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만남을 얘기해보자. 생은 숱한 만남을 잉태하지만, 그 만남 모두를 기억하진 않는다. 머리가 나쁜 탓이라고? 뭐 어쩌겠는가. 머리 나쁜 건 죄가 아니잖아.^^;; 그러면서 버럭. 가만 생각해본다. 만남이라 만남. 만남도 스펙트럼 참 넓다. 이놈 참. 허허...
잊혀진 만남이 있다. 잊혀지지 않지만 특별한 자극이 가해져야 수면 위로 떠오르는 만남이 있다. 기억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기 싫은 만남도 있다. 그저 흘려보내도 좋은 만남도 있다. 만나고 싶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만남도 있다. 피천득의 인연이 그랬던가. 그런데 아사코, 만났다고 했던거 같은데. 그저 궁금해진다. 혹시 아시는 분? 아, 이런 말이 샛길로 빠졌다.^^;
딱 그만큼만 만남 이상으로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 만남도 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만남도 있다. 그저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다시 만나 새롭게 인연이 시작되는 만남도 있다. 그리고 평생 잊혀지지 않은 채, 생을 지탱하게 만드는 만남도 있다. 더 많은 만남이 있을 법도 하지만, 이어서 누구 해 줄 사람?^^;
그런데 붓을 다시 만났다. '다시'라고 했다. 그럼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는 얘기?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국민학교 때. 서예한답시고, 붓과 처음 조우했다. 그래서 괜히 반가운 척 했다. 그런데 붓도 (날 다시 만나서) 반가웠을까?^^;
4월28일. 손은 기억하고 있을까? 괜히 떨린다. 심호흡을 하면서 붓을 잡아본다. 반갑다 친구야. 처음 뵙겠습니다, 란다. 이런, 시베리아 ㅠ.ㅠ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콜록콜록... 그래도 꿋꿋해야 하지 않겠나. 여기서 물러나면 개망신이다. 십장생 소리 밖에 못 듣지.
다시 기원한다. 손 끝의 감촉이 무뎌지지 않았길. 손이 기억하고 있길. 단구법, 쌍구법. 손 끝을 붓과 합일시켜보고자 했다. 그리고 손이 먼저 기억한다면, 그 저릿한 느낌을 타고 내 몸 속으로 전이되길. 손이 붓이요, 붓이 손이로다. 오호 이런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까. 손이 서서히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그 감각세포를 일깨울 수 있도록 수레바퀴를 굴릴 수 밖에. 그리고 붓이 오갈 종이 위에서도 손가락의 감촉을 시험해본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대문에 사랑하겠습니다. 우리 사랑하게 해 주세요~ 네에~~~
인우가 태희에게 그렇했듯, 정우성이 전지현을 향해 외쳤듯, 다시 만났으니 거침없이 사랑킥을 날려야하지 않겠나. 물론 아니면 말고...^^;
그래. 붓과 다시 만났다. 손 끝에서, 종이 위에서, 그리고 마음의 행로를 좇아 붓놀림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붓놀림 마냥 생놀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앙하면서 말이다. 트라이앵글. 붓놀림, 생놀림, 살앙놀림이 조화를 이루는 날,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타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찍겠다. 쩝, 체 게바라 보고 싶다. 붓과 함께 체 형님을 그려보고 싶다.
그래. 어느날, 내게 캘리가 왔다. 그날이 오면, 이라고 부르짖지도 않았건만, 그날이 왔다. 사실 캘리가 내게 온 것인지, 내가 캘리에게 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세상은 그렇게 모두 우연이다. 우연은 우연을 낳는다. 우연이 쌓여 인연이 된다. 만남도 그렇다. 나는 캘리와 그렇게 맺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그 이후 문자나 활자와 익숙한 생활을 하면서도 좀더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문자디자인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세계가 궁금했다. 하나의 문자 혹은 활자 안에 들어있는 우주와, 그 우주가 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것 참 매력적이지 않은가?
스토리텔링과 문자를 결합할 수 있다면. 그리고 문자의 세계가 열어주는 더 넓고 깊은 생. 그것이 날 캘리로 이끈 동기였다, 고 나는 '공식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럼 '비공식적'은 뭐냐구? 그건 따로 말하련다.ㅋㅋ)
기사, 광고, 책, 영화, 의상, 전자제품, 간판....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접하는 모든 미디어와 문자의 세계에 캘리가 있다. 거기에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채워넣고 싶다.
사람이, 이야기가 있는 풍경. 그래서 숱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별들 사이에 길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