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에는, 홍콩영화에 대한 애정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그전부터 홍콩영화, 하면 주성철이라는 얘기('홍빠'라는 얘기도ㅋㅋ)도 들었지만, 책은 그것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나도 푹 빠졌던 어떤 홍콩영화에 대한 언급이 나올라치면, 절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그때의 공기와 느낌이 떠오르곤 했다. 아, 그땐 그랬지, 하면서 나는 추억에 잠기고, 그때를 더듬었다.
다만, 나는 홍콩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홍콩영화를 두루두루 섭렵한 편이 아니다. 편식이었달까. 주성철의 애정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기엔 갭이 좀 있었다는 거지. 간혹 별처럼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홍콩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아마도?) 바쳐서 그 애정을 담은 그의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다시 스크린에서 만난, <아비정전>. 좋았다. 고마웠다. 그녀도 잊을 수 없다고 했던, 그 '1분'과 '장국영이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 <아비정전>은 역시 장국영의 영화였다. 아래는, 지난 11월3일, <아비정전>과 장국영을 만나고, 주성철을 만났던 기록.
시간이 ‘흐른다’는 건, 한편으론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렸다. 어떤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멈춰버린 순간이 있다.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시간으로 박제된 순간. 누군가는 그래서 한순간을 잊는 데 전 생애가 필요하다. 어떤 안간힘을 써도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지만, 멈추기도 한다. 나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도 흐르지만, 나는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수리진(장만옥)이 그러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이말 때문이었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이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내일 다시 올게.”
<아비정전>. 장국영(아비)이 장만옥에게 행했던 궁극의 작업멘트. ‘1분’으로 한 여자의 모든 것을 진압하고야 말았던. 고작 60초에 불과한 시간이라고 반박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그 무엇으로도 표백할 수 없는 시간이요, 멈춰버린 시간. 그건 수리진 스스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역시 토로한다. “그는 나에게 순간을 이야기하고 영원히 지속되리라 했죠. 하지만 그와 헤어진 이후 그를 잊기 위한 순간이 되어버렸어요.”
이건 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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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진의 독백이 아닌, 장국영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도. <아비정전>. 온전히 장국영의 영화. 왕가위도, 장만옥도, 유덕화도, 양조위도, 장학우도, 유가령도 아닌, 온전히 장국영에 의한.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아비의, 지상에 발을 딛는 순간, 훌쩍 날아가 버린 장국영을 위한.
영원히 늙지 않은 채 박제가 돼 버린 그 남자. 머리카락을 자주 쓸어 올리는 남자. 난 너의 스타일이 아냐, 너와 결혼 따위는 하지 않아, 라고 말하면서 계속 외로웠던 남자. 일 같은 건 하지 않는 남자, 아비.
“‘장국영의 나이 든 모습’이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생경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원한 미소년 장국영은 우리에게 한 번도 나이든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의 죽음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묘한 느낌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p.50)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2003년 4월1일, 그것도 만우절에 날아온 소식. 장국영 사망. 그의 사망, 믿기 어려웠지만, 사실 그가 늙는다는 것도, 그가 노인이 된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다. <아비정전>을 다시 스크린으로 만났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의 3일, 서울 광화문 스폰지하우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장국영의 남은 흔적, <아비정전>.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주성철 지음|달 펴냄) 출간기념 독자와의 만남이었다. 4월이 아닌 11월에 만나는 장국영은 처음이었다. 그 사람은 1분과 장국영이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는 열차에서 죽은 아비의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목숨을 끊었을 때와 오버랩 되는 것 같아서.
“언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다”
저자인 주성철 <씨네21> 기자도 생전에 그를 사랑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찾아오는 사랑. 하지만, 그것은 아이러니다. 김연수 작가는 그랬다. “늘 언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무지한 채로 사랑하고, 이별한 뒤에야 똑똑해진다. 이 자체가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그의 죽음으로 접했던 시대의 접힘. 나는 그것에 한없이 흔들리던 남자이기도 했다. 장국영이 비상하던 그때 난, 이렇게 적고 있었다.
흐르지 않고 멈춘 시간. 수리진에게 1분이 그랬듯, 누군가에겐 장국영은 멈췄으리라. 홍콩영화를 따라 홍콩 곳곳에 배인 어떤 흔적을 좇아 그것을 기록하고 담은 주성철 기자에겐 무엇이 멈췄을까. 영화 따라, 책 따라, 그리고 홍콩 따라, 독자들은 <아비정전>을 만났고, 주성철 기자를 만났다.
“혼자 ‘쇠고기 안심 국수’를 먹고 있던 날도 옆 테이블에 있는 한국 사람들을 봤다. 그들의 얘기를 엿듣자니 셩완 지역 얘기를 하면서 ‘괜히 왔다’고 했다. 지저분하고 길도 복잡하고 캣 스트리트 외에는 볼 것이 없다, 는 게 용지였다. 나에게는 거리 곳곳이 주성치와 장국영의 추억이 깊게 배어 있는 곳이기에 참 씁쓸했는데, 어쩌면 그 날의 기억이 이런 책을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p.109)
오늘 영화로 <아비정전>을 고른 이유가 있나. 책에도 <아비정전>이 16번 이상 가장 많이 언급되던데...
책을 쓰고 분량이 넘쳐서 삭제를 했다. 물론 배분하면서 삭제한 건 아니고. 최종 결과물을 보니 장국영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많더라. 평소 장국영을 아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당시만 해도, 장국영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혹시, 너…’ ‘뭐…’, (웃음) 그런 분위기였다. 대놓고 좋아한다고 얘기는 못했지만, 책을 완성해 보니 그가 가장 많더라. 얘기는 안했지만 장국영을 사랑했구나, 생각했다.
<아비정전>, 장국영에 대한 느낌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특히 ‘발 없는 새’에 대한 언급이 많이 됐다. 필리핀의 울창한 숲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데, 결국 (극중에서) 장국영이 죽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동사서독 리덕스>를 보니, <아비정전>의 구도로 완성했더라. 왕가위 감독이 장국영을 가장 사랑했구나, 양조위는 옵션이었구나 생각했다. (웃음) 장국영, 하면 <해피투게더>와 <아비정전>인데, 둘 다 블루레이가 나왔다. 블루레이도 다 봤는데, <아비정전>은 필름의 느낌이 더 좋아서, 오늘 이렇게 선택했다.
캐슬 로드 말고 어디가 기억에 남나?
캐슬 로드는 다녀오신 분이 있었고, 블로그 올린 걸 보고 찾아갔었다. 영화 속에선 유덕화가 순찰을 돌다가 공중전화 박스 옆에서 장만옥과 만난 길이다.
장학우가 차를 끌고 가다가 유가령에게 타라고 했던 길도 캐슬 로드고. 이 길은 굉장히 높고, 한참 걸어야 한다. 트램이 다니는 그 길도 기억난다.
“아비(장국영)는 극장 매표소에 일하는 수리첸(장만옥)에게 접근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은 헤어지게 되고 자신의 짐을 찾으러 아비의 집을 다시 찾았다가 언제나 같은 코스를 돌며 순찰 중인 경관(유덕화)을 만난다.”(p.93)
“셩완은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에게 버림받은 장만옥과 경찰 유덕화가 만나던 ‘캐슬 로드’,…<아비정전>의 그들은 이제 전화박스 앞에서 이별을 경험한다. 유덕화는 매일 밤 전화박스 앞을 서성이지만 끝내 장만옥은 나타나지 않는다. 유덕화는 "그녀는 그저 말 상대가 필요했던 것일까"하고 읊조리고는 그곳을 떠나 선원이 된다.”(p.90,p.92)
또 하나는 장만옥이 일하는 스타디움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혼자 청소하고 먹을 것을 파는 규모가 아니라, 굉장히 큰 규모가 됐다. 극중에선 축구장처럼 나오는데, 실제론 영국에서 많이 하는 크리켓인가, 그걸 하는 경기장이다. 현재는 영화 속 모습과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책에는 장국영의 추억이 깃든 장소도 꽤 많이 나온다.
책에 관지림과 만난 부분이 있다. 그때 굉장히 놀랐다. 홍콩에서 실재 인물을 만난 게, 관지림과 진가신 감독 부부다. 그런 걸 겪고 책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관지림을 만났을 때는 이랬다. 장국영이 호텔의 벽 쪽 자리를 좋아했다하니 여기까지 와서 앉아보고자 했다. 아마 당시 호텔 종업원은 이 사람이 뭐하나, 싶었을 거다. (웃음)
오랫동안 기다리다 그 자리에 앉았는데, 관지림이 오는 거다. 아는 척 할까 말까 고민하다 아는 척을 했더니, 그쪽 자리에 장국영이 정말로 앉았다고 하더라. 한국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장국영과 관지림이 실제로 친했다더라. 그래서 더욱 생각이 난다.
“완차이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티핀은 뷔페처럼 다양한 메뉴를 원 없이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다 제쳐두고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오직 장국영 때문이다.… 1962년생인 관지림은 어느덧 오십대를 향해 달려가는 배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그렇게 바로 옆자리였기에 말을 걸어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든 손은 계속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다 용기를 냈다.”(pp.43~44)
‘예만방’(해피 밸리에 위치한 장국영이 그의 누나 장녹평과 그 어린 조카들과 종종 들렀던 딤섬 전문점)의 사인앨범에서 장국영 사인을 발견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책에선 (주인아저씨를) 굉장히 친절하게 묘사했지만, 실제론 무표정하고 무서웠다. (웃음)
장국영이 구석에 사인한 것을 보니, 굉장히 울컥했다. 그 기분을 달래려면 술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 장국영이 종종 들렀던 카페(일식주점 ‘모정’)에 갔는데, 못 들어간다고 해서(개업 20주년 기념일이라 아는 사람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기위해 일찍 영업이 끝나서) 마무리가 좋지 않았던 기억도… (웃음)
“오랜만이어서인지 찾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가게는 이미 문 닫을 시각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인을 찾았는지 씩 웃으며 그의 사인을 보여줬다. 너무 고마워서 ‘땡큐’를 연발하고 있는데 그의 마지막 말이 묘하게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의 사인은 다른 사람들이 다 사인하고 난 다음 가장 마지막에 빈자리를 찾아 한 것처럼 오른쪽 가장 아래에 있었다. 그 페이지에 가장 처음으로 사인을 한 게 그일 텐데, 그건 누가 봐도 그가 가장 나중에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들과 함께 그 페이지를 채우고 싶은 장국영의 깊은 배려심이라고 할까.”(pp.25~26)
<아비정전>, 왕가위의 뿌리 같은 영화다. 우리나라의 90년대, 왕가위 감독이 끼친 정서적 영향도 대단했다. 영화 어떻게 봤으며,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무용담, 많잖나. 영화 상영 중에 ‘이게 무슨 영화야’하면서 창문이 깨지고… (웃음) 김경욱 소설(『장국영이 죽었다고?』)에도 그런 장면이 묘사돼 있다. 나도 직접 보진 못하고 들었는데, 이 영화 개봉 전 현지 취재를 갔는데, 장국영은 기분이 다운 돼 있고 화가 나 있었다. 왕가위와 장국영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다. 장국영은 기자가 접근도 못할 정도로 무서웠고, 장학우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이때 기념비적인 사진이 하나 있다. 한국의 한 사진 기자가 왕가위에게 가위를 쥐어주고 그걸 사진으로 찍었다. (웃음)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왕가위 감독이 가위를 들고 찍은 사진이 있다. 그때는 한국영화계와 홍콩영화계 가까웠던 때라 이상한 건 아니었는데, 그런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등광영이라는 제작자가, 왕가위 감독에게 <열혈남아> 같은 영화를 만들어라, 장국영과 유덕화가 필리핀에서 마피아와 총격전을 벌이니, 돈 대줄게, 하고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나왔다. (웃음) 등광영은 결국 파산했다. 왕가위로 보면, 이 영화는 그 당시에 없던 아트필름이었다. 대화도 관습적으로 찍힌 장면이 하나도 없다. 유심히 볼 장면이 거울과 커튼, 시계 같은 것들이 나오는 장면이다. 왕가위가 자의식을 드러내는 장면들이다.
지금 왕가위 작품을 보면, 그 당시 <열혈남아>를 본 느낌으로 <아비정전>을 보곤, 굉장히 놀랐다. 이게 뭐지. 필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열혈남아>와의 연결선을 찾았다. 장만옥이 <아비정전>에서는 마카오에서 온 시골여자인데, <열혈남아>에서도 사촌을 찾아 홍콩에 온 여자로 묘사돼 있다.
또 하나는 <열혈남아>의 마지막이 식물인간이 돼 교도소에 있는 유덕화에게 장만옥이 귤을 까주는 장면인데, <아비정전>을 보면 오렌지를 까먹는 장면이 있다. 그 당시, 울컥했다.
대사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왕가위가 그리고 있는 절대적 사랑에 대한 대사 같은 거다. <열혈남아>에서 “너 살인청부업 하지 말라”고 하니, “나한테 잘해주지 마세요”, 라고 박차고 간다. <아비정전>에서 유가령은 이미 장국영과 관계가 끝난 걸 알고, 장학우에게 “나한테 잘해주지 마세요”, 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사가, “죽을 때까지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인데,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알고, 다시 만날 수 없는 걸 알지만, 끝내 믿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 사랑을 얘기한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거다. 이런 것이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등으로 연결되지 않나 싶다. 당연히 이 영화는 앞선 <열혈남아>와도 다르고 이후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면서 상세하게 찾아가는 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후에 이런 책을 낸다면 콘셉트를 왕가위 영화만 한다든가, 신을 따라가면서 한 영화를 돌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나 계획은 없는지, 혹시 써 줄 순 없는지.
일종의 A/S를 얘기하는 건가. (웃음) 책 나오고 나서 아쉬운 게 있다. 책 중간에 유덕화와 양조위를 비교하면서 썼듯이, 중요한 인물을 군데군데 넣었으면 했는데, 그걸 못했다. 나중에 보니 색인을 만들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쉽더라. 지도는, 홍콩에 처음 가는 사람이 이 책을 들고 가면 큰일나는 거라서… (웃음) 다음에 하면, 홍콩에 도착해서 시내까지 어떻게 들어가는지, 지하철 어떻게 타면 되는지 등을 넣고 싶은 마음도 있다. 조금 불친절한 책이긴 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당신이 더 많은 페이지를 새로 써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p.429)
영화를 굉장히 옛날에 봤는데, 오늘 본 것과 장면이 다른 게 있는 것 같다. 새롭게 본 장면도 있는 것 같고, 버전이 여러 개 있나.
내가 알기론, <열혈남아>는 마지막 장면이 다른 버전이 있는데, 이 영화는 같다. 장면을 비교해 보려고 옛날에 출시된 비디오, DVD, 필름을 함께 봤는데, 오늘 필름으로 본 것과 같았다. 내가 홍콩영화에서, 여자가 청소하는 장면을 되게 좋아한다. (웃음) 이 영화를 볼 때도 유가령이 그렇게 청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청소하는 장면은 꼭 기억해두는 편인데, 똑같다.
홍콩영화 좋아한다는데, 어떤 계기로 빠졌나. 홍콩 여배우 중에는 어떤 배우에 관심?
예전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통로가 동시상영관밖에 없었다. 동시상영도 홍콩 무술영화와 한국 애로 영화를 같이 하는. (웃음) 그땐 벗고 뒹굴거나, 싸우다 죽는 영화밖에 없는 줄 알았다. 영화라는 걸 본다고 처음 인식한 게 <영웅본색>이었다. 이후 홍콩영화에 빠져 살다가,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처음 느낀 게 <아비정전>이었다.
배우는 주성치, 유덕화, 장국영, 주윤발 다 좋은데, 여배우는 지금도 여전히 장만옥이다. 다만 안타까운 건, 지금 활동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서, 파파라치 사진에만 찍히고. (웃음)
“홍콩으로 떠나고 싶었던 건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에게 홍콩영화라는 무한한 판타지를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궁극의 방법은 그 장소를 직접 찾아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라 생각했다.”(p.428)
좋아하는 감독은 누구인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두기봉이다. 예전 홍콩 느와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홍콩 느와르를 만들고 있다. 내가 홍콩이라는 공간을 좋아한다고 느낀 게, 두기봉 영화를 보면 참 좋더라. 오늘 <초능력자>라는 영화를 봤고, 예전에 장훈 감독의 <의형제>를 보면서 좋다고 느낀 이유가, 최근 한국의 젊은 감독들이, 홍콩영화를 예전에 좋아했을 것 같은 감독들이, 종로 등을 옛날 홍콩영화가 침사추이를 다뤘던 것처럼 묘사하더라. 지금 홍콩영화가 예전만큼 실시간으로 인기를 끄는 건 아니지만, 아직 그 영향력이 발휘되고 있구나 생각돼서 기분이 좋았다.
비 나리는 2010년의 4월1일.
지난 7년 전, 홀연히 세상과 절연을 선언하고, 영원히 우리 가슴에만 남은,
(장)국영이 형의 기일.
만우절이면, 아니 만우절보다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 이름, 장국영.
어떤 커피가 좋을까.
뜨겁게 살다가, 한 순간에 식은 국영이형을 떠올리며,
국영이 형이 가장 좋아했던 동티모르 커피라고 하면,... 새빨간 뻥이고.
어떤 커피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를 위해, 그를 기억하며, 에스프레소 샤커레또.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얼음과 함께 쉐이킹해서 급아이싱한,
얼음을 제외한
차갑게 식은 에쏘의 맛과 향이 그대로 냉각된, 에쏘 샤커레또!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고픈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당신이라면,
이날 에스프레소 샤커레또를 홀짝이며,
국영이 형이 <아비정전>에서 작렬했던 궁극의 작업멘트를 곁들여서!!!
“1960년 4월 16일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이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내일 다시 올게.”
아마, 당신의 그 얘기를 들은 그 누군가는,
<아비정전>의 수라진(장만옥)이 읊조렸듯,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고 할지도...
4월1일. 오늘, 오랜만에 형을 만났네요. 무척 반가웠어요. 사실, 오늘은 만우절보다 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날이에요. 벌써 5년. 형의 소식을 접한 그날의 영상도 뚜렷하네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날, 비가 추적추적 나리던 날. TV를 통해 형의 소식을 들었었는데... 믿기지 않을 법 했죠. 하필 만우절이었으니까. 거짓말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군요. 맞아요. 나도, 긴가 민가 했으니까.
더구나, 오늘은 더 특별했어요. 왜냐구요? 형을 스크린을 통해 만났잖아요.^^ '5주기' 딱지를 붙이니, 사람들도 더 애틋했나봐요. 형이 나온 <아비정전>(1990)과 <해피투게더>(1998)가 형의 기일에 맞춰 재개봉 했거든요. 저라고 빠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 <아비정전>이 재개봉한 첫날 첫타임, 형을 만나기 위해 냉큼 준비를 했죠. 두 편이 각각 형의 20여년, 10여년 전 모습을 담고 있으니, 형도 감개무량하죠?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오늘을 기다렸던 건, <아비정전>을 마침내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수차례 보고 또 봤지만, 개봉 당시에 전 스크린을 통해 보질 못했거든요. 당시 전 고딩이었고, 특히나 영화가 환불 소동까지 빚으면서 문전박대를 당한 터라, 일찌감치 내려간 탓이었어요.
어쨌든, 설레는 맘을 품고 찾아간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첫타임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특히 40대 아주머니 군단(?)이 형을 보기 위해 몰려와 있더라구요. 와, 놀랐어요. 재개봉에 맞춰, 아주머니들이 저렇게 단체로 오실 줄이야. 형이 한창 날리던 시절에, 청춘을 함께 관통한 팬들이었겠죠? ^^ 기분이 더 업된 건, 포스터도 하나 받았다는 거에요. <해피투게더> 포스터는 갖고 있지만, <아비정전>도 하나 꼭 품고 싶었거든요. 재개봉에 맞춰 새로이 제작된 포스터여서, 더욱 감회어렸달까. 여튼 극장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형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주목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 대열에 동참해 있었죠.
그리고, 드디어 스크린이 열리는 순간, 형이 걸어나오더라구요. 아, 아비의 그 발걸음을 보는 순간, 뭉클뭉클했어요. 콜라 한병을 툭 까면서, 수리진(장만옥)에게 첫 수작을 걸던 그때. "오늘밤 우리는 꿈에서 만나게 될 거요"라는 멘트로 여운을 남기고, 다음날엔, 수리진과 1분 동안 시계를 함께 보더니,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까. 내일 다시 올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뻔하디 뻔한 작업성 멘트를 극장에서 다시 듣자니, 뭐랄까요. 그냥 찌리릿하더라구요. 천하에 둘도 없을 그 1분 멘트의 감흥. 1분, 고작 60초의 시간에 불과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박제되겠죠. 그 무엇으로도 표백할 수도 없는. 수리진도 결국 그렇게 읊조리잖아요.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난 생각해요. 형의 그 멘트는 우리에게 거는 주술과도 같은 거라고. 수리진의 독백은 그 멘트를 함께 받은 우리의 심정이고.
맞아요. 상영시간 내내, 나는 주술에 걸린 듯, 스크린만 멍하니 응시했지요. 아비. 돈 좀 가진 룸펜이자 양아치에 너무 많은 여자를 만나서, 누구를 사랑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바람둥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 안중에도 없는 나쁜 남자. 그럼에도,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비를 잊지 못해 눈물을 짜내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형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냥 아름다움 그 자체였어요. 카메라가 형의 얼굴을 향할 때마다 묻어나는 형의 아름다움은 진짜 영원히 박제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더라구요. 웃음 한번 제대로 웃지 않는 형의 모습. 아름다움과 함께 전시된 그 고독함. 빗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는 형의 그 모습에선, 형이 고독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것 같았어요. 제 기억으론 3차례 그렇게 빗을 쓸어올리더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며, 죽음 따윈 대수롭지 않은 것인양, 말하는 형의 모습에선, 글쎄요. 형이 혹시 구름의 저편으로 가는 날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아비가 떠나는 모습에선, 5년 전 오늘이 떠올랐구요. 여전히 믿기질 않았어요. 형도 그냥 영화에서처럼 눈을 감은 것이 아닐까하고.
스크린을 통해 본 <아비정전>. 형을 본 것도 좋았지만, (장)만옥 누나, (유)가령 누나, (장)학우 형, (유)덕화 형, (양)조위 형까지, 거의 종합선물세트였어요. 20여년 전의 그들을 다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이런 호사.
와, 그러고보니, 형이 살아있다면, 한국 나이론 벌써 53살이에요. 설운도 아저씨보다 2살이나 많다면서요? 그런데 형은 아저씨라고 부르기가 싫어요. 왜일까요. 하하. 그리곤 결심했어요. 저도 그 어느해, 4월16일 3시에 홍콩무역체육관을 찾기로. 그 1분 멘트를 찾아서. 음, 아마 난 오늘 밤에 거울을 보면서 형의 맘보춤을 따라해 볼거에요. 물론 형의 그 자태는 나오질 않겠지만. 제 맘보춤이 어떤지 그곳에서도 한번 봐주세요. 그냥, 오늘 하루만은 그렇게 해보려구요. 하하.
형, 형, 국영이 형, 잘 있는거죠? 그냥 보고 싶어요. 그게 다에요... 이만 줄여요. 내년에 또 봐요...
P.S.. 아, 참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지막에 조위 형이 나와서 그 좁은 다락방 같은 곳에서 담배도 꼬나물고, 뭔가 준비를 하잖아요. 그리고 형의 그 빗질을 따라하는데. 그거 아마 <아비정전> 2탄이 나오려고 그랬던 건가요? 다른, 그러나 같은 '아비'를 조위 형이 연기하는? 제 추측이 맞나요?
장국영. '4월1일'의 이름. '만우절'을 밀어내고, 그날을 추모의 날로 만든 그의 위력. 벌써 5주기다. 발 없는 새를 떠나보낸 지 5년. 지천명이 채 되기 전에 떠난 그는, 여전히 아름답다. 박제된 모습 밖에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선 여전히 살아 있는 장국영.
그럼, 4월1일에 필요한 건 뭐? 그렇다. (장)국영 행님을 만나는 일. 국내 개봉 당시 환불소동까지 빚었던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과, 동성애를 이유로 개봉 불가 판정을 받는 등 수난을 겪은 수작 <해피투게더>. 문득, 생각난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해피투게더>. 학교의 어떤 조직에서 그것을 구해 학내에서 야외상영을 했고, 그닥 좋지 않은 화질로 보게 됐지만, 감격하고 감동 먹었던 그때. ☞ 장국영 떠난 4월1일 수난작 해피투게더-아비정전 재개봉
그를 대면한지도 어언 20여년을 향하고 있다. 주변의 많은 아해들이 유덕화, 장국영, 주윤발 등에 열광할 때 그는 그들보다 더 내 가슴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체로 니힐했고 우울함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무엇보다 (스크린 상의) 그 눈빛이 날 끌어당겼다. 기쁨보다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당당함보다는 심드렁함이 우선 보였던 그 눈빛. 그 밖에도 외로움, 죽음, 비애, 방황, 허무, 부유, 몽환 등...
나는 여전히 (스크린 속의) 그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꼽으라면 그의 이름은 항상 최우선 순위에 포함된다. <2046>이후 스크린 나들이가 뜸한데 그의 소식이 들린다. 반갑다. 친구야~ <무간도>시리즈에 이어 다시 만난 유위강/맥조휘와 함께 찍은 <상성:상처받은 도시>, 그리고 리안과의 만남이라 듬뿍 기대되는 <색, 계>. 다시 그 눈빛을 기다린다. 나는 그런 눈빛을 지닌 어떤 이를 알고 있다. 그 눈빛, 참으로 보고싶다.
2003년 오픈아이(www.5pen-i.com)에 기고했던 글이다. 연재물의 첫 시작은 그렇게 양조위였다. 다시 양조위를 읽는다. 내가 보유한 양조위 리스트, <아비정전> <중경삼림> <첩혈가두> <화양연화> <2046>. 어느 것을 골라볼까.
어쩌면 그 눈빛에 감염됐는지도 모른다 …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이 있다. 어쩌면 숱한 연민을 갈구하는, 혹은 세상에 무관심하다는
그 눈빛은 어딘가로 향해 있다. 그러나 정작 눈빛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심드렁함을 전염시키는, 때론 숱한 고뇌의 시신경들이 얽히고설켜 폭발일보직전의 신경쇠약을 가늠케도 하는... 그렇다고 빨려 들어갈 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지도 않는다. 니힐리즘이 덕지덕지 붙은 그 눈빛. 괜스리 나도 니힐해진다.
그 눈빛에는 어찌할 수 없는 어둠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언젠가는 떠날 애인을 옆에 둔 좌불안석의. 안식보다 불안을 잉태했고, 희망보다는 절망을 감추고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소외당하면서도 울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눈빛은 그렇게 그를 대변하고 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그 니힐한 눈빛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덩달아 그를 담은 DVD도 비에 젖는다. 제길, 우울한건가. 째즈처럼 나른하다. 끈적끈적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텅 빔. 어느 비오는 깜깜한 날, 그 회색빛 풍경을 고스란히 흡수하고픈 욕망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나는 그 눈빛에 서서히 감염돼 '후천성눈빛중독증'에 걸린 건지도 모른다.
양.조.위. 스크린상에서 그를 만났을 때 첫 눈에 뿅가는 강한 임팩트는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홍콩느와르의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그는 확 드러나는 꽃미남이나 위풍당당한 영웅의 모습은 아니었다. 의리로 똘똘뭉친 반항아는 언감생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늘만이 눈가에 고여 있다.
양조위의 실존을 처음 각인했던 <첩혈가두>. 그는 총을 들고 있었지만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고 친구를 위해 울었다. 성공은커녕 그 위태한 우정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린, 어쩌면 팍팍한 사람살이의 일부에 내동댕이쳐진 가련한 서자(庶子)였다. 적자(嫡子)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조직이,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는... 나는 이상하게도 <영웅본색>의 윤발이형이나 <천녀유혼>의 국영오빠보다 그에게 눈이 더 갔다. 왠지 알 수 없는 이끌림...
그는 노래한다. 드러낼 수 없는 어둠과 슬픔과 감추기 위해. 한자락의 비애를 담은 선율이 온 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간혹 그를 마주쳤다. 그에게 본격적으로 추파를 던진 <유망의생>에서 그는 의외로 밝고 명랑했다(아니 그런 척했다). 드러낼 수 없는 어둠과 슬픔을 눈빛 깊숙이 박아놓은 채. 창녀촌의 무허가 돌팔이 의사, 유문.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의 세계는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되고 있었다. 현실을 초월한 것인지, 더 이상 맞대응을 하기 싫은 것이었는지, 그는 세상의 주류에 한없이 무심했다. 입가엔 미소가 있었음에도 누군가의 표현처럼 '저기, 소리없는 한 자락의 비애'였다.
무언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 양조위의 주변에 유령처럼 떠도는 공허함이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빈자리는 신비감이 아니었다. 그는 현실에 일정부분 늘 접점을 두고 있었다. 주변부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던 개인이었지만.
홍콩영화가 날림에 의해 기세등등했던 시절, 그도 다작을 했다. 1985년 <무명경찰>로 데뷔를 했지만 별다른 뽀다구가 없던 탓에 한동안 나의 레이더 밖이었다. 그런 그가 내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인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아비정전> <중경삼림> <동사서독> <해피투게더>를 거치며 왕가위에 의해 새롭게 빚어진 그는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함께 그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했다.
여전히 그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엇박자의 사랑이 그에겐 숙명인지도...
조금씩 세상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비애를 품고 있었다. <중경삼림>에서 그는 사람 좋은 경찰이었지만 그의 사랑은 일방향이었다. 배신한 아내를 잊지 못한 채 시력을 잃어가는 검객이었던 <동사서독>,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연인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해피투게더>에서도. 결국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이라는 <화양연화>에서도 양조위는 사랑의 엇박자에 슬픔만을 머금을 뿐이었다.
왜 그랬는지 물을 수 없었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도, 자신이 원했던 그 무엇도 시원스레 성취하지 못한 못난이였다. 그게 눈에 걸렸다. <무간도>에서도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길을 거닐었고 정체성을 잃은 채 떠돌던 방랑자는 죽음으로 생을 마무리했다.
주변부, 그의 보금자리 … 그랬다. 그는 늘 소수였고 무기력한 소시민이었다. 집단 속에 파묻히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경계인. 그가 속한 자리는 늘 변두리였던 것이다. 개인에게 닥치는 불행은 집단이나 사회 속에서 함몰될 뿐,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대 혹은 사회의 격랑에 휩쓸렸고 사지가 꺾였다. 고종석 씨의 표현을 빌자면 '집단이라는 추상 앞에서 개인이라는 구체는 언제나 서자'임을 그는 몸소 보여줬다. 호부호형 못하는 홍길동이 무술이나 율도국은 커녕 저잣거리로 내몰린 것인가.
양조위는 그것을 눈빛으로 얘기할 뿐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스크린 속의 양조위는 적자(嫡子)가 아닌 서얼(庶孼)로서의 주변인을 대변하고 있다. 꺾어져야 할 것을 미리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그런 그에게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가 압축판이다. 최근에 본 그 영화를 통해 왜 그의 눈빛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냈다. 시기적으로 다른 영화보다 빨랐지만 그는 이미 그 눈빛을 예고했다. 격랑 앞에서 별다른 격노를 보이지 않았으며 사악해 질 수 없는 선량한 눈빛만을 그렁그렁 투사했다. 대만어를 할 수 없기에 귀머거리에 벙어리를 맡아야 했지만 그 선택은 탁월했다.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그 아픔은 눈빛을 더욱 아스라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여기보단 자유롭다며 "북극에 가고 싶다"던 <첩혈속집>의 대사는 영화를 빌어 그가 말하고 싶던 건지도 모른다. <화양연화>의 차우처럼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말이다.
미워할 수 없는, 선량하기 그지없는 그 눈빛을 나는 알고 있다. 그와 정면으로 눈길을 마주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