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붉은 로자. 불꽃의 여인.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
레닌, 한마디 덧붙인다. "그녀는 혁명의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순정한 혁명주의자의 이름.  
급진적이었고, 극좌라는 표현도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폴란드 출신 독일의 사회주의자인 그녀는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혁명가였다.

엊그제 장원봉 교수의 협동조합 강연, 로자 누나의 이름이 언급됐다. 반가웠다.
뜨거운 수정주의 논쟁을 펼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협동조합과 관련해 펼친 논쟁의 일부.

로자는 협동조합을 수정주의로 인식했다. 그녀는 주장했다.
"협동조합에게서 무슨 사회성을 발견할 수 있지? 결국 그것들은 개인주의적인 것뿐이야. 결국 개인주의 기업으로 퇴행할 거야."

베른슈타인은 반박했다.
"생산자협동조합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비자 협동조합의 구매를 위해 생산한다고!"

다시 로자는 공격했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봐. 거대한 제조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그것이 협동조합으로 가능할까?"

베른슈타인, 뜸을 다소 들이며,
"하지만 우리는 산업자본은 노동조합이 통제하고, 상업자본은 소비자협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100년 전이었다. 결과적으론 로자의 주장이 옳았다. 
급격한 시장화와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이전에 발흥했던 사회적경제는 퇴조했다.
복지국가의 도래도 협동조합이 약해지는데 한몫했다. 국가가 협동조합의 몫을 대신했으니까.

로자는 어쨌든 대처 이전 '철의 여인'이었다. 물론 대처와 판이하게 다른 철학과 사상으로 실천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로자의 신념과 이상은 그에 기반했다. 실패도 그녀에겐 자극일 뿐.  

로자가 마지막에 남긴 글은 이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말, 바꿔말하면, "씨바, 쫄지 마!"
즉, 패배는 혁명의 '스펙'이다. 스펙을 그만큼 쌓아야, 승리도, 혁명도 가능하다는 법칙.

결론은 이렇다.
나로선, 로자 룩셈부르크와 커피의 친연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순정한 혁명주의자였기에 그녈 떠올린다면 1월15일의 커피는 '리스트레또'.
커피 향과 맛을 좌우하는 성분 중심으로 뽑는 리스트레또가 맞다.
잡맛을 가능한 제거한 순정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  

로자는 93년 전인 1919년 이날, 살해당했다. 비극, 그 자체였다.
한때의 동지가 집권한 가운데, 군인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확인사살당했고 강에 버려졌다.

그 죽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한명숙
1월15일. 1919년 로자는 죽었고 2012년 한명숙은 민주통합당 당대표가 됐다.
한 여성이 죽고, 한 여성이 일어났다. 1월15일의 커피가 '리스트레또'가 돼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아 물론, 로자와 한명숙은 너무도 다른 인물이다.
'무죄녀' 한명숙 대표, 청렴한 행정가일 수 있겠다. 반MB정서를 업고 야당 대표로까지 올라섰다. 잘된 일이다. 그것도 여성이. 격하게 찬성!

그러나, 냉정하게. 한 대표가 정권을 바꾸게 하는데 일조할지는 모르겠다. 
한명숙(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인민의 삶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혁명은 없다.   
지금 엄혹한 1대99 시스템을 바꿀 정치인, 아니다. 나는 그들의 개혁(가능성)조차 회의한다.
근본적 모순에 대한 언급도 없고, 반성도 미미하다. 그 모순을 해결할만한 콘텐츠도 미약하고.

더 냉정하게 투표로 이들 세력에게 권력을 준들,
그들이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반성과 성찰, 깨달음을 통한 실천을 못한다면,
우리는 투표 기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투표만 하면 뭐든 바뀐다고? 조까라 마이싱. 내가 보기엔 그들은 로자가 아니다.
결국 인민이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 투표보다 직접 액션을 통해 점령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의 말을 담아둬야 할 이유. 
"만약 올 한 해 동안, 권력을 휘두르는 금융자본을 제어할 적절한 수단과 정치적 의지가 표출되지 않는다면 모든 선거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독일 베를린의 지하철 한 역 이름이 '로자 룩셈부르크'라더라.
그 언젠가 1월15일엔 로자 룩셈부르크 역에서 리스트레또 한 잔을.

아 물론, 강철 여인, 혁명의 독수리에게도 사랑은 있었다.
리투아니아 출신 사회주의자 레오 요기헤스. 로자의 오랜 스승, 동료, 연인이자 사실상 남편.
고종석에 의하면, "독립 여성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로자가 레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었다." 로자가 레오에게 보낸 연애편지, 참으로 달큼하다. 로자라는 한 여자안에서 나온 것인지, 우와~

혁명은 사랑과 함께다. 커피도 사랑과 함께라면, 이날의 리스트레또는 달금하다.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 얘기기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룩셈부르크의 속담 중 하나. (으응?)
"룩셈부르크인은 혼자 있을 때 장미밭을 가꾸고, 둘이 모이면 커피를 마시고, 셋이 모이면 악단을 만든다." 그렇게 커피를 들입다 마시니, 이런 통계도 나온다.

2010년 기준 27.2kg.
룩셈부르크 한 사람당 1년에 소비하는 커피의 양이다. 세계 최대란다. 한국? 
같은 해 기준 1.9kg이다. 전 세계 34위. 그래봐야 룩셈부르크의 1/14이다. 


루니 마라(루느님!) 
여자 얘기 또 안 할 수 없는데, 나, 한 여자한테 단단히 뿅 갔다.
이토록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니! 일은 물론이요, 자기 앞가림도 끝내주게 잘한다.  
용 문신한 여자가 이리 치명적일 줄이야. 격하게 애정할 수밖에 없는 여자, 루니 마라!!!
데이비드 핀처판 <밀레니엄>히로인이다. 남자주인공 미카엘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저리 가~

얼굴과 몸 곳곳엔 피어싱, 등에는 용 문신, 가죽점퍼로 간지를 뽐내고 줄담배를 피우며 오토바이를 모는 폭주족, 리스베트 역의 루느님.

그녀가 극중 법적보호자인 변호사 닐스(요릭밴 와게닌젠)의 변태성행위에 복수하면서부터, 나는 훅~ 갔다.

미카엘을 죽음 직전에서 구하고,
그에게 May I Kill? 하고 묻는데, 씨바, 얼릉 죽여 줘, 죽여 줘, 뒤따라다니면서 외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마성'!
예쁘진 않은데, 이뻐~
그 미친 존재감에 내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아드레날린 강하게 돋는다. 보장한다. 이 여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리스베트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미카엘을 사랑할 때, 나는 한없이 미카엘이 부러웠더랬다.
그녀의 온몸을 더듬고 애정하는 미카엘이 되고 싶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 그녀는 끝까지 쓸쓸하고 멋지다. 
뻔하디뻔한 금발 편집장과 시간 보내려 리스베트의 사랑을 소외시킨 미카엘, 바보에 멍충이다.
여자 볼 줄 모르는 병신. 내게 이런 여자만 있어봐라. 평생 뫼시고 산다!

이런 파격은 드물다.
루니 마라, 단숨에 줄리아 로버츠, 스칼렛 요한슨과 동급으로 내 여신전에 올랐다. 루느님~

강한 여자에 대책없이 끌리는 나는 역시 '강한 여자종속형 수컷'일세.ㅋ



남자3호
남자 3호, 재밌고 신나는 경험.
내가 찍은 여자는 매력투성이에 마성이 보이건만, 아무도 안 찍는다.
선물만 줬다. 나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니까!ㅋ   
그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신의 서사를 가진 사람 같았다.
살면서 어떤 변수가 그녀에게 개입할진 몰라도, 내 느낌이 맞다면,
그녀는 더 멋있는 마성의 여자이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헤이데이의 캘리그래피. 멋있다!


아울러,
10만 년 전에 내가 여자였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얼마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자였을까?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왜 이리 제 각각이야. 쯧.  
인디언식 이름. 웅크린 태양의 그늘(그림자) (음력. 웅크린 늑대의 고향)
조선식 이름. 소싯적 마당쓸던 기생오라비. (팡 터졌다.)
일본식 이름. 아이노 켓쇼오. 사랑의 결정.
중세식 이름. 알버트 콘라드. 대단히 뛰어난 수다스런 조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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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마구마구 카페에 가고 싶어진다. 비가 올 때, 낙엽이 우수수 쏟아질 때, 햇볕이 넘쳐날 때, 구름이 멋진 날, 너무 추운 날……. 모든 날씨는 카페를 부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거기에 있다.      - 이명석, 《모든 요일의 카페》 중에서 -

 

그들은 이곳에서 모이곤 한다. 
한꺼번에 함께 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둘 따로따로 온다. 
물론 때로는 혼자, 커피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임이다.
여긴 일종의 아지트인 셈이다. 무슨 현안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친목 모임도, 비밀 결사체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따로 또 같이'다.  

때론 그들은 격론을 펼치기도 한다. 
몇 주 전에 아예 새벽을 넘길 기세여서, 커피하우스 클로징을 맡겼다. 옛다, 문 닫고 가세요. 
다음날 이야길 들어보니, 꼴딱 새벽을 샜단다. 동이 틀 때까지 다양한 토론과 격론을 펼쳤단다. 무슨 혁명을 꾀하는 혁명가들 같은 면모도 있다. 

가만 들어보면, 주제도 다양하다.
선거와 민주주의, 사랑의 종말, 학교(교육)의 불가능성, 공정무역과 경제체제, 음악과 나가수, 아이돌의 품평회, 여자와 남자의 차이, 그야말로 종횡무진, 종횡사해다. 
다양한 담론이 오간다는 것, 견해의 다름(차이)을 인정한다는 것.
이들이 느슨하게 계속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이 커피집 아저씨는 생각해 본다.  

오늘은 3명이 모였는데, 두 여성 이야기로 꽃이 핀다.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잠시 껴들었었는데, 코코 샤넬과 전혜린.
말하자면, 20세기 여성해방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어제가 두 사람의 기일이었다. 전혜린은 1965년에, 샤넬은 1971년에. 각기 47주기, 41주기.
물론 차이는 있다.
전혜린은 31세에  스스로 세상에 절연을 선언했고,
87세로 생을 마감한 샤넬의 마지막 말은, "결국 사람은 죽는구나!".

우선 코코 샤넬.
☞ 샤넬, 스타일 혹은 혁명의 또 다른 이름
커피 하는 내 입장에서 비약하자면, 그녀는 테이크 아웃 커피점을 융숭시킨 시발점이다.

무슨 말이냐고? 
생각해 봐라. 이른 아침, 머리를 찰랑이며 회사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여인이 있다.
검은 트위드 자켓을 걸치고, 무릎을 약간 넘는 길이의 치마와 레깅스로 조합한 그녀,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녀, 회사 부근 위치한 공정무역 커피점에서 마다가스카르 천연바닐라빈라떼 한 잔을 시킨다. 잠시 향과 맛을 보더니,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회사로 들어선다.
천연바닐라빈과 커피의 조합이 향기롭다.
 

그 모습, 코코 샤넬 덕분이다.
그녀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죄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탈주시켰다.
장례식에만 입던 검은 옷을 일상화시키고, 거리를 빗자루질하던 드레스를 무릎 위로 업했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서 두 손을 자유롭게! 두 손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 수 있게 한 것이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저지드레스,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스웨터, 리틀블랙드레스, 샤넬 No.5 등.
하나로 정리하면, 이른바 샤넬 스타일의 시작이요,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
불필요하고 허세 가득한 쓸모없는 복장은 꺼져라!
20세기 복식 혁명을 일군 장본인, 샤넬.

에브리바디, 샤넬 스타일!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도 해방시킨 그 스타일.
당신에게 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 샤넬 스타일은 있다.


"아저씨, 샤넬을 어떻게 그리 알아요?" 진짜 의아한 듯 묻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안에 샤넬이 있거든. 하하. ^^;; 샤넬이 세상을 휩쓸 땐, 이런 말도 있었어.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 몰랐지? 니들에게도 샤넬이 있어! 너 안에 샤넬 있다!"

"이 아저씨, 여하튼 예쁜 여자라면 다 알아요. 밝힘증이라니까. 호호."

"야, 니들이 날 제대로 아는구나." 

"샤넬도 살아있을 때, 너희들처럼 커피하우스를 들락거리고 그랬어.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세계를 생각하느라."

"아, 그래요?" 

"그럼. 샤넬의 유명세만큼 사교계 거물이었거든. 다들 그녀를 만나려고 안달이기도 했지. 장 콕토, 피카소, 달리,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숱하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눴거든. 돈이 많으니까, 그들을 후원하기도 했고."

"우와~ 우리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호호."

"이 아저씨가 있잖아. 하하. 샤넬은 장 콕토가 알코올 중독이 됐을 때 치료비를 부담해주기도 했고,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작곡할 수 있도록 후원도 했어. 대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겐 도움을 안 주고, 자신이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들한테는 드러나지 않게 도왔대. 나는 완전히 다 드러나게 도와줄게. 하하." 

"에이,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에 커피 팔면서, 아저씨가 뭘 도와요?ㅋㅋ"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였다. 
샤넬이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토론했던 커피하우스, 혹은 카페, 또는 살롱.
1875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원래 중국산 비단을 파는 가게였다.
그 비단 가게의 이름이 레 되 마고였는데, 카페로 바뀌면서도 그것을 유지했다.
19세기에는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이 단골이었고,
20세기 들어와서도 바타이유, 브로통, 피카소, 생떽쥐베리, 자코메티 등이 이곳을 찾았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도 단골이었는데, 1933년에는 레 되 마고 문학상이 제정될 정도로 이곳은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 됐다.

재밌는 건, 커피하우스도 이념에 따라 구분됐다.
20세기 초반 유럽에 파시즘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에 모여 파시즘을 성토하거나 대책을 논의했다.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이곳의 단골이었다.
두 사람이 날마다 독서와 토론으로 열을 올리자, 그들을 보기 위한 구경꾼도 들끓었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한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레 되 마고 대신 옆의 드 플로르를 찾았다.
당시 보수파들이 주로 드나들던 드 플로르에, 진보진영지식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점령했다. 
더 재밌는 건, 사르트르도 레 되 마고의 난방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드 플로르로 둥지를 옮긴 것.
자신들의 진영을 뺏긴 보수주의자들은 레 되 마고로 건너갔다.

두 카페, 정체성(?)이 바뀌었다.
레 되 마고는 보수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고, 드 플로르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다.
물론 다소 기계적인 구분이지만, 공간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이다보면,
사람들이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을 그렇게 규정하는 일도 생긴다.
오늘날도 그런 전통(?)이 좀 남아있단다.
진보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는 피하고, 반대 진영은 카페 드 플로르를 꺼린다는.
사소하고도 강박적인 전통.


"그러니까, 니들도 여길 만들 수가 있어. 너희들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 수도 있고."

"와, 그럼 여긴 우리 같은 얼치기 진보들의 놀이터가 되겠네요. ㅋ 아저씨, 괜찮겠어요?"

"나는 대세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상관없어. 하하."

"근데, 샤넬은 어떤 진영이었을까요? 애매해. 애정남이 있어도 정하질 못할 거 같애."

"장 콕토가 한 말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은데... 이랬거든.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캬, 멋지지 않아?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 니들도 좀 그래봐라. 그럼 내가 커피 후원은 '학실히' 할게."

"칫, 뭐야. 그럼 아저씨, 전혜린 알아요?"

"응, 그럼 알지, 당연히!"

"우와~ 아저씨 같은 사람도 알아요? 호호."

"야야, 말도 마라. 한참 열풍이 지났을 땐데, 나 때만 해도 전혜린, 하면 자지러지는 여자애들 많았어.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지. 요절 때문에 신화가 된 거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캬. 감수성 돋는 소녀들이 어찌 뻑 가지 않겠니."

"장 콕토가 했던 그 말을 한국에 적용하면, 전혜린이 그럴 것 같아요."

전혜린은 문학소녀들의 만신전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여자를 스무살 초반에야 읽었다.
멋도 모르고 읽었고, 강렬했다. 어찌 이런 글을.
열정과 광기 사이.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평가에 비해 그녀가 세상에 남겨 놓은 유산은 터무니 없이 부족해 뵌다.
인식의 갈망으로 불타올랐지만, 그녀를 감당하기에 세상은 지나치게 견고했다.
그녀의 재능을 받아줄만큼 세상은 대범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했다. 아니, 쫌생이였지.

그녀는 스스로 휘발했다. 
이 빌어먹을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사회의 견고함을 깨부수고자 했으나, 그녀 이전의 혁명적 여성들도 그러했듯. 제길.
그녀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조용한 황혼에 길가의 주막에 쓰러져 있는 집시가 있거든 나라고 알아줘!"
집시에겐 머물 곳이 없다. 혁명을 용서하지 않는 이땅은 그녀를 애써 무시한 것이 아녔을까.


"오늘 우리 주제가 그거였어요. 어떻게 세상과 싸울까. 여성은 어떻게 이 견고한 세상과 싸워야 하나."

"와우, 이 아저씨도 도울게. 뭘 해줄까? 찐한 커피 한 잔, 더 줄까? 하하."

"좋아요. 그게 어디야. 커피로 혁명하는 거지, 뭐. 우리가 잘 되면 여기도 뜬다니까요. 아저씨, 우릴 믿어봐요."

전혜린의 단골 커피하우스, 학림.
그녀가 죽기 하루 전, 1월9일.
하늘은 맑았지만, 날씨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만큼 추운 날이었다.
그녀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앞의 동숭동 학림다방 오른편 맨 구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밤색 코트를 입고 검은 혈액을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혼자 있었다.
 
지금도 학림은 그 자리에 있다. 1월10일, 전혜린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한파가 몰아치는 오늘.
전혜린과 샤넬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청년들에게, 나는 은근슬쩍 혁명의 꿈을 싣는다.
부디, 너희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다오.
못난 어른들이 땡깡으로 허술하게 만든 세상에 함몰되지 말고.
'남들만큼, 남들 보기에'를 들먹이며, 똑같아지기를 원하는 어른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길.
몰개성 말고 스타일. 샤넬 스타일. 전혜린 스타일.
 


내 커피는 그런 너희들을 위한 것이거든. 바로 이 순간의 샤넬을 위해, 전혜린을 위해.
내가 커피하우스를 하는 이유. 커피아저씨로 남아있고픈 이유.

1월10일의 메뉴는, 그래서 '샤넬 No.전혜린'.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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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에 걸쳐 커피하우스는
문학가들의 생활의 중심을 점유하는 동시에,
근대시민사회의 주민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대중'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몫을 한
'독자층'을 만드는 거점이 되었다.

- 우스이 류이치로, 《커피가 돌고 세계史가 돌고》 중에서


이 남자, 어제도 라이터를 놓고 갔다.
버릇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닌데, 어째 오늘도 왔다.

꼭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행위같기도 하다. 내가 여기 왔다 갔음. 라이터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남자, 아우라는 딱 예술가다. 어째 보면 예수를 닮은, 오다기리 죠와 살짝 엇비슷한, 그러고 보면 히피풍이다. 동그란 안경은 존 레논의 것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니다. 커피 취향도 남다르진 않다. 드립커피를 즐겨한다는 것 외에. 그냥 하우스 블렌딩만 마신다. 담배를 많이 피우긴 한다. 라이터는 그래서 필수품인데, 올 때마다 놓고 가는 걸 보면 라이터는 꽤 많은 것 같다. 나는 이 남자 라이터만 따로 모아놓고 있다.

근데, 그 라이터들이 여느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데, 예쁘게 생겼다.

"아저씨, 예술가들에게 상처나 고통 같은 건, 하나의 액세사리 같지 않아요? 꼭 뭔가 그렇게 있더라고. 그거 없으면 예술가 못해요? 그런 게 있어야 예술이 빛나보이나? 고통을 예술로 승화했니 뭐니. 한 법의학자는 그걸 창작병인가?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런 유전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예술해요?"

"아뇨, 뭐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영화 한 편 봤는데, 아저씨 <노웨어보이>라고 봤어요?" 

"존 레논?" 

"예. 존 레논도 그렇더라고요. '엄마'라는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다섯 살때 엄마가 존을 버리고 이모에게 맡기고 떠나고, 나중에 기껏 만났더니 열일곱에 교통사고로 죽어버리고. 엄마를 두 번 잃은 거에요, 그 남자. 전 그게 오노 요코와의 사랑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오노 요코한테서 엄마를 본 거죠. 물론 전 부인이었던 신시아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노웨어보이>는 그러니까,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고 음악에 빠진 한 평범한 소년이 어떻게 존 레논이 되고, 비틀즈에 이르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정확하게는 비틀즈 직전까지. 엄마를 두 번 잃고, 17파운드 기타로 출발해 폴 매카트니를 만나 비틀즈의 전신 '쿼리 멘'을 만든 존 레논. 

흥미롭게 봤다. 엘비스라면 모를까, 존 레논이 지나치게 미끈거리긴 해도, 엘비스를 좋아해서 그랬겠거니 했다. 폴 매카트니를 만난 운명적인 날도 그려져 있고. 하긴 그날이 어쩌면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이었다. 존과 폴이 만났던 그날. 비틀즈의 위대한 탄생!

이 남자, 라이터를 들더니 불을 붙인다. 하얀 담배 연기에 존과 폴의 만남이 묻어난다.  

"이런 만남은 누가 성사시킬까요? 엄마가 느닷없이 당하는 교통사고도 신이 정교하게 짜놓은 시나리오 같고. 뭔가 딱딱 맞물리잖아요. 비틀즈의 탄생설화 같은 거." 

맞다. 이 영화는 비틀즈의 탄생설(실)화다. 오노 요코는 없는. 오노 요코에게 마녀라는 레떼르를 덧씌운 비틀즈의 광기팬들이 좋아할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존 레논에게서 오노 요코라는 이름을 지우고 싶어하니까. 이 영화에선 아예 그 존재가 없으니 좋아하는 게지.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관계도, 비틀즈의 탄생 앞에선 고개를 숙인다. 대신 엄마가 대신한다. 존 레논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요충분조건. 아, 빠트릴 수 없겠다. 아빠처럼 존을 지켜주던 이모부의 죽음 또한. 그 모든 것이 존 레논 비긴즈를 위한 초석이자 디딤돌.

"존 레논이 라이터를 놓고 온 커피하우스가 있어요. 레논이 무척 좋아하던 라이터래요. 그것도 바로 전날에 샀던." 

그는 라이터 사연을 오늘에서야 털어놓는다. 하긴 나도 그 전에 묻지 않았다. 차곡차곡 모아놓고만 있다. 이 남자의 얼굴은 딱히 라이터의 행방이 궁금한 얼굴과 몸짓이 아녔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오노 요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다가 라이터를 깜빡 잊고 안 가져온 걸 알고, 아차차했대요. 오노가 돌아가서 가져오자고 했는데, 그러자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요. 내일 또 올거니까 그냥 가자고." 

그 커피하우스가 있는 일본 가루이자와 지역은 여름 리조트였다. 뉴욕의 햄튼과 비슷한.

가루이자와 타운에서 자전거로 30분 떨어진 소나무 숲에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존과 오노는 션을 데리고 매일 갈 정도로 그곳을 좋아했다.

그들은 커피하우스 뒷마당의 그물침대에 누워 웃고 노래 부르며 하늘을 바라보며 오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단다. 피스~

그들이 바란 평화. 그 평화의 전 세계적인 전염.

그러나, 존이 말한 '내일'은 다시 오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장마가 시작됐고, 그들은 (호텔)방콕이었다. 그러다 재미가 없어져 뉴욕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평화 없는 세상에서, 그들의 뉴욕은 바빴다. 결국 그들은 가루이자와에 다시 가지 못했다. 라이터는 '영영' 이별인가보다 했다.

"1985년인가, 1986년인가, 존이 죽고 5년 후라고 했으니 그쯤 될 거예요. 오노가 거기로 가요. 아마 존과의 추억을 회상하기 위함이었겠죠.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커피하우스는 변함이 없었대요. 커피 한 잔을 마셨고, 떠나려는데, 주인이 와서는..." 

그 라이터를 건네줬다. 5년 전, 커피하우스에 놓고 간 라이터. 주인장은 이리 말했단다. 

"당신 남편이 지난 번 여기에 와서 두고 간 라이터를 돌려주고 싶네요." (Your husband left this the last time he was here, I’d like to return this to you.)

오노가 라이터를 켰다. 불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5년 전, 라이터를 두고 간 그 날이 불꽃속에 떠올랐다. 

인생이란 네가 다른 계획을 세우는 동안 다 지나가버리는거야(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re busy making other plans).  - 존 레논

"이 일상적인 평범한 일도 예술가들이 했대니, 뭔가 메타포 같지 않아요? 우리도 어쩌면 평화를 그렇게 깜빡 두고 온 채 떠나온 거 아닐까요? 그래서 내일로 미뤘다가 다시 찾지 못하고 있는... 그래서 제가 라이터를 놓고 가는 거예요. 존 레논이 와서 다시 찾아가라고. 하하."

그럴 듯했다.

평화는 존 레논이 깜빡 두고 온 라이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남자, 평화를 바라는 히피였군. 나도 평화가 간절할 때는 그 가루이자와의 커피하우스를 찾고 싶다. 그물침대에 누워 어느 날의 오후를 만끽하고 싶다.


그리곤, 긴자를 찾아가는 거지. 백화점길을 따라 가부키 극장 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카페 파우리스타'. 존과 오노가 역시 자주 왔다는 이 곳. 올드한 느낌의 커피하우스. 어느 날, 이곳에서 나는 'War is over'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오늘. 아침부터 나는 주야장천 존 레논만 틀어놓고 있다. 1980년, 12월8일. 총성이 울렸다. 한 시대가 접혔다. 존 레논이 죽었다. 31년. 평화는 아직 오지 않고 있지만, 염원은 여전하다.

맞다. 오늘의 커피 메뉴는, War is over(Happy Christmas). 평화를 담아서 내린 커피.  

밤9시의 커피에 울려 퍼진 존 레논을 듣곤, 일곱 명이 말을 건넸다. 그 중 한 여자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고맙다며, 굳이 1000원을 더 꺼냈다. 음악 값이라며. 존 레논이 준 선물이로다. 민중에게 권력을. 전쟁이 끝난 자리엔 민중이 우뚝 서 있길.

그러니까, 나와 당신 민중들 모두에게, Happy Christmas!!!
(아울러, 큰별 생일 축하해! Happy Birthday To U~)

"민중에게 권력을! 즉각 민중에게 권력을! 우린 혁명을 바란다... 당신이 부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도 못 받고 노동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사실상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이 소유하도록 해달라. 우리가 전면에 나서 당신들을 끌어내릴 것이다..."
 'Power To The People' 중에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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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과 당신의 가슴이 서로를 단단히 안고 있어요. 
지금은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지요. 나의노래, 당신의 노래.
내가 가진모든 빛과 그림자를 동원하여 나의 뿌리가 깊이 들어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나의 꽃이 세상의 빛을 볼 날을 기다리는 그곳에서                    -이사벨 베어먼 버처


그는 늘, 에스프레소를 즐겨한다. 한 잔 마시고, 또 한 잔 마신다.

그는 에쏘를 시키곤, 그림을 그린다. 가만보면, 만화인 것 같다. (사실 그림체가 뛰어난 것 같진 않다. 하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덥수룩한 차림새에, 예술가 '삘'도 좀 난다. 그런 사람 있잖나. 좀 더 알면, 재밌고, 흥미로우며,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 그는 그런 사람 같았다

죽을 날을 받아둔, 혹은 현대 의학으론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지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건, 어떤 것일까?

요즘 내가 '삘' 받은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지형(김래원)이 그런 무모(!)한 돌진을 한다. 알츠하이머 환자 서연(수애) 옆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소망 하나, 그러니까 닥치고 사랑, 그 하나 때문에. 두 사람, 그저 사랑을 한다. 언젠가는 잊고 말겠지만, 그까이꺼 대수냐.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다는 두 사람의 약속, 나는 그것이 참 아프면서도 감탄한다. 밤9시의 커피가 졸졸졸 흘러내릴 때 담기는 내 마음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도 빼놓을 순 없겠다.
 
부모의 죽음 이후 은둔자로 살아가는 에녹(헨리 호퍼, 작년에 돌아가신 데니스 호퍼의 아들 되겠다!)과 3개월을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 애너벨(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침울해야 할 이야기인데, 그들의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름답다. 그들은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내고,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랑한다. 한 마디로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살고, 사랑한다. 

'그녀의 병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욕망이 솟구치다니, 내가 병적인 걸까? 아니면 이건 무의식적인 자기 파괴일까?'

헉, 이건 또 뭔가요. 병. 그가 사랑하는 그녀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양성보균자란다. (참고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AIDS는 다르다. HIV는 AIDS의 원인 바이러스나, 무증상 HIV감염상태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AIDS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즉, HIV감염인 중 일부가 AIDS환자인 셈이다.)

AIDS보균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라니. 이건 또 무슨 드라마요, 영화인가, 했다. 물론 전도연과 황정민이 주연했던 <너는 내 운명>도 있었고, 그것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세상에 없을 일은 아니렸다. 

그랬거나 이런 상황, 진짜 만만치 않다. 실존적 고민은 물론이요, 삶의 가치관과 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꿀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그가 늘 마시는 에쏘는, 그런 그를 드러내는 커피가 아니겠는가.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그의 상황이 덤덤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덤덤함이 외려, 그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랑을 한다는 건, 맞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이 걸렸든 아니든. 하지만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누구나 죽지만, 누구도 죽는 걸 의식하면서 살아갈 순 없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한다는 것.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 

AIDS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가령, <천일의 약속>의 알츠하이머 환자한테 까였다고 지랄독설하는 향기의 엄마(이미숙)를 보라. 그런 편견 혹은 차별이 종횡무진하는 세상에, AIDS에 대한 세상의 지독하고 악랄한 혐오를 감안하면, 오 마이 갓! 세상의 차별적 시선이 AIDS라는 병보다 더 마음을 깎아내릴 것이다.ㅠ.ㅠ 매순간 그렇게 마음을 다치며 상처를 견뎌낼 여자도 그렇지만, 그 여자 옆에서 함께 버텨야 할 남자는 어떻고. 

나는 어떤가. 다른 사람은 어떨까. AIDS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대놓고 더럽다며 막말하는 사람, 있겠지만 흔하진 않을 거다. 아마도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일 게다.

가장 흔한 반응은 깜짝 놀라며 곧 이해하는 척하지만 경계하는 쪽이 아닐까. 반사적으로 내게 가까이 오지 마시라, 는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다른 하나는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해하고 격려하려는 쪽. 과연, 나는 어느 반응을 보일까. 후자라고 믿고 싶지만, 아마 내게도 일말의 불안과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진 않을까.  

그는 종종 와서, 에쏘를 찾았다. 어쩌다 알게 됐지만, 그와 나는 동갑이다. 나는 그를 위해 전용 에쏘를 만들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생의 엑기스를 위해.

"그저 내 지성을 믿었어요. 나 스스로 이에 대한 판단과 판단에 대한 점검을 해낼 거예요." 

그는 또박또박 그리 말하고 있었다.

자기를 지킬 수 있고 보호할 정도의 지성. 지금처럼 엄혹한 시대에 그것은 쉽지 않다.
그에겐 그런 지성이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을 행복으로 치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게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호감을 가진 여자였지만, 처음부터 그와 맺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여자는 이혼을 겪었고, 아이도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집에 그녀를 불러 오붓한 저녁식사를 나누고 있었단다.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는 이 관계가 끝나지 않길 바라는 바람을 고백하면서 더 깊은 이야길 꺼냈다.

"난 에이즈 환자예요. 양성이에요, 양성보균자죠. 내 아들도요."  

그녀의 고백이었다. 얼마나 힘들게 이야길 꺼냈을까. 충분히 그것을 알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아득함 같은 것?...

알고 보니 이 남자, 럴수 럴수 그럴 수가. 어느 날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찔함이었어요. 똑... 딱... 심장이 멎었다 다시 뛰는 줄 알았어요. 아니면 새 심장으로 완전히 바뀌었거나."

그는 에쏘를 한 잔 더 시켰다. 아주 진하게 달라고 했다. 지독하게 진한 에쏘.

그들은 맺어졌다. 그래야 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 AIDS 따위, 시궁창에게나 내동댕이칠 무엇.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고르에게 도린, 레논에게 요코, 달리에게 갈라, 프리다에게 디에고, 릴케에게 살로메, 그 반대의 경우여도 마찬가지일. 그들 각자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무채색의 세상을 바꾸게 하는 놀라운 색깔이었다.

"난 그녀가 정말 좋아요. 예전부터 줄곧 그랬어요. 게다가 우린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맞는 커플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게 이런 것 아니에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맞다. 허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바라면서도 그건 로망이요, 그저 꿈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엄하고 험한 세상이 본디의 그들을 바꾼 까닭이다. 먹고사니즘, 자본이 요구와 강요에 무릎 꿇은 때문이다.
 
 


그는 쉽게 설명한다. 이따금 성기에다 20분의 1밀리짜리 얇은 고무를 끼워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좋고, 그녀와 있을 때의 행복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아무렴! 평생 콘돔을 껴야 한다고 사랑을 포기할 순 없다. (물론, 누군가는 그 사소한 이유로 포기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그건 사랑이 딱 그만큼이라는 뜻이다!) 

그는 말을 잇는다. 

"알다시피, 실제로 이건 전혀 불편하지도 않아요. 콘돔 없이 시시하게 하느니 그걸 끼고 화끈하게 하는 게 낫잖아, 안 그래요? 하하"

콘돔이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들 커플로부터 처음 알았다. 이 얇은 고무는 바이러스의 침투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들이 섹스라는 사랑을 할 때, 하나의 의식이 됐다. 아, 콘돔의 위대함이란. 사랑을 지키는 파수꾼!  

그들이라고 당황했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세 번째 관계에서 콘돔이 터져버렸단다. 와우~ 듣는 나도 깜짝 놀랐다. 서로, "빌어먹을"을 계속 외치며, 자정에 의사한테 전화를 건다고 호들갑도 떨었단다.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간이었어요. 이 여자는, 옆에서 당신에게 행복이 되고 싶지, 위험이 되고 싶지진 않아, 라고 울면서 말하는데, 괜찮다고 했지만, 깊은 불안에 휩싸여 있었어요."

다행하게도,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음을 알렸단다. 운 좋은 건, 그들의 전담의는 세상의 많은 지질한 의사와 달랐다. 환자를 편안하게 해줬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는 생전 처음, 완벽한 자격을 가진 전문가가 자신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말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HIV는 감기처럼 마구 전염되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이 빌어먹을 것이 꽤 까다롭게 굴거든요. 하하." 섹스한다고 바이러스가 무조건 옮는 것도 아니다.

나는 늘 이 남자에게 에쏘 한 잔을 더 준다. 내가 그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작은 마음이다. Especially for you. 꼭 그말을 덧붙여서. 에쏘에는 그런 뜻이 포함돼 있음을 알려주면서. ^^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행복해지는 거예요. 또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뿐이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난 결코 상대를 보고 진심으로 감탄해본 적이 없었어요. 매혹이나 존경에 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감탄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이 감탄은 기쁨과 함께 기꺼이 상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하거든요." 

그도 그지만, 나는 그 여자도 참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라고 왜 처음에 동정심이 없었겠나. 허나, 그녀는 그것을 없애줬다. 방금 그가 말한 그런 이유로. 그 여자는, 신발 속의 모래알처럼 귀찮게 따라다니던 그의 일말의 동정심마저 말끔히 제거해버리도록 만들었다.    

이 남자, 빙충이(!)처럼 자신의 여자에 대해 말했다. 그녀에게도 이렇게 얘기해줬단다.

"당신은 무엇보다 장난삼아 관계하지 않은 유일한 여자야. 섹시하기도 하고 강하면서도 약한 여자지. 게다가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게 멋진 세상을 꿈꾸게 하고…. 마치 내가 근사한 남자가 된 것처럼 날 으쓱하게 만들거든. 사실 당신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삶에 필요한 재능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야."

그의 표정은 한 없이 행복해보였다. 부러웠다. 젠장, 이런 레어템 같은 여자를 득템하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하는 거지?!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인 건가. ㅠ.ㅠ
 

그는 성공한 남자다. 유명해지거나 어떤 권력이나 돈을 획득해서가 아니다. 그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랑을 획득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여자의 행복을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랠프 왈도 에머슨이 '무엇이 성공인가(What Is Success)?'라는 詩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세상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지 말라. 그저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여라"고 말했다. <천일의 약속>에서 지형 엄마가 지형과 서연의 사랑에 대해 그랬듯, 그들의 사랑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그저, 사랑의 운명을 따랐을 뿐.

나는 내 동갑내기 만화가의 사랑을 위해, 12월1일 밤9시의 커피는, '푸른 알약'이라는 에쏘 메뉴를 내놓는다. 그 사랑의 향을 당신도 함께 맡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겠다. ^.~

12월 1일, 세계 AIDS의 날.
 
그와 그녀를 생각하면서 나는 커피를 뽑았다. 그의 이름은 프레데릭 페테르스(프레드), 그녀의 이름은 카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푸른 알약》이다. 실화다. 에이즈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소재는 소재일 뿐, 그냥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사랑이 있다. 다만, 조금은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삶이 있다.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다. 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우리의 차별적 시선을 의식하는 건, 그저 덤이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만큼 그들 역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서연과 지형, 애너벨과 에녹도 그렇듯, 프레드과 카티의 사랑, 혹독한 듯해도, 그렇게 혹독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삶은 물론 상대를 사랑할 줄 아니까. 살 수 있는 데까지 살고,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랑하는 것. 그만한 축복,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 길지 않다. 사랑도 모르거나 사랑을 모른 채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시대다.

알겠지? 12월1일의 커피, '푸른 알약'이 알싸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품은 이유! 그리고, 이날 온다면, 이런 형이하학적인 비밀도 살짝 알려주겠다. 프레드가 알려준 거다.ㅋ  

프랑스에 가서 콘돔을 사용하게 되면,
'마닉스 엥피스 002'를 써 보란다. 끝내준단다.
반면, '세일로'는 형편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닉스 엥피스 002를 쓰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에? 하하, 농담이다.^^;

무엇이 성공인가? _ 랠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받고
어린아이에게서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에게서 찬사를 받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운 것을 식별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발견해내는 것  
건강한 아이를 하나 낳든
한 뙈기의 밭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What is success? _ Ralph Waldo Emerson

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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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여, 이것은 하루 중 가장 유쾌하면서도 위험한 시간이다. 새날이 밝고 카페인이 퍼지면서 이 스파이스 걸(Spice Girl)에게는 스파이스, 즉 흥취를 돋울 시간이 아닌가. 아, 오늘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성취할 것인가!                                                                     - 샤나 맥린 무어


콩콩콩콩...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콩 볶기, 로스팅을 했다. 흠, 스멜스~ 귯! 사실, 이 콩. 그저께 정도엔 볶았어야 했다. 급한 다른 콩에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미안하다, 잔야. 탄자니아AA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자연에 맞춰 빚은 커피. 

아로마와 플레이버, 최상이다. 특별히 공을 들였으니까! 맞다. 평소 다루지 않는 커피다.  

왜? 무슨 일이야, 으응? 

소녀들이 오는 날이거든. 소녀(들)밴드. 3인조 밴드다. 나는 그녀들을 '소녀'라고 부른다. 이 소녀들, 참 좋아한다. 꺄르르르르르, 넘어간다. 덕분에 나도 웃는다. 서른 안팎의 그녀들에게 소녀라는 호칭은 마법의 주문이다.  

"어이, 소녀들~"하고 부를라치면, 그들은 어느덧 입가부터 소녀가 돼 있다. 소녀미소를 지으며, "응~ 변태노총각 아자씨~"라고 응답한다. 소녀들은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일이 절대 없다.  

이유? 간단하다. 아저씨는 원빈(급) 만의 것이라나. 흥, 췟, 핏. 원빈이 갑자기 대한민국 아저씨 기준을 높여놔서, 아무에게나 아저씨라고 부를 수 없다는 어이 없는 이유다. 이, FTA 같은 년들, 하고 버럭하고 싶어도, 너무 심한 욕이라 참는다. ㅋ  

최수영 작가는 그랬다. "적어도 서른 아홉은, 아직은 소녀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19 29 39》, p.323) 살다보니,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슬픈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슬프지 않다. 더 슬픈 건, 작년과 다른 내가 되지 못하는 것. 어제와 다른 내가 되지 못하는 것. 

그러니까, 이 소녀들은 '좀 아는 여자'들이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지, 어떤 것에 감동하고 추하다고 생각하는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슬픈 것임을 안다. 스스로 힘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마음이 삭지 않는 이 소녀들은, 그래서 소녀임이 분명하다.  

재밌는 건, 이들은 우쿨렐레로 락 한다고 '깝죽댄다'. 아, 깝죽댄다는 표현이 거슬려도 어쩔 수 없다. 이 밴드 노래 제목 중의 하나다. '우리는 깝죽대는 깝죽이'. 지들 스스로 깝죽댄다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ㅎ 

"아자씨, 우리 24일에 여기서 공연해도 돼? 많이 시끄럽게 안 할게."  

"하하, 시끄럽게 안 하는 게 말이 돼? 근데 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11월24일. YB의 새 미니앨범이 나오는 날이란다. 흰수염고래. 소녀들에게 YB는 하늘이다. 좋아 죽는다. <나는 가수다>에서 YB가 명예졸업 직전에 탈락하자, 소녀들은 하늘이 무너진양 슬퍼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에이, 설마~) MB의 음모론까지 몰고 갔다. YB와 MB의 한끗차이가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라면서.  

그녀들은 이른바 '프로', 직업적인 밴드는 아니다. 일종의 직장인 밴드다. 나는 그들을 잉여밴드라고 부른다. 물론 한 명은 직업적인 뮤지션의 꿈을 계속 키워가고 있지만. 그들은 그냥 논다. 헬렐레대면서 즐겁다. 음악적인 평가는 별개로, 듣고 있자면 어깨랑 발이 들썩들썩한다. 그러니 소녀지! 

커피는 그녀들에게 검은 혈액이다. 자신들의 음악적 힘은 커피에서 나온다나. 특히 카페인. 미친년들 놀고 있네, 하고 (농담) 던지면 맞팔이다. 지롤, 변태아자씨도 그러면서.  

우리는 그렇게 노는 사이다. ^^ 그런 오늘, 소녀들을 위해 콩콩콩콩 볶는 건, 나의 화답이다. 뭐, 같이 놀자고, 좀 끼워달라고 하는 거지.  

그런데 왜 탄자니아를 볶았냐고? 

다 이유가 있다규! 탄자니아.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하얀 산'이라는 뜻의 킬리만자로를 품은 곳. 마사이어로 '끝없는 평원'을 의미하는 세렝게티. 탄자니아하면 떠오르는 그 풍경에 섞인 깔끔하고 부드러운 신맛과 풍부한 바디감. 너트향이 스며있고, 밸런스도 좋은 탄자니아 커피. 탄자니아AA. 

아는 사람은 안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본명 파로크 불사라 Farrokh Bulsara). 그룹 퀸(Queen)의 리드보컬.

그의 고향이 탄자니아다. 프레디는 탄자니아의 유명한 휴양지,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총독부 소속 공무원으로 종교 때문에 잔지바르 섬으로 이사를 왔고, 1946년 프레디는 태어났다. 

프레디는 일곱살까지 이곳에 살았다. 인도로 유학을 갔던 그는, 1964년 가족 모두 영국으로 다시 갔고, 그는 가수가 됐다.  

소녀들은 어쩌다 한 번씩 퀸을 연주했다. 특히, We Are The Champions나 We Will Rock You 혹은 I Was Born To Love You.   

나름 리드보컬 네멋 왈. "아자씨, 퀸 진짜 쩔지? 프레디 머큐리처럼 섹시한 남자가 그렇게 일찍 죽은 건 너무 억울해. 하늘이 자기 옆에서 노래 듣자고 그렇게 일찍 데려간 걸거야. 귀는 밝아가지고."  

실제로 그렇지 않나! 4옥타브를 오가는 엄청난 가창력. 비브리토 없는 깔끔한 보이스. 특히 허스키 보이스로 4옥타브를 넘나드는 환상. 나의 화답은 이랬다.  

"하느님이 비틀즈에 약간 질려서 그렇게 일찍 데리고 간 거 아닐까? 아니면 하느님이 남자라면, 동성애자거나. 욕심쟁이, 쯧."
 

프레디는 1991년 11월24일, 떠났다. AIDS로 인한 기관지 폐렴이었다. 45. 요절이었다. 그는 죽기 전날에야 AIDS임을 시인했다.  

뭐, 상관없다. 그것이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겐 그랬고, 소녀들에게도 그랬다. 죽기 전까지 그는 노래했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기억할 뿐이다.  

"아자씨, 프레디가 지금 살아있다면, 믹 재거보다 훨씬 더 섹시할텐데, 그치? 웃통 벗어던지고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살살 우릴 구슬릴텐데... 한국에도 한 번쯤 왔을 거고. 아까워!" 

"그래, 우리, 하루 날 잡아서 죽도록 퀸만 부르는 거야, 콜?"  

"콜" "나도 콜 쓰리~" 

나는 소녀들의 그 대화를 기억한다. 11월24일, 프레디 머큐리의 20주기다. 그들메들리를 준비해 올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나의 레파토리를 준비할 뿐이다. 탄자니아AA를 볶은 이유다. 

24일 하루만큼은 그래서, 밤9시의 커피에 다른 메뉴는 없다.  

오로지, 하쿠나 마타타.(설마... 무슨 뜻인지는 알지? <라이온 킹>에서 미어캣 티몬의 삶의 신조잖아!) 잔지바르 사람들은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흥얼거리는 것이 일상이란다.    

좆같은 한-미 FTA 체결로 꿀꿀하고 슬프고 분노가 차오르는 시절. 그래도 하쿠나 마타타! 외치시라. 잘 볶은 탄자니아AA가 대령한다. 소녀들의 퀸 메들리를 들으면서 하쿠나 마타타. 온통 하쿠나 마타타로 11월24일을 채우는 밤이다.

젠장, 하지만 한국(의 기득권)은 어쩔 수 없이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다. 

대다수 인민의 아픔과 고통, 슬픔에 면역결핍인. 혹은 한나라당 면역결핍 바이러스 (HIV, Hannara Immunodeficiency Virus)의 창궐이다. 이 바이러스에 양성반응을 보이면 정치적 AIDS(후천적 진실성 결핍증, Acquired Integrity Deficiency Syndrome)가 나타나거나, 지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똥오줌 못 가리는 정체성 결핍 증후군(AIDS: Acquired Identity Deficiency Syndrome)을 드러낸다. 

12월1일 '세계 AIDS의 날'을 앞두고, AIDS에 대한 편견은 줄이되, 또한 위로 받아야 할 99%의 인민들을 생각하며, 11월24일의 커피는 하쿠나 마타타. 소녀밴드도 함께. 이 자리에 못 오는 당신도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과 함께.

프레디의 고향, 잔지바르의 바닷가엔 프레디 머큐리 카페가 있다고 한다. 푸르른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카펜데, 그곳에서 보면, 푸른 바닷가와 이글거리는 태양이 작렬한다네. 그래서 저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프레디 머큐리를 키운 것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단다. 

언젠가 그곳을 밟을 생각을 하며, 밤9시의 커피는 11월24일 탄자니아로, 고고씽! 


그러고 보니, 이 변태노총각 아자씨, 소녀밴드에게 신청곡 하나! (참고로 이 소녀밴드의 이름은 '깔맞춤 싱크로율'이다. ㅋ) 지금은 당최 찾아볼 수 없는 고시대 유물이지만, 고딩 시절, 여자로부터 처음 받은 카세트 녹음테이프. 그녀가 건네준 테이프에 녹음된 첫곡, 'Love Of My Life'. 내가 퀸을 만난 첫 번째 순간이었다. 

깔맞춤 싱크로율의 레파토리에 당연히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신청하련다. 하쿠나 마타나!  

인생을 채워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완전해질 수도, 완벽해질 수도 없지만, 사랑. 그것이 인생을 견디게 한다.

안녕, 불세출의 프레디 씨. 탄자니아 커피는 참 고마워요. 당신을 만든 것에 이 커피도 있겠군요. ^^ 

나는 AIDS다. AIDS는 결코 나을수없는 불치의 병이기에
나의 음악과 나의 영혼이 묻혀 함께 이 세상 사라지기 전에
이 사실을 오늘에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팬들과 멤버들을 속여 정말 미안하다.

끝없이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고 싶었지만 나의 생은 유한한거 같다.
내가 태어난 고향 잔지바르에서 지금 살고있는 런던의 생활까지
나는 나혼자의 생각만으로 살고 있었다.
 


늘 이기적이기는 했다. 그런 이유때문에 언제나 외로웠었다.
나를 다른 백인들과 차별하는 영국인도
끝없이 나를 깎아 내리는 평론가들도 늘 지겨웠다.


이처럼 늘 나에겐 함께 해줄 이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과 존 그리고 테일러를 만난 것은
정말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만남이였다.

그리고 내가 검은 문을 열고 무대 밖으로 나가면 팬들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다.
나는 무대에서는 늘 외롭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음악보다도 나의 팬들을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소원이 있다면 팬들은 제발 나의 마지막 죽어가는 모습이 아닌
나의 음악에 대한열정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

- 프레디 머큐리의 유언 중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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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들에 대한 더욱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꽉 채울 것이다. 
                                                                      - 에드워드 O. 윌슨,  《바이오필리아》

 

차가 꿀렁거린다. 

수도 딜리의 풍경과 또 다르게, 산지는 어쩔 수 없이 역시 산지다. 꾸르릉꾸르릉. 차의 꿀렁거림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 만난 이방인을 등짝에 태우기까지 했으니, 차라고 오죽하겠나. 나도 꿀렁, 차도 꿀렁. 우리는 그렇게 꿀렁거리는 것으로 하나가 됐다.  

나의 꿀렁거림은 설렘이다. 커피는 평지에서 자라지 않는다. 산지형 생물이니까,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 평지형 인간이 산지형 생물을 만나러 가는 길, 평탄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동티모르의 풍경은, 다른 동남아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트럭이든 버스든, 사람을 꾸역꾸역 매달고 다닌다. 뒤뚱거리듯 왠지 불안해도 가기도 잘도 간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매달린다. 갖가지 자세와 표정으로 차와 합체한다.  

나도 군대에서 군트럭에 매달려봤지만, 저렇게까진 해보지 않았다. 꿀렁거려도 편하게 가는 내가 약간은 미안하다. 
 


달리 말하면, 동티모르는 아직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사회가 아니다.  


자동차가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지 않다. 다행이랄까. 모터리제이션이 본격 진전되면, 당신도 알다시피 자동차를 놓고, 사람을 가르는 일이 비일비재해진다. 차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부터, 어떤 차를 소유하고 있는가로 사람을 평가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저항 없는 일상이 된다.  

물론 동티모르에도 차는 꼭 필요하다. 나 같은 평지형 인간이 높은 커피 산지를 갈 수 있는 건, 차 덕분이다. 평지형 인간에게 아웃도어의 후원·협찬이 있을 턱이 없잖나. 커피를 만나고픈 마음에 자리한 것은 등정주의도 아니요, 등로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날 받아아달라는 애원과 한 없는 겸손. 내 일상을 지배하는 커피를 키운 대지를 만난다는, 득템의 순간을 향한 종종걸음. 

다시 더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커피는 모순의 시대를 뚫고 분출한 액체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들이키기 시작한 시민사회 형성기로 돌아가보자. 시민사회의 이념적 동력이 뭔가.  

자유, 평등, 박애!  

커피라는 검은 혈액의 투여 혹은 흡입. 근대적 시민의식의 형성은 커피를 일정부분 빚졌다. 커피하우스에서 이뤄진 작당모의. 커피는 지성을 깨우고(잠을 못자게 하고), 토론을 빚었다(수다를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그 시민사회는 자국 울타리에만 머물렀다. 그것도 주로 남성들에게만! 물론 그 시민사회는 완성형이 아니었다. (내 부박한 지식으로, 한국은 언제고 시민사회를 제대로 열어젖힌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 때,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시민사회의 이념은 탱자가 됐다. 인종주의나 쇼비니즘(배외주의)이 그것이다. 씁쓸하지 않나? 

지들 나라의 시민사회 완성을 위해 식민지를 두고, 커피를 마시려고 식민지에 커피나무를 심게 했다. 당시 많은 열강이 그랬다.



구름과 안개가 산을 에워싸고 있다. 저것이 커피가 자라는 풍경이다. 열대의 어딘가에 나는 있는 것 같았다. <아비정전>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필리핀의 열대우림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의 슬픔 띤 정조와는 달랐으나, 동티모르라고 왜 슬픔이 없겠나. 커피나무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
다. 

차는 오르고 또 오르고 넘고 또 넘는다.

재밌는 건, 조디와 하 대표님의 말(언어)은 통하지 않으나 말(소통)이 되는 대화가 계속 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미 친구다. 잘 생긴 수줍은 청년 조디와 유쾌하고 즐거운 하 대표님의 조합은 꽤나 어울린다. 

어디에도 같은 풍경이 없으니, 심심하지 않다. 중간중간 쉬면서 나는 나무를 바라봤다. 나무가 품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내 공력으론 어림도 없다. 아쉽고 슬픈 일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달렸다. 어스름도 지나갔다. 어둠이 깊다. 마우비스(Maubisse)란다. 딜리에서 약 70km 거리라지만, 척박하고 험준한 산지를 오르내리다보니 시간은 꽤나 걸렸다. 해발 1400m에 위치한 산간 마을.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밤하늘이 훌쩍 내려앉아 있다.  

우리가 묵은 곳은 과거 식민시대 포르투갈 성주의 거처였던 곳이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 비슷하게 운영되는데, 객실이 6개, 레스토랑이라고 말하기 힘든 식당이 있다. 겉으로 보아, 나름 운치가 있다. 물론 동티모르는 관광시설이나 편의시설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 그런 건, 동티모르에선 저 멀리 안드로메다의 얘기다.   

대신, 깊고 깨끗하다. 그 깨끗함, 우리가 길들여진 청결함과는 또 다른 것이지만.


기분이 약간 묘했다. 포르투갈 성주의 관사라. 저 아래 동네가 보였고, 성주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통치를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오래되고 낡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포르투갈은 시민사회의 형성이 부실했었다. 동티모르를 식민지로 삼았을 무렵인 16세기, 포르투갈은 해양왕국으로 자리매김할 시점이었다. 동티모르도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의 희생자였다. 포르투갈은 식민지를 통해 노예 획득은 물론 주요 농산물을 거둬들였다. 커피도 나중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곳의 성주도 본국에 가져갈 커피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을지 모른다. 해발 1400m의 깊고 깨끗한 아라비카 커피를 찾는 포르투갈 왕조와 귀족들의 명령 혹은 앙탈 때문에.  

덕분에 동티모르 사람들은 노예처럼 일을 했을 것이다.  

성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지못해 임무를 완수했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관대했을까, 아니면 채찍을 들고 노동을 착취했을까. 

해상왕국 포르투갈에는 막대한 부가 쌓였으나 국부 유출 등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되지 못했다. 즉, 시민계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개혁 시도 등이 있었으나 봉건세력의 반발로 무위가 됐고, 프랑스혁명 등의 영향이 파급된 19세기에도 중산층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에서 벗어난 것은 20세기 포르투갈 내부의 혼란에 힘입었다. 20세기 초 국왕 왕살과 공화파의 혁명으로 공화제가 성립했으나 거듭된 쿠데타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경제위기 등으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마우비스의 성주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본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곳 사람들에 동화한 시간이 많은, 널찍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동티모르의 자연과 커피에 취해 그는 그냥 눌러앉기로 했을지 모른다. 그곳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곳이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배가 고팠고, 동티모르에서의 첫 식사. 좋았다. 그 이상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쌀이 있었고, 고기가 있었으며, 감자가 자리하고 채소가 함께 했다. 멋진 저녁식사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한 성찬! 

저녁만찬을 마친 우리는 깊고 깨끗한 마우베시의 커피를 손에 들고 입을 적셨다. 동티모르가 내 속을 파고 들었다. 이것은 탐사요, 탐험이다. 동티모르에서의 첫밤이 익어가고 있었다. 커피가 마음을 흘렀고, 이야기가 새어나왔다. 아마도 이곳의 마지막 포르투갈 성주의 유령도 귀를 쫑긋 세워 우리와 함께 였을 것이다. 그의 희미한 웃음소리를 나는 들었다! 

양동화 간사의 동티모르 이야기는 그만큼 흥미진진했다. 특히 애정편력사. 그러니까, 다음 이야기는, 그녀는 어떻게 세계 각국의 남자들을 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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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엄미숙, 이효정, 이지연, 이훈, 진형근 님.

허술한 나의 커피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잘 따라준,  
당신(들) 각자의 커피, 참 고마웠어요. :)  

그리고, 기대할게요. 

당신 각자의 체온과 이야기를 품은, 
베스트가 아닌 온리의 커피. 저는 그것을 기대합니다. ^^

당신이 찾아내고 깨운 생의 감각이 흘러내린 그 커피를 말이죠!




그 누구도 친구들이 등을 돌릴 때 투덜거리지 말게 하라.
그들은 첫 산들바람에 팔랑이는 나뭇잎처럼 행동할 것이다.
어쨌든 문제가 생기면 커피하우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셔라.
- 바이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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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
-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11월10일, 특별히 이 커피콩을 볶는다. 에티오피아 하라르 지역 사람들이 만든 커피. 그 남자가 오기 때문이다. 그 남자, 밤 9시부터 詩를 낭송할 계획이다.

시즌이다. 10월20일부터 시즌에 돌입하긴 했다. 한 20일에 걸쳐 있는데, 오늘 11월10일이 정점이자 마지막 날이다. 커피 이름은 쉽다. 

랭보. 

이날, "랭보 한 잔이요~"라고 주문하면 나는 하라르 커피를 내놓는다. 그래, 오늘 120주기라서 그렇다. 1891년 11월10일, 서른 일곱의 나이였다. 요절이었던 거지. 죽기 몇 달 전, 병 때문에 다리를 자른 뒤, 그는 특유의 시니컬함을 거침없이 내질렀다.  

"우리 인생은 불행이다.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빌어먹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는 번번이 실패하고 불행한데, 버티고 견딘다. 아주 사소하고 엉뚱한 성공에 감읍해서. 

열 다섯에 데뷔, 빅토르 위고로부터 "어린 셰익스피어"라는 극찬을 받았던 랭보는, 스무 살, 詩를 덜컥 놓았다. 그 얘긴 예전에 했던 블라블라를 참조하시고.  11월에 생각하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


詩에 작별을 고하고, '스무 살 이후'를 살게 된 랭보는 커피 상인(무역상)으로서도 살았다. 당시 백인으로서 커피무역상에 고용된 것은 랭보가 처음이었단다. 그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아프리카에 가고 싶었했단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는 하라르로 갔다. 해발 1850m의 이슬람 도시. 이슬람 4대 성지 중 하나다. 하라르(의 커피)에 대해선 이런 유언비어(?)가 있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 지역의 커피가 커피의 왕이고, 에티오피아 하라르 지역 커피가 커피의 여왕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또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바디가 풍부하고 중간 정도의 산미에 초콜릿 향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여왕'의 타이틀을 달 만큼은 아니다. 내 코와 혀는 그리 말한다. 

개성이 다소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랭보는 "지저분하고 커피도 맛이 없는 곳"이라고 하라르를 평했다. 하지만 하라르 커피는 랭보의 간택을 못 받았을 뿐, 그리 최악은 아니었다. 하라르 커피의 미묘한 밸런스는 예멘으로 전파됐고, 그 유명한 '예멘 모카'를 잉태했다.

그러니 하라르 커피는 랭보나 예멘 커피에 얽힌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오늘의 특별한 커피, '랭보'는 그래서 나온다.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중2병(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 청소년들이 겪는 허세적 착각)'을 앓았을 무렵의 랭보를 추억해도 좋고, 더 이상 랭보에 빠질 수 없음을 아는 속물적 현실을 자각할 수도 있다.

랭보는 詩에 작별을 고한 뒤, 철저히 돈 밝히는 속물로 살았다. 극과 극의 체험을 겪은 천재가 택할 수 있는 건 결국 분열 혹은 죽음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라르 커피에 섞인 랭보적 자취는 그래서 찐~하다. 터키의 속담, '커피는 지옥만큼 어둡고, 죽음만큼 강하고, 사랑만큼 달콤하다'는 하라르 커피를 지칭한 것인데, 랭보의 질척한 방랑이 섞여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늘 랭보를 읊을 남자의 이니셜은 L.D.다. 아마, 당신도 본 적 있을지도 모른다. 천하의 꽃미남! 꽃랭보가 그러했듯. 나는 그 남자에게 이걸 부탁하려고. 아님, 내가 읊던가.

「가장 높은 탑의 노래」.

300일이 넘은 308일째, 김진숙 위원을 위해. 11월9일 노사 잠정합의안이 나오면서 김진숙 위원이 내려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경찰이 삑살이를 놨다. 병력을 투입하는 과잉반응이 결국 김진숙의 귀환을 막았다. 개새끼들. 하는 꼬라지하곤. 

아, 김진숙 위원님이 내려와서 건강이 회복되면,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다. 

 

속박되어 꼼짝 못하는
한가로운 청춘
자질구레한 걱정탓으로
내 인생을 망쳐버렸네


아아, 내 마음이 열중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게 해다오
나는 생각한다, 좋아
그대와 만나지 않을지라도,
그대와 얘기하는 덧없는 기쁨의
약속따윈 이제 아무래도 좋아
당당한 은퇴를 그대가
멈추게하여 주기를 바라네

언제까지나 내가 꾸었던 헛된꿈을
그토록 참고 견디었다
공포도 고통도 하늘높이 날아가버렸고
그런데 불쾌한 갈증이 내 혈관을 어둡게 하는구나

평원이 버려진채로 커지고
향과 갈라지색 꽃을 피우는 것처럼
수많은 불결한 파리떼가
잔인한 소리를 내는도다

아아, 그토록 가여운 영혼
말할 수 없는 홀아비 생활
그것은 오직 노트르담 교히의
모습이구나
성모마리아에게
간구하는 것인가?

속박되어 꼼짝 못하는
한가로운 청춘
자질구레한 걱정탓으로
내 인생을 망쳐버렸네
아아, 내 마음이 열중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게 해다오


그러니까, 굳이 밤 9시의 커피가 읊는 시 낭송회에 오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오늘, 랭보 한 잔 마시며 시를 만나도 좋은 시간. 김진숙 위원의 귀환을 기다리며. 한때 랭보의 격정적인 연인이었던 베를렌이 랭보를 일컫길,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당신에게도 '가장 빛나는 죄악' 하나쯤. 오늘만큼은.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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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스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 왕 (?)


밤 9시, 늦은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기엔. 물론, 커피 마시면 잠 못잔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누군가에겐 밤 9시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신이 또렷해지고, 이성과 감성이 서로를 견제한다. 세계가 새롭게 열리기도 하는 창조의 시간.

우리 커피하우스를 찾는 많은 사람은 후자의 시간일 것이다. 나는 그 구체적인 하나하나를 위해 단 하나의 커피를 내린다. 그들이 창조의 비행기를 몰다가 잠시 숨을 고를 때, 창조의 윤활유를 공급하는 공중급유기.  

밤 11시에 도달한 시간이었다.

"에스프레소 도피오 주세요."

이 시간, 에스프레소, 흔하지 않은 경우다. 그것도 도피오라니. 50대로 보이는 여인은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말투는 단호했고, 어떤 옵션도 필요없다는 투였다. 설탕 혹은 시럽, 크림이나 (스팀)우유도, 꼭 사치라는 뉘앙스. 이럴 땐 말 없이 추출하는 수밖에. 그저 황금빛 에쏘 도피오를 놓으면 그 뿐이다.

알레고리.

표면에 드러난 것으로 내면의 숨은 뜻을 전달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건 곧 하나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다층적이고 모호한,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헛다릴 짚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천일의 약속>에는 커피가 알레고리가 되는 지점(들)이 있다. 아마 대부분 시청자들은 그런 생각, 않을 것이다. 하긴 내가 괜한 꼼수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혼자만의 알레고리.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커피를 통해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자살 폭탄을 짊어진 놈"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지형(김래원)이 결국 폭탄을 터트렸다. 충분히 터질 줄, 누구나 알았던 그것. 향기(정유미)를 향한 파혼 선언. 정혼자가 있음에도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그러나 기억을 잃어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자, 서연(수애) 때문이다.

뭐, 수애 정도라면 나라도 그러겠다, 고 말하지만, 알다시피 폭탄의 사정거리는 주변부 싹쓸이! 직격탄을 맞은 지형의 엄마 수정(김해숙)은 용케 연락처를 알아내어 득달같이 서연을 찾는다. 


수정과 서연이 처음 마주대하는 순간. 서빙이 이뤄지는 고급스런 커피하우스다.

"어, 나는 에스프레소 더블, 서연씨는?"

어떤 차를 마실지 묻는 서연의 질문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단호한 말투다. 당연히 그것이어야 한다는,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알렉산더 왕의 것인지 의심(BC에 커피를 마셨을까?)이 가는, 커피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커다란 위기, 심장에 필요한 것, 한 잔의 따스한 커피. 커피 메뉴로 위기의 정도를 가늠한다면, 에스프레소, 그것도 도피오는 최강이다.

곧 그것은, 수정여사의 마음이다. 아들의 폭탄같은 파혼선언으로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 싶은. 빠르게(express) 내린 에스프레소마냥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특별히 너(손님)를 위해(especially for you) 만든 에스프레소(Espres)를 마시는 날 봐서, 내 애원을 들어달라는.

에스프레소 더블이 내겐 그런 알레고리였다. 폭탄 맞은 여자의 어떤 안간힘 같은 것.

그렇다면, 알츠하이머와 싸우는 여자의 주문은 무엇일까.

에쏘 더블을 시킨 수정이 뭘 마실지 묻자, 서연은 살짝 벙 찐 표정을 짓는다. 엇, 이게 뭐지? 하는 얼굴. 처음 보는, 심각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관계의 사람이 에쏘 도피오를 시킨다면, 충분히 흠칫 놀랄 수도 있겠다. 에쏘가 주는 알레고리 때문이다.

서연은 곧 이를 수습하면서 아메리칸을 주문한다. 에쏘와는 확연하게 다른 커피. 그것이 두 사람이 현재 처한 세계의 다름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아메리칸은 진한 커피를 싫어하는, 아주 연하게 추출한 커피다. 드립이나 커피메이커로 내려서 거기에 다시 물을 섞은. 나는 당신이 왜 온 것인지 모릅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그것은 유럽과 미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유럽의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지에선 에스프레소(도피오)를 즐기나, 미국은 매우 엷은 아메리칸을 선호한다. 그래서 아메리칸이다. 레귤러보다 더 연하다.

그녀는 지형과 나눈 사랑의 단초가 된 커피를 마실 때도 해롭다며, 오래 살아야 한다며 설탕을 넣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아메리칸 역시 설탕이나 크림을 넣지 않는다. 그녀의 커피 취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맑고 자극적이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와 성향이 커피를 통해 드러나는 순간.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이야기를 커피를 통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게 된 서연이 지형을 만나 오피스텔로 가는 그때. 그 위태롭고 애처로운 순간에도 서연은 익숙하게 커피를 갈고 추출한다. 두 사람의 익숙한 리추얼. 그러면서도 위기에 그들의 심장에 필요한 따스한 커피 한 잔.

날마다 바보가 되어가는 치매 환자인 여자와 그녀를 사랑해서 다른 여자와 파혼한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커피 한 잔이다. 그것은 어쩌면 안간힘이다. 왜 저들이 저런 상황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은, 커피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11시에 가까운 시간, 에쏘 도피오를 마셔야 하는 여인의 심연도 그럴 것이다.

내가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나, 그녀의 심장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한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에 황금빛 'especially for you'를 그녀의 심장 앞에 대령한다.

커피의 심장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다. 오늘,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 서연의 사촌오빠 재민(이상우)이 초반에 서연에게 아이스커피와 따뜻한 커피를 들고 가서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그걸 놓고 자상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허나,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연을 아끼고 보살펴주는 척 하는데, 그녀의 취향조차 모른다? 예술가적 예민함과 섬세함을 지닌 서연이라면, 아마 아이스든 따뜻한 음료든 자기 것이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르고 냉온 모두를 들고 간 것은 무심함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다. 거기에 커피 한 잔 건다. :P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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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도 마틴을 그리워한다. 커피잔을 볼 때마다 멋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마틴은 'e'가 두 개인 커피(coffee)를 하나의 'e'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바로 L-O-V-E, 즉 사랑이었다.              - 루스 코 챔버스


월요일, 밤 9시가 지났다. 

그 남자, 문을 열고 들어올 시간이다. 가을이 온 뒤, 매주 월요일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면 늘 커피를 마시러 오는 남자다. 무슨 이유일까.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그 남자의 표정, 가을빛이었다. 

가을빛? 그게 무슨 소리냐고? 글쎄, 그건 그 남자의 표정을 봐야 설명할 수 있다. 그 남자의 표정을 보면, 아 저기 가을이 내려앉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커피 마시고 싶어요." 

그 남자의 첫 마디였다. 무슨무슨 커피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자니, 그 남자, 어떤 커피든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을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구석자리 창가에 앉았다.  

그 가을빛 때문이었다. 그 표정,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한길 사람속, 심연을 알 수는 없지만, 때론 말보다 표정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더구나 어떤 커피가 아니라, 무턱대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을 던지는 남자라면.  

졸졸졸,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섞었고, 고노를 택했다. 여러 구멍으로 새나가선 안 됐다. 하나의 구멍으로 가을을 내렸다. 가을빛이 따라내렸다.

그리곤 월요일 그 시간, 남자는 꼬박 문을 열었다. 가을빛이 내린 표정을 하고선, 커피 마시고 싶다는 한 마디. 자리를 차지한 다른 손님이 없으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았고, 책을 보거나 드라마를 봤다. 나는 다른 말 없이 가을빛 흘러내린 커피를 내놨다. 그 남자 역시 아무말 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아주 살짝 보이락말락한 미소를 띠고.  

며칠 전 월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커피를 마시던 이 남자가 느닷없이 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커피 마실까?"

눈을 땡그랗게 뜨고 바라봤더니, "아저씨, 이 말 참 슬퍼요, 그죠?"  

역시 멍한 표정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 곧 말을 잇는다.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 보세요? 음, 이 드라마, 기억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그녈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긴데요..." 


남자가 풀어놓은 드라마 이야기는 그랬다.
 
서연(수애)와 지형(김래원)의 사랑이 시작된 우연의 만남. 서연이 영화 같다고 말했다는 만남이었다. 사촌 오빠의 친구로, 친구의 사촌동생으로 처음 만났단다. 그리곤 미술관에서 우연히, 8년하고도 반년만에 마주친, 혹은 3년 전 여의도 63층에서 사촌오빠 혹은 친구를 끼고 식사를 했다는 두 사람.  

"커피 마실까?"

"지형이 서연에게 그렇게 말해요.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서연이 지형의 말을 듣곤, 표정이 말해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왜 이제야 그 말을 꺼내냐고. 그토록 환하게 바뀌는 서연의 표정이 참 많은 말을 해요."


나는 안다. '커피 마실까?'라는 말에 들어간 수많은 함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귀를 자극하고, 머리와 심장에 도달한 울림. 아울러, 그 남자가 말하는 서연과 지형의 관계를 재배치했을 커피. 오랜만이라는 시간을 한순간에 건너뛴 커피의 마성. 사랑의 시작을 창조하는 마성적 커피.  

"서연이, 참 예뻐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 남자, 다시 말을 잇는다.  

"해롭다고 그래서, 오래 살아야 한다며 설탕을 넣지 않는 서연이를 향해 지형이 눈을 못 떼요. 아저씨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표정, 알죠? 그 순간, 지형이의 눈이 딱 그래요. 오로지 한곳에 박혀선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눈, 있잖아요. 눈에는 온통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게 빤히 보이는..."
  

커피에서 시작한 지형의 수작(?)은 "점심 먹을까?"로 이어지고, "저녁 먹을까?"로 이어진다고 했다. 커피 한 잔이 새끼를 친 셈이다. 얘길 들으니, 서연이라고 다르지 않았나보다. 커피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논스톱 약속잡기 행렬에, 스스로 싸구려라면서 가두행진에 기꺼이 동참한다니. 

"커피로 시작한 만남이 하루를 몽땅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어요. 손도 잡고요. 천년 전부터 기다렸다는 느낌이라며,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나요." 

데자뷰니, 전생의 기억이니, 오글거리는 이야기의 드라마 같은데, 이 남자, 태연하게 얘기한다. 꼭 자기 이야기처럼. 볼이 살짝 상기된 것을 보니, 뭔가 사연이 있구나 싶다. 그럴 땐, 굳이 물어보는 게 아니다. 커피 한 잔 더, 졸졸졸 흘러내려준다. 옛소, 기분이오. 

"똑같이 말했었어요. '커피 마실까?' 커피,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우리의 사랑이 시작된 말이기도 했죠. 저들처럼이요. 그때 알았어요. 커피 마시자는 말이 얼마나 많은 뜻을 품을 수 있는지.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3년을 사귀었다고 했다.  

천일이 넘은 시간.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있어서 가슴 아프다고 했다. <천일의 약속>이 아픈 이유라고 했다. 월요일마다 아이패드로 뭔가 보는가 싶더니, 그게 <천일의 약속>이었던 거다.   

"음, 얼마 전 헤어졌어요. 그녀때문에 이젠 커피중독자가 됐는데... 제가 월요일마다 오는 것, 아시죠? 월요일이 그녀가 쉬는 날이어서 커피 참 많이 마셨거든요. 커피순례 다니고 그랬어요. 전 지금, 월요커피병 환자에요." 

그녀 때문에 커피까지 배웠다고 했다. 내가 내려주는 커피가 뭔가 독특하다고 했다.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게 마음에 들었고, 처음왔을 때, 어떤 커피인지 말하지 않은 건, 어떤 커피가 나오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다음에도 같은 커피가 나올지 궁금해서 말을 않았고, 계속 같은 커피가 나와서 참 좋았단다. 

커피 한 잔을 더 따랐다.  

환자에겐 계속 주는 수밖에 없다. 내가 줄 수 있는 처방약이자 위로니까. 한동안 이 남자, <천일의 약속> 때문에 마음으로 앓고 눈물로 말할 것 같다. 가을빛을 띤 이유가 있었구만. 커피로 시작한 사랑과 이별, 커피로 씻어야지. 

이 가을빛 남자에게 내가 처방한 커피는, 알싸한 신맛과 장점인 에티오피아 리무와 멕시코 치아파스, 도미니카 바라오나를 블렌딩했다. 이 남자의 가을빛이 알려준 레시피였다. 

월요일, <천일의 약속>이 방영되는 날이다. 이 남자, 또 오겠군. 커피를 준비해야겠다. 나는, 이 남자의 커피가 아프다. 가을이 아픈 이유가 있었구먼. 이 남자의 커피를 볶는데, 소리가 난다. 파파, 아파. 아... 파파, 팍.  

나도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뭐, 딴 이유가 있을 이유가 있나. 수애. 그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한 거지. 아, 수애 같은 여자가 오면, 참 예쁜 커피 내려줄텐데...

나도 수애씨한테 이 말부터. "커피 마실까?"

허허, 커피 만드는 노총각이 별 깜찍한 상상을 다 한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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