 음악활동에 재미를 붙였다
. 그렇게 피아노 앞에 앉기 싫어했던 소녀였건만, 음악이 다시 그에게로 왔다. 디코더 링과 한 장의 앨범을 더 만든 그는 솔로활동을 결심한다. 애초 밴드 보컬로 활동하기 전부터 품었던 열망이었고, 하고 싶은 음악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솔로활동의 새로운 둥지는 미국 LA. 그리고 2008, 렌카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딴, 생애 첫 솔로앨범 <LENKA>를 세상에 내놨다.


그는 스스로 어떻게
1집 앨범을 평가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평은 어떨까.


물론 내가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가끔은 사랑스러움이 과한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웃음)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그런 점이 내가 다음 앨범에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포인트다. 하지만 이미 만든 앨범에 대해서 후회를 해서는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간에 감정에 솔직했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그랬으니까.

평단에서는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만을 위한 노래라는 평도 있다. 하지만, 평에 동의 없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자신은 헤비메탈 팬이다 혹은 음악 팬인데, 당신의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준다.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게도 대부분 좋은 평을 받아왔다.”

그에게 음악은 어떤 오해로 헤어졌다가 다시 오해를 풀고 해후한 천생연분 같다. 그는 지금 음악이 영화보다 재미있단다. “연기자였을 때는 여러 다른 캐릭터를 연기 했지만, 이젠 주로 곡을 쓰고 노래하고 공연을 한다. 곡을 굉장히 개인적이고 자신에 대한 얘기를 쓰면서 자신을 들어낼 있다. 그런 면에서 무섭기도 하지만, 만족도와 재미는 같다.” 말하자면, 음악은 나의 운명?

뮤지션 렌카는 계속 진화한다

<LENKA>
크레딧을 보자면, 전곡이 공동 작사, 작곡이거나 렌카 혼자 만들었다. 물론 전적으로 그의 힘으로만 이뤄진 앨범이 아니다. 막강한 조력자들이 있었던 덕이다. 예를 들면, 데이비드 캠벨. 유능한 작곡가이자, 6 그래미상을 수상한 있는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까지도 맡았다. 디코더 링의 멤버들도 도움을 줬고. 그렇다면, 공동작업을 때와 홀로 작업을 ,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작업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와 공동 작업을 뿐이지 여전히 앨범을 위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도 스타일을 반영해서 곡을 써주려고 했다. 단지 외에 다른 명의 머리가 참여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취향과 멜로디와 가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용되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음악을 작사, 작곡하는데 단연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공동 작업을 해서 만든 곡은 톡톡 튀고 강한 반면, 내가 곡들은 주로 자신에 대한 것이고 좀더 정적이고 자기반성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나 할까.”

협업하는 곡에서는 나름 역할분담도 했다. “주로 대부분의 분야에 관여를 하긴 하지만, 내가 멜로디와 가사에 쪽에 많은 관여를 한다면 같이 작업하는 사람은 코드, 비트를 만들어가는데 집중했던 편이다. 나는 이런 방식의 공동작업을 좋아한다. 내가 혼자 노래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음악을 맞는다. 하지만, 가끔은 공정하게 반반씩 관여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The Show’ 싱어송 라이터 Jason 함께 작업을 했는데, 우리 반반씩 가사와 멜로디 작업에 기여했다.”

그는 확실히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재원이다. 보컬뿐 아니라 여러 악기를 다룬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은 내가 훌륭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말한다.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하는 연주자도 아니고, 주로 노래를 하는 자신이지만, 많은 악기를 배우고 싶단다. 그는 악기 수집이라는 취미도 있다. 그의 능력과 역량은 아직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모른다. 그는 젊고 이제 1 앨범을 신출내기다.

주변에 정말 훌륭한 뮤지션들이 내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음악을 있을 모르겠다. 앞으로 능력을 발휘할 있는 길을 알아가길 바라고 있다. 사실 평생 나의 능력과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아마 좌절이나 실패 같은 모르게 텐데, 그렇다면 아마 나은 뮤지션이 되고 싶은 갈망 같은 느끼지 못할 아닌가. 평생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음악 욕심쟁이, 유후후~.

기왕이면, 듀엣을 해보고 싶은 가수가 누구인지 물었다. 역시나,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답변이 우선 나왔다. 그리고, “배우 쥬이 디샤넬과(Zooey Deschanel)과도 함께 해보고 싶고, Blur Gorillaz 출신의 데이몬 알반(Damon Alban)하고도 같이 작업하고 싶다. 훌륭한 가수들이다. 하지만, 특정 가수로 한정 짓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 두고 싶다.”

추정하건대, 아마도 그는 듀엣과 같은 작업을 하면서 상대방의 노하우와 장점을 상당부분 흡수하지 않을까. 그렇게 렌카( 음악) 진화할 것이다.

“‘Skipalong’, 들어보세요

그의 목소리는 솜사탕 같다 얘기를 종종 듣는다. 달콤하고 듣는 사람이 즐거운 까닭이다. 혹시 특별한 창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특별한 창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러운 목소리다. 내가 조절할 있는 한계가 있다. 어릴 , 목소리를 찾아가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땐 아무도 목소리가 특이하다거나 이상하다는 얘기를 없다. 나의 개성 있는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도록 해줬다. 그때부터 목소리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던 같다. 그리고, 노래할 최대한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가사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창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냥 노래하는 너무 사랑한다.”

창법보다 자연스런 목소리. 그렇다면 자신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고, 최대한 술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공연 전에 워밍업도 빠뜨리지 않는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을 풀어주고 목소리의 수명을 늘려준다. 가끔 워밍업 없이 무대에 올라 시간씩 소리를 질러대는 가수들이 있던데 그렇게 하면 후에는 아예 노래를 부를 없게 된다.”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로 들었으면 하는 곡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Skipalong’ 들었다. 처음 녹음을 마친 곡으로 결과물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단다. 여느 곡보다 감정이 더욱 충만하고 템포가 느린 곡으로 삶에 대해 갖고 싶은 태도를 메시지로 담았다. 인생의 역경에 발목 잡히지 말고 역경을 헤쳐 나가라는.

가수 롤모델은 비요크

<LENKA>
앨범을 듣다 보면, 뮤지션이 떠오른다. 물론 그에게 완벽하게 비길 바는 아니지만, 렌카의 아우라는 왠지 그와 닮아있다. 그는 비요크(Bjork)’. 비요크는 또한 렌카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용감함과 독창성. “그녀의 독창성을 아무도 비난하거나 감히 따라 없다. 비록 나와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그녀의 예술적이고 동심이 가득한 감성을 좋아한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어 있을지,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는지. 하지만 그는 비요크와는 다른 모습의 렌카일 것이다. 그는 그저 현재에 충실하면서 비요크라는 롤모델을 이정표 삼아 발을 디딜 것이다. 1 앨범을 듣고 다음 앨범도 궁금하지만, 아직 앨범과 열애를 진행 중이다.

그는
“2 앨범을 위해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서 구상을 하거나 그러고 싶진 않다 단호하게 말한다. 다만, 같은 컨셉트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앨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1집에 담긴 요소를 좀더 나은 것으로 진화시키고픈 욕심. 무엇보다 그의 말에 방점. . “ 음악을 좋아하게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렌카 스타일한번 보실래요?

그는 일단 스타일이 튄다. 앨범만 봐도 그렇다. 알록달록 사랑스러우면서도 톡톡 튄다. 렌카를 아는 사람이 그를 제대로 드러낸 같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누가? 맞다. 남자친구 제임스 길버 핸콕의 작품이란다. 렌카의 마이스페이스 찾으면 제임스는 topfriend 등록돼 있다. 같은 호주 출신의 그는 앨범과 관련된 모든 아트워크 작업은 물론 개의 비디오 작업과 셋트 작업에 일조했다. “내가 곡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도 곡을 위한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공연할 때나 앨범에서의 패션도 마찬가지다. 아무나 소화할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대되는 신예 디자이너가 만들어준 드레스다. 앨범 속지에도 이름을 언급한 같다. 원래 벌만 만들었는데, 무척 마음에 들어서 뮤직 비디오를 위해 만들었다. 다른 녹색 드레스는 공연 무대에 종종 입는다. 그래서 세벌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어떻게 입을까, 궁금하지 않나. 그의 표현대로라면, 극과 극이란다. “편하게 청바지나 트레이닝 복에 스니커즈를 신거나, 완벽하게 갖춰 입거나 하나다. 무대에 오를 앨범에 있는 것처럼 귀여운 드레스를 입는다. 쇼핑을 주로 구입하는 아이템들도 청바지, 티셔츠, 귀여운 드레스 세가지 정도다.”

여행도 그런 그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단면이 있겠다.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오랫동안 여행을 못하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어디든 나가서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 히피 DNA 내포한 자답다. 그러나 요즘은 공연을 위한 투어, 수없이 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매일같이 공연을 하다 보면 피곤이 쌓여 여행 떠나기도 힘들단다. 가장 최근 투어가 아닌 여행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떠났던 멕시코. “완벽하게 여행자가 되어 바닷가에 누워 쉬기도 하고, 미술관도 가고, 자전거도 탔다. 진정한 휴가였다.”

그래서 일까. 그는 멕시코를 여행지로 추천했다. 덧붙여 모로코. 매우 환상적이었단다. 친지들이 살고 있는 체코도 자주 가는데, 프라하는 정말 멋진 곳이라고 강추한다. 유럽을 다니면서 오래된 교회건물이나 미술작품을 보는 것이 그의 즐거움. 공연을 위해 미국 전역의 도시를 갔는데, 뭐니뭐니해도 그에게 최고의 도시는 뉴욕!

디지털음원보다는 CD!”

지금의 음반시장은 디지털이 대세다. CD 테이프보다 음원을 다운받아 mp3 아이포드 등으로 음악을 섭취하는 . 문제는 공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어둠의 경로로 음악을 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렌카는 스스로도 그런 유혹을 경계하면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다운로드 받는 것은 하나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숱한 노력을 들인 뮤지션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뮤지션들은 다른 직업이 없고 음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냥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음악을 가져가는 것은 잘못됐다. 나도 음악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 때문에 CD 예술작품은 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는 말하자면, CD옹호론자다. CD 사면 아트워크나 가사를 꼼꼼히 살필 있고, 어떤 가수의 팬이라면 가수의 CD 모두를 사서 모으는 것은 의미가 있단다. 눈앞에 있는 실물을 직접 만져보고 들어볼 있으니까. “어렸을 , 기분이 우울하면 CD 반복해서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가사를 시마냥 외웠던 추억이 있다. 그런 추억을 아직 누군가 누리고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그날까지

그에게 한국 방문 계획을 물었다. 다가오는 여름, 써머소닉 페스티벌 참여 일본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장은 한국 방문 계획은 없단다. 스케줄이 빡빡해서 어려울 같단다.

그렇지만, 시간이 허락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와보고 싶다던 그가 한국의 팬과 예스24’ 방문자들을 위한 남겨준 멘트. “ 음악을 들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한국에 찾아가서 여러분께 직접 노래를 불러 드리고 싶어요.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고마워요.

아울러, 한국 팬들에게 자신의 음악 휴대폰 벨소리로 추천하고픈 . ‘The Show’ 한국에서 다운 받을 있는지 모르겠는데, “I want my money back” 벨소리로 나온다면 재미있을 같아요.”

다시, 나는 그의 노래 속으로 빠져든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노래, Dont let me fall. 그리고 어쩌다, 뜬금없이, 돌려달라고 외치는 것도 재미있을 같다. 내가 혹시 그런 느닷없이 꺼내더라도 당황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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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피아프는, '사랑'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지.
그녀가 부른 불멸의 노래 곳곳에 그 사랑의 흔적과 감정이 묻어 있거든.
노래에 틈입한 에디트 피아프의 이야기를 알고 듣는다면, 노래가 또 달라질 걸.

"이제 목요일이면 너의 품에 안겨서 꿈을 꾸고, 너를 사랑할 수 있겠지. 너 없는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고, 너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밤이나 낮이나 나는 네 생각뿐이야. 어서 돌아와서 나의 근심을 멈춰줘." (이경준 음악칼럼니스트의 <사랑의 두 비극: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가?>에서 인용)

피아프가 유일하게 진실한 사랑이라고 밝힌 세르당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그리고 비극으로 끝난 피아프와 세르당의 사랑을 담은, 무척 유명한 노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작사를 피아프가 했으며, 작곡은 그녀의 친구인 마르그리트 모노가 했다.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자신도 따라 죽고 우리는 함께 할 것"이라는 내용을 품었다. 물론, 피아프는 세스당을 따라 죽진 않았다. 

최윤희 씨 부부, 《D에게 보낸 편지》,  에디트 피아프가 맞물린다.
한 사람이 없는 텅 빈 세상,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길 바라는 어느 사랑(들).
물론, 당연하게도 한 쪽이 없어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도 사랑이다.
알잖아. 'Dieu réunit ceux qui s'aiment(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니까!!!
 
10월11일.
에디트 피아프의 47주기.
잡지 <뷰즈>에 기고한 에디트 피아프 이야기.

안개 낀 가을날.
에디트 피아프 노래를 들으며 진한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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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노래했으므로,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

샹송 디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2.19 ~ 1963.10.11)


지난 여름, 흥행몰이에도 성공하고, 각종 화제로 들썩했던 영화 <인셉션>. 그 화제의 1인치에는 중요한 삽입곡인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가 있었다. 그 내용은, 굳이 지면을 통해 말하진 않겠다. 그게 핵심은 아니니까. 이 노래, 에디트 피아프를 안다면, 아니 몰라도 워낙 유명한 노래니 들으면 ‘아~’하는 탄성을 내지를 것이다. 영화팬에게도 무척 익숙한 노래다. 스크린을 통해 다반사로 나오니까.  


대충 목록을 읊어보자. 독일 영화 <파니 핑크>의 메인 테마. ‘여자가 서른 넘어 결혼할 확률은 원자폭탄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노처녀 파니 핑크를 위한 곡이었다. 프랑스 영화 <몽상가들>의 엔딩곡. 68혁명의 어느 한 순간을 다룬 이 영화에서, 이 곡은 어쩌면 실패로 규정된 68혁명을 보듬는 뉘앙스도 풍긴다.


뭣보다,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 영화인 <라비앙 로즈>에서의 이 노래, 물 만났다. 피아프로 분한 마리안 코티아르가 실감나게 모창했다. 피아프의 현현인가 착각이 들 정도. 코티아르는 이 역할로 200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다. (코티아르는 <인셉션>에도 나오는데, 이 노래와 함께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한국에선 어떻게 회자됐을까. 지난 9월1일 1주기였던 영화배우 고 장진영은 자신의 영화인생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음악으로 이 곡을 꼽았다. 역시 지난 여름, 최고 인기드라마였던 <제빵왕 김탁구>. 탁구(윤시윤)가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간 유경(유진)을 향해 택시 세레나데를 펼치며 들려줬던 음악이 ‘Non, Je Ne Regrette Rien’. 


피아프를 수렁에서 건진 노래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Non, Je Ne Regrette Rien’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그 자체다. 노래가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노래인. 사연은 뒤로 미루고, 번역된 가사부터 엿 보자.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대가는 치렀고, 다 지난 일이고, 이젠 잊힌 과거니까.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 내 추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샹송의 디바, 에디트 피아프의 4대 명곡 중 하나로, 가장 늦게 발표된 노래였다. 사랑에 얽힌 과거 대신 새로운 사랑을 꾀하겠단다. 권토중래라고 해도 될까. 피아프의 연애사를 안다면, 고개 끄덕일 만하다. 그러니, 사랑에 배신당했다고 세상 끝, 아니다. 사랑은 모습을 바꿔 다시 온다. 그것도 노래와 함께. 피아프라면 그리 말할 만하다.


사랑도 그렇지만, 이 디바의 삶은 그 굴곡이 예사롭지 않다. 이 곡을 발표하기 전, 피아프는 피폐했다. 정신이나 몸, 모두 망가진 상태였다. 술, 마약은 기본이요, (굳이 남자는 넣지 않겠다) 예민한 예술가에게 따르곤 하는 자살미수도 있었고, 결핵, 간염, 관절염, 암 등 온갖 질병도 함께하곤 했다.


빛나던 ‘작은 새’의 영민함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실의에 찬 나날이었던 피아프에게 한 작곡가가 찾아왔다. 작사가 미셀 보케르의 소개로 찾아온 샤를르 뒤몽(Charles Dumont). 몇 차례 수상 경력이 있긴 했으나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였다. 피아프는 물었다. “왜 날 만나자고 했지요?” 그는 피아프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제가 미력하나마, 피아프님께 작품을 헌정하고 싶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대가수 앞, 떨리는 목소리였다. 병든 닭 같은 피아프의 모습이었지만, 뒤몽의 심장박동은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였다.


여느 때처럼 꼬이는 똥파리를 대하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피아프는 말했다. “당신이 쓴 곡이니 직접 불러보세요” 두둥. 뒤몽은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노래가 한참 진행되던 와중, 피아프가 벌떡 일어났다. 눈이 반짝반짝. 병의 기색이 순간 사라졌다. “멋져요. 당신은 정말 멋진 곡을 썼어요. 내게 딱 어울리는 가사고요. 나의 유언장이 될 것 같은 노래에요. 당신은 요술쟁이.”


물론 ‘우후훗~’까지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사랑 받는 피아프의 명곡 ‘Non, Je Ne Regrette Rien’는 이렇게 탄생했다. 1960년 12월, 피아프의 네 번째 올림피아 극장 라이브에서 공식적으로 데뷔한 이 노래. 피아프의 삶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당당히 “후회하지 않는다”며 외치며 돌아온 탕자(?)를 연호했고, 피아프는 화답했다. 과거? 후회? 그건 오늘이 아니니까, 이제 그만. 사랑하며 살고, 후회 없이 노래하리.


피아프, 그 불가항력적인 욕망의 화신    


피아프는 죽을 때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의 찬가’를 부를만한 가수다. 그녀는 1962년, 21살 연하의 데오 사라포와 결혼했다. 죽기 1년 전이었다. 소화기계통 출혈로 요양소 생활을 하던 그녀는 1963년 사라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다. 비극이 끊임없이 삶으로 삼투압 하던 와중에서도 노래와 사랑을 놓지 않던 그녀도 이땐 어쩔 수 없었나보다.


물론,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리의 가수 딸로 대낮 거리 한 복판에서 태어난 피아프였다.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환경. 부모는 그녀를 떠났고, 매춘부 소굴에 버려진 그녀를 구원한 것은 바로, 목소리. 노래를 부르며 친구와 서로 의지해 살던 그녀는 16살에 배달사환인 루이 듀퐁과 사랑에 빠져 이듬해 딸 마르셀을 낳았다. 하지만 아이는 2살 무렵 수막염으로 죽고 말았다. 다음 남자친구는 하필 포주였는데, 몸을 팔지 않기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번 돈을 그에게 상납했다. 아직 피아프는 십대 소녀였다.


열여덟. 처음으로 거리가 아닌 무대에 섰다. ‘쟈니스 카바레’의 지배인 루이 르플레 덕분이었다. 그는 기본 무대 매너는 물론, 피아프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드레스를 입도록 조언했다. 음악적 아버지와 같았던 루이. 그러나 그는 갱단에 살해당했고, 가수이자 시인․소설가인 레이몽 아소가 그녀의 가수활동을 도왔다. 그때부터 이름을 ‘에디트 피아프’로 사용했다.


피아프는 그 목소리 덕분에 파리의 유명인사로 발돋움했다. 인기는 높아졌고, 그녀(의 노래)를 찾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럴 때, 똥파리(남자)들도 자연스레 꼬이는 법. 이브 몽탕도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미 거물이 된 피아프가 연하의 몽탕을 발굴, 데뷔까지 시켜줬다.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는 몽탕과 함께 한 꿀 같은 사랑이 배태한 곡이다. 그러나 몽탕은 그런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다른 연인을 찾아갔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그녀에게 몽탕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었다.


권투 미들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막셀 세르당과 나눈 사랑도 널리 회자됐다. 세르당이 피아프와 만났을 때, 유부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을 막을 순 없었다. 그들 사랑의 편지가 책으로 엮일 정도로 활활 타올랐으나, 비극도 피할 수 없었다.
 


1949년 10월 뉴욕 공연이 있던 피아프, 당시 시합 때문에 파리에 머물고 있던 세르당. 경기를 끝내고 여객선을 타고 뉴욕에 가려던 세르당에게 피아프는 빨리 보고 싶다며 재촉했다. 비행기로 바꿔 탄 세르당에게 가장 빨리 다가온 것은 피아프가 아닌 추락 사고였다. 자책과 절망과 그리움으로 망연자실 살던 그녀에게 어느 날 욕실에서 갑자기 떠오른 악상. 세르당을 위한 것이었다. 그 노래가 바로,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에디트 피아프. 유난히, 예민하고 감성적이었으며 종잡을 수 없는 예술가. 사랑만 하다 죽어도 부족할 것 같은 이 여인은, “사랑은, 경이롭고 신비하고 비극적인 것이며, 사랑은, 노래를 하게 만드는 힘이고, 나에게 노래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 없는 노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이율배반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아이보다 새 연인이 더 좋다며, 자신도 어릴 적 그리 당했으면서도, 아이를 버렸다. 미래의 사랑을 위해 오래 살아야 한다며 전쟁의 참상을 외면했다. 무대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했으나, 무대 밖에서는 외로움과 비극이 싫어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맸다. 오죽하면, “나는 나 자신을 망치고자 하는 불가항력적인 욕망을 지녔다”고 말했을까.


블랙 슈트를 입고 노래하다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여인, 피아프는 시월에 눈을 감았다. 갑자기 어디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궁금한 그 계절에. 마지막 사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더 이상 사랑에 대해서도, 노래에 대해서도 ‘빠담빠담’(심장이 뛰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즉 ‘두근두근’)하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가을바람이 찼다. 어쩌면, 그녀는 마지막 순간, 이렇게 흥얼거렸을지도 모른다. “Dieu réunit ceux qui s'aiment(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 ‘사랑의 찬가’, 마지막 구절이다.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 <뷰즈>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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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랐던 최윤희 씨 부부의 소식.

행복전도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 절절한 아픔 혹은 모순은 일단 차치하자.

그 소식 듣자마자,

떠오른 책과 사람들이 있었으니.
《D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앙드레 고르와 도린 케어.

앙드레와 도린이 어떤 지성이었고,
어떤 사회적 지위를 누렸는지는 생략.

다만,
이것만 언급하자.

 
앙드레는 도린을 알기 전,
여자와 두 시간만 같이 있어도 지루해지고,
결혼을 부르주아 계급의 제도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앙드레가,
도린과 결혼하면서 깨달은 것은,
"당신과 함께있을 때마다, 당신이 나를 다른 세상에 이르게 해준다는 사실."

앙드레와 도린은 함께 생을 마감했다.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자 남편은 공적 활동을 접고 20여 년간 간호했다.
그리고 2007년 9월22일 자택에서 한 사람 없이 혼자 살아가길 거부했다.

왜였을까. 지난 8월 경이었나.
방을 정리하다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짠~하고 눈앞에 펼쳐졌다.
'왠 쭈글탱이 노인네들이지~'하고 그냥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 사진이 눈에 훅~ 들어오더니 쿡~ 박혔다.

그 어떤 사랑의 사진보다 아름답고 짠했던,

그래서 지금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이 모습.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죽는다는 것,
사랑에 대한 낭만과 신화를 공고히 만든 하나의 축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선 부부가 같이 죽는 건,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했다. 

앙드레 고르 부부와 최윤희 부부.  
옳고 그름, 그런 것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고. 
신의 선물을 '자율생산'한 것에 대한 부러움도 아니다.

앙드레와 도린은, 서로 만난 지 60년, 결혼한 지 58년 만에,
시골마을 정든 집에서 마치 잠자듯 나란히 나워 주사를 맞은 뒤 삶을 마감했다.

최윤희 부부도, 오랜 세월 함께 했다.
한 모텔에서 서로의 사랑에 고마워하고 때론 미안해하면서 삶을 마감했다.

삶에서도 연대하고 동맹을 맺고, 죽음까지 그러한 사람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실천한 사람들.

그러지 못한 사람에겐 그래서 남은 삶이 덤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

어느 사랑이든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법.
하지만, 그 사랑은 끝나지 않겠구나.
부디, 명복을 빈다.

그러니 여자들아, 아주 극히 초드물지만,
세상엔 앙드레나 최윤희 씨 남편 같은 남자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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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 불꽃축제일이라고 붕붕 띄우고, 한글날이라고 말하지만,

내겐, 혁명 전사(戰死)일.
체 게바라. 1967년 10월9일, 체는 불꽃처럼 산화했다.

즉, 올해 43주기.
지난해 이날, 쿠바 커퓌를 추출했다. 그땐, 혁명이 졸졸졸 흘러내렸다.
올해 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진하디 진한 혁명적 에스프레소를 삼킬 것이다.



내가 아는 혁명은 여전히,
누구의 배도 곪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나는 비록 누구의 배도 곪지 않도록 만들 순 없지만,
마음의 배가 곪지 않을 수 있는 커퓌를 당신에게 건네고 싶다.

아직 21세기는 오지 않았다.
어떤 혁명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혁명과 함께 나와 당신의 21세기가 당도하리라 믿고 싶다.

수입해 놓고선,
2년째 아직 극장에 안(못) 걸리고 있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
올해도 다시 한 번, 개봉 촉구!

그리하여, <체>를 보면서
나는 당신과 불꽃혁명 커퓌의 향을 음미하리라.
로스팅, 블렌딩, 추출까지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혁명적 연대.

우리의 혁명적 건배사!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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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말하자면, 나는 야구소년이었다.
야구를 잘했냐고? 선수였냐고? 워워. 일단 내 말부터 찬찬히 듣고 얘기하자.

내 기억이 닿는 한, 가장 먼저 접한 스포츠는 야구.
글을 읽기 시작한 때부터 소년은, 야구라면 무조건 읽었다.
집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일간스포츠)의 야구부터 챙겨봤을 정도.

오죽하면 그 어린 나이, 소년은 야구를 스크랩했다.
그땐 고교야구가 지금과 달리 대세였는디, 고교야구를 꼼꼼히 챙겨 오려서 스크랩북에 고이 붙이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소년. 물론 프로야구가 대세가 되면서 옮겨탔다.

그러니까, 조그셔틀로 생의 기억을 최대한 돌려보면,
내 생애 최초의 Addiction은 야구였다, 야구.


B. 야구를 사랑한다면, 아이러브 Baseball.
방송 프로그램 홍보가 아니라, Baseball은 소년 시절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내 사랑, Baseball.

학교가 끝나면 매일 같이 야구였다. 비가 오면 하늘이 미웠다.
아버지를 졸라 야구 장비를 마련하고 끝내 유니폼까지 맞췄다.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회색유니폼에는 'LOTTE'라는 딱지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프로야구를 보기 위해 가족들은 종종 구덕야구장을 찾았다.
와우, 야구장, 참 크고 멋있다. 소년에겐 야구장이 그랬다. 


한때 나는 동네야구계에서 군림(?)했다.
동네 형들이 '야구하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은 까닭에, 내가 왕고였다.
어린 동생들을 겁박(?)해 에이스 노릇까지 하면서 치고 달렸다.
물론 포볼공장 공장장이었다. 동생들은 투덜거렸지만, 끝까지 '쌩'깠다.

지금은 그런 모습 보기 힘들지만, 참 많이도 도망다니고 어른들에게 혼났다.
아파트 유리창을 깨고 차에 흠집을 냈기 때문이다.
밥보다 야구였다. 조명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공을 던졌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때, 세상은 'Baseball Heaven'이었다.


C. 물론, 즐김이 우선이었다.
무조건 야구가 좋았던 시절. 그러다 불이 붙었다.
내 자연스레 응원하던 연고팀 노떼 자얀츠(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완전 극적인 우승이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역전 3점홈런을 때린 유두열 아저씨.
내 같은 반 급우의 외삼촌이었다. 녀석까지 덩달아 영웅이 됐다.
Champion. 그것이 그렇게 좋은 것인지 처음 알았다. 아, 세상엔 이런 희열도 있구나. 그리고 8년 후, 다시 희열이 찾아왔다.

1992년, 서울에 올라온 촌놈이 한국시리즈 5차전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노떼와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의 경기.
끝내줬다. 4승1패, 다시 한 번 Champion.

아, 나의 10대는 그렇게 행복하였노라.


D. 야구만화, 신난다 재미난다.
야구소년에게 야구보기, 야구하기만큼 좋아하는 것이 생겼는데, 그것이 야구만화.

생애 첫 만화부터 야구만화였다. 이현세 작가의 ≪제왕≫.
(그전부터 만화를 봤지만, 만화방에서 본 최초의 만화가 ≪제왕≫이었다!)

만화방 골수분자가 된 나는, 야구만화라면 '닥치고 본책 사수'였다.
내용 따위, 작가 따위 거의 가리지 않고 넘겼다. 이유 따로 있나, 야구앞에.

그렇게 당시 나의 Desire는 야구였다.
그렇다고 정식 선수가 되길 바란 것은 아녔다.
난 이미 동네야구 선수였고, 야구인이었으니까! 누가 뭐래도!

세상, 아니 한국의 모든 야구 만화를 섭렵하다가 만났던 이 작품.
≪H2≫!

훅~ 갔다.
이전까지 본 모든 야구 작품들을 무위로 돌릴만큼의 강력한 포스!
야구 만화의 모든 것.
세상 모든 야구작품을 합쳐도 따라오지 못할 폭풍간지.
내 생애 가장 뭉클하고 짜릿했던 야구만화였다. 
아니 '야구'를 빼도 무방할 정도의 내 생애 최고의 만화를 만났다. 심봤다~~~


E. 히로(≪H2≫의 주인공)는 나의 영웅(Hero).
깜빡 지나친 첫사랑에게,
"너한테 야구를 빼면 뭐가 남니"라는 말을 듣는 '본투비 야구소년', 히로.

나는 히로에 푹 빠졌고, 내 모든 감정을 이입했다.
아마 당시 내 감정은 이랬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히로로 태어나고 싶다.'

야구소년 히로가, 야구인 준수에게 미친 Effect는 예사롭지 않았다.
말하자면, 히로 Effect.  

한 번 보자. 히로와 그의 라이벌, 히데오(히데오 역시 영웅이라는 뜻)의 비교.

히로의 절친이자 고교야구 최강 타자 히데오의 야망 스케줄은 이렇다.


* 갑자원 - 프로야구 - 신인왕 - 올스타 출장 - 개인 타이틀. 팀우승 - 많은 기록을 남기고 은퇴 - 해설자에서 감독까지

와우~ 고교야구 스타 플레이어이자 최고 타자다운 스케줄이다. 
허허, 하지만, 나의 히로는 상대적으로 야망(?) 없는 플레이어다.

"뭐, 야구야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할 거지만. 난 동네야구든 뭐든 괜찮아."

'야망의 세월'따윈 필요없는, 허허실실 낭만적 한량 같으니.
명색이 두 사람 라이벌인데, 히로는 이래도 되느냐 싶겠지만,  

동네야구라도 상관없다는 그 태도. 나는 그 태도가 한없이 좋았다.

더구나, 비키니에 혹하고, 성인잡지라면 눈 반짝이는 십대의 야구소년이라니.
(<- 흠, 이건 십대의 나와 아주 비슷했다!)  

서울이라는 정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는 강박이 짓누르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경쟁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에,
아, 그러지 않을 수도 있구나.    

물론, 히로는 "야구하고 있으면 꽤 멋진" 야구소년이자 남자다.

오진때문에 잠시 멈췄던 야구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면서,
히로도 히데오와 똑같이 이런 딱지를 붙인다.
하긴 누가 라이벌 아니랄까봐.

목표
갑자원

히로의 이 목표는, 히데오에게 공 던지는 재미(!)를 알아버린 탓이다.

고로, 히로는 말하자면, 야심가다.
히데오처럼 어떤 지위를 확보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야구가 좋아서, 어떻게든 야구를 하는 일이 점지된 소명임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라이벌이지만, 다른 두 영웅.

나는 그래서, 히로가 되고 싶었다.
나의 행보도 조금씩 변모해갔다.
히로가 나의 영웅인 까닭이다.

두 영웅, 라이벌 중에 히로를 선택한 이유!



F. ≪H2≫, My Favorite!
히로 덕분이다.
히로에 푹 빠진 덕분에 내 마음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재미에서도 ≪H2≫는 극강이다.
감동에서도 ≪H2≫는 작렬이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되레 흠좀무(흠 좀 무서운걸)? 

나는 감히, 아다치 미츠루 작가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의 야구만화는 보는 이를 들끓게 만든다. 감정을 엄청 흔든다.

사실 그의 만화 모든 작품은 내용이 빤~하다.
딱 보면 답 나온다. 구도 또한 진부하다.
그런데도, 그의 세심한 터치는 그 모든 단점을 깔아뭉갠다.

≪H2≫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엄청 많다.
그럼에도, 혹 당신이 이 작품을 안 봤다면, 무조건 무조건이다.

하루까는 히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후회되니? 히까리를 히데오한테 소개한 것."

히로는 곰곰 생각하지만, 나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다.
"후회하지 않아."

아니, 뭘 후회하지 않아?
당신에게 이 작품을 소개한 것!
내 사랑을, 내 Favorite을 당신에게 소개한 것!!


G. 다시 ≪H2≫를 꺼낸 것은,
'이제 겨우 플레이볼 했을 뿐이야'라는 글 덕분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말이지 어찌할 수 없는 무한 희열을 찌리릿.
꺄오~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그 블로거의 글을 나는 무척 좋아하는데,
내 사랑하는 ≪H2≫를 그 역시 좋아하다니!

내가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간직한 것을,

누군가 역시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이 무지 친근해뵈고, 가까워진 그런 느낌.
그가 나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게 괜히 흐뭇해지는 그런 것.

그러니, 그가 말한 ≪H2≫에 대한 이 이야기도 덧붙여야겠다.



동의한다.
그러니 그 사람도, 나도 Guarantee한다! ≪H2≫를.
당신도 ≪H2≫를 보면, 동참하고 싶을 게다.
아니면? 그럼 당신은 우리와 다른 족속인 게지.ㅋ 

어떤 작품이든,
사귀어 보니 겉만 멋있는 게 아니었던 히까리처럼 추첨운이 따를 수도 있고,
하루까처럼 멋있다싶은 사람은 거의 다 겉만 번지르르한 뻥튀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엔 뻥튀기가 아닐거야.

아, 내가 Guarantee한다니까!


H. ≪H2≫의 'H'는 히로와 히데오의 이니셜, '2'는 두 사람을 가리킨다.
두 영웅은 확연히 '다르다'. 야구를 놓고도, 사랑을 놓고도 라이벌이지만.
어느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에게 감정이입할 것인지는 당신의 몫이다.
두 영웅의 라이벌 대결은 정말 흥미진진, 그 자체다.

물론, ≪H2≫, 히까리와 하루까를 가리킬 수도 있다.
두 소녀도 가만 보면, 라이벌이다. 것도 흥미진진.

짧은 가을 떠나보내고, 예기치 않게 겨울이 훌쩍 다가온 시간.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는 말이 있듯,
야구로 받은 상처, 야구로 치유하는 것일까.

내 손에는 ≪H2≫가 쥐어져 있고,
나는 다시 플레이볼할 내년 시즌을 고대하는 '기다림 모드'로 바뀌고 있다.

내 가을야구는 안타까운 참사로 끝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야구인이다.

그래서 나는,
야구는 9회말 2아웃에서도 역전될 수 있음을,
야구는 3할만 치면 엄청나게 잘 치는 것임을,
야구는 시즌이 끝나면 다시 시즌이 올 것임을,

여전히 믿고 있다.

나는 이 긴 겨울을 버티고 견딜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 내년 시즌까지 존재한다면,
나는 여지없이 호들갑에 오두방정을 떨어대면서,
당신도 익히 예상하듯, 이리 씨불댈 것이다. "봄은, 야구와 함께 온다."

그 모든 것은,
야구 뿐 아니라, 생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생이 움푹 파인 순간,
≪H2≫의 그들이 그랬던 마냥,
나는 당신 손을, 당신은 내 손을 잡는 것임을, 믿고 있다.

I 믿 You!


H2.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  
많은 사람이 알고, '이제 겨우 플레이볼 했을 뿐이야'에서도 언급됐다시피, ≪H2≫의 자장에서 비롯된 노래다.

덧붙이자면, 그 노래 가사는,
히로가 히까리에게 느끼는 감정,
히까리가 히로에게 느끼는 감정,
히까리가 히데오에게 고백하는 감정 등으로 엮여 있다.

≪H2≫를 보고,
<고백>을 들으면 그 노래 더 팍팍 꽂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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