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풍자하고 담아냈던 ‘카바레’의 힘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박철호



지금 베를린은, 새로운 ‘아트 씬’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전 세계 예술계의 ‘it place’. 점점 더 많은 예술가들이 베를린을 향한다. 더불어 예술을 향유하고픈 사람들의 행렬도 잇는다. 덕분에 현재의 베를린, 유럽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다. 예술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베를린은 대세. 세계 미술계의 축이 베를린으로 이동했다는 말, 틀리지 않다.

‘예술가들의 천국’으로도 불리는 베를린. 수치로 나타낼 수도 있다. 갤러리 600개. 미술가 5000명, 작가 1200명, 대중음악 밴드 1500개, 연극극단 300개. 베를린시도 예술가 후원에 적극적이다. 27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2000만유로(약 300억원)를 예술가들에게 지원한다. 수많은 기업과 기관도 예술가들 후원에 힘을 싣고 있다.

“베를린은 가히 세계 공연 예술의 메카라 할 수 있다.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말을 빌면, “베를린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말 섹시하다.””(p.10)

어쩌면 이것은 낯선 풍경, 아니다. 베를린이 백남준, 요셉 보이스, 안젤름 키퍼 등 현대 미술가들의 거점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러다 한동안 뜸했다. 파리와 뉴욕의 힙(hip)함에 눌렸다. 그런 베를린, 1990년대 초부터 다시 꿈틀댔다. 젊은 예술가들이 몰렸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덜했기 때문이다. 저렴한 물가라는 미덕. 여행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특히나, 집값이 저렴했다. 작업실 얻기가 쉬웠다.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파리나 뉴욕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또 하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분단. 그것이 무너지자 독특한 문화가 생성됐다. 정부의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발하면서 분단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특수성은 베를린만의 독특한 예술과 문화를 낳았다. 가령, 미테지구(Mitte District)에는 폐건물을 갤러리 등의 예술 공간으로 활용했다. 레스토랑과 카페, 클럽 등도 속속 들어섰다. 지금 대세는, 뉴요커도 파리지엥도 아니다. 신선한 정신으로 무장한 베를리너(Berliner)들이다.

『베를린 코드』의 저자 이동준은 베를린을, ‘티 나지 않게 사람을 중독 시키는 매력을 지닌 도시’, ‘틈새가 많은 도시’, ‘자유롭고 가난하고 섹시한 도시’라고 불렀다.

여기 이 사람, 박철호. MBA 공부하러 갔다가 느닷없이 “마약과도 같은” 연극에 빠졌고, 연극과 문화의 중심지, 베를린을 주목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베를린 등지에 머물면서 500여 편의 연극과 공연을 접했다. 그것을 추려, 책으로 냈다.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독일 중에서도 베를린을 택한 것은 유럽 최고 수준의 연극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p.9)

국내 초연 <변두리 극장> 공연 관람

지난달 18일, 서울 명륜동 게릴라극장. 『베를린, 천 개의 연극』 저자 박철호와 함께하는 연극 공연 관람이 있었다. 이날의 연극은 국내 초연인 <변두리 극장>. 연극계와 문화예술계에선 알아주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배우들이 선을 보인 무대였다. 원작은 20세기 초중반에 독일에서 극작가, 희극배우, 민중가수, 영화제작자 등으로 활동한 카를 발렌틴(Karl Valentine, 본명 발렌틴 루트비히 파이 Valentin Ludwig Fey)의 것으로, 이를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연극은 지금 우리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원작을 국내의 상황에 맞춰 각색했다. 언어유희와 광대의 우스꽝스런 몸짓 속에 힘없는 인민의 비애가 서렸고, 저항이 꿈틀댔다. 아울러 인민들의 욕망이나 허영, 고정관념 등도 함께 담겼다. 은유와 풍자가 자연스러운 연기에 녹았고, 배우들은 종종 객석에 대사를 던짐으로써 관객이 연극을 보고 있음을 각인시켰다.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낯설어 보이게 하는 효과)’. 

“브레히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 연출 기법과 정반대되는 이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관객이 연극에 몰입해서 스스로 연극의 주인공이라고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싫다는 말이다. 브레히트는 이런 식의 연출이 극작가의 의도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다.”(p.198)

참고로, 발렌틴은 500편이 넘는 단막극, 촌극, 1인극, 시나리오를 썼다. 그가 작성한 공연 목록에 의하면, 작품수가 26개, 공연 횟수가 5969회에 이른다. 그만큼 발렌틴은 대중성과 인기를 누렸다. 그런 한편, 그는 단순한 희극인 이상으로 철학과 창작력을 겸비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연극이 끝난 뒤, 저자를 비롯한 연출자, 배우들과 관객이 나눈 대화의 시간이 마련됐다.

박철호, ‘카바레’를 말하다.

『베를린, 천 개의 연극』 저자 박철호는 연극의 무대가 된 ‘카바레’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국에서 카바레, 하면 우선, 뭔가 침침하고 끈적끈적한 무도장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본디 카바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어인 카바레의 어원은 라틴어인 cavus(구멍)·cave(지하실) 및 아랍어의 khamaret(목로주점)였다. 무대가 있고, 손님이 음식·댄스를 즐기게 하고, 밴드 연주나 쇼가 펼쳐졌다. 일종의 사교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카바레는 관광업이 궤도에 오르고, 호텔이 늘면서 관광객 유치를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나름 애환이 있었으나 수준 높은 사교장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한국의 카바레와 원래의 카바레는 다르다. 프랑스에서 시작됐는데, 카페에 가면 까만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유럽에 많은데, ‘물랭 루즈’가 대표적인 카바레였다. 그런데, 베를린 카바레는 또 다르다. 1891년쯤 생겼다. 보통 카바레는 버라이어티한데, 독일은 철저히 풍자고 정치적이었다. <나꼼수>를 생각하면 된다.”

저자에 의하면, 베를린에도 카바레가 많았다. 그래서 카바레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도 많았다고 한다.

독일인이 베를린 사람을 부를 때, ‘슈나이저’라고 불렀다. 주둥이, 아가리라는 뜻을 지녔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입이 거칠다는 의미였다. 베를린의 카바레는 그만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모가 있었다.

“베를린의 카바레는 잘 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엄청난 흥행기를 맞았다. 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전 세계에서 베를린으로 몰렸는데, 카바레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베를린이 풍성했다. 게이문화 등 다양하고 색다른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다 다시 1933년 히틀러가 취임하면서 폭탄을 맞았다. 카바레는 끝장이 났다.”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카바레는 씨가 말랐다. 풍자 카바레, 문학 카바레 등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문학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프로파간다(선동)용 외의 문화예술은 위축됐다. 이 와중에 카바레의 유명인사 카를 발렌틴도 괴벨스 등에 의해 나치의 선전도구로 사용될 뻔 했으나, 발렌틴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다 1948년 폐렴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이 작품은 그런 발렌틴의 단막극 22가지 가운데, 7가지를 뽑아 각색한 것이다.

Q&A

극중 연주는 진짜로 연주한 것인가?

원래 이 작품이 오케스트라로 유명해서 그리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는 못했다. 4곡은 라이브로 연주했고 나머지는 라이브가 아니다. 배우들도 한두 분을 빼고 악기는 처음이라 한 달 반 동안 맹훈련을 했다.

공연 마지막에 무대가 해체되고 난장판이 된다. 조용히 음악이 흐른다. 그런 허무함의 철학이 니체의 것인지, 아니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마무리를 했나?

철학이나 사상으로 받아들여도 되고, 혹은 극장이 무너져도 거리에 나가서 연극을 하겠다는 우리의 사명을 표현한 것이다. 극장이 무너져도, 지정한 것이 아니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그런 것이다. 발렌틴의 원래 엔딩은 너무 차갑기도 하다.

발렌틴의 원작 22가지 레퍼토리 중 7가지를 선정했다고 했다.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재미있는 것으로. (웃음) 가장 놓칠 수 없는 내용이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3가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불투명해지는 것 같아서 7가지로 압축했다. 덜 재미있어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골랐다. 공연을 하지 못할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때마침 김정일 위원장이 죽었다. (웃음) 그 때문에 (연극이) 동시대로 확 들어올 수 있었다.

지휘자 캐릭터는 원작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만들었나?

원래 본 작품은 단막극 구성인데, 기승전결의 구조로 이뤄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캐릭터가 없다. 예전부터 브레히트 탐구는 많이 했는데, 발렌틴은 처음 했다. 해 보니 연극적, 사회적으로 가치가있더라. 실제로 발렌틴과 브레히트는 절친한 사이였고, 브레히트의 ‘생소한 효과’의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 발렌틴이다. 사회적인 대표성이라는 의미가 짧고 강한 극에도 맞았고, 브레히트의 연극성과도 맞아 떨어졌다.

발렌틴이 독특한 사람이라, 팡팡 터지기도 했다. 발렌틴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 사람이 아니면 힘들 만큼, 지휘자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역할이다. 그래서 따로 개인적인 개성을 붙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텍스트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거기에 집중했다.


(박철호 작가) 내 책에 레퍼토리 극장을 언급했는데, 연희단거리패가 그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했다. 국내에서 이 정도의 수준을 가진 극단도 드물지 않나 싶다.

“독일에는 각 도시마다 레퍼토리 극장이 있다. 레퍼토리 극장이란 한 시즌의 몇 개의 레퍼토리를 선정하여 순서대로 상연하는 극장을 말한다.”(pp.9~10)

현재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승헌 선생 작품을 늘 본다. 연기할 때 편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따로 신체훈련을 하진 않고, 모든 걸 원리에 입각해서 연기에 임한다. 1970년대 바이오 메커니즘 학문이 연구된 적이 있는데, 그걸 다시 연구해보려고 한다. 마음은 믿을 수 없다. 때문에 숨은 감각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속 탐구하려고.

7가지 에피소드를 뽑았는데, 엄청난 아이디어로 에피소드별 연결을 잘 한 것 같다. 배치를 어떻게 했나?

끊임없이 배치해 본다. 연습은 10가지 에피소드로 했고, 원래 야외극부터 하려고 했다. 여기 무대에 들어오기 전에 관객과 어울리고 만담이 이뤄지는.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 안에서 했다. (웃음) 개인의 판단보다는 관객들이 모니터 해 주는 게 도움이 된다. 공연을 계속할 수 있다면 에피소드 하나를 더 넣고 싶다. 매일 조금씩 리허설하면서 끊임없이 배치해보는 수밖에 없다. 초연이라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번에 해 봤는데, 재미없으면 접고, 다시 다음어서 다른 버전으로 올릴 수도 있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밀양연극제)에서는 더 왁자지껄하게 하고 싶다.

배미향 배우께선 24년 연기를 하셨다는데, 이번 작품이 좋았던 점과 힘든 점이 있었다면?

나는 코믹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관객들을 웃긴다는 게 꽤 긴장됐다. 그래서 이번 연극이 힘들었다. 그런데, 관객이 웃어주니까 그게 참 좋았다.

(박철호 작가) 연극이 참 어렵다. 쉬운 장르가 아니다. 많은 레퍼토리를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고, 국내 유일하다시피 한 레퍼토리 극단인 연희단거리패에 감사드린다.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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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역사를 바꾼 위대한 위인이자, 
같은 해(1809년) 같은 날(2월12일) 태어난,
(찰스 로버트) 다윈과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일보다,

어쩌다 그들과 같은 날짜에 태어난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보다,

오늘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흔드는 것은, 휘트니 휴스턴.

그러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듣는 것밖에 없다.

듣고 또 듣고 흥얼거리고 또 흥얼거린다.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가 묻는다. "YOU, OK?"
나는 답한다. "I'm Not OK!"

나도, "Wait!"라고 외치고 싶다. 휘트니를 향해.
아직 휘트니는, 그 목소리를 박제할 때가 아니다.

허나, 나는, 우리는 세기의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1992년 12월의 겨울, 스무살이 채 되기 전의 어린 준수는,
'보디가드'가 되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안녕, 휘트니...
당신의 노래가 때론 부서지고 흩어진 내 마음을 보듬고 지켜줬다. 
그러니, 안녕, 내 마음의 보디가드여...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듣는 것. 당신의 목소리와 노래를 듣는 것.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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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다.’
사랑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전제다. <첨밀밀>이 그랬다. 처음으로 가슴 짠하게 알려준 명제. 만남과 헤어짐, 그 엇갈림과 반복. 한숨을 쉬었다 뱉었다, 내 마음은 그들의 발끝에만 매달렸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렇게 흔들리는 내 마음에 <첨밀밀>은 속살거렸다. “운명이라면 이 정돈 돼야지. 유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운명이잖아. 운명. 사랑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다.


나는 얼마 전, 또 하나의 운명을 접했다. 더 운명 같은 건, ‘쿠바’였다. 아직 발 딛지 못한 미지의 땅이지만, 언젠가 꼭 디뎌할 그곳. 혁명이 있었고, 커피가 있으며, 무엇보다 섹시함이 상존하는 곳.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면, 그곳이 쿠바라고. 그는 일체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양, 단호하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내겐 로망이었던 쿠바는, 이젠 지상의 천국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치코와 리타>는 쿠바에서 시작한다.
1948년의 쿠바 아바나. 피아니스트 치코. 보컬리스트 리타. 그들이 만난 밤, 음악이 꿀처럼 흐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끌림’이었으리라. 끌림은 곧, 나에게 맞는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 사랑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리듬은 음악과 함께였다. 아마도 그때, 운명은 그들에게 속삭였으리라. 치코에겐 리타의 목소리가, 리타에겐 치코의 연주가 그랬을 것이다. 리타의 ‘베사메무쵸’에 혹했던 치코는, 그녀를 위해 ‘리타(릴리)’를 작곡하고, 리타는 그런 치코에 반한다.

그러나 그것. 운명이라는 속삭임. 늘 정교하고 오차가 없는 것, 아니다. 운명도 수명이 있다. 차가운 유혹으로 끝나버릴 운명이 있는 한편, 그리움을 평생을 품을 운명도 있다. 운명이라는 속삭임, 마음은 쉽게 속는다. 그만큼 강한 끌림이 있을까. 영원하고픈 숙제, 사랑. 사랑의 시작도 언제나 운명에서 비롯되니까. “당신을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느낌”이라며 리타에게 처음 건넸던 말, 오글거렸지만 진심 같았다. 그때 카바레(살롱) 분위기가 그랬다.

어쨌거나 치코와 리타의 (음악적) 조건(?)은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씨줄과 날줄의 조화. 음악이 매개로 작용하는 순간, 사랑은 더 큰 열정을 동반한다. 약간의 옥신각신이 있었지만, 그들은 처음 만난 그날, 서로를 탐닉한다.


애니메이션이라지만, 리타의 몸은 팽팽한 활시위마냥 관능적이다. 애니메이션에서 관능미를 느끼다니, 처음 한 경험이다. 치코가 앞뒤 재지 않고 빠질만하다는 생각. 두 사람, 몸을 섞는다. 선율과 리듬의 합치처럼 두 사람은 합한다. 맥락 없이 그들을 봤다면, ‘원 나잇 스탠드’라고 애써 무시할 것처럼.


원 나잇 스탠드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사랑은 시작됐다. 허나, 사랑이 순탄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 법인가보다. <첨밀밀>에서 이미 확인한 바, <치코와 리타>도 엇갈림을 동반한다. 관능의 볼레로처럼 터질 것 같은 그들의 관계에도 질투와 오해가 틈입한다. 사랑의 가장 큰 적이 질투와 오해라고 했던가. 수시로, 그들은 시험에 든다. 세상의 모든 운명적인 사랑이 그러하듯.

전반부, 나는 치코의 우유부단함이 싫었다. 그는 뭔가 망설이고 주저한다. 첫 밤부터 그랬다. 당신이 걷는 땅에 키스라고 하고 싶었던 남자의 태도치고는 뭔가 부족했다. 그러니, 리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녀는 치코를 믿는다. 남자가 여자보다 대범하고 마음이 넓은 양, 우리는 착각한다. 살아보니 마냥 그렇진 않다. 질투와 오해가 여성만의 것이라는 인식이야말로 착각이다. 리타는 그런 여자다. 한 남자를 품기에 더 없이 넓은 여자다.


주변 환경 또한 그들의 사랑을 질투한다. 아바나,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공간이 뉴욕으로 바뀐다. 그들의 사랑도 바뀔 것임을 예고한다. 헤어짐이 당연하면서도 나는 안타까웠다. 결말을 알면서도 발을 굴러야 하는 상황 같은 것이니까.


뉴욕은 아바나와 다르다. 체제가 다르고, 관계가 다르며, 사람이 다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사랑. 모든 것을 얻어도,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리라. 스타가 된 리타가 그랬다. 자신을 찾아 뉴욕에 온 치코에게 더 이상 아바나의 순진한 여자가 아니라고 쏘아붙이지만, 사랑은 운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맨해튼의 키스. 질투와 오해는 키스 한 번으로도 충분히 가실 수 있는 것임을.



부러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거부하지 않는 것. 사랑을 사랑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 뉴욕, 그들의 사랑은 더욱 힘에 겹다. 사랑을 온전하게 그들만의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자본이 개입하니까. 그래서 그들의 사랑, 거듭 어긋났지만, 영원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과거에 있다”고 말하는 여자에게서 나는 운명의 향기.


나는 그래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리타가 마침내 자신을 돌고 돌아 찾아온 치코에게 건넨 이 말. “47년 동안 기다렸어요. 당신이 이 문을 두드려주기를.”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의 것이 아니었지만, 사랑의 향기는 여전했다.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었던 세월.


문을 열어주는 것은 결국 운명이다. 사랑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야 만다는 <첨밀밀>의 향기는 쿠바에서도 여전했다. 한창훈은 《향연》에서 그랬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기다림, 그것은 때론 사랑의 다른 말이다.



<치코와 리타>.

모든 것이 음악과 함께한다. 리타의 노래와 춤, 치코의 연주, 그들의 사랑과 인생, 몸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을 그들은 음악을 통해 채운다. 마음이 교감한다. 그들의 사랑과 음악에 당신의 몸과 마음이 들썩이지 않는다면, 병원이 필요하다. 마음이 앓고 있다는 증거니까.


오늘, 눈이 펄펄 내린다. 눈이 쌓인다. 그들의 사랑이 눈과 함께 아른거린다. 오늘의 노래는, 베사메무쵸. 아, 관능적이다. 이 음악, 만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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