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다.’
사랑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전제다. <첨밀밀>이 그랬다. 처음으로 가슴 짠하게 알려준 명제. 만남과 헤어짐, 그 엇갈림과 반복. 한숨을 쉬었다 뱉었다, 내 마음은 그들의 발끝에만 매달렸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렇게 흔들리는 내 마음에 <첨밀밀>은 속살거렸다. “운명이라면 이 정돈 돼야지. 유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운명이잖아. 운명. 사랑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다.


나는 얼마 전, 또 하나의 운명을 접했다. 더 운명 같은 건, ‘쿠바’였다. 아직 발 딛지 못한 미지의 땅이지만, 언젠가 꼭 디뎌할 그곳. 혁명이 있었고, 커피가 있으며, 무엇보다 섹시함이 상존하는 곳.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면, 그곳이 쿠바라고. 그는 일체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양, 단호하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내겐 로망이었던 쿠바는, 이젠 지상의 천국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치코와 리타>는 쿠바에서 시작한다.
1948년의 쿠바 아바나. 피아니스트 치코. 보컬리스트 리타. 그들이 만난 밤, 음악이 꿀처럼 흐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끌림’이었으리라. 끌림은 곧, 나에게 맞는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 사랑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리듬은 음악과 함께였다. 아마도 그때, 운명은 그들에게 속삭였으리라. 치코에겐 리타의 목소리가, 리타에겐 치코의 연주가 그랬을 것이다. 리타의 ‘베사메무쵸’에 혹했던 치코는, 그녀를 위해 ‘리타(릴리)’를 작곡하고, 리타는 그런 치코에 반한다.

그러나 그것. 운명이라는 속삭임. 늘 정교하고 오차가 없는 것, 아니다. 운명도 수명이 있다. 차가운 유혹으로 끝나버릴 운명이 있는 한편, 그리움을 평생을 품을 운명도 있다. 운명이라는 속삭임, 마음은 쉽게 속는다. 그만큼 강한 끌림이 있을까. 영원하고픈 숙제, 사랑. 사랑의 시작도 언제나 운명에서 비롯되니까. “당신을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느낌”이라며 리타에게 처음 건넸던 말, 오글거렸지만 진심 같았다. 그때 카바레(살롱) 분위기가 그랬다.

어쨌거나 치코와 리타의 (음악적) 조건(?)은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씨줄과 날줄의 조화. 음악이 매개로 작용하는 순간, 사랑은 더 큰 열정을 동반한다. 약간의 옥신각신이 있었지만, 그들은 처음 만난 그날, 서로를 탐닉한다.


애니메이션이라지만, 리타의 몸은 팽팽한 활시위마냥 관능적이다. 애니메이션에서 관능미를 느끼다니, 처음 한 경험이다. 치코가 앞뒤 재지 않고 빠질만하다는 생각. 두 사람, 몸을 섞는다. 선율과 리듬의 합치처럼 두 사람은 합한다. 맥락 없이 그들을 봤다면, ‘원 나잇 스탠드’라고 애써 무시할 것처럼.


원 나잇 스탠드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사랑은 시작됐다. 허나, 사랑이 순탄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 법인가보다. <첨밀밀>에서 이미 확인한 바, <치코와 리타>도 엇갈림을 동반한다. 관능의 볼레로처럼 터질 것 같은 그들의 관계에도 질투와 오해가 틈입한다. 사랑의 가장 큰 적이 질투와 오해라고 했던가. 수시로, 그들은 시험에 든다. 세상의 모든 운명적인 사랑이 그러하듯.

전반부, 나는 치코의 우유부단함이 싫었다. 그는 뭔가 망설이고 주저한다. 첫 밤부터 그랬다. 당신이 걷는 땅에 키스라고 하고 싶었던 남자의 태도치고는 뭔가 부족했다. 그러니, 리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녀는 치코를 믿는다. 남자가 여자보다 대범하고 마음이 넓은 양, 우리는 착각한다. 살아보니 마냥 그렇진 않다. 질투와 오해가 여성만의 것이라는 인식이야말로 착각이다. 리타는 그런 여자다. 한 남자를 품기에 더 없이 넓은 여자다.


주변 환경 또한 그들의 사랑을 질투한다. 아바나,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공간이 뉴욕으로 바뀐다. 그들의 사랑도 바뀔 것임을 예고한다. 헤어짐이 당연하면서도 나는 안타까웠다. 결말을 알면서도 발을 굴러야 하는 상황 같은 것이니까.


뉴욕은 아바나와 다르다. 체제가 다르고, 관계가 다르며, 사람이 다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사랑. 모든 것을 얻어도,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리라. 스타가 된 리타가 그랬다. 자신을 찾아 뉴욕에 온 치코에게 더 이상 아바나의 순진한 여자가 아니라고 쏘아붙이지만, 사랑은 운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맨해튼의 키스. 질투와 오해는 키스 한 번으로도 충분히 가실 수 있는 것임을.



부러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거부하지 않는 것. 사랑을 사랑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 뉴욕, 그들의 사랑은 더욱 힘에 겹다. 사랑을 온전하게 그들만의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자본이 개입하니까. 그래서 그들의 사랑, 거듭 어긋났지만, 영원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과거에 있다”고 말하는 여자에게서 나는 운명의 향기.


나는 그래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리타가 마침내 자신을 돌고 돌아 찾아온 치코에게 건넨 이 말. “47년 동안 기다렸어요. 당신이 이 문을 두드려주기를.”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의 것이 아니었지만, 사랑의 향기는 여전했다.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었던 세월.


문을 열어주는 것은 결국 운명이다. 사랑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야 만다는 <첨밀밀>의 향기는 쿠바에서도 여전했다. 한창훈은 《향연》에서 그랬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기다림, 그것은 때론 사랑의 다른 말이다.



<치코와 리타>.

모든 것이 음악과 함께한다. 리타의 노래와 춤, 치코의 연주, 그들의 사랑과 인생, 몸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을 그들은 음악을 통해 채운다. 마음이 교감한다. 그들의 사랑과 음악에 당신의 몸과 마음이 들썩이지 않는다면, 병원이 필요하다. 마음이 앓고 있다는 증거니까.


오늘, 눈이 펄펄 내린다. 눈이 쌓인다. 그들의 사랑이 눈과 함께 아른거린다. 오늘의 노래는, 베사메무쵸. 아, 관능적이다. 이 음악, 만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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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을 공동체'(서울에 핀 마을이라는 꽃)를 향하면서,
내가 바라는 마을의 한 풍경, 그리고 내 마음의 한 풍경.
이런 풍경이 마을 한켠에서 펼쳐진다면 참 좋겠다. 
스마트폰 대신 책이라면 더 좋겠고.  

아마도, 행복. 셋은 행복해 보인다.
특히, 여자의 다리에 기댄 개의 절묘한 모습.
그것은 어쩌면 행복의 또 다른 모습 혹은 얼굴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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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접하면.
"나는 어떤 왕도 섬기지 않는 세계 시민으로서 글을 쓰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 1784년 11월, 문예지 <라이니센 탈리아>.

나는 언제고, 저런 선언을 하면서 글을 쓰고 커피를 내릴 수 있을까? 

가령, 이렇게?
나는 어떤 자본도 섬기지 않는 세계 시민으로서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허수경 시인의 말씀을 약간 바꿔서,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주면서 아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 나는 실러의 저 명징하고 육중한 선언처럼 할 자신이 없다...
저 짧은 글에는 실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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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처음 만난 한강은, 손을 강하게 힘을 주면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컵 같다고 생각했다. 혹은 발에 무게를 실으면 쩍 갈라지는 강에 낀 얼음. 《희랍어 시간》이 그랬다. 위태로운 듯 섬세하고, 여린 듯 강했다. 아울러, 뭔가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전 작품, 《바람이 분다, 가라》, 《채식주의자》 등에 대한 언급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채식주의자>의 평을 본 적은 있으나 첫 만남은 이번 《희랍어 시간》이 됐다.

두 세계의 만남은 안개 낀 산책길을 걷는 느낌이다. 한치앞을 보기 힘드나, 걸어가다 보면 호수의 냄새에 천천히 젖고, 호수와 길이 맞물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경험. 그리고 좀 더 호수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에 더듬이를 세울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두 세계는 촘촘하지 않다. 그래서 독자는 그 세계를 채우는 수고를 해야 한다. 세계의 확장이다. 

사랑은 안다고 떠벌리는 건, 오만이다.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희랍어 시간》은 사랑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투명하고 연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 무엇이 그럴까 생각했다. 사랑은 여전히 호기심 천국이다.

지난달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맞물렸던 그날,
한강이라는 세계를 처음으로 만났던 기록.



“소설을 쓰고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을 발견했다”
『희랍어 시간』 한강


한 세계가 으스러졌다. 그 세계, 견고했고, 철옹성에 가까웠다. 베일에 가린 세계였다. 어떤 세계에 그 세계는 주적이었다. 건강을 잃어가고 있던 남자,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19일이었다.

한 세계가 접힌 그날. 『희랍어 시간』이었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가 만났던 시간. 한 교실 안에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있던 그들이었다. 극히 보기 드문 희랍어가 등장했고, 이탤릭체가 중간중간 나왔다. 그 시간은 두 사람을 오갔다. 편지가 나오는가 하면 3인칭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신작, 『희랍어 시간』이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한강 작가의 낭독으로 문이 열린다.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 희랍어 수업의 공간을 묘사한 부분이다. 

“여자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이마를 찡그리며 흑판을 올려다본다. 자, 읽어봐요, 알이 두꺼운 은테안경을 낀 남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여자는 입술을 달싹인다.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 (…) 짧은 희랍어 문장을 빠르게 흑판에 쓴다. 악센트들을 채 찍기 전에 백묵이 두동강나며 떨어진다.”(pp.9~11)

낭독이 잦아든 뒤, 출판사 관계자의 사회로 한강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희랍어, 소설, 사랑, 세계 등을 종횡무진하며 전개됐다. 

한강, 『희랍어 시간』을 말하다

근황은 어떤가?

책이 나온 지 40여일이다. 책 표지가 예쁘게 나와서, 상상보다 훨씬 더 예쁘게 나와서 기뻐하고 있었다. 책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자리가 계속 있었고, 오늘 이 자리가 『희랍어 시간』과 관련한 마지막 자리가 될 것 같다.

희랍어 공부는 좀 했나?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었다. 소설에 나온 것 같은 시민아카데미의 강좌가 있어서, 실제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선 교실 분위기나 전체적인 느낌을 가진 상태여서, 그것과 같을 순 없어서 굳이 가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교재만 3개 사놓고 희랍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계속 들여다봤다. 막힐 때는 동영상 강의도 보고. 결과적으론 익히지 못했다.

희랍어뿐 아니라 그리스철학 이야기도 많다. 남자주인공은 혹시 모델이 있지 않았나?

모델은 없다. 플라톤철학 강의는 대학원에서 들었다. 공부는 나름 했는데, 공부 한 것을 다 쓰진 않고, 쓰고 나선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한 작가의 낭독. 남자가 하는 말(글)과 여자에 대한 이야기.

“그 목소리. 겨울밤 창문 틈을 할퀴며 들어오는 바람소리. 실톱이 쇠 위에서 소리치고 유리창이 갈라지는 소리. 당신의 목소리. (…) 당신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타오르며 글썽이던 두 눈은 눈꺼풀 아래에서 흔들리겠지요.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pp.48~49)

“보고 싶은 란아. 고집불통, 기차화통 란아. 내가, 눈이 완전히 먼다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너는 알지. 마음의 눈 따위가 결코 떠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 안경을 닦아 쓰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짧은 파란 빛에 얼굴을 담글 테니까. 믿을 수 있겠니. 그 생각만으로 나는 가슴이 떨려.”(pp.83~84)

“넌 나에게 말했지.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아름다움은 오직 강렬한 것, 생생한 힘이어야 한다고. 삶이란 게, 결코 견디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고. (…) 네 몸은 가끔 나를 기억했니. 내 몸은 지금 이 순간 네 몸을 기억해. 그 짧고 고통스러웠던 포옹을. 떨리던 네 손과 따스한 얼굴을. 눈에 고인 눈물을.”(pp.122~125)

“오랫동안 말을 잃은 상태를 그녀의 육체는 예민하게 드러낸다. 그녀의 몸은 실제보다 단단하거나 무거워 보인다. (…)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단어들 뿐이다.”(pp.58~59)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
곁에 누운 아이는 없다. 싸늘한 침대 가장자리에 꼼짝 않고 누워, 수차례 꿈을 일으켜 그녀는 아이의 따뜻한 눈꺼풀에 입맞춘다.”(pp.102~103)

소설에 대해 구상하고 착상한 계기가 있다면?

표지의 손글씨를 써주신, 희랍철학을 공부한 선생님이 계신다. 작가의 말에도 밝혔는데, 문학과지성사 주간이 되셨을 때, 지나는 길에 들러서 인사드렸다. 철학 공부를 했다고 하시기에 고대 희랍어를 공부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꼭 배우라고 하시더라. 고대 희랍어가 뭔지 물어봤다. 희랍어는 정교하고 복잡하고 함축적인 문법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언어다. 매우 어렵고, 몇 가지 예를 들어 용법을 말해주셨다. 8년 정도 전인데,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외우는 거라서 포기했다. 독일어는 격이 어렵고, 프랑스어는 시제가 어렵다는데, 그 두 개를 합한 것보다 어렵다. (웃음) 언젠가 언어에 대한 소설은 아니라도, 언어에 대한 글을 쓸 때 이런 매력적인 언어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규칙이 까다로운 언어를 그녀는 접해보지 못했다. 동사들은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일일이 형태를 바꾼다.… 얼음 기둥처럼 차갑고 단단한 언어. 다른 어떤 언어와도 결합되어 구사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극도로 자족적인 언어. 돌이킬 수 없이 인과와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마침내 입술을 뗄 수 있는 언어.”(pp.20~21)

그리고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쓸 때, 1년 정도 슬럼프가 있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뭔가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민이 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을 때마다 그걸 뚫고 나가게 해 준 건 글쓰기였다. 글을 써보자 해서 오래전 생각했던 희랍어, 말을 잃은 사람, 시력을 잃은 남자, 안 보이는 곳에서 또렷해지는 목소리, 언어 등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계속 잃어가는 존재라서 그렇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슬럼프 기간에 150매 정도를 썼다. 그게 너무 짧았다. 지금 분량은 600매 가량인데, 그때는 많은 조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몇 개 중요한 조각만 있었다. 연재하면서 분량이 늘어 620~630매였는데, 책으로 출간하면서 좀 줄였다.

소설은 언제 어디서 쓰나?

학교에선 학생들 작품만 읽고, 책 읽는 정도만 한다. 보통은 집에서 쓴다. 밤과 새벽에 쓴다. 나도 인터넷 귀신을 피해서, 지난 3월에 작업실을 구했는데, 잘못 구했다. 위에 태권도 학원이 있다. (웃음)

작업실을 얻은 시점은 오전이었는데, 시끄러워봤자 애들이 기합 넣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다 이단옆차기를 하더라. 형광등이 파르르 떨고. (웃음) 그래서 오전에만 가서 쓰고, 밤과 새벽에는 집에서 쓴다.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잘 써질 때는 몰아서 쓰는 성격이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어쩔 땐 밤도 새고.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하고 휘몰아치는 소설이라면, 이번 소설은 정적이고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편지형식으로 쓴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여자는 말을 못하니, 1인칭이 될 수 없는 존재고. 남자는 시력을 잃어 가는데, 말을 걸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이 만날 수 없는 사람이거나, 말은 걸 수 있지만 깊은 이야길 할 수 없는 여동생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절절한 속마음을 절제해서 말하려는 것이 남자의 상황이다.

일기도 중간에 들어가는데, 이 남자의 이야기는 조각조각으로 편지로 가고 싶었다. 여자는 반대로 차가운 3인칭으로 가다가 마지막에 말을 되찾는 순간, 1인칭으로 딱 한 번 나온다. 처음부터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다보면 생각도 있지만, 직관도 중요한 요소도 차지한다. 처음 쓸 때는 처음 낭독한 부분을 쓰고 나서 여자에게 쓴 남자의 편지를 썼다. 그때 지금 소설의 윤곽을 잡았다. 그러니 왜 그랬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웃음)

여인도 목공일을 하고 남자가 나무토막으로 맞는다. 여인이 분노를 터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사건 등에 대해 말해 달라.

이 남자는 계속 후회하는 사람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마흔 살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 남자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다. 그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상처를 주려한 것이 아니다. 정말 사랑해서 맹목적인 어리석음으로 실수한 건데, 그걸 돌이킬 수 없게 상처를 줘서 용서를 빌고 싶은 거다.

요아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면?

요아힘에 대한 회한은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사랑했지만, 사랑으로 보답할 수 없었던 사람에 대한 죄의식이다. 사실은 사랑의 종류가 달랐지만 사랑하기도 했던 거고.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행위로 상대방에서 상처를 입힌 거라 돌아보면서 참회하고 있는 거다. 남자가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이다. 신을 믿지 않는 남자지만, 신과 인간의 삶이 가진 수많은 구멍을 보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사랑의 문제다. 씻을 수 없는 과오와 상처를 주고받고, 그게 인간의 나약함이건 어리석음이건, 인간의 수많은 구멍을 가장 잘, 혹은 아픈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 뭐길래?

나, 잘 모른다. (웃음) 소설을 쓰면서도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다. 사랑이 뭘까? 처음 쓸 때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날지 몰랐다. 쓰면서 언제 만나고 서로 이해하게 될까를 생각했다. 이 소설은 내가 쓴 다른 소설과 달리 한치 앞을 모르면서 쓴 소설이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소통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는지 보면서 썼다.

나 자신도 그런 질문을 했다. 사랑이 뭐고, 어떤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종류의 소통과 교감이 가능할까, 질문하면서 썼다. 나도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인간을 모르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 소설을 다 쓰고 나서 발견한 것은,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이다.

손톱 끝으로 글씨를 써서 이야길 하잖나. 남자가 어두운 방에서 이야기할 때, 여자가 약간씩 움직여서 기척을 내는 순간들,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 안에 있는, 가장 연해서 따뜻한 것인지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소설을 쓰면서 발견했다. 굳이 답을 내놓는다면, 내가 발견한 그 부분이라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소설을 쓰면서,
추구하고 탐구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세계를 잃어간다는 점에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생명과 소멸. 소멸에 집착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생명을 가진 우리는 헛되게 저항하면서 삶을 이루어나가다가 안타깝게도 다 죽잖나. 그런 존재들,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것이 언어와 침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고, 그 속에서 말이 태어났고, 생명이 소멸과 동전의 앞뒤처럼 가면서 언어와 침묵도 서로 함께 가면서 싸운다.

여자는 언어가 특히 중요했던 사람인데, 언어를 잃어버린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즉, 언어를 되찾는 건 삶을 되찾는 거다. 소멸에 저항하겠다는 것이기도 하고. 또 한 가지는, 어둠속에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것처럼, 언어에 집중하게 된다. 어두운 곳에서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언어 자체가 이렇게 또렷한 것인가, 처음 느꼈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분리되지 않는 가치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시력을 잃는 건, 운명과 같은 것이라면 여자가 말을 잃는 것은 의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과 자신 사이에 칼을 놓은 것 같았다. 말이나 언어에 대한 회의를 보면 자발적으로 말을 잃은 것 같다. 작가의 고뇌가 담기지 않았나 싶다.

여자에겐, 언어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지금은 침묵해야 하는 때인 거다. 세계와 여자는 불화하고 있고, 언어가 너덜너덜해졌고, 세계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자신도 온전하지가 않은 상태에서, 언어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거다. 쥐고 있던 도구가 떨어져 발등을 찍듯이 못쓰게 된 거다. 나는 이 여자처럼 말을 잃은 적은 없다.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쓰고 1년 정도 슬럼프를 겪을 때, 내가 쓰는 말이 싫어진 경험은 있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은 언어의 상투성이 싫다는 그런 관념적 고민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단어의 배열과 사용하는 단어가 너덜너덜하다는 감각적인 느낌이었다. 이 소설도 그래서 감각적으로 출발했다. 내 고민이 녹아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잃은 여자가 첫 음절을 찾는 이야기랄 수도 있는데, 그 사이 일어난 일이 중요하다. 두 무너져가는 세계가 한 순간 만나고, 필담을 하는 상황에서, 희망과 같은 게 있다면?

여자가 말을 찾게 된 데는 남자하고의 일도 있지만, 그 전에 여자가 굉장히 노력한다. 희랍어도 배우고 모국어를 쓰려고 한다. 모국어가 고통을 주는 것이라서 거리를 걸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한 마디 말이다.

그래서 꼭꼭 묻어놓은 부분인데, 여자가 어릴 때 좋아했던 단어가 숲이다. 그래서 숲 같은 도시의 밤거리를 헤매고, 남자의 연한 부분을 발견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여자의 단단한 상태에 균열이 생겼고, 말이 다시 가능하게 된 거다. 남자 앞에서 한 마디 말을 할 때, 의지하지 않고 각오하면서 내적인 힘을 가지고 여자가 살아갈 것을 암시하고 싶었다.

독자들과 나눈 Q & A

근래 작품들을 보면, 세련되게 사는 사람보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채식주의자』부터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등장인물로부터 귀기 어린 느낌을 받는다. 의도적인가, 아니면 본인도 모르게 변한 건가?

『그대의 차가운 손』까지와 그 다음 소설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는 얘긴데, 나도 그렇게 느낀다. 내 삶에도 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다. 전과 후가 많이 다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그 즈음 몸이 안 좋았는데,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하게 됐다. 인생이라는 것을 더 또렷하게 보고 싶다는 결심 아닌 결심을 했던 시기가 『그대의 차가운 손』을 쓰고 난 직후다. 그런 생각이 영향을 미쳐서 그 후의 소설이 달라지고, 나도 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자를 형상화할 때, 보르헤스를 생각하면서 했나?

보르헤스. 남들보다 나중에 읽은 작가인데,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이 소설을 쓸 때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남자와 보르헤스가 겹치는 부분도 있고, 남자의 꿈에도 나온다. 보르헤스가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 내가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이 있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 처음 세상에 대해 사유의 형태로 다가온 것이 불교라, 고민했던 시절이 있다. 어쨌든 보르헤스가 내겐 각별한 작가라,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시는 안 쓰나?

시로 먼저 등단을 했다. 시와 소설을 같이 쓰다가 시로 먼저 등단했다. 평균을 내보면 1년 2~3편의 시를 쓰고 있어서, 어쩌면 조만간 시집을 묶을지도 모르겠다.


『희랍어 시간』에 대해 독자들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 한강 작가는 독자들에게 작별의 말을 하는 것이 소설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날 추웠고, 큰 사건도 있었는데, 독자들이 함께 하면서 따뜻한 기운을 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열심히 쓰겠다고 했고, 다음 책으로 만나자고 했다. 마지막 낭독이 울려 퍼졌다.

“…‥내 말이 들리나요?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뜨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모른다. (…) 나는 숨을 멈췄어요. 당신은 계속 숨을 쉬고 있었어요. 계속 당신의 숨소리가 들렸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떠올랐지요. 먼저 수면의 빛에 어렴풋이 닿고, 그 다음부터는 뭍으로 거세게 쓸려갔어요. (…)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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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붉은 로자. 불꽃의 여인.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
레닌, 한마디 덧붙인다. "그녀는 혁명의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순정한 혁명주의자의 이름.  
급진적이었고, 극좌라는 표현도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폴란드 출신 독일의 사회주의자인 그녀는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혁명가였다.

엊그제 장원봉 교수의 협동조합 강연, 로자 누나의 이름이 언급됐다. 반가웠다.
뜨거운 수정주의 논쟁을 펼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협동조합과 관련해 펼친 논쟁의 일부.

로자는 협동조합을 수정주의로 인식했다. 그녀는 주장했다.
"협동조합에게서 무슨 사회성을 발견할 수 있지? 결국 그것들은 개인주의적인 것뿐이야. 결국 개인주의 기업으로 퇴행할 거야."

베른슈타인은 반박했다.
"생산자협동조합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비자 협동조합의 구매를 위해 생산한다고!"

다시 로자는 공격했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봐. 거대한 제조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그것이 협동조합으로 가능할까?"

베른슈타인, 뜸을 다소 들이며,
"하지만 우리는 산업자본은 노동조합이 통제하고, 상업자본은 소비자협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100년 전이었다. 결과적으론 로자의 주장이 옳았다. 
급격한 시장화와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이전에 발흥했던 사회적경제는 퇴조했다.
복지국가의 도래도 협동조합이 약해지는데 한몫했다. 국가가 협동조합의 몫을 대신했으니까.

로자는 어쨌든 대처 이전 '철의 여인'이었다. 물론 대처와 판이하게 다른 철학과 사상으로 실천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로자의 신념과 이상은 그에 기반했다. 실패도 그녀에겐 자극일 뿐.  

로자가 마지막에 남긴 글은 이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말, 바꿔말하면, "씨바, 쫄지 마!"
즉, 패배는 혁명의 '스펙'이다. 스펙을 그만큼 쌓아야, 승리도, 혁명도 가능하다는 법칙.

결론은 이렇다.
나로선, 로자 룩셈부르크와 커피의 친연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순정한 혁명주의자였기에 그녈 떠올린다면 1월15일의 커피는 '리스트레또'.
커피 향과 맛을 좌우하는 성분 중심으로 뽑는 리스트레또가 맞다.
잡맛을 가능한 제거한 순정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  

로자는 93년 전인 1919년 이날, 살해당했다. 비극, 그 자체였다.
한때의 동지가 집권한 가운데, 군인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확인사살당했고 강에 버려졌다.

그 죽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한명숙
1월15일. 1919년 로자는 죽었고 2012년 한명숙은 민주통합당 당대표가 됐다.
한 여성이 죽고, 한 여성이 일어났다. 1월15일의 커피가 '리스트레또'가 돼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아 물론, 로자와 한명숙은 너무도 다른 인물이다.
'무죄녀' 한명숙 대표, 청렴한 행정가일 수 있겠다. 반MB정서를 업고 야당 대표로까지 올라섰다. 잘된 일이다. 그것도 여성이. 격하게 찬성!

그러나, 냉정하게. 한 대표가 정권을 바꾸게 하는데 일조할지는 모르겠다. 
한명숙(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인민의 삶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혁명은 없다.   
지금 엄혹한 1대99 시스템을 바꿀 정치인, 아니다. 나는 그들의 개혁(가능성)조차 회의한다.
근본적 모순에 대한 언급도 없고, 반성도 미미하다. 그 모순을 해결할만한 콘텐츠도 미약하고.

더 냉정하게 투표로 이들 세력에게 권력을 준들,
그들이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반성과 성찰, 깨달음을 통한 실천을 못한다면,
우리는 투표 기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투표만 하면 뭐든 바뀐다고? 조까라 마이싱. 내가 보기엔 그들은 로자가 아니다.
결국 인민이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 투표보다 직접 액션을 통해 점령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의 말을 담아둬야 할 이유. 
"만약 올 한 해 동안, 권력을 휘두르는 금융자본을 제어할 적절한 수단과 정치적 의지가 표출되지 않는다면 모든 선거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독일 베를린의 지하철 한 역 이름이 '로자 룩셈부르크'라더라.
그 언젠가 1월15일엔 로자 룩셈부르크 역에서 리스트레또 한 잔을.

아 물론, 강철 여인, 혁명의 독수리에게도 사랑은 있었다.
리투아니아 출신 사회주의자 레오 요기헤스. 로자의 오랜 스승, 동료, 연인이자 사실상 남편.
고종석에 의하면, "독립 여성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로자가 레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었다." 로자가 레오에게 보낸 연애편지, 참으로 달큼하다. 로자라는 한 여자안에서 나온 것인지, 우와~

혁명은 사랑과 함께다. 커피도 사랑과 함께라면, 이날의 리스트레또는 달금하다.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 얘기기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룩셈부르크의 속담 중 하나. (으응?)
"룩셈부르크인은 혼자 있을 때 장미밭을 가꾸고, 둘이 모이면 커피를 마시고, 셋이 모이면 악단을 만든다." 그렇게 커피를 들입다 마시니, 이런 통계도 나온다.

2010년 기준 27.2kg.
룩셈부르크 한 사람당 1년에 소비하는 커피의 양이다. 세계 최대란다. 한국? 
같은 해 기준 1.9kg이다. 전 세계 34위. 그래봐야 룩셈부르크의 1/14이다. 


루니 마라(루느님!) 
여자 얘기 또 안 할 수 없는데, 나, 한 여자한테 단단히 뿅 갔다.
이토록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니! 일은 물론이요, 자기 앞가림도 끝내주게 잘한다.  
용 문신한 여자가 이리 치명적일 줄이야. 격하게 애정할 수밖에 없는 여자, 루니 마라!!!
데이비드 핀처판 <밀레니엄>히로인이다. 남자주인공 미카엘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저리 가~

얼굴과 몸 곳곳엔 피어싱, 등에는 용 문신, 가죽점퍼로 간지를 뽐내고 줄담배를 피우며 오토바이를 모는 폭주족, 리스베트 역의 루느님.

그녀가 극중 법적보호자인 변호사 닐스(요릭밴 와게닌젠)의 변태성행위에 복수하면서부터, 나는 훅~ 갔다.

미카엘을 죽음 직전에서 구하고,
그에게 May I Kill? 하고 묻는데, 씨바, 얼릉 죽여 줘, 죽여 줘, 뒤따라다니면서 외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마성'!
예쁘진 않은데, 이뻐~
그 미친 존재감에 내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아드레날린 강하게 돋는다. 보장한다. 이 여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리스베트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미카엘을 사랑할 때, 나는 한없이 미카엘이 부러웠더랬다.
그녀의 온몸을 더듬고 애정하는 미카엘이 되고 싶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 그녀는 끝까지 쓸쓸하고 멋지다. 
뻔하디뻔한 금발 편집장과 시간 보내려 리스베트의 사랑을 소외시킨 미카엘, 바보에 멍충이다.
여자 볼 줄 모르는 병신. 내게 이런 여자만 있어봐라. 평생 뫼시고 산다!

이런 파격은 드물다.
루니 마라, 단숨에 줄리아 로버츠, 스칼렛 요한슨과 동급으로 내 여신전에 올랐다. 루느님~

강한 여자에 대책없이 끌리는 나는 역시 '강한 여자종속형 수컷'일세.ㅋ



남자3호
남자 3호, 재밌고 신나는 경험.
내가 찍은 여자는 매력투성이에 마성이 보이건만, 아무도 안 찍는다.
선물만 줬다. 나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니까!ㅋ   
그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신의 서사를 가진 사람 같았다.
살면서 어떤 변수가 그녀에게 개입할진 몰라도, 내 느낌이 맞다면,
그녀는 더 멋있는 마성의 여자이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헤이데이의 캘리그래피. 멋있다!


아울러,
10만 년 전에 내가 여자였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얼마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자였을까?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왜 이리 제 각각이야. 쯧.  
인디언식 이름. 웅크린 태양의 그늘(그림자) (음력. 웅크린 늑대의 고향)
조선식 이름. 소싯적 마당쓸던 기생오라비. (팡 터졌다.)
일본식 이름. 아이노 켓쇼오. 사랑의 결정.
중세식 이름. 알버트 콘라드. 대단히 뛰어난 수다스런 조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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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마구마구 카페에 가고 싶어진다. 비가 올 때, 낙엽이 우수수 쏟아질 때, 햇볕이 넘쳐날 때, 구름이 멋진 날, 너무 추운 날……. 모든 날씨는 카페를 부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거기에 있다.      - 이명석, 《모든 요일의 카페》 중에서 -

 

그들은 이곳에서 모이곤 한다. 
한꺼번에 함께 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둘 따로따로 온다. 
물론 때로는 혼자, 커피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임이다.
여긴 일종의 아지트인 셈이다. 무슨 현안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친목 모임도, 비밀 결사체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따로 또 같이'다.  

때론 그들은 격론을 펼치기도 한다. 
몇 주 전에 아예 새벽을 넘길 기세여서, 커피하우스 클로징을 맡겼다. 옛다, 문 닫고 가세요. 
다음날 이야길 들어보니, 꼴딱 새벽을 샜단다. 동이 틀 때까지 다양한 토론과 격론을 펼쳤단다. 무슨 혁명을 꾀하는 혁명가들 같은 면모도 있다. 

가만 들어보면, 주제도 다양하다.
선거와 민주주의, 사랑의 종말, 학교(교육)의 불가능성, 공정무역과 경제체제, 음악과 나가수, 아이돌의 품평회, 여자와 남자의 차이, 그야말로 종횡무진, 종횡사해다. 
다양한 담론이 오간다는 것, 견해의 다름(차이)을 인정한다는 것.
이들이 느슨하게 계속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이 커피집 아저씨는 생각해 본다.  

오늘은 3명이 모였는데, 두 여성 이야기로 꽃이 핀다.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잠시 껴들었었는데, 코코 샤넬과 전혜린.
말하자면, 20세기 여성해방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어제가 두 사람의 기일이었다. 전혜린은 1965년에, 샤넬은 1971년에. 각기 47주기, 41주기.
물론 차이는 있다.
전혜린은 31세에  스스로 세상에 절연을 선언했고,
87세로 생을 마감한 샤넬의 마지막 말은, "결국 사람은 죽는구나!".

우선 코코 샤넬.
☞ 샤넬, 스타일 혹은 혁명의 또 다른 이름
커피 하는 내 입장에서 비약하자면, 그녀는 테이크 아웃 커피점을 융숭시킨 시발점이다.

무슨 말이냐고? 
생각해 봐라. 이른 아침, 머리를 찰랑이며 회사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여인이 있다.
검은 트위드 자켓을 걸치고, 무릎을 약간 넘는 길이의 치마와 레깅스로 조합한 그녀,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녀, 회사 부근 위치한 공정무역 커피점에서 마다가스카르 천연바닐라빈라떼 한 잔을 시킨다. 잠시 향과 맛을 보더니,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회사로 들어선다.
천연바닐라빈과 커피의 조합이 향기롭다.
 

그 모습, 코코 샤넬 덕분이다.
그녀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죄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탈주시켰다.
장례식에만 입던 검은 옷을 일상화시키고, 거리를 빗자루질하던 드레스를 무릎 위로 업했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서 두 손을 자유롭게! 두 손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 수 있게 한 것이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저지드레스,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스웨터, 리틀블랙드레스, 샤넬 No.5 등.
하나로 정리하면, 이른바 샤넬 스타일의 시작이요,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
불필요하고 허세 가득한 쓸모없는 복장은 꺼져라!
20세기 복식 혁명을 일군 장본인, 샤넬.

에브리바디, 샤넬 스타일!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도 해방시킨 그 스타일.
당신에게 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 샤넬 스타일은 있다.


"아저씨, 샤넬을 어떻게 그리 알아요?" 진짜 의아한 듯 묻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안에 샤넬이 있거든. 하하. ^^;; 샤넬이 세상을 휩쓸 땐, 이런 말도 있었어.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 몰랐지? 니들에게도 샤넬이 있어! 너 안에 샤넬 있다!"

"이 아저씨, 여하튼 예쁜 여자라면 다 알아요. 밝힘증이라니까. 호호."

"야, 니들이 날 제대로 아는구나." 

"샤넬도 살아있을 때, 너희들처럼 커피하우스를 들락거리고 그랬어.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세계를 생각하느라."

"아, 그래요?" 

"그럼. 샤넬의 유명세만큼 사교계 거물이었거든. 다들 그녀를 만나려고 안달이기도 했지. 장 콕토, 피카소, 달리,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숱하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눴거든. 돈이 많으니까, 그들을 후원하기도 했고."

"우와~ 우리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호호."

"이 아저씨가 있잖아. 하하. 샤넬은 장 콕토가 알코올 중독이 됐을 때 치료비를 부담해주기도 했고,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작곡할 수 있도록 후원도 했어. 대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겐 도움을 안 주고, 자신이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들한테는 드러나지 않게 도왔대. 나는 완전히 다 드러나게 도와줄게. 하하." 

"에이,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에 커피 팔면서, 아저씨가 뭘 도와요?ㅋㅋ"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였다. 
샤넬이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토론했던 커피하우스, 혹은 카페, 또는 살롱.
1875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원래 중국산 비단을 파는 가게였다.
그 비단 가게의 이름이 레 되 마고였는데, 카페로 바뀌면서도 그것을 유지했다.
19세기에는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이 단골이었고,
20세기 들어와서도 바타이유, 브로통, 피카소, 생떽쥐베리, 자코메티 등이 이곳을 찾았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도 단골이었는데, 1933년에는 레 되 마고 문학상이 제정될 정도로 이곳은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 됐다.

재밌는 건, 커피하우스도 이념에 따라 구분됐다.
20세기 초반 유럽에 파시즘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에 모여 파시즘을 성토하거나 대책을 논의했다.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이곳의 단골이었다.
두 사람이 날마다 독서와 토론으로 열을 올리자, 그들을 보기 위한 구경꾼도 들끓었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한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레 되 마고 대신 옆의 드 플로르를 찾았다.
당시 보수파들이 주로 드나들던 드 플로르에, 진보진영지식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점령했다. 
더 재밌는 건, 사르트르도 레 되 마고의 난방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드 플로르로 둥지를 옮긴 것.
자신들의 진영을 뺏긴 보수주의자들은 레 되 마고로 건너갔다.

두 카페, 정체성(?)이 바뀌었다.
레 되 마고는 보수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고, 드 플로르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다.
물론 다소 기계적인 구분이지만, 공간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이다보면,
사람들이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을 그렇게 규정하는 일도 생긴다.
오늘날도 그런 전통(?)이 좀 남아있단다.
진보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는 피하고, 반대 진영은 카페 드 플로르를 꺼린다는.
사소하고도 강박적인 전통.


"그러니까, 니들도 여길 만들 수가 있어. 너희들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 수도 있고."

"와, 그럼 여긴 우리 같은 얼치기 진보들의 놀이터가 되겠네요. ㅋ 아저씨, 괜찮겠어요?"

"나는 대세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상관없어. 하하."

"근데, 샤넬은 어떤 진영이었을까요? 애매해. 애정남이 있어도 정하질 못할 거 같애."

"장 콕토가 한 말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은데... 이랬거든.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캬, 멋지지 않아?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 니들도 좀 그래봐라. 그럼 내가 커피 후원은 '학실히' 할게."

"칫, 뭐야. 그럼 아저씨, 전혜린 알아요?"

"응, 그럼 알지, 당연히!"

"우와~ 아저씨 같은 사람도 알아요? 호호."

"야야, 말도 마라. 한참 열풍이 지났을 땐데, 나 때만 해도 전혜린, 하면 자지러지는 여자애들 많았어.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지. 요절 때문에 신화가 된 거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캬. 감수성 돋는 소녀들이 어찌 뻑 가지 않겠니."

"장 콕토가 했던 그 말을 한국에 적용하면, 전혜린이 그럴 것 같아요."

전혜린은 문학소녀들의 만신전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여자를 스무살 초반에야 읽었다.
멋도 모르고 읽었고, 강렬했다. 어찌 이런 글을.
열정과 광기 사이.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평가에 비해 그녀가 세상에 남겨 놓은 유산은 터무니 없이 부족해 뵌다.
인식의 갈망으로 불타올랐지만, 그녀를 감당하기에 세상은 지나치게 견고했다.
그녀의 재능을 받아줄만큼 세상은 대범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했다. 아니, 쫌생이였지.

그녀는 스스로 휘발했다. 
이 빌어먹을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사회의 견고함을 깨부수고자 했으나, 그녀 이전의 혁명적 여성들도 그러했듯. 제길.
그녀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조용한 황혼에 길가의 주막에 쓰러져 있는 집시가 있거든 나라고 알아줘!"
집시에겐 머물 곳이 없다. 혁명을 용서하지 않는 이땅은 그녀를 애써 무시한 것이 아녔을까.


"오늘 우리 주제가 그거였어요. 어떻게 세상과 싸울까. 여성은 어떻게 이 견고한 세상과 싸워야 하나."

"와우, 이 아저씨도 도울게. 뭘 해줄까? 찐한 커피 한 잔, 더 줄까? 하하."

"좋아요. 그게 어디야. 커피로 혁명하는 거지, 뭐. 우리가 잘 되면 여기도 뜬다니까요. 아저씨, 우릴 믿어봐요."

전혜린의 단골 커피하우스, 학림.
그녀가 죽기 하루 전, 1월9일.
하늘은 맑았지만, 날씨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만큼 추운 날이었다.
그녀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앞의 동숭동 학림다방 오른편 맨 구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밤색 코트를 입고 검은 혈액을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혼자 있었다.
 
지금도 학림은 그 자리에 있다. 1월10일, 전혜린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한파가 몰아치는 오늘.
전혜린과 샤넬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청년들에게, 나는 은근슬쩍 혁명의 꿈을 싣는다.
부디, 너희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다오.
못난 어른들이 땡깡으로 허술하게 만든 세상에 함몰되지 말고.
'남들만큼, 남들 보기에'를 들먹이며, 똑같아지기를 원하는 어른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길.
몰개성 말고 스타일. 샤넬 스타일. 전혜린 스타일.
 


내 커피는 그런 너희들을 위한 것이거든. 바로 이 순간의 샤넬을 위해, 전혜린을 위해.
내가 커피하우스를 하는 이유. 커피아저씨로 남아있고픈 이유.

1월10일의 메뉴는, 그래서 '샤넬 No.전혜린'.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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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한 소설마초 백가흠을 낭독한 어느 가을밤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난여름, 백가흠의 세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에 이은 『힌트는 도련님』. 첫 장편이 아쉽게 유산된 뒤, 잉태된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은 앞선 작품들과 다른 색깔을 주목받고 있다. 이젠 죽이지 않겠다는, 죽이는 것도 힘들다는 그의 이야기를 반영한 것일까. 


지난 10월1일, 쌀쌀함이 내린 가을밤, 서울 홍대부근의 한 카페에서 와우페스티벌의 일환으로 ‘『힌트는 도련님』 낭독의 밤’이 펼쳐졌다. 서효인 시인이 맡아, 도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들과 교감하는 시간. 참고로 백가흠과 서효인, 두 사람은 같은 야구팀 소속으로, 백가흠 작가는 2루수, 서효인 작가는 포수를 맡고 있단다. 물론, 둘 다 주전이다.

근황은 어떤가?

한 달에 반 정도는 소설 연재(주. <나프탈렌>(현대문학)에 매달리고, 일주일에 나흘은 강의에 매달리고, 2주일에 한 번은 야구에 매달리고 있다. 

오늘, 「그래서」라는 작품의 낭독을 많이 하게 돼 있는데...

가끔 낭독회를 했는데, (내 소설에서) 정말 읽을 부분이 없다. 두 번째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낭독회를 하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군데군데 문장을 읽어주는 것보다 단편 하나를 온전하게 읽어보고 싶었다.

낭독할 때, 출신지가 드러난다. (웃음) 「그래서」에는 작가가 한 명 등장한다. 거기 나오는 백이라는 작가가 「힌트는 도련님」에서도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힌트는 도련님」을 쓸 때, 창작가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었다. 독서의 편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넣어봤다. 맨 처음에 카프카를 넣었는데, 카프카가 웬 말이냐, 싶더라. 여러 작가를 넣다가 퇴고를 하는데, 노인의 이미지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노선생이 떠오르는 거다. 이러면 안 되는데, 김윤식 선생이 떠올랐다. 반쯤은 남진우 평론가도 떠오르고.

두 사람의 이미지가 반반 드러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을 했다. 뒤집어 써야겠다 생각해서 여러 작가들을 빼고 나를 넣었다. 성공적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이 두 분은 어마어마한 독서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다.

「힌트는 도련님」에 소설쓰기의 괴로움에 대해 언급한다.

시간이 지나도 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본질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고. 예전의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 같고. 원래 문학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려고 했었지? 그런 생각도 든다. 처음 마음가짐에서 멀어지니까, 작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때때로 고통스럽다.

이때도 힘들었다. 이제 그만 소설을 쓸까, 딴 걸 해볼까, 여러 생각이 소설 안에서의 관념의 고민이라면, 소설에 나오는 엄마와 작가의 대화는 실제다. 10년을 했는데, 지금도 밤에 1~2시쯤 일을 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오셔서 불을 끄고 자라고 그러신다. 어머니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시는 거다. 그런 괴리감?

백가흠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그래서」의 한 부분이었다.
 
“노인이 쓴 입맛을 다시며 입을 비죽거렸다. 허공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낙엽 위로 살짝 내려앉아 있떤 서리가 반짝였다.… 음, 네놈이 누군지 이제 알 것 같다. 고얀 놈. 노인이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나직하게 말했다.”(pp.82~85)


세 번째 소설집의 색이 달라졌다.

보통 단편집은 쓰면서 계획하고, 몇 년 동안 쓴 것을 모아 책을 낼 무렵엔 다음 책에 대한 구상을 한다. 분위기나 콘셉트를 정하고 소설을 쓰는데, 이 책은 예정에 없던 거다. 문학적인 고민이 드러나는데, 오랫동안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처음엔 다른 콘셉트였을 거다.

첫 번째 소설집부터 사회시스템에서 오는 부조리를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힘들더라. 자꾸 후회가 됐다. 극서사에 대한 것들, 그리고 왜 내가 한 발 더 나갔을까, 하고. 소설이 후지고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고, 소설의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한정되고 작은 구멍만 남겨놓았다는 걸 알았다. 폭넓고 보편적인 것을 열어놓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일상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 안에서 소설만 찾으니 더 어렵고, 소설로 다시 들어가는데 집중도 안 되고. 소설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작가도 직업으로 보면 직업의 일상성이 존재한다. 직장을 다니는 것 외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패턴화 된 일상성이 작가에게도 존재한다. 생활이나 일상을 찾는데 대한 어려움부터 스스로의 정화라고나 할까, 작가로서 의식을 정화하는 소설을 써봐야겠다, 나를 위한 소설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P」라는 소설을 썼다.

「힌트는 도련님」은, 하다하다 다 포기하고, 처음엔 작가가 있는 횟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모와 주방장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옛날처럼 안 나오는 거다. 문장을 참을 수도 없고, 인물이 그려낸 심리도 어렵고. 그래서 하나를 포기하고 쓴 소설이었다.

「P」는 말 그대로 자전소설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에피소드, 인물 등은 내 기억일 수 있고, 왜곡된 것일 수도 있고, 남이 가진 기억일 수도 있다. 작가의 기억 혹은 과거라는 것이 개인만의 것일 수 있냐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전작 『귀뚜라미가 온다』를 카페에서 다시 읽었는데, 누군가를 때리고 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롭게 해야 할 문학보다는 이야기가 돌아 돌아서 자신한테 왔고, 웅크린 소설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문학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힌트는 도련님은 편집자에서 받치는 변명 같았다.


「통」의 한 부분을 읽은 서효인 시인의 낭독을 끝으로 1부가 끝나고, 2부는 초대 손님과 함께 한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의 초대 손님은 소설가 김태용과 시인 신용목. 백가흠 작가의 친구들이다.

어떻게 친한가?

(백가흠, 이하 흠)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데뷔한 연도나 활동이 다르긴 하나, 만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성격이 다 지랄 같아서. (웃음) 몇 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같이 놀자고 불렀는데, 사실 나보다 재미없는 친구들이다.

(신용목, 이하 목) 나이도 같고 그래서 (백가흠의) 첫 책부터 열심히 읽었다. 읽고선 피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더라. 죽이든지, 괴롭히던지. (웃음) 도망을 다니다가, 불가피한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게 아니더라. 사람 잘 챙기고 오지랖도 넓고.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친하게 지내야겠다. 

(김태용, 이하 태) (오늘 백가흠이) 요점 없이 말을 엄청 하던데, 어제 나랑 술 엄청 먹고, 12시에 헤어졌다. 문단에서 같은 나이 또래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잘 챙겨줘서 친하게 혹은 부담스럽게 지내고 있다.


김태용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백가흠 작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낭독을 한 소설은 「그래서」였다.
“집 안은 아침이 되었는데도 어두컴컴했다. 흐린 날씨 탓으로, 집을 감싸고 있는 자욱한 안개 탓으로, 또 지붕을 타고 올라가며 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 때문에 집 안 가득 어둠의 빛이 무겁게 침잠되어 있었다.… 노인은 느긋하게 지난밤 다 읽지 못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책으로 만든 방에서 영원히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pp.97~98)

왜 이 부분을 낭독했나?

(태) 자주 보지만, 만나면 문학 이야길 하지 않는다. 술, 여자, 연예인 이야길 하는데, 그래서 더 편하게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가끔 동료작가를 만나면 어떤 표정 등을 하며 글을 쓸까, 궁금했다. 이 글을 보면서 백가흠도 고통스럽게 글을 쓰는구나, 동질감을 느꼈다. 또 작품이 좋으니까.

신용목 시인의 낭독이 따랐다. 「쁘이거나 쯔이거나」였다.
“쯔이를 군산의 미군 클럽 근처에 데려다 준 것은 기종 씨였다. 짓누르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는 한집에서 쯔이와, 형을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누군가는 집에서 나가야 했지만, 갈 곳 없기로는 기종 씨도 쯔이와 마찬가지였다. 도망치겠다고 제안한 그녀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쯔이를 차에 태울 때까지 동생 기종 씨는 그녀의 허리춤을 움켜쥔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저는, 행복하고, 싶어. 놓아줘. 부탁입니다.”(pp.218~220)

시인으로서 보는 작가 백가흠의 소설은?

(목)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가 아는 친구가 맞는가, 할 때가 많다. 평소에는 헐렁하고 턱 없이 사람 좋은 웃음만 흘리는데, 소설을 보면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예전 작품은 인간의 마음의 끝, 절벽으로 내몰리기 직전의 얇은 막을 여지없이 찢었다면, 최근 작품은 그 막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하다.

그전의 백가흠은 메마르고 가파른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낭독에서 쯔이가 했던 말을 보면, 어떤 것들이 우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술 마실 때 모습과 달리. (웃음)

김태용에게 백가흠이란?

(태) 백가흠은 소주다. (웃음) 맥주가 아닌 소주다. 아까 낭독한 부분(「그래서」)을 선택한 이유도 노교수처럼 같이 동료작가로서 가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소주, 우리가 버릴 순 없잖나. (웃음)

신용목에게 북한이란?

(목) 문제가 많은 곳이지만, 그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게) 백가흠은, 안주로 하겠다. 이 친구랑 술 마시면서 심심했던 적은 없다. 다만, 내가 힘들어서 술 마시자고 하면, 늘 힘든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단점이다. (웃음)

소설가로서 주변에 좋은 친구가 참 많다. 친구는 어떻게 만나나?

(흠) 사실, 친구 유지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친하다가도 다시 보기 힘든 경우도 있고. 글로 오래봤고 오랫동안 지켜보고 들어보고 만나는 사이라 싸울 일이 없다. 늦게 만난 친구도 좋은 것 같다. 내 글을 봐주는 것도 고맙고, 다른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다.


Q&A

첫 장편으로 연재했던 ‘향’은 어떻게 된 건가?

그 장편은 작년 2월부터 7월말까지 문지 웹진에서 연재를 했다. 많이 준비했고, 자신 있었다. 내용은 원죄에 대한 것이었다. 불교적인 것도 들어가고 기독교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그런데 소설이 중간부터 팍팍한 거다. 내가 읽기에. 단편이 가진 습성을 장편을 적용시켜 놓은 것 같았다. 가끔 여유도 부려야 하고 숨도 골라야 하는 장편의 테크닉을 감안 못하고 큰 욕심을 부려놓았더라. 

이런 부분이 있다. 자기 딸을 강간한 남자를 죽이려는데, 마을 사람들이 죄를 묻으려 한다. 마을에서 일어난 최초의 살인을 막기 위해, 남자를 도망가게 해주고 대신 죽는 내용을 쓰는데, 화형을 시켰다. 그걸 냄새로 풀었는데, 살이 타는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은 없으니 어렵더라.

그 글을 읽고 원고를 덮었다. 안 되겠더라. 너무 어렵고, 연기하자고 마무리 지었다. 왜 그랬냐. 책은 스스로 살아나가는 생명력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내면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일일이 설명하고 다녀야 할 것 같은 거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그건 책 스스로의 생명력이 없다는 의미잖나. 딱 그날 하룻밤만 슬퍼하고, 지금까지 좋았다.


백가흠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는데, 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웃음) 소설 쓸 때 언제, 어떻게 쓰는 편인가?

몸을 극복하고 싶었다. 옛날엔 밤 11~12시 뉴스를 보고 방으로 들어가선 바로 소설은 못 쓰고 분위기를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통 5~6시에 시작해 8~9시까지 쓰고 밤을 꼴딱 샜는데, 너무 힘들더라. 해서 생활을 찾으려고 지난봄부터 도서관에 가서 쓰기 시작했다. 수업 전까지도 도서관에서 쓰고. 나는 작가입네 그런 걸 싫어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쓴다. (웃음)

마무리할 시간. 서효인 시인은 그를 순정한 소설마초라고 표현했다. 소설을 못 살게 굴고, 소설을 쓰면서 자신을 가학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란다. 힘들어하면서도 쓸밖에 없는 소설이라니. 순정하지 않으면 이것은 당최 불가능한 일이다. 순정은 원래 고통을 동반하는 법이니까. 백가흠 작가의 끝인사는 순정마초의 고민과 행복이 하나씩 더 늘었음을 보여준다.

“독자에 대한 배려를 그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은 진심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맙다.”  

[예스24 기고원문, 사진은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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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5일, 씨즈에서 주최한 사회적기업 관련, '비전 나눔 토크쇼'에 풍덩. 푸릇파릇한 청춘들의 세계를 향한 눈빛이 이글이글하다. 나야 흐리멍덩 동태 눈깔로 봤지만, 그들의 내뿜는 열기는 후끈후끈, 하악하악. 사회적기업이 빠질 수 있는, '좋은 일, 좋은 의미'의 함정. 암, 나도 저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자가당착으로 빠지는 경우를 봤으니까. 그럼으로써, 과도한 노동, 잦은 구성원 교체, 민주적 운영의 상실 등 무늬만 사회적기업인 경우를 경험했으니까.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지만, 지금 내가 보는 인증제도는 '독'이다. 사회적기업이 대체 인증을 받아야 할 이유가 뭣인가. 많은 이들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서 인건비나 딸려는 현실. 인증제도의 감옥에 창의와 혁신은 갇혔다. 박병은 트래블러스맵 이사가 지적한 것에 나는 완전 동의. '사회적기업 간판'과 '사회 혁신'은 동의어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기업의 구성원이 모두 행복한가!
쿠바 독립의 아버지이자, 문인·정치가·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에 큰 영향을 줬다는 호세 마르티는 이리 말하지 않았던가.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올해, 사회적기업 혁신모델 탐방단이 역시 출동한다. 고민할 만하다. IT 및 SNS, 적정기술, 지역개발, 공동체 기업, 사회적기업을 위한 사회적기업, 대안소비.

나는 어떤 詩를 읊을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딸이 세계가 뭔지 물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 계속 남는다.
"너도 세계의 일부고, 세계도 너의 일부란다. 그 다음은 네가 생각하렴.

아울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아버지(오다기리 죠)가 아들에게 했던 말도.
"네가 가족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음악이라든가 세계라든가."

아무렴. 사회적기업은, 세계를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근데, 문제는 오다기리 죠가 저리 말하면 간지 작렬인데, 내가 하면 똥폼이 된다는 것.
아, 슬프다. 잘난 것들만 대접받는, 이 멋진 세상~
  



홍자매

홍은정, 홍은영으로 구성된 팀(홍자매)에 나는 홀라당 반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자신 없는 것을 자신 없다, 그러니 도와 달라, 고 말하는 이들의 숨기지 못하는 '진정성'은 자신감과 같은 단어로 규정할 것이 아니다. 패기만만하고 자신감 충만해 뵈는 여느 청춘들과 다른 빛깔. 나는 그 빛깔이야말로 사회적기업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고 봤다. 아니, 그냥 그들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눈은 번쩍, 귀는 쫑긋, 입은 터억. 막감동, 완전감동, 폭풍감동.

'요행'을 바라지 말고 건강한 유기농 '여행'을! 이라는 테마를 건 그들의 여정이 미더울 수밖에 없었다. '로컬푸드' 그리고 '좋은 먹거리'를 생각하고 있을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결합할 여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살짝 들떴다. 동지들을 만난듯하여. 분명 좋은 사람들이다, 확신까지 들 정도. 아름다운 자매다.홍자매.

부디, 똥파리가 들러붙어도 잘 떨어트리길. 파리채는 내가 책임진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홍자매팀은, 몇해 전 무농약 귤농사를 짓기 시작한 아버지를 계기로 '규격 외 농산물 활용과 지역관광을 통한 사회적 기업'을 준비 중이다.
지역관광의 사례학습, 규격 외 농산물의 이용현황과 활용가능 사례, 지역농산물의 2차 가공품 사례와 판로모색을 주제로 일본을 탐방했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요리기술을 배우는 등 조용하지만 차근차근 사회적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쿠바
1월1일의 쿠바. 나는 여전히 그것을 그린다. 1953년 7월26일부터 전개된 쿠바혁명은 1959년 1월1일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냄으로써 혁명의 깃발을 꽂았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가 꽂힌 건, 바로 쿠바(인들과 음악). 이토록 관능적인 포스터하곤. 딱 보면, 숨 막히지 않나? 나? 말초신경 돋는다! 'Must-See 필름'.

책도 질렀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 반성장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내게 <치코와 리타>를 보여주면, 그 어느 해 1월1일 혁명기념일에 맞춰 쿠바로 갈 때 데리고 간다! 무슨 재주로? 사회적기업은 가능하다. 쿠바에도 커피가 나거든! 크리스탈 마운틴. 나와 함께 관능의 볼레로를~



김광석

자정 넘은 이 시각 1월 6일, (김)광석이 형 16주기.

고딩 때 한 소녀가 수줍게 건넨 녹음테이프의 B면 첫 곡이 '사랑했지만'.(A면 첫 곡은 퀸의 'Love of my life') 그런 시절, 있었다. 그때 처음 '김광석'을 알았고, 그때 이후 '김광석이라는 노래'를 줄곧 좋아했다. 탁한 듯 맑았고, 노래는 세상을 품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이등병의 편지'는 또 얼마나 불러 제쳐댔던가. 저주 받은 이 군댈 나가면, 광석이 형 콘서트 보러 대학로 학전블루로 가야지 맘 먹고 있던, 제대 100일이 채 남지 않았던 1996년의 1월6일. 광석이 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TV의 미친(?) 소리에 멍~하던 병장 이준수. 서른 즈음엔, 담배 뻑뻑 피면서 '서른 즈음에'를 주야장천 들었었다.

비록 사회적기업가들과의 약속 때문에 오후 8시에 펼쳐지는 16주기 콘서트 ‘김광석 따라부르기 2012’에는 못 가지만, 술 들이키고, 광석이 형 노래나 불러 제쳐야지.

광석이 형, 잘 있는교? ㅠ.ㅠ



배짱

1년여 전에 처음 봰 한 출판사 대표님이 "배짱 많게 생겨서" 날 기억하고 있다고 얘길 건넨다. 기억해 주신 것, 참 고마운데, 그 말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 좋은 말이겠지?ㅋ 사실, 난 그 대표님 기억을 못했거든. 아, 어쩜 좋아. 미인들만 기억하는 더러운 뇌 구조라.^^; 오늘, [내 마음을 만지다] 참 좋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詩를 꺼낸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 원래 우리 각자 안에 시인 있거든.
우리 자체가 원래 詩거든.
그러니, 이런 질문, 당연하다.
"나는 어떤 詩가 될 것인가?"

광석이 형은 그래, 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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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넘어 혁명을 꾀한 사진예술가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멕시코의 예술가 프리다 칼로를 다룬 영화, <프리다>.

섹시한 배우로 각인됐던 셀마 헤이엑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프리다 칼로를 표현함으로써 화제가 됐었다.

프리다에 가렸지만 또 하나의 인물이 있었다. 프리다의 연인, 디에고 리베라가 아니다. 극중에서 프리다와 춤을 췄던 여자. 자유분방하면서 혁명을 꿈꾸는 사진가로, 애슐리 주드가 연기했던 티나 모도티.

나는 <프리다>처럼 <티나>라는 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명가이자 사진작가, 그리고 사랑의 화신이었던 티나 모도티를 다룬. <프리다>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듯, 티나를 다룬 영화는 그녀를 되짚어보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되짚어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혁명. 닥치고, 혁명!


티나 모도티, 독립적이면서 사랑을 갈망했던 여인

에드워드, 부드럽게 당신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봅니다. 오늘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당신을 느낄 수 있게. 여기 홀로 앉아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오. 에드워드, 당신이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는지! 아침까지 당신의 마지막 편지를 베고 누워 있었답니다.

그런데 날 깨운 게 그것의 희미한 향기였을까요? 아니면 거기서 발산되는 듯한 당신과 내 욕망의 혼? 그래요. 어떻게든 달성하고픈 욕망에 취하면서도 그걸 두려워하고 미루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이겠지요.

(《티나 모도티》, p.86, 티나 모도티가 에드워드 웨스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에드워드 웨스턴이 찍은 티나 모도티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1896.8.16~1942.1.5)는 사진작가 에드워드 웨스턴을 만나 사진에 입문했다. 1919년이었다. 앞서 그녀는 시인이자 화가였던 로보와 사랑했었다. 로보를 통해 많은 예술가를 만나 예술과 사회, 인문을 습득했던 그녀였다. 멕시코 문화를 보길 원했던 로보가 현지에서 천연두로 사망하고, 그녀는 웨스턴의 모델이자 조수가 됐다. 이어, 그의 뮤즈이자 아내가 됐으며 티나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두 사람은 사진관을 운영했고, 멕시코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은 혁명 후기 멕시코 문화계의 유명 인사였다. 프리다와 디에고를 만나게 해준 이도 티나였다. 당시 프리다는 티나를 숭배했던 소녀였다. 문화계 모임에서 티나는 사랑의 가교 역할을 했다. 허나 웨스턴은 결국 그녀를 떠났다. 자신의 아들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에드워드가 떠난 뒤, 멕시코에서 사진의 길을 걷고 있던 1928년. 그녀는 쿠바출신의 망명정치가 훌리오 안토니오 멜라를 만난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연인이 된다. 티나는 특히 멜라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혁명가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사랑이 인도한 길을 자연스레 따랐다.

로보가 알려준 예술, 에드워드가 보여준 사진, 안토니오가 제시한 혁명. 그 모든 것이 티나의 것이 됐다. 티나는 사랑 덕분에 존재했던 것일까. 티나를 사랑을 자기 것으로 흡수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듬해, 안토니오는 정적들로부터 암살당했다. 티나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도 악의적이었다. 화려하고 이지적인 미모를 지닌 여인을 향한 세상의 질투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정적인 이미지에 저항해서 싸우고 싶었다. 한 번은 “미국에선 美가 모든 것의 기준”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안토니오의 저격은 그녀에게 팜 파탈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이미지의 저주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혁명을 향한 전진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사랑과 혁명은 그래서 통한다. 사랑이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티나 모도티, 운명과 싸워 혁명을 꾀했던 여인

티나는 언제나 주어진 운명에 싸워야했다. 그녀의 외모에서 덧씌워진 부당한 이미지도 그랬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그랬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열여섯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재봉부터 시작했다. 연극․영화에도 몸을 담았고, 사랑을 통해 예술가․작가들과 교류했다. 주어진 대로만 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녀는 예술이 혁명을 도울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티나의 예술세계에 혁명은 중요한 오브제였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가난한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경험은, 멕시코에서 그녀의 예술세계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멕시코의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이 티나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동고(同苦)를 도덕적 감정의 핵심으로 꼽았는데, 티나의 작품은 그런 도덕적 감정을 동반한다. 다큐멘터리적 요소 없이도 클로즈업해서 찍은 ‘손’시리즈. 그것은 예술과 혁명을 동시에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멕시코에 거주한 1923~1930년에 찍은 250여 컷에 잘 형상화돼 있다. 멕시코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시기, 그녀는 그런 시대를 온몸으로 흡수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에 1929년 12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첫 개인전. 노동자들을 위한 관람시간을 특별 배려했고, 마지막에는 ‘멕시코 최초의 혁명적 사진전’이라는 연설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녀의 혁명이 계속 꽃피진 못했다. 전시회를 마치고 6주 후 돌아온 것은 멕시코 정부의 추방 명령이었다. 그녀가 속한 사회주의 단체에서 대통령 암살을 꾀했다는 혐의였다. 다행히 혐의를 벗었지만 그녀는 멕시코를 떠났다. 사진에 우호적이었던 독일이 다음 행선지였다. 케테 콜비츠, 게오르그 그로츠 등과 교류했고, 그들 모임의 회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나치가 있는 독일은 그녀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뭣보다 그녀가 사용하는 그라플렉스 카메라의 필름을 구하기 힘들었다. 독일에선 라이카 카메라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이어 그녀가 찾은 곳은 모스크바였다. 그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로버트 카파, 헤밍웨이 등과 예술적 교류를 나눴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비토리오 비달의 혁명동지로 활동했다. 러시아의 콜론타이,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등과 정치적 혁명 동지애도 나눴다.


혁명은 여전히 그녀의 오브제였다. 스탈린의 비밀경찰로도 활동했지만, 권력투쟁과 스탈린의 편집증에 질린 그녀는 소련을 떠나 스페인 내전 지원을 나섰다.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으나 그녀는 사진을 접었다. 자신의 혁명적 이상과 배치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번역과 공산주의자 활동에 전념하다가, 1942년 택시 안에서 숨을 거뒀다. 심장마비였다. 마흔 다섯. 이른 죽음이었다.


티나 모도티. 재단사에서 배우로, 배우에서 사진작가의 모델로, 모델에서 사진가로, 사진으로 혁명을 담는 투사로, 공산주의 혁명을 전파하는 혁명가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세상을 누빈 여인. 그녀에게 사진은 시대를 기록하는 도구였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시대정신을 내용으로 간결하고 아름다운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녀의 작품은 사후 더욱 큰 미학적 평가를 받고 있다. 1991년의 소더비 경매. 그녀의 작품 <장미>는 16만5000달러에 팔렸다.


시절은 점점 더 노동자에게 각박해진다. 99%의 피눈물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예술과 혁명의 접점을 본 티나 모도티를 다시 꺼내는 이유다.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세기가 평가절하한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녀에게서, 혁명을 되짚어보자. 행동하자. 점령하자.

사랑과 혁명은, 각자의 다른 이름이다.

(※참고자료 : 《티나 모도티》(마거릿 훅스 지음/윤길순 옮김/해냄 펴냄), 위키백과, 한겨레, 티나 모도티 팬사이트(http://cinemarx.cafe24.com/tina), 위민넷)
 

[문화예술 크리틱저널 뷰즈 21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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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첫
어쩌다 그렇게 겹치는 날이 있다. 온전히 우연이지만. 
채식레스토랑에서 한 송년회. 첫사랑, 언제였느냐고 묻는다.
내겐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지만, 안다. 묻는 것은 첫 번째 첫사랑.
스물 셋. 첫 번째를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니까. 안녕, 내 사랑.

그리고 최지우. 몰랐는데, <귀천도>에 캐스팅됐다가 낙마했단다.
귀천도. 귀천도애. 영화 못 봤지만, 노래 주야장천 듣고 읊었다. 맞다, 표절.
상관 없었다. 이미 노래가 파고든 뒤였으니까. 그런 내가 세뇌를 한 까닭일까.
그녀, <귀천도애>와 다른 한 노래를 가끔 원했다. 그녀, 원한다면 나는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주크박스. 추억 돋네. 하늘로 돌아가는 길의 슬픔, 歸天道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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