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재밌으라는 가설이겠지만, 커트는 갔고, 록스타가 아닌, 나는 살아남았다.
'꼰대가 되지 않아야 하는데...'라는 여전한 우려를 품고, 생을 버티고 견디고 있다.
살아남는 것이 예술이라지만, 때론 그말로 위안을 삼지만, 진짜 예술가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 나는,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듣고 있다.
미친천박 거대여당의 탄생을 확인해야 할 것만 같은 슬픈 예감 때문일까.
나도 가사처럼,
"A denial, a denial, a denial..."이라며 외치고 싶다구.
2년여 전, 커트 코베인을 다룬 혹은 연상시키는 영화가 있었지.
구스 반 산트의
< Last Days >.
영화에 나온 주인공 사내 이름은, 블레이크.
어떤 전기 영화도 아니었고, 그저 죽기 전의 블레이크가 부유하는 흔적을 뒤좇던 영화.
중간중간 졸았다. 영화를 따라잡기가 당최 힘들었다. 익숙지 않았던 형식.
따라가보는 수밖에. 멍하니 휘적대는 블레이크의 발걸음에 휘둘릴 뿐이었다.
언젠가 다시 보겠단 생각은 했지만, 글쎄. 아직 꺼내들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커트 코베인의 전기영화인,
<천국보다 무거운>이 제작된다는데,
(IMDB를 검색하면,
'Untitled Kurt Cobain Project (2009)'라고만 게재돼 있다.)
어쨌든, 뉴스에 의하면, 나의 스칼렛 요한슨이 코트니 러브로,
<노트북>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라이언 고슬링이 커트로 분한단다.
그렇담 기대.
☞ 스칼렛 요한슨, 코트니 러브 되다
책도 있다. 커트의 생과 죽음을 따라간.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원제는, 'Who Killed Kurt Cobain?'
어떤 연유로 내 손에 들어와 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으나,
커트의 어릴 적 트라우마부터, 드라마틱한 여정, 죽음의 수수께끼를 푼답시고 썰을 푼 책.
그런데, 솔직히 재미가 없어 중간쯤 덮었다.
드라마틱한 커트의 생보다 훨씬 밀도나 재미가 떨어지는 글.
커트와 너바나의 노래를 듣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이 밖에
≪평전 커트 코베인≫이 있으나 읽지 않았고,
김경욱 작가의 단편소설모음집,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도 있지만, 역시나 패스.
뭐니뭐니해도, 커트를 느끼기 위해선,
볼륨을 높여 'Smells Like Teen Spirit' 노래를 틀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헤드뱅잉이나 하면서 하루를 견디는 것이 쵝오.
언젠가 나도, 시애틀에 있다는,
'커트 코베인 벤치'에 앉고 싶다.
커트 코베인 벤치 아래 구르는 돌에 적힌,
"Kurt, you rocked our world"
(커트, 당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어느덧 14주기. 2008년 4월8일.
누군가는 이렇게 커트 코베인을 떠올리며, 야속함을 토로하고,
☞ [이무영의 왼손잡이 세상]커트 코베인이 있었기에…내일 개봉하는 워킹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에는,
너바나의 노래를 들려주거나 커트 코베인의 사망 소식에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단다.
이와는 무관하게,
오늘은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며,
이소연씨가 혹시 너바나의 노래를 우주에 품고 가진 않을까, 하는 망상.
또 어떤 이에겐,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160주기(1848년),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35주기(1973년)를 추모하거나,
축구선수 김병지(1970)나 가수 거미(1981) 혹은 일본 배우 사와지리 에리카(1986)의 생일로 특별할 날.
당신에게 오늘은 어떤 날인가요?
2년 전, 읊조렸던, 커트 코베인 12주기 추모.
요절(夭折) [명사] [하다형 자동사]
젊어서 일찍 죽음. 단절(短折). 요사(夭死). 요서(夭逝). 요함(夭陷). 조사(早死). 조서(早逝). 조세(早世). 조졸(早卒). ¶ 요절한 천재 시인.
누구든, '죽는다'는 것은 '태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죽음'을 향한 과정이며 그 과정의 험난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며,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 와중에서도 내가 유독 매혹됐던 것은 '요절'이었다. '젊어서의 죽음'이 주는 감상은, 그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절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이 줄 수 있는 어떤 아쉬움과 미묘함.
지금보다 한참 어린 시절 내 방엔 요절한 작자들의 브로마이드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물론, 그들은 누구나 알만한 유명 요절스타이자 아티스트들이었다. 셀리브리티들이었지. 알 수 없는 매혹 때문이었는지, 나도 그들처럼 요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천재(!)이거나 시대와의 불화(!)를 겪은 이들이었다. 요절에 매혹된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나도 천재여야 해'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자'와 같은 공상에 빠져 '또 다른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천재이고 싶었던 열망이 불러일으킨 환상? 망상? 착각?ㅎㅎ
그러나 그건 그리 오래지도 않았고 이내 현실에 수긍하고 타협(!)했다. 희망사항(?)과 달리 결국 요절하지 못한 장삼이사는 현실 적응에 녹초가 됐다.
여튼 그런 망상도 잠시 있었지만, 요절한 이들을 그리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들을 추억한다. 일주일 전의 장국영에 이어 오늘(4월8일)도 바로 그런 날.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꺼번에 타버린. ('27'은 한편으로 의미심장한 나이다.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이른바 '3J'도 27 안팎에 세상을 등졌다. 거참 희한한 일이다. 지미 핸드릭스 1942.11.27~1970.9.18, 제니스 조플린 1943.1.19~1970.10.4, 짐 모리슨 1943.12.8~1971.7.3) 그는 바로 커트 코베인.
이젠 전설이 돼 버린 너바나(Nirvana)의 리더. 12년 전 1994년의 오늘, 그는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았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로 발견된 커트.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이다, 타살이다, 말도 많지만 어쨌든 그는 이미 타버린 나무다. 27에 박제된 록의 화신. 음악으로, 기행으로 시대와 정면으로 맞섰던 반항자.

커트의 유서로 알려진
정돈되지 않은 불협화음과 혼돈스런 사운드로 주류의 가치에 대한 분노와 충동을 거침없이 표현했던 커트 코베인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주도된 미국사회의 보수안정 기조는 보이지 않는 곳에 누수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겉으로 드러난 성장과 안정은 그저 표백제였다. 기성세대들이 뿌려놓은. 도시 뒷골목과 시골구석에서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비틀거린 채 마약에 찌들어 있었다.
너바나의 존재감은 그 가운데서 갑자기 빛을 발했다. 안에서 그만 자폭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에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기성세대에 똥침을 날리며 앞선 시대의 응어리를 제거해 준 메시아.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던 세대의 암울한 자화상을 대변한 것이 그의 음악이었다. 그는 얼터너티브록을 주류로 격상시키며 록의 새로운 신천지를 갈파했던 교주였다. 상업화되는 기존 록 음악에 저항하면서 거칠고 자유로운 록의 정신을 재조명시켰다.
커트의 나이 24, 너바나의 앨범 '네버 마인드'는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를 빌보트차트 정상에서 밀어낼 정도로 굉장한 것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를 휘감을 정도였다. 너바나는 한 순간에 부와 명예의 만신전에 올랐다.
그러나 커트는 그런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고 했다. 「Who killed kurt cobain?」(번역본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을 보면 그는 그런 명성과 상업적 성공을 버거워했다.
어쩌면 그가 등진 것은 그런 세상의 버거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늘 누군가들을, 한번 타겟이 잡히면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지 않던가. 구름의 저편으로 훌쩍 가버린 그는 더 이상 그런 악몽에 시달리진 않으리라.
영화평론가 김지미는 말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커트 코베인을 다룬 영화가 이번달 말에 개봉된다고 한다. <아이다호> <엘리펀트>를 연출했던 구스 반 산트의 작품 <Last Days>. <아이다호>에서의 리버 피닉스가 맡았던 역할마냥 기면발작증에 시달렸다는 커트 코베인의 생을 다룬 영화라. 요절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묘한 경험이다.
그의 12주기에 맞춰 개봉하지 않은 것이 약간 아쉽긴 해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또 하나의 선물이리라. 커트 코베인도 그렇게 선물을 줬나보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요절은 그를 기억하고 좋아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커트가 남겨놓았다는 유서에 적힌 말.
"...so remember,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이 문구는 1970년대 닐영의 히트곡 'My My, Hey, Hey'의 가사 일부다.)
구름의 저편.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나도 꼭 가야할 그곳. 커트 형은 오늘도 기타를 부수면서 'Smells Like Teen Spirit'을 불러대고 있을까.
당신에게 커트 코베인은 어떤 존재였는가.