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첫 어쩌다 그렇게 겹치는 날이 있다. 온전히 우연이지만. 채식레스토랑에서 한 송년회. 첫사랑, 언제였느냐고 묻는다. 내겐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지만, 안다. 묻는 것은 첫 번째 첫사랑. 스물 셋. 첫 번째를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니까. 안녕, 내 사랑.
그리고 최지우. 몰랐는데, <귀천도>에 캐스팅됐다가 낙마했단다. 귀천도. 귀천도애. 영화 못 봤지만, 노래 주야장천 듣고 읊었다. 맞다, 표절. 상관 없었다. 이미 노래가 파고든 뒤였으니까. 그런 내가 세뇌를 한 까닭일까. 그녀, <귀천도애>와 다른 한 노래를 가끔 원했다. 그녀, 원한다면 나는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주크박스. 추억 돋네. 하늘로 돌아가는 길의 슬픔, 歸天道哀.
사랑 알싸하게 차가운 날씨를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유는 모르겠지만, 죽기 전까지 꼭 쓰고 싶은 책이 떠올랐다. 사랑. 매우 거대하고 넓고 깊은 주제라, 사실 난망한 것이 사실이나,
아는 만큼, 알고자 최대한 노력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혹한의 칼바람을 맞아서 화들짝 놀라서겠지. 그래도, 사랑. 너는 나고, 나는 너 자신이야, 우리는 한 사람이야. 온 삶을 걸거나 삶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든가, 사랑. 참, 미칠듯이 매혹적인 주제다. 지금처럼 비루하고 천박하게 쓰일 단어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쉽게 판타지라고 치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의미는.
냉면 겨울의 맛은 역시 냉면. 오늘, 4대천황의 하나로 꼽히는 필동면옥이었는데, 장충동 평양면옥의 슴슴한 담백함에 비해선 아쉬운 감이 있다. 어쩌면, 누구와 함께였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평양면옥에선 사랑이 앞에 있었을 때니, 그 맛이라는 게 얼마나 감질났겠는가. 쩝, 그리 생각하자니 좀 슬프군. 계절의 맛보다, 더 진한 것이 사랑의 맛인가 보다. 아, 나는 맛칼럼 같은 건 쓰기 글렀다.
원 데이 어쩜 이리, 한 마음을 한 순간에 홀라당 빼앗는 영화포스터가 다 있는가. 포스터 하나 때문에 이 사랑을 만나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앤 헤서웨이! <브로크백 마운틴>때부터 알아봤다. 된장, 이토록 알흠답다니. Twenty years, Two people... 내용이야 어쨌든 닥치고 관람. 혹시 실망하더라도, 포스터 하나 만으로도 충분한 영화가 있다.
나이 의도한 바는 아니나, 12월이 주는 이야기라는 게 그렇다. 나이 얘기가 꼭 들이민다. 그저께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누군가는 오십이라서, 누군가는 사십이라서. 이십대 중반부터였나. 얼른 나이를 잡숫고 싶던 나는,
아직 여전히 그렇다. 이십대 중반 무렵, 나이듦은 뭔가 감투 같았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듦을 꿈꾼다. 물론, '제대로' 나이듦. 사십,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에, 나는 어느덧 사십줄을 바라보는 나와 내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그 나이를 이야기한 내 오래된 친구들에게.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여전히 슬픈 것이다.
'한 사람의 나이-누군가가 내게 가장 슬픈 단어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죽음이니 가난이니를 다 제쳐두고 나이라고 말하겠다. 그 까닭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어쩐지 스무 살이라는 말도 슬프고 서른 살이라는 말도 그것대로 슬프다. 쉰 살은 쉰 살이어서 여든은 여든이어서 슬프다.
어떤 세상 없는 부모 형제나 친구 혹은 사랑하는 이까지도 모두,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줄 수는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깨우치는 데에 어떤 사람은 이십 년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사십 년이 걸린다. 또는 영영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무 일찍 깨우치는 사람들은 그래서 슬프고, 끝내 깨닫지 못하고 삶을 마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또 그래서 슬프다..."
- 김한길, 《눈뜨면 없어라》중에서
요리 오래된 친구들과의 식사. 하하호호. 웃고 떠든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때론 그렇다. 서로를 신뢰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연놈들, 결혼 연식도 좀 됐고, 아이들도 숭숭 큰다. 인생이 그렇듯, 결혼도 언제든 업다운이 있는 법이지만, 그 결혼이란 게, 그냥 안주하고 있는 느낌.
그들에게도, 여느 부부가 그렇듯, 결혼이 감정을 죽이고 사랑보다 일상이 강해진 그런 것이 됐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고 대신 정이 둥지를 텄다고 하겠지만, 좀 안타까운 면도 있다. 그 빛나던 사랑이 으스러진 것. 다시는 빛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들에게 사랑은 그저 오래된 기억일까? 지금, 사랑하냐고 물으면, 웃으며 툭 던진다. 에이, 그냥 가족이야, 하하호호. 그 웃음이 왠지, 나는 아쉽다. 사랑의 지지고볶기 보다는, 그저 일상이 강해진 풍경.
그러다 그들, 으레 결혼얘길 스윽~ 꺼낸다. 결혼, 어떡할거야? 떼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누. 허나 분명한 것은, 나는 꼭 커피를 포함해서 요리를 해주겠다고 다짐한다. 《요리 본능》에선, 화식, 즉 요리가 성별 분업을 가져오고, 요리는 여자의 것으로 규범처럼 굳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더 자주 부엌에서 요리하리라. 장석주의 詩가 아니더라도,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요리를 하는 남자만큼 멋있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하긴, 내 친구도 결혼 전에는 그랬다. 하하.
그러니까,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마구 불러 일으키는 여자, 그런 여자라면 나는 첫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은 늘 첫사랑, 모두 첫사랑. 일상보다 강한 사랑을 위해, 나는 당신을 위해 요리하는 남자! 자, 오늘은 어떤 것으로 우리의 사랑을 요리할까요? *^.~*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으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신파다.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 걸린 여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니. 그럼에도,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사랑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신파는 사랑이라서 영원할 것이다.
<천일의 약속>은 그런 드라마다. 이런 드레진 드라마, 참 오랜 만이다. 아마, <죽도록 사랑해>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작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배우의 연기로 틈입한다. 그런 앙상블 속에서 드라마는 충분히 감정을 싣는다. 대사는 찰지며 대사 사이의 감정은 촘촘하다. 허투루 짜맞춘 기성품 혹은 쪽대본 드라마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뭐, 닥치고 사랑이다. 서연과 지형의 사랑이다. 나는 그 사랑 앞에 그저 허물어질 뿐이다. 비겁했던 내 뒷걸음질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들의 사랑.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 사랑이다.
오롯이 사랑, 오로지 사랑.
서른 겨우 넘어선 애가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미치는 게 있을 수 있냐고 노발대발하는 지형의 아버지에게, 지형의 어머니는 단 한 마디로 설명한다.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사랑이야."
졌다. 맞다. 그게 사랑이다. 알츠하이머라는 것 알면서도 그 사람밖에 없는 것, 아버지 어머니는 관심 밖인 것. 오늘보다 내일 더 하는 것. 닥치고 사랑!
사랑은, 안 먹는다고 고집했던 치매약도 먹게 한다. 치매에 좋은 음식리스트도 뽑게 만든다. 전사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생각날 때 하기로 한다. 내일, 생각 안 날 수 있으니까.
그런 한편으로, <천일의 약속>은 김수현 작가가 마음 먹고 쓴 '부모 교훈극' 같다.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이자 액세서리로 여기거나 결혼(생활)까지도 관여하는 헬리콥터 부모들을 향한 일갈. 그건 사랑이 아니지. 아무렴. 부모들이 꼭 봐야 할 드라마.
그런 면에서 지형 엄마는 참, 현실적이면서 바람직한 상. 지형 엄마는 드라마를 통해 세상의 엄마들을 향해 엄마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아.
닥치고 사랑! 결혼식 전날, 결혼식에 참석할 순 없는 지형 엄마가 지형에게 진심으로 건넨 이 말이 자꾸 맴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해.
사랑한다면, 내 유일한 존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그저 외로워서 혹은 내 옆 이성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어떤 여자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해.
아울러, 생각날 때마다, 미루지 않고 꺼내야 할 이 말들. 수애병 걸려도 잊지 말고 할 말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그래, 또 무엇이 필요할까. 다 필요없다. 모든 것을 다 무화하는 것, 사랑.
세상이 멸망해도 딱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사랑. 세상 모든 것의 총합보다 큰 것, 사랑.
사랑, 이 두 글자 얼마나 상투적이고 식상한가 싶지만, 사랑만이 모든 것이다.
서연과 지형처럼, 지순한 사랑은 서로를 아름답게 의탁하도록 해주고 두려움 없이 헌신하도록 만든다. 어떤 설명도 해설도 필요없다. 닥치고 사랑!
그래서 그만큼, 나는 그 사랑이 아프다. 사랑 그놈 참...
근데, 웨딩드레스 입은 수애, 미치도록 아름다운 여자. '드레수애'다워.
세상 모든 선녀들을 모아놓아도 수애 발끝에 따라갈까. 닥치고 수애사랑!
어쭙잖게도, '사랑'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내
비록 '사랑 지상주의자'임을 자임하고 있지만,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는 믿음을 품고 있지만, 사랑을 글로 푸는 행위는 늘 그랬듯,
그닥 만족스럽지가 않다. 아마도 필력이 부족한데다, 내가 품은 사랑이 협소한 탓이겠지만...
소설가 김연수가 그랬던가. "늘
언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무지한 채로 사랑하고, 이별한 뒤에야 똑똑해진다. 이 지체가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아무렴.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사랑이 끝난 뒤일 경우가 꽤 많다. 그리고 그때서야 언어로 구현된다. 사랑은 무지할 때만 가능한 것일까.
김연우의
노래를 좋아했고 좋아한다. 초야에 묻힌 고수 같았던 그였는데, <나는 가수다>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가수 김연우를 좋아하게 됐다.
글쎄. 소수끼리 품고 있던 플레저 하나가 만천하에 공개됐다함은, 그 진가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는 기쁨도 있지만, 몰래한 사랑을 들통난 기분도
든다.
'사랑'을 쓰면서,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을 줄창 듣고 있다. 임재범의 [사랑]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내겐
김연우의 것이 훨 낫다. [사랑한다는 흔한 말], 김연우 음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 <사랑을 놓치다>의 OST로
수록됐었다. 그의 3집 앨범. 내 주변에선 이 앨범에서 루시드 폴의 원곡이었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를 말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참 좋은데, 나는 그래도 [사랑한다는 흔한 말]이 늘 내 마음을 흔든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이 음악을
접하고, 그때 그 사랑을 놓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나보다. 영화 시사회를 같이 보러 가기로 했지만, 갑작스런 취소 통보. 여자에게만 직감이
있는 건 아니다. 간혹 남자의 직감도 느닷 없이 발동할 때가 있다. 내 기억으론 그렇다. 영화를 보고 눈물을 찔찔 흘리고선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
노래를 흥얼거렸다. 밤하늘이 참 맑았는데, 별도 없이 참 맑았는데, 나는 이별을 직감했다. 그래, 이제 우린 더 이상
만날 수 없구나. 심장이 멎을 듯 아팠는데,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노래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두려워, 니가
떠날까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마음을 달래려 줄창 영화가 좋았다며, 송윤아 정말 예쁘더라며, 설레발을 쳤지만, 아마 그 두려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닐까. 사랑을 놓치다. 덤덤한 그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사연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 사랑은 깨지는 것이 아니라, 놓치는 거다. 그리고 사랑 뒤 언어. 언젠가, 그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 대해서도
풀어놓을 기회가 있겠지.
김연우 콘서트 언제 하나. 올해의 목표 중 하나. 김연우 콘서트. 나에게 김연우 콘서트라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 ^^
근데 아마도, 콘서트 현장에서 이 노랠 듣는다면, 나는 울어버릴 것 같아... 이 노래가 나왔는데, 훌쩍 울고 있는 남자가 있다면, 나인줄 알아라. 굳이 손수건을 꺼낼 필요는 없다. 그 남자, 울게 내버려둬라. 울고 싶은 거니까...
에릭 클랩튼의 < 레일라(Layla) >. 그사연, 구구절절하지만 다음에. 일단 연주부터.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과 얽힌 일종의 삼각관계인데, 범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만한 연주에 음악이면, 누군들 넘어가지 않을텐가. 이성 따윈 필요가 없다. 가슴이 원하는 걸. 그러면서 에릭은 그녈 갈구했을까.
1960년대 It Girl을 향한, 음악의 신들이 헌정한 음악이라니.
그러게, 이 패티 보이드. 비틀즈의 < Something >(조지 해리슨), 역시 조지가 만든 <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에릭 클랩튼의 < Layla > < Wonderful Tonight >을 탄생시킨 뮤즈.
(물론, < Wonderful Tonight >은 두 사람이 파티에 가야는데, 패티가 옷을 고르느라 시간을 끌자 다소 짜증이 난 에릭이, '빨랑 가자, 너 예뻐'라고 쓴 곡이다.)
이거 뭐, 참, 음악을 듣자면, 대단한 여성일세. 허허, 사랑의 힘인가.
오는 20일, 에릭의 세 번째 내한공연.
게리 무어도 사라진 마당, 에릭은 어떤 연주로 그를 애도할까.
지미 헨드릭스도, 게리 무어도 없다. 이젠 에릭 클랩튼만 남았버렸다.
그냥 궁금해졌다.
에릭 클랩튼은 뮤즈 없이도 기타를 칠 수 있었을까...
에릭이 패티와 결혼한 날 쓴 일기
20일 내한공연 표는 매진이란다.
표를 구할 수 있으면 그날 하루만큼은 이 저렴한 영혼도 팔겠다. (으응, 정말?)
라일락 향이 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